쉽게 읽을 수 없는 패(覇)/ 백승국
충칭(重慶)은 무직한 인상을 준다.
무덥고 습한 날씨 탓만은 아니다.
중국 남서부 쓰촨(四川)성, 경제 문화의 중심이며 중공업지역인 충칭은 '입구'부터 스산했다. 공항은 썰렁했고 세관원은 굳어있다. 여행자의 가방을 뒤지는 워치덕(Watchdoc) 세퍼드(Shepherd)만 서두른다. 당장 마약 덩어리라도 찾아내겠다는 심사인가 뒤지고 또 뒤진다.
도시는 만원이다. 양쯔강과 자일강 일대 돌산을 밀어내리고 조성했다는 하항에는 3천2백만 명이 집중돼 있다. 우리의 수도권 인구보다 1천만 명이 더 많은 숫자다. 낮게는 30층, 높게는 50층이나 되는 아파트군이 도심을 짓누르고 있다.
기우-고대 중국 기(杞)나라 사람들의 망상-나는 하늘이 무너질까 움찔했다. 옛날에는 중국은 바로 인해전술이며 떼놈-되놈이라 부른 적도 있다.
초면 상견인데 나쁜 생각이 떠올라 미안하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배어 있던 심상(心想)이 고개를 든 것이다.
상가 점포는 물론 상호와 간판 역시 침울하다.
돌출간판은 허락하지 않고 요지경 속 같은 우리 도시의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규격화됐고 획일화된 도시의 표정이다.
유일하게 노란 원색 바탕에 눈을 끈 간판은 은행이다. 그것도 'BANK' 원어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
'비단 장수 왕서방'의 후예들은 달러를 유혹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속셈이 들여다보였으나 상술만은 평가할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탈을 쓴지 수십 년 됐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따질 필요가 없다. 쥐만 잡으면 된다고 했다.
인민대례당(지방의회) 정문에서 펄럭이고 있는 붉은 오성기가 설명하고 있다.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다.
축구장만한 인민광장에는 이동ㅈ하판 여인들이 관광객을 따라다닌다. 대추산지-가을을 팔고 있는 중이다. 만만디(慢慢的)는 실종됐다. 분주하고 시끄럽고 재촉한다. 벤츠 등 고급 승용차가 도심을 누빈다. 단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문다. 놀라웠다. 중국 평균 1인당 GDP는 5천 달러 안팎이라는데 세계적인 브랜드가 한 지방 도시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충칭는 처음이지만 심적으로는 구면이다.
자유중국-장개석, 김구 선생-상해, 그리고 충칭. 귀에 익은 '이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3.1운동 이후 상해에서 항일기지를 닦았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윤봉길 의거(1932년) 이후 다시 찾은 곳은 동중국에서 내륙으로 2천여 km 떨어져 있는 충칭이다. 임시정부 27년 투쟁기간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지역이다.
청사는 초라했다.
1층 사무실은 서너 평은 될까-정면에는 김구 선생의 두상이 자리 잡고 있다. 뒷 벽면에는 당 시 활동을 보도했던 신문기사 스크랩과 단체사진 몇 장이 진열돼 있을 뿐이다. 퇴색된 역사의 얼굴-모두 다 외롭다.
박사보다는 선생에 더 친밀감이 든 적이 있다. 정치가와 혁명가의 길은 체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방명록 장을 넘겼다.
'가신 님들의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2년 9월 OOO'-소원은 오로지 독립이었다.
'나의 소원은 독립이요,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내 소원은 독립이요.' 백범의 꿈이 충칭 어느 뒷길에서 메아리치고 잇었다.
날씨는 맑았다. 4월~10월은 장마철이라고 했으나 햇살이 비치니 다행이다. 밤에도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는다.
아련공원, 'ELING PARK' 영어 팻말이 눈길을 끈다.
공원은 장개석의 둘째 부인인 송미령의 개인주택이었으나 이제는 노인들의 휴식처가 됐단다.
평일 아침인데 벌써 흐느적거린다. 상설무대에서는 노래 부르고 춤추고 여유가 있다. 피아노, 아코디언 연주가 흥을 돋운다. 느티나무 아래 벤치는 투기 오락장이다. 장기, 바둑, 마작, 카드놀이가 한창이다. 우울한 도심지와는 달리 별천지다. 퇴직한 당원이나 그들의 가족이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후미진 구석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이 보였다. 초라하고 지쳤다. 거대한 '중화'가 시달린다. 빈부 격차의 골이 깊어진다. 상위 1%가 부(富)의 41%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다. 최빈곤층이 5천만 명이 된다니 두렵다.
