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뒤지면 3년 산다, 20년 산다 여러 설이 있다.
내가 잡아먹지 않고 키우는 닭, 애미(이름이 애미다)는 2010년 9월에 부화했으니 지금까지 만 3년 4개월째 살고 있다. 우리 식 나이로는 다섯 살이다. 만 1년이 되기도 전에 병(펭귄처럼 서고 날지 못 하는 병)에 걸린 암탉인데 기특하게 잘 살고 있다. 닭을 잡을 때 다른 녀석들은 죄다 도망치기에 정신 없는데, 이 녀석, 애미는 도망가기는 커녕 옆에 서서 '쟤 잡아요', '쟤 맛있게 생겼네요', '쟤는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해요' 하고 코치하는 것 같다. 자신은 안 잡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절대 도망 안 간다.
이 녀석은 작년 가을까지 알을 낳다 중단됐으니 닭은 약 3년 알을 낳는 것 같다. 작년 여름 이후에는 며칠에 한 알씩 낳고, 가을 무렵 1주에 하나 정도씩 낳다가 가을 끝날 즈음 알 낳기가 멈췄다.
사람을 보면 보통 가임기가 끝난 시점을 기준으로 살아온 기간의 절반 만큼 더 산다. 같은 동물이니까,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앞으로 이 녀석 1년 반 쯤 더 살지 않을까? 그렇다면 4년 6개월 쯤 살까?
2014. 2. 5 밤, 애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싸래기를 주면서 애미를 불렀더니 나타나지 않는다. 저녁에 퇴근하여 나무를 썰려고 전기톱을 꺼내는데 애미의 머리 발견하고, 후레쉬 들고 농장 곳곳을 뒤지다 애미의 시신을 발견했다. 개들이 다 뜯어 먹은 거다. 어젯 밤 그 좋아하는 햄을 주는데, 구름이 녀석을 햄을 마다하고 먹지 않았다. 닭고기 실컷 뜯어먹고 배가 찼을테니까.
죽은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왜냐면 개들은 닭들을 건들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닭은 먹는다. 산 닭은 건들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추정하면 병으로 죽었을 것인데, 아무래도 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지난 겨울부터 건강을 회복하고 정상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이 물고 끌고가 죽인 뒤 개들에게 쫓겨 도망갔고, 개들이 먹은 걸 수도 있겠다. 발견된 위치가 농장 구석자리인 걸 보면.
아뭏든 병으로 죽은 걸로 마무리해야 겠다. 화단 제일 좋은 자리에 머리와 목을 붙여주고 형태를 가지런히 만들어 묻어주었다.
같이 살면서 언제까지 사는지 지켜보겠다.
2010. 10. 1 부화(닭장수의 말에 의함)
2010. 11. 1 경 농장 식구가 됨(4주된 병아리)
2011. 4. 1 경 본격적으로 알 낳기 시작
2011. 4. 말 경 알을 품기 시작
2011. 5. 19 자연부화에 성공(그후엔 품는 시늉만 할 뿐 자연부화 번번이 실패/이때 '애미'란 이름을 지어 줌)
2011. 11. 경 병에 걸림(날거나 달리지 못하고 엉덩이가 비대하여 펭귄처럼 서는 현상/이런 닭을 잡으면 간이 누렇게 변색)
2013. 10. 경 알 낳기 멈춤/펭귄닭이 되는 병이 자연 치유됨
2014. 2. 5 죽음
(사진은 자연부화에 성공한 애미의 모습)
첫댓글 관찰력이 대단하십니다.~~
앵무새는 50년도 사는 종들이 많던데 닭은 얼마 못사는군요!
전문적 양계 농가에선 2년 동안 알을 빼먹고 폐계로 판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