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의 도시 - 낙양(洛陽 : 뤄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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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洛水)의 양지(陽)에 자리잡고 있다하여 이름붙여진 낙양은 화하문명(華夏文明)의 주요 발상지 중 하나로 하남성(河南省) 서부의 황하 중류에 위치해 있으며 중·서부지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의 역할을 하고있다. 기원전 770년 주평왕(周平王)이 이곳으로 도읍지를 정한 이후 역사상 동주, 동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수양, 수당 등의 13개의 왕조가 이곳에서 수도를 삼았었다.
이곳은 중국 정부가 맨 처음으로 지정한 역사문화의 도시이자 7대 고도(七大古都)중의 하나로서 풍부한 인문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용문석굴은 중국 삼대석굴 중 하나이며, 백마사는 중국 제일의 국가관할 불교사원이다. 낙양고묘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묘군이기도 하며, 이외에도 이정묘(二程墓), 백원(白園), 관림등을 비롯한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낙양을 역사도시로서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또한, 그 역사만큼 수공업제품의 수준 역시 매우 뛰어난데 당삼채(唐三彩), 궁등(宮燈), 방청동(傍靑銅) 등의 제품이 매우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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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사>
<낙양의 용문석굴>
서울에서 낙양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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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
낙양공항은 아직까지 국내선만 운행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직항으로 갈수는 없다. 따라서 북경, 서안, 상해 등의 대도시를 거쳐 국내선 항공이나 다른 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항공을 이용하는 경우라면 북경에서는 1시간 30분, 상해에서는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북경행 비행기는 매일 운항하며, 광주행 비행기는 화,목,토에, 대련과 성도행 비행기는 목요일과 일요일에 운항한다. 간혹 시간표에 나와 있는 비행편이 있으면서도 운행하지 않을 때가 있으므로, 사전에 미리 확인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다.
※낙양공항 낙양공항은 시내 서북쪽 1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외버스 정류장 건너편에서 83번 버스를 타면 공항까지 갈 수 있다.
■기차
낙양 기차역은 시내 북쪽의 남서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2번 6번 10번 66번 83번 103번 등의 버스를 타면 다을 수 있다. 낙양시내에 있는 롱하이철로는 전시내를 횡으로 지나가면서 동쪽으로는 서안까지 서쪽으로는 정주와 개봉까지 이어진다.
소요시간은 북경에서 12시간 30분, 서안은 7시간, 정주는 2시간 이상이 소요되므로 비교적 장거리 여행이 될 것이다. 낙양과 정주는 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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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택시를 이용한 낙양관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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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낙양은 볼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관광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일정을 잘 잡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역전에서 소림사, 백마사, 용문석굴 등의 유명지역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많으므로 흥정을 해서 이용할 수 있다. 또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에 있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는 관광코스도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잘 알아본 후 전날 예약하면 된다.
또, 자유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역전앞의 시내버스노선을 이용해도 된다. 물론 관광버스보다는 다소 불편하겠지만 56번이나 60번 버스를 타면 종점이 백마사, 종점 전 정거장이 용문석굴이므로 기억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주요 관광지 연결 버스노선
56번 낙양기차역 - 백마사 60번 곡수서경관림(谷水西经关林) - 용문석굴, 백원(白園) 81번 낙양기차역 경관림 - 용문석굴, 백원(白園)
■ 택시
낙양시내에는 택시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기본요금은 3km에 6위안이며 1km마다 1위안씩 올라간다. 중촌서로, 중촌중로, 중촌동로(지리가 북경의 장안가와 흡사하다)에서 홀수번호의 택시와 짝수번호의 택시가 분리해서 운행을 하는데, 차면허증이 홀수인 택시는 홀수날에 운행하며, 짝수인 택시는 짝수날에 운행한다. 이곳은 시내가 그리 크지 않기때문에 택시비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아 20위안이면 낙양성을 한바퀴 돌 수 있으니 택시비를 지불할때 염두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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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모란꽃 축제(洛陽 牧丹花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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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사이에서 '낙양모란은 천하제일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란은 옛부터 만화일품이라 칭송되어 왔다.
