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조선의 대과학자 장영실은 어머니가 관기였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지만 어릴 적부터 뛰어닌 손재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대와 혼천의
금속 활자인 갑인자.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측우기 등을 발명했는데
이렇게 많은 발명품들을 만들어 내면서 세종 대왕에게 그 실력을 인정
받아 노비의 신분을 벗고 관직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세종 대왕의 명으로 장영실이 만든 가마가 종묘 행차에서 부서지는
바람에 장영실은 벼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생활에 이로운 기구들을 발명해
낸 장영실을 탐구 정신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조선 시대 최대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 시대 최대의 과학자로 손꼽히는 장영실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천민의 서러움을받으면서도 과학적인 재능과 솜씨를 끊임없이 발휘했다.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에 젖어 과학을 치시했던 시대였지만
장영실은 선경지명이 뛰어난 세종 대왕에게 발탁되어 탁월한
재주와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조선시대에
찬란한 과학의 꽃을 피웠다.
장영실은 어린 시절,천민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무엇이든지 만들어 보고
세말히 관찰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는 천민이라서 정상적인 교육도 빋지 못한데다가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와 헤어져 관가의 노비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관가에 들어가서도 스스로 일을 찾아 부지런히 하고. 지혜를 짜내어
무슨 일에나 편리한 방법을 연구해 냈던 그는 현감의 추천으로 세동 대왕을
만남으로써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세동 대왕은 천민인 그에게 벼슬까지 내려 주어 천민의신분에게 벗어나게 해 준다.
장여실은 세종 대왕에게 보답하는 길은 주어진 일을 성심껏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밤낮없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한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에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어
눈부신 업적을 남긴 장영실이었다.
그는 천제적인 머리와 뛰어난 손재주로 천체 관측
기구인 간의와 혼천의를 만들어 냈다.
또한 동활자인 경자자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 활자인
갑인자를 만들어 인쇄 능률을 향상시켰다.
게다가 우리 나라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어 전국의 표준
시간을 정했으며,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여
그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이 축우기는 서양의 측우기보다 197년이나 앞섰다고 하며,
지금 세계 여러나라에 쓰고 있는 우량계도 바로 장영실이 발명한 측우기와 거의
같은 정도이니 얼마나 과학적이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축우기를 발명한 후에도 장영실은 물의 높낮이를 재는 수표를 만들어
청계천 다리에 세우고 하전의 범람을 미리 막을 수 있게 하였다.
이렇듯 그의 발명품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임금의 가마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 쫒겨나는 안타까운 일을
당하게 되고.그 후의 그의 행적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장영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뜻을 세워 꿋꿋이 노력하는 열의와
자신감으로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다.
또한 그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다 보면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골고류 인재를 뽑아 쓴 세종 대왕의 슬기로움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이 가진 소질과 재주를 마음껏 발휘한 장영실의 굳은 의지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