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번역원에 올라있는 황윤석의 이재유고( 頤齋遺藁 卷之十一 / 序)에는 탐진안씨족보 서문이 실려 있는데, 연대 표기는 나오지 않는다.
耽津安氏族譜序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에 올라있는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난고 (頤齋亂藁v19)를 보면 "十三日乙丑夏至"일에 탐진안씨족보서문(耽津安氏族譜序)을 지은 것으로 나온다.
耽津安氏族譜序
이 서문의 맨 뒤에 "大統餘分三甲午夏五 越松 黃胤錫 謹書"라고 적혀 있는데, 생소한 연대표기라 몇 년인지 아리송하다.
아래 한옥션에 올라 있는 매물의 설명을 참고하면 "大統餘分三甲午"는 조선 효종4년(1653)에 대통력(大統曆) 사용을 중단한 후 3번째 오는 갑오년이라는 의미이다. 1653년이후의 갑오년은 1654년, 1714년, 1774년...이다.
따라서 大統餘分三甲午는 1774년이며, 위 서문은 이 해의 5월 13일 하지(夏至) 날에 지은 것이다.
[황윤석의 생존연대와 甲午년 만으로도 1774년임을 알 수 있기는 하다.]
서문 말미에 글을 부탁한 사람이 내용에 불만이 있었는지 고쳐달라고 했다는 말도 나온다.
[주:文旣成 則安君 請改族未爲盛四字 使與順竹將竝 又請改文靖事 大加贊揚 而余不肯曰 若不滿意 還我可也 安君 乃送族人居井邑者于昌平鄭承旨扌方 別請一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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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션의 연대표기 설명
<漁牧堂詩集>과 <獨樂亭集>이 합부된 <어목당독낙정합부유집(漁牧堂獨樂亭合附遺集)> 1책 : 한옥션
① 大統餘分四丁巳(1857) : 조선에서 대통력(大統曆) 사용을 중단한1653년(효종 4)부터 4번째 오는 丁巳(1857)년
② 대통력(大統曆)
명나라 건국 초기에 태사원사(太史院使) 유기(劉基)가 무신대통력(戊申大統曆)을 태조(太祖)에게 올리고, 1370년(홍무 3) 대통민력(大統民曆)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모두 원(元)나라 때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수시력(授時曆)에 따른 것이다. 1384년(홍무 17) 누각박사(漏刻博士) 원통(元統)이 수시력을 약간 수정하고, 그 해를 역(曆)의 기원으로 하여 《대통력법통궤(大統曆法通軌)》를 만들었다. 1년을 365.2425일로 하는 역법은 수시력과 다름없고, 100년마다 1만분의 1씩을 줄이는 소장법(消長法)을 수시력에서 뺀 것이 수시력과 다른 점이었다. 명나라 말기까지 260여 년 동안 사용되었으며, 한국에는 고려 후기에 전해져서, 1653년(효종 4)부터 시헌력(時憲曆)을 사용할 때까지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