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양지와 응달(陽·陰)은 햇빛과 관련한 땅의 위치를 반영한다. 한자 지명에서 ‘양(陽)’은 산의 남쪽, 또는 강의 북쪽을 뜻한다. 이를테면, 한양이란 지명에는 한산(북한산)의 남쪽이자 한강의 북쪽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이를 산남수북(山南水北)이라 표현하며, ‘양지’는 햇빛이 잘 비치는 남향의 산록에 입지해 사람이 거주할 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반면에 ‘음지’는 산북수남(山北水南)의 장소로서 산지의 북사면이다(아래 그림).

우리나라에서 양지의 위치에 있는 지역은 양산(陽山), 양촌(陽村)·양지마을·양지뜸 등의 지명으로 나타난다. 음지를 나타내는 지역은 충북 음성(陰城), 황해도 평산 땅에 강음이 있다. 경남의 산청(山淸)은 산음(山陰)에서 고쳐진 지명이다.

경주에도 양지와 음지를 의미하는 지명이 곳곳에 나타난다(표 5). 양지는 양지마을·양지말·양달·양지각단 등의 지명으로, 음지는 음지마을·음지말·음달 등의 지명으로 나타난다. 특히 감포 팔조리, 내남 명계리, 내남 상신리, 양북 안동리, 현곡 무과리, 인왕동 등은 음양대응형으로 나타난다. 즉 동서로 흐르는 하천을 기준으로 남북에 음지마을과 양지마을이 각각 마주보고 자리해 있다(아래 그림).

단일형으로는 양지 지명이 6개소로, 음지 지명인 암곡동 1개소에 비해 많이 등장한다. 음지 지명이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음지’의 지명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초 음양대응형이었던 지명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음지 지명은 점차 사라지고 양지 지명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는 아예 처음부터 ‘음지’ 쪽에 사는 사람들이 ‘음지’와 관련된 지명 만들기를 꺼려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기 좋은 마을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음지 마을 사람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러한 마음은 지명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암곡이라는 이름이 ‘골짜기가 깊다’는 뜻인데, 조선중엽 ‘명곡’으로 고쳤다가 다시 ‘암곡’으로 바꾸었다고 전해지며, 인왕동의 음지마을은 근래 ‘해맞이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
풍수에는 땅의 약한 기운을 북돋우고 반대로 강한 기운을 억누름으로써, 풍수적 길지로 만드는 비보(裨補)라는 개념이 있다. 지명에 ‘밝음(明)’이나 ‘해맞이’ 등의 용어를 넣는 것은 부족한 햇빛(陽)의 기운을 보충하는 일종의 지명 비보 행위다. 또한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 선조들의 의지의 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