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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숲길을 걸어본적이 있는가. 숲속에 들어서면 누구나 마음이 편안해 지는것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숲을 찾는다. 하지만 숲도 숲나름이다. 편백나무숲길은 정말 다르다. 이 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듯한 신선한 감흥을 안겨준다. 하늘을 가리고 사열하듯 쭉쭉뻗은 편백나무숲길을 걸어가다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마저 든다.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길이다. 햇볕이 따가워도 숲 그늘은 짙고 깊다. 편백나무 이파리의 푸름을 따라 걸음걸이가 가벼워진다. 편백 내음이 알싸하게 코끝에 머물고 바람 한조각이 얼굴을 스친다.
전남 장성 축령산은 편백나무숲의 대명사다. 전북 완주 공기마을 편백나무숲도 인상적이지만 규모가 다르다. 산세가 곱고 야트막한 축령산에 참빗처럼 가지런한 편백나무와 삼나무, 활엽수가 바다처럼 펼쳐졌다. 569ha. 무려 170여만평에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빽빽하게 서있다. 이처럼 잘가꾼 숲이 있을까. 하지만 애초에 이 숲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축령산은 헐벗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은 위대하다. 50년 전 이 산을 오르던 한 사내가 하나 둘 심은 편백나무와 산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춘원 임종국은 변변한 집도 전답도 없는 가난한 사내였다. 하지만 그에겐 의지가 있었다. 전쟁이 참화가 채 가시기도전인 산속에 움막을 지고 1956년부터 20년간 279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1968년 가뭄이 들자 온 가족이 지게에 물동이를 지고 밤낮없이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뿌렸다. 맨손으로 이 아름다운 숲을 일궈낸 그는 숲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죽어서도 나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축령산 중턱 한 그루 느티나무 아래에 그의 혼이 깃들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나무는 남아 큰 숲이 됐다. 나무들은 살 자리가 모자랄 만큼 넉넉하게 몸피를 키웠다. 숲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솎아베기를 했고, 세월이 흘러 숲은 싱그러운 잎과 아름다운 향으로 심신이 지친 도시인들을 불렀다. 숲은 한결같이 곧고 푸르러 이국적 풍치를 자아낸다. '조림왕'이 남긴 유산으로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장성의 상징이 됐다.
숲길은 거미줄처럼 종횡으로 이어졌다. 추암마을, 대덕마을, 모암마을, 금곡마을 네곳중 어느길에서 출발해도 좋다. 나는 산책길의 들머리를 모암마을로 잡았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산비탈 오솔길 오르막길은 고즈넉했다. 푸른잎 사이를 거쳐 온 몸을 감싸도는 따사로운 햇살이 나무사이를 비추었다.
그 숲길의 끝은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졌다. 제법 숨이 찼다. 고갯마루에 있는 팔각정에서 땀을 훔치며 숲을 조망했다. 내려가는 길은 부드러웠다. 숲 가운데 있는 안내소에 들러 금곡영화마을로 가는길을 물었더니 60대 중반의 자원봉사자는 정색을 하며 테마길을 먼저 다녀오라고 권했다. 임도를 중심으로 가지치기한 솔내음숲길, 산소숲길, 건강숲길, 하늘숲길등 테마길이었다.
이 길로 들어서자 상큼한 기운에 이내 정신이 맑아진듯 했다. 숲속에서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다. 넒은 임도 양쪽의 편백나무숲은 장관이었다. 숲속에 산재한 마루위에는 산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소리를 들으며 편한자세로 누워있었다. 피톤치드는 나무들이 공기 중에 발산하는 항생 물질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모든 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하지만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2배 이상 많고, 침엽수 중에서도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가장 많다.
편백향을 맡으며 테마길을 이리저리 돌은 뒤 문암리 금곡영화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넓고 평평한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길옆에 철쭉이 줄지어있었다. 금곡영화마을은 영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 등의 배경이 됐던 산골마을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의 시골 풍경과는 영 딴판이다. 2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은 현대화된 산골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세속의 때를 벗기고 싶을때, 편백나무숲길만큼 좋은길을 찾기란 쉽지않다.
첫댓글 저도 함께했었지요 새삼 그때의 숲에서 내뿜던 피톤치드의 향내와 더위를 식혀주던 상쾌함이 전해지는것 같군요...
암튼 행복한 하루였답니다~~
쌩유~~^^
풍경소리님,
트레킹에 자주 오셔서 자연이 주는 선물을 듬쁙 가져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