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녹색생태계가 잉태한 창의적 문화예술
동양의 르네상스, 통영효과
통영은 동양과 서양, 어제와 내일이라는 난류와 한류가 서로 만나고 교감한다. 창의적
문화예술도시의 플랑크톤이 풍부하게 자라나고 있다. 나폴리의 자연과 잘츠부르크의
문화를 융합하는 통영이다. 체험한 것 만큼 보이고, 모르는 것만큼 호기심이 더 생긴다.
융합창조시대이다. 인재를 중시하고 다양성이 교류하며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를
창의성 발현 측면에서 '메디치효과' 라고 한다. 소설가, 시인, 조각가, 미술가, 음악인,
공방 장인 등 전 세계적으로 인구비례당 가장 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통영이다.
서양에 '메디치효과'가 있다면 동양에는 '통영효과'가 있다. 250개의 섬을 진주처럼
간직한 통영의 바다는 영혼의 거울이다. 통영의 바다를 바라보며 물결에 어린 햇빛과
달빛의 아름다움을 체험한다면, 예술인들을 잉태하게 되었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도시도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흥망성쇠가 있다. 쇠퇴기의 도시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원형, 뿌리 즉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내어 스토리로 풀어내고 시대에 맞추어서
디자인해야 한다. '문화의 상품화'를 잘못하다 보면 정체성의 혼돈이 온다.
명나라와 왜국도 알아 주었던 조선의 명품을 만든 12공방의 전통을 젊은 예술인들이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바로 <크래프트(craft) 21>
운동이다. 전통공방 장인들의 혼을 스토리로 엮어내어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창조하는
상부상조 상호공생 커뮤니티가 2008년 태동하여 내일의 통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분단의 화해와 세계 평화의 꿈
통영은 무인의 칼과 문인의 꽃,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영시 도천동 소재
윤이상 거리에 있는 윤이상 테마파크로 가보았다. 수변공원으로 꾸며진 모습이 단순미
속에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통영이 고향인 윤이상(1917 – 1995) 선생의 작곡 세계와 사상의 원형은 통영의 바다와
자연 풍취에서 유래된 것이다. 물과 빛은 생명의 상징이다. 바다의 파도와 태양과 달의
빛이 만나서 음률과 음색이 되고, 시냇물과 개구리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이룬다.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만 하더라도 1967년의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기억한다.
윤이상 선생, 천상병 시인, 이응로 화백은 분단시대 희생양이자, 동백꽃마냥 강렬하게
툭 가버란 삶이다. 윤이상 선생의 아픔은 음악으로 승화되고, 그의 통일을 향한 염원은
통영시민 그리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북한에서 기증하였다는 그의
흉상이 우리를 응시한다. 통일에의 진정한 염원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축제는 여름철 4주간 열리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 이다.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산’이라는 뜻이다. 8 세기이후 소금으로 부를 축적한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의 북로마’로 불리운다. 푸른 숲과 호수가 하얀 눈이 덮인 산과
어울리는 잘츠부르크의 환상적인 자연경관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탄생시키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림 같은 배경도시이다.
1920년부터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는 잘츠부르크 축제는 초기에는 모차르트 음악만
연주하다가 많은 뮤지션들이 참가하면서 세계 음악인의 대표적 축제가 되었고, 여름
철만 되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서 숙소를 구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잘츠부르크는
199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통영시의 대표적 문화관광상품은 통영국제음악제이다.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2002년부터 개최하여 이제는 통영의 문화브랜드가 되었다. 2011년 열 돌을 맞이한
음악제의 주제는 ‘전환(Moving Dimension)”이었다.1971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차원(Dimension)’에서 착상한 것이다.
윤이상 선생은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음악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 로 유럽 음악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95년 5월에는 독일 자아르
브뤼켄 (Saarbrücken) 방송에 의해 20세기 백 년간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
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다양성이 공존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시대에서 동서양의 음악을 융합하여 새로운 장르
를 누구보다도 앞서서 개척한 선구자였지만, 남북분단의 아픈 현실 속에서 한때 그의
업적을 등한시한 적이 있었다. 베를린 자택 앞마당에 한반도 모양의 연못을 만들어 조국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였던 윤이상 선생의 뜻은 통영국제영화제를 통해 부활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가 담긴 음악 사상은 생태도시 통영과도 어울린다.
"이제 나의 고향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독일이다”라는 한스러운 유언을 남긴 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그의 묘소는 ‘인류에 명예로운 유산을 남긴 인물’을
위해 베를린 시당국이 조성한 가토우 지역에 있다.
세계음악사에 남긴 윤이상 선생의 빛나는 업적을 기리고 역사의 아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통영시민이 할 일은 무엇일까? 통영국제음악제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양의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로 세계인에게 인정받는 그 날을 마음 속에 그려본다.
북한 오덕수용소에 갖힌 신숙자 모녀의 아픈 사연, 윤이상 선생의 친북논쟁 속에서도
2012년 봄에 열린 통영국제음악제(TIMF)의 주제는 '소통(Without Distance)' 이였다.
음악, 미술, 조각, 공예, 서예, 의상, 문학, 영화, 연극, 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 둥 모든
예술 작품은 창작예술인의 손을 떠나는 창작자궁에서 태어난 별도의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권력과 돈의 요청으로 작품을 만들어졌다고 해도 작가는 그 어딘가 그의 혼을 감추어둔다.
첫댓글 잘 읽고 또 읽었슴다 다음호를 기대하면서...감샤~~
소중하신 분의
방문에 고맙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존경합니다.^^
아닙니다.
더 정진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는 존중 받아야 하지만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던 통일관과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북한의 통일선전전술 등을 떠나 팩트로서 진실규명이 있어야 한 인물에 대한 공과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음악적인 부분은 개입되지 않아야 합니다.
장무상망 하겠습니다.
정치와 예술과의 관계는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정치와 문학, 정치와 교육...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일제시대 독립운동과 문학과 교육계, 언론계... 친일행각시비. 해방후 좌우갈등과 친북, 종북논쟁과 시비. 윤이상 선생의 공과 과, 그의 음악세계. 팩트규명을 통한 진실규명은 의미가 심장할 거라 봅니다. 일부 알려진 것도 있지만. 예술가의 작품을 그의 정치적 입장, 사상과 떠나서 볼 수 있는지?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세계음악계, 특히 독일은 그의 작품을 인정합니다. 어찌되었던간에 예술은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봅니다. 작품은 작가를 떠나는 순간 별개의 독자적 생명체가 아닌지요? 피드백에 고맙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제기획자
인 김승근(46)이 숨은 주역이다.
그는 1921년부터 시작한 '도나우에싱겐
페스티벌'에 착안했다. 인구 4만의 도시
에 금토일 사흘간 전 세계음악애호가들
이 찾아와 창작곡을 공유한다.
"윤이상 선생이 지향하셨던 '아시아의
소리를 찾아서' 열린 창이 통영입니다."
"전 주인공이 아니죠. 그림을 벽에 걸 때
못같이 받쳐주는 역할이 제 몫입니다.
무대 앞쪽에 서고 싶어 하는 이들을 뒤
에서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죠."
- 출처: 중앙일보, 새 분야 개척했다,
세계와 소통했다, 시대를 선도했다,
미래비전 제시한 젊은 세대,
2013.05.06,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