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축구인의 천국... 호주
호주로 건너 올 때 큰맘 먹고 고국에 놓고 온 것이 있다.
어렵게 장만했던 꽤 괜찮은 카메라.
태평양을 건너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괜히 좋은 카메라 갖고 있으면 공부에 방해(?) 된다는 스투피한 생각으로 동생에게 인심 쓰며 건네주었고....
그리고 축구화 여러 켤레였다.
이북이 고향인 부모님들이 2세들의 교제를 위해 축구팀을 만들고, 틈틈이 막대한 지원을 해주는 덕에 축구화는 물론이고 그 외 운동복, 스타킹, 축구공...등등
축구에 관한 물품은 풍족하게 갖고 있었는데, 태평양을 건너가면 그게 무슨 필요가 있으랴...싶어 주위의 친구들에게 선심 팍팍 써가며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널려있는 푸른 잔디를 보며 나는 곧 바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축구화를 하나 장만하려고 갔더니...억~~ 디게 비싸다.
그래도 하나 샀다.
왜냐하면 평생 잔디구장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맨땅에선 축구화가 그리 큰 도움을 못 주지만 잔디 위에서 축구화 없이 공을 차기란 정말 쉽지 않다.
잔디구장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호주.
저렴하게 야간에도 라이트 경기장을 빌려 쓸 수 있는 호주.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동호인 입장에서 보면 이건 축구천국이다.
그래서인지 호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적으로 많은 축구클럽들이 활성화 되어 있다.
조그만 꼬마들이 유니폼에 스타킹까지 신고, 푸른 잔디 위에서 이리저리 공을 따라 다니는 그림은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깜찍한 영화의 한 장면이다.
나의 큰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어린이 축구교실의 문을 두드려 매주 토요일마다 아들을 차에 태우고 축구장으로 향했다.
고만고만한 한국아이들이 푸른 잔디구장을 뛰노는 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행복이었다.
더구나 내 아들이 힘차게 공을 차고 뛰는 모습을 보는 희열은.... 아마 박 지성 선수가 유럽 베스트11에 뽑히는 기쁨보다도 더 진한 기쁨일 것이다.
여하튼 축구에 소질을 보인 아들이 노랑머리의 학교 대표선수로 뛰면서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축구교실에서 기초를 잘 다진 덕인지, 워낙 축구에 소질이 있는건지...아들은 자기보다 머리가 하나 더 달린 노랑머리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공을 치고 들어가는 공격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같은 팀의 호주 부모들이 내 아들 이름을 크게 부르며 응원을 해대는 것이다........나는 왠지 모르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아들이 골을 터뜨리면...사방팔방에서 모여들어 축하를 해주고 관람을 하던 호주 부모들도 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좋아라하고 폴짝폴짝 뛴다.
그라운드의 스타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들을 태우고 축구장으로 오가는 길에, 개인코치(?)의 역할을 톡톡히 해댄다. 나 역시 오랫동안 축구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터라....
아들의 위치 선정과 파트너와의 협조관계 등 여러 각도에서 아들에게 축구의 시야를 넓혀 주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진하다.
내가 축구를 잘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면 씨알이 잘 멕히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들과 공원에서 공을 가지고 놀 때,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을 보여주며 아들이 ‘아~ 우리 아빠는 나에게 축구를 가르칠만한 충분한 실력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하게끔 미리 만들어 놓는다.
그래야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들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축구공을 다시 찰 기회가 종종 생기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이곳 시드니에는 축구환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이름만 되면 누구나 다 아는 권모시기, 김뭐시기, 임거시기...등등
거의 동호인이 아닌 환자수준까지 가있는 친구들이 구장을 빌려 놓고 매주 축구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들을 동호인이 아닌 환자로 소개를 하냐하므은~~
이들은 주말의 아침에 만나서 편을 짜고 한판 경기를 벌인다.
경기를 하다보면 조금 늦게 온 친구들이 있게 마련... 의리 있는 축구인들이기에 늦게 온 사람 기준으로 시간을 늘이며 계속 경기를 하게 된다.
그리곤 잔디밭에 누워서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가 밥내기니 술내기니 하며 또 다시 판을 짜곤 다시 뛰기 시작한다.
어느 한 팀이 이길라치면 지고 있는 팀에서 이런저런 건수를 만들어서 연장전에 엎어쓰기, 공갈협박 등등....을 하며 밥 먹고 쉬는 시간 가져가며 거의 하루 종일 공을 차고 뛴다.
이게 어쩌다 한번 생기는 일이 아니고, 일주일 단위로 매주 벌어지는 일과이다.
이 정도면 동호인 개념을 넘어 섰다고 보는 것이다...필자는.....
그러면 동호인 수준을 넘어선 그들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하고 고심을 했다.
축구 매니아? ...이건 꼭 구경꾼 같은 느낌이다.
축구광?.... 요건 또 ‘광‘ 자 때문인지 꼭 고스톱이 연상된다.
축구 전문인?.... 이건 또 전문학교 나온 축구인 같은 느낌이...ㅋㅋ
그래서 내린 결론이 ‘환자‘ 이다.
나쁜 의미로 붙이는 별명이 아니니 당사자들은 기분 상하지 않았음...좋겠다.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우리가 군대에서 교회갈사람 모이게 할 때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소리.
“교회 환자 행정반 앞으로 집합!... 다시 전달한다! 교회환자...”
ㅎㅎㅎ
자타가 공인하는 군대박사인 필자가 애칭으로 부르는 별명이다.
나 역시 축구환자임을 상기하며.......
축구의 세월
꽈당~~
축구를 하다보면 자주 벌어지는 선수끼리 충돌하는 소리이다.
보통 두 명이 다 다치는데, 그 중에 한명이 더 다치게 마련.
오늘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내 친구하고 아들 뻘 되는 학생하고 부딪혔다.
“I~C" 하며 엉덩이를 툴툴 털며 일어서는 학생.
여전히 잔디밭에 넘어진 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친구....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서 그 친구에게 다가가
“괜찮아?”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여전히 인상만 쓰고 대답조차 못하던 친구...
결국은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 하고 나무그늘로 엉금엉금 기어들어 가는 친구.
다른 사람들은 그저 가벼운 부상이겠거니...하며 남은 경기를 펼쳤는데...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몽땅 그라운드에 빼고 난 후, 숨을 돌리며 나무그늘엘 보니 그 친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가 나무그늘에서 쉬다가, 판 깨기 싫어서 혼자 슬그머니 집으로 갔나보다 라고 생각한곤 일주일이 흘렀다.
그런데 다시 모인 축구 동호인들의 모임에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의 동향을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친구의 부상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곧 바로 전화를 해보니...에고고gogo
침 맞으러 한약방엘 다니고 있다고... 앞으로도 약 3개월 운동을 못한다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같이 부딪힌 아들 뻘 되는 놈에게
“너는 괜찮냐?” 하고 물으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하며 생뚱맞게 대답했다.
똑같이 부딪혔는데, 한 놈은 아무렇지도 않고 한 분은 전치 3개월(?) 진단이 나오고....
세월의 차이로구나.
그래서 깨달은 게 있다.
고무공 같은 아이들하고는 되도록 부딪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부딪히면 고무공은 그냥 곧 바로 원위치 되지만, 우리 같은 노장들은 튕겨져 나가떨어지며 어디가 상해도 단단히 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무공이 부딪혀 오면 잽싸게 피하자.
그도 어려우면 아예 고무공 근처에는 가지를 마알자~~
이건 비겁한 것이 아니고, 지혜이다 아니 노익장들에겐 실력(?)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