'폭발 직전 상태-부서지기 쉬운 강대국'이라는 잡음이 들린다. '함께 일하고 같이 소유하고 나눈다'는 사회의 또 다른 일그러진 얼굴이다.
먹고, 즐기고, 쉬는 여행의 3락 중 으뜸은 식(食)이다. 비행기, 자동차, 네 발 달린 책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먹을거리라고 했으나 호기심은 순간이었다. 관광객의 식탁에 오른 먹을 거리는 통일됐다. 찾은 식당마다 돼지, 닭, 오리, 등 고기류와 생선, 국수, 만두 등 면류, 안남쌀밥, 채소 등이다.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 에서는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고 불평했다지만 나는 다른 걱정(?)을 했다.
항생제가 범벅된 닭고기, 생선 속에 숨어 있는 납덩어리, 바퀴벌레가 아니면 쥐 튀김 등등-갑자기 입맛이 달아나기도 했다.
듣던 대로 본토에서는 우리식 짜장면은 먹을 수 없었다. 짜장면의 원조는 중국 산동성의 토속음식인 '짜장멘'이라고 했다. 이제는 우리의 '국민음식'이 돼 하루에 800 그릇이나 팔린다.
호텔을 찾는 중국의 젊은이들은 멋쟁이다.
옷차림이나 씀씀이가 유행에 뒤지지 않았다. 활달하고 쾌활했다. 가끔은 버터 냄새도 났다. 별이 5개나 되는 고급(?)호텔 손님의 대부분은 20~30대. 나라 안의 관광객들이다.
더러는 방에서 신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돌아다니고 식탁 앞에서 담배를 피는 철면피도 보였다. '선진'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호떡집에 불이 났는가. 엘리베이터 안은 가끔 응접실이 된다.
모두가 왕(王)이다. 나만 있고 너는 없다.
많을수록 좋다(人多好)던 중국은 한 자녀 갖기 정책 이후 많은 '소황제'를 만들어냈다. 버릇 없는 젊은이들-응석받이 2~3세가 늘어나는 것이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비난할 처지가 못돼 씁쓸할 뿐이다.
2500여 년전 소크라테스가 이미 탄식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산은 높고 계곡은 깊다.
충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관광지 무릉계곡은 깊이가 1000m나 된다. 기기묘묘한 바위 덩어리, 으스스한 골짜기를 자랑한다. 아직도 유비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삼국지의 격전지-적벽대전의 현장-장강은 여전히 유유히 흘르고 있을 뿐 세상을 호령했던 인걸은 간 곳이 없다.
계곡의 대표적인 볼거리 천생삼교는 '인류가 남겨준 최고의 보물'이라고 자랑한다. 국가 A-A-A-A-A급 지하공원이다. 중국식 허풍(?)기가 풍겼으나 기이한 경관임에는 틀림없다.
동굴 속에 동굴이 있고 돌다리 위에 다리가 있다. 하나의 협곡에 두 개의 갱, 3개의 다리, 4개의 크고 작은 동굴, 5개의 샘(泉) 등이 자랑거리다. 숲이 빈약하고 쉴 곳도 없고 골짜기 물은 먹을 수도 손발을 씻을 수도 없어 아쉬웠다. 지질이 석회암으로 돼 있어 우윳빛이다.
충칭을 떠나기 전날 안마소에서 몸을 풀었다.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모양이다. 중국 10대 소녀들은 스스럼이 없다. 가끔 팔다리를 주무르다가 '아파?'하고 저희들끼리 까르르 웃어댄다. 서비스 대가는 1인당 1달러, 우리 돈으로 1천원도 고마워한다.
주마간산, 대강대강 보고 지나친 여행이었으나 느낌은 깊었다.
털어놓고 속내를 내보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등을 돌릴 수도 없는 '이웃' 중국은 포커페이스(poker face)였다.
쉽게 패를 읽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잘 안다고 했지만 중국을 진짜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모래바람, 황사가 몰아치고 독(毒)스모그가 우리를 괴롭힌다. 분장한 인해전술은 이미 깊숙이 펼쳐졌다.
또 다른 '가깝고도 먼 이웃'의 여운은 오래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