특히 당대에는 모란이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왕성하게 피었는데, 그때부터 모란을 즐기는 축제가 풍습처럼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서 재배되는 모란의 품종이 350여종에 이르고, 그 중에서도 '요황'과 '위자'는 모란의 왕과 왕후로 불리는 가장 뛰어난 품종이다.
또한 모란(牧丹)은 전통적으로도 유명한 꽃이며, 또한 그 꽃을 감상하는 것은 낙양 사람들의 오랜 취미였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관광산업이 날로 발전할수록 낙양 사람들은 꽃을 심고 감상하는 열정이 증가되었다.
낙양의 모란꽃 축제는 1983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어 그 후로 일 년에 한번씩 개최되었다. 매년 4월 모란꽃 축제가 개최될 때면 국내는 물론 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낙양으로 몰려들고, 낙양의 대외 개방에도 좋은 계기가 마련된다. 축제 기간에는 대형 문예공연, 꽃놀이, 서화, 사진전, 무역 상담회 등이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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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풍유시인, 백거이의 묘(白居易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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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 용문교 왼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백거이의 묘인 백원은 백거이가 생전하던 839년에 중풍으로 고생하면서도 향산에 왕래하며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 등의 작품활동을 하던 곳이며, 846년 8월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자 무덤을 조성한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나즈막한 언덕의 비탈길이 나오고, 여기저기에는 정자와 기념관도 서있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돌아가면 평평한 곳에 백거이의 무덤이 있는데, 직경이 10m안팎, 높이 2.5m쯤 되고 밑둥에는 화강암으로 호석을 둘렀다. 무덤 앞에는 일주석문과 거대한 백낙천의 사적비, 일본인 불교신자들이 세운 백거이의 시비들이 서 있다.
백거이는 두보, 이백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3대 시인의 한사람이다.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이며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낙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시짓는 법을 배웠다. 27세 때 진사시험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좌습유(左拾遺) 등을 지냈으나 그리 순탄한 관직생활은 아니었고, 나이 50이 넘어서야 항주와 소주의 자사(刺使)를 역임하게 되었다. 이후 이곳 향산에 은거하면서 시와 술로 만년을 보냈다.
그의 시는 민중시인, 사회시인, 풍유시인 등으로 불릴 만큼 하층빈민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불공평을 개탄하는 내용이 많다. 그의 풍유시 170여수와 신악부(新樂府) 50수는 평민들의 비참한 생활과 사회적인 모순과 갈등을 인본주의적인 견지에서 파헤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테마로 한 '장한가'를 비롯하여 '비파행(琵琶行)', '진중음(秦中吟)' 등을 들 수 있다.
◇ 백거이의 장한가 ◇
칠흙같은 검은 머리 옆으로 쏠려 있어
지금 막 단잠에서 깨어난 듯 하였소
꽃 수놓은 머리띠 헝클어진 그대로
정신없이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었소
산들바람이 마침 불자 선녀 옷깃이 나풀거리는 게
그 모습 완연히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가 아닐손가
옥같은 얼굴엔 시름이 한가득
배꽃 한가지에 봄비가 맺혀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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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의 묘>
중국의 유일한 고묘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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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묘박물관은 낙양시 북쪽교외 망산총(邙山塚)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 유일의 고묘박물관으로 전체면적 3만평방미터에 건축면적만 7600평방미터를 차지하고 있다.관내에는 다량의 옛 생활기구와 장식품 등 부장품과 서한,위진시기의 토용 그리고 당대의 당삼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크게 지하와 지상 두부분으로 나눠져 지상에는 한대 백옥으로 만든 망루와 서막대전(序幕大殿), 도서자료실, 전시실, 사각루(四角樓), 망경정(望景亭)등이 있으며, 지하에는 박물관의 핵심으로 서한부터 북송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전형적 형태의 웅대한 고묘 25개가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벽화묘군이 가장 유명하다.
낙양의 한묘(漢墓)벽화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현재 모두 10개의 고벽화묘가 참관할 수 있는데, 서한의 "타귀도(打鬼圖)"벽화묘, 서한귀족 복천추(卜千秋)벽화묘, 동한의 출행도(出行圖)벽화묘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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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관우의 머리가 묻힌 곳 관림(關林 : 관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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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림은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 관우의 수급(首級 : 머리)가 묻혀 있는 곳으로, '관제가'라고도 한다. 마치 작은 언덕처럼 생겨 있으며 주위의 나무가 무성하여 언뜻 보면 작은 숲처럼 보인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손권이 관우를 죽인 이후에 유비의 후환이 두려워 목갑에 넣어 낙양의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그 계획을 알아차리고, 예를 다하여 성 남쪽에서 장례를 치뤄 주었다.
