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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경복궁 담장 부근을 달리는 러너들 뒤로 러너 할인 혜택을 알리는 매장 입간판이 서 있다. /강은이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공휴일인 지난 17일 오전 7시, 서울 경복궁 부근에는 일상복보다 러닝복 입은 사람이 더 많이 보였다. 이 일대는 지난 몇 년 사이 러닝 열풍이 불면서 국내 대표적인 ‘러닝 성지’로 떠오른 곳이다. 10년 차 러너인 직장인 김모(44)씨는 “경복궁을 한 바퀴 돌면 대략 2.5㎞”라며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신호에 걸리지 않고 뛸 수 있는 데다, 광화문·청와대·국립현대미술관 같은 주요 명소를 두루 볼 수 있어 즐겨 찾는 코스”라고 했다. 특히 경복궁에서 시작해 청와대 사잇길, 삼청동, 종로·청계천을 연결해 돌면 GPS상 기록된 경로가 마치 강아지를 닮은 것처럼 보여 젊은 층 사이에선 ‘댕댕런 코스’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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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미 기자
러닝이 바꾸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러닝 열풍이 동네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자리한 서촌이 대표적이다. 17일 오전 8시 30분,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 있는 2층 규모의 통의동 C카페에는 이른 오전임에도 야외 테라스와 1층 매장에 러너 10여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1~2년 사이 이 일대에는 C카페를 비롯해 새로운 카페가 5곳 이상 들어섰다. 신상 카페들은 대부분 ‘러너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통의동 T카페, 팔판동 F카페는 그날 자신이 달린 거리를 인증하면 음료 가격을 10% 할인해 주고, C카페는 러너들에게 병에 든 생수를 제공한다. C카페를 찾은 A씨는 “요즘처럼 더운 날엔 달리기하고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스스로에게 주는 완주 메달 같은 느낌”이라며 “예전에는 땀 나는 러닝복을 입고 가게에 들어서는 게 망설여졌는데 이곳은 대부분이 비슷한 차림이라 거리낌 없이 들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프랑스 아로마테라피 제품을 파는 인근 가게는 러너들에게 근육통 완화에 좋은 제품을 15% 할인 판매하고, 무료로 샘플을 제공하기도 한다.
서촌은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의 새로운 격전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월 아디다스코리아는 경복궁과 인접한 종로구 창성동에 국내 첫 러닝 특화 매장을 열었고, 그 맞은편엔 지난 4월 프랑스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살로몬이 국내 첫 트레일 러닝 전문 매장을 열었다. 두 매장 모두 제품을 진열해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러닝 세션(수업)을 운영하고 짐 보관 라커를 제공하는 등 러너들을 모으는 ‘거점’ 역할도 하고 있다. 오는 9월엔 국내 토종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도 서촌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대형 매장이 아니더라도 동네 곳곳에서 러닝 용품을 파는 편집숍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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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점./강은이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서촌만의 색깔이 옅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서촌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이모씨는 “서촌은 대형 매장이나 프랜차이즈보다 허름한 한옥과 오래된 골목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와 공방, 갤러리, 책방 등이 모여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온 곳”이라며 “그런 모습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대형 브랜드가 몰리고 임대료가 올라가면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작은 가게들은 자연스레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촌의 한 공인중개사는 “러닝 붐 등으로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서 상권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임대료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며 “개별 점포 임차를 넘어 건물 전체를 매입하려는 관심도 커진 분위기”라고 했다.
실제 이 일대에서는 최근 오래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차례로 문을 닫기도 했다. 지난 4월엔 아디다스와 살로몬이 있는 거리에서 48년간 제육볶음·청국장 등을 팔았던 백반집 ‘청하식당’이 문을 닫았고, 박노해 시인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나눔문화가 같은 거리에서 운영했던 ‘라 카페 갤러리’ 역시 지난 3월 영업을 종료했다. 7월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서촌에서 8년간 운영했던 서점 ‘책방 오늘’이 문을 닫았다. 서점이 자리한 건물이 통째로 한 법인에 매각된 것이 이유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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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미 기자
사회부, 국제부, 사회정책부, 문화부를 거쳐 주말에 읽을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주말뉴스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아이를 키우며 책 '베를린 육아 1년'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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