관림은 중국 최초의 관우를 모시는 사당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 관우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밀랍 인형이 있는데, 동전을 넣으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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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림 입구>
중국 제일의 사찰 백마사(白馬寺 : 바이마쓰(Bai Ma Si), White Horse Tem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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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시 동북쪽 12km 정도 떨어져 있는 한위(漢魏)의 낙양성내에 있다. '중국 제일의 사찰'이라고 칭해지는 백마사가 창건된 것은 후한시대인데,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된 후 최초의 사원이다. 다시말해 백마사로 인해 중국에서 불교가 처음으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절의 이름인 백마는 인도에 파견한 일행이 백마(白馬)에 경전을 싣고 돌아온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을 뜻하는 듯 절 입구 양쪽에는 송(宋)나라 때 만들어진 두 마리의 백마상(白馬像)이 서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에는 천왕전(天王殿)이 서 있고, 그 뒤로 대불전, 대웅전 등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대불전에는 무게 1.25t의대철종(大鐵鍾)이 있고, 대웅전에는 원(元)대에 조각된 십팔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 절의 동쪽에는 13층 정도 되는 약 24m의 제운탑(濟雲塔)이 있는데, 이 탑은 금(金)나라 1175년에 세워진 석탑으로 탑의 앞에서 손뼉을 치면 개구리 울음소리를 닮은 메아리가 되돌아온다고 한다.
또 봄이 되면 백마사 경내에 모란꽃이 활짝 펴서 이때 이곳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 가는방법 : 서관(西關)에서 56路 버스 타고 종점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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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사>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인 용문석굴(龍門石窟 : 롱먼스쿠, Longmen Cav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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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의 막고굴(莫高窟), 대동의 운강석굴(雲崗石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힌다. 하남성과 낙양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하며, 명성에 걸맞는 규모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을 보러 낙양에 들르는 여행객이 대부분일 정도다.
이곳은 하남성 낙양시 남쪽 13㎞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백거이 묘가 있는 향산과 용문산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이곳의 시작은 북위 효문제 때에 대동에서 이곳 낙양으로 천도했을 때부터 운강석굴을 계승하는 형식으로 처음 뚫어졌고 그 작업이 동서위, 북제, 북주, 수, 당에 이르는 400년간 계속되었다.
현재는 2345여 개의 석굴, 2800여 개의 비문, 50여 개의 불탑, 10만 개 정도의 조각상이 남아있다. 용문석굴은 현조하는 종교, 미술, 서예, 음악, 의료, 건축 등 방면의 살아있는 역사 자료이다. 따라서 '대형 돌조각 예술 박물관'이라고도 칭해진다.
▷ 개관시간 : (여름) 06:30-19:00, (겨울) 07:00-18:00 ▷ 가는방법 : 60번, 81번 버스를 타고 용문구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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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
소림사 고승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탑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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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탑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숲과 같다고 이름 붙여진 탑림은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무덤으로 소림사에서 서쪽으로 400미터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이곳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많은 수의 탑이 있으며 규모 역시 가장 큰 고분군으로 벽돌로 만들어진 묘탑이 240여개 있으며 면적이 14000여 평방미터에 달한다.
탑은 일반적으로 7층으로 가장 높은 것이 15미터이며 형태는 정방형,장방형,육각형,원형,원주형,송곳형, 병모양,나팔형 등이 있다.
불가의 법에따라 단지 명승이나 고승의 원적 후에만 탑을 만들어 생전의 공적 등을 탑돌에 새길 수 있었다. 탑의 형태나 층수 높이와 크기, 벽돌건축과 조각예술의 표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 스님의 생전 불교계의 지위나 성과, 덕망의 높고낮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곳 탑들의 형상과 구조는 매우 다양하고 명문 내용도 풍부하여 불교사 및 중국 고대 벽돌건축, 필법, 조각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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