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12주차] 나의 대나무숲
- 글쓰기 학교 4학기 12주차를 마치며 -
로고스서원 글쓰기 학교 4학기 12주차, 마지막 시간이다. 처음 글쓰기 학교에 문을 두드린 것은 2021년 여름이다. 처음으로 투고한 학술지 논문이 심사위원들의 냉혹한 비평에 난도질 당한 채 돌아오며, '제대로 글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듯 sns에 글을 썼는데 그 글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 받았다는 좋은 평을 들으며 글 쓰는 것에 재미를 붙이던 시기였다. 속으로 삭히는 것에 익숙한 내가, 생각을 꼭꼭 곱씹고 발효시켜 짧은 묵상을 나누면 사람들이 "위로받았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에 나도 위로를 받았다. 당시 받고 있던 훈련의 과제로, 매일 성경 말씀을 묵상해 묵상글을 써서 단톡방에 나누며 성실하고 통찰력 있다는 칭찬을 받았다. 마음이 답답해 숨통 좀 트이고 싶어 답답해 쏟아내듯 써갈긴 글에 남겨진 좋은 피드백 덕에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러다 논문을 투고했는데 혹평이 날아온 것이다. '못된' 비판을 날린 심사위원들에게 분개하며 교수님과 함께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심사통지가 날아온 당일엔 몹시 기분이 나빴는데, 2~3일 생각해보니 감정은 걷어지고 그 혹평들에 일부 수긍이 갔다. 철학적인 글이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데 내 글은 에세이나 전기문처럼 감성적이었던 점, 인용문을 어떻게 요리하여 글에 적재적소에 활용하는지 무지했던 점, 무엇보다 논문을 위한 체계적인 글쓰기를 배우지 못해 글에 논리와 체계성이 많이 부족했던 점이었다. 내용보다도 '글' 자체에 대한 나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코스웍을 마치고 마침 수료를 앞둔 상태였다. 긴 마라톤을 거의 온 것 같은데 작은 동산 2개, 야트막한 봉우리 1개를 넘고 큰 산을 넘어야 "Finish!" 테잎을 끊을 수 있었다. 이 말은 학술지 2편 게재, 학회 발표 1번이 있어야 학위논문을 쓸 자격을 주는데, 작은 동산에 오르기도 전에 장비가 다 떨어져 맨몸으로 동산 앞에서 발만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동동거리며 마음속에 떠오른 키워드들을 요리조리 조합해 인터넷에 검색했다. 묵상, 논문, 글쓰기, 독서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다 로고스서원 카페를 발견했다. 몇 주 동안 카페에 들락날락하며 커리큘럼, 묵상글,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가 드디어 용기를 냈고, '온라인 글쓰기학교 화요저녁반(신청과 등록 후 바로 시작)' 글에 댓글을 달았다.
"기독 독서모임과 묵상 글쓰기, 정제된 글쓰기, 논문 쓰기 등에 대해 기도하고 검색하던 중에 로고스서원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질문에 이렇게 답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댓댓글이 달렸다.
"대개 지인 통해 오는데 검색해서 오셨군요. 검색 단어를 보니, 로고스서원과 잘 맞네요."
그렇게 글쓰기 학교를 등록했고 글이라는 것을 제대로 써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논문을 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 학교였는데, 쓰다보니 글이 일기장이 되기도 하고 독서감상문이 되기도 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그 사이 2편의 학술지 논문 투고, 1번의 학회 발표를 했다. 오름직한 작은 동산 2개, 야트막한 봉우리 1개를 넘은 것이다. 큰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고 좋은 장비들도 얻었다. 자체 휴식을 가지다 돌아올진언정 글쓰기 학교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2년 반이 걸려 글쓰기학교 4학기를 마치게 되었다. 감개무량하다. 그동안 많이 답답하셨을 사부님, 쉬었다 올 때마다 바뀌었던 많은 글쓰기 식구들에게 감사하다. 이들 덕분에 오늘 글쓰기 학교 졸업식을 한다. (self 졸업식으로 좋아하는 가게에서 맛있는 토스트와 쥬스도 주문했고 예쁜 볼펜도 샀다.)
삶을 조심스레 풀어낸 글을 읽으면 화면에서 사부님과 글쓰기 학교 식구들이 100번의 박수를 쳐주었다. 그 파동이 마치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용납하고 "수고했다. 애썼다." 하는 격려로 다가와 마음을 두드렸다. 음소거를 해둔채 신나게 쳐주시는 100번의 박수가 조심스레 내보인 속살을 치유했다. 그 격려에 힘입어 점점 더 과감하게 나의 감정, 생각, 정제되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마련된 5~10분 남짓한 시간을 통해 이해받고 싶었고 힘들었던 스토리,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움직인 생각의 편린들, 마음의 소망함을 여과 없이 뱉었다.
어떤 글이든 끄덕여주시는 사부님과 글쓰기 식구들의 박수와 피드백을 받고 나면, "이제 끝이야. 정리되었다. 좀 낫네!" 하며, 멈춰있던 순간의 고리를 끊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사부님의 표현대로 '우물에서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계속하여 맑은 물을 길어내듯' 한참을 그렇게 내지르고 나니 여러 겹들로 둘러싸인 막들이 벗겨지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와 표현들, 나도 몰랐던 (어찌보면 외면하고 싶었던) 본심들이 동동 떠올랐다.
글쓰기 학교가 나의 대나무숲이었다. 임금님의 왕관을 제작한 신하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며 끙끙 앓으며 간직한 비밀을 쏟아내고 비로소 편히 눈을 감았던 대나무숲, 자신의 애끓는 마음을 고백하여 소망을 현실로 이뤄내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페이스북 대나무숲,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해 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듣고 눈을 감고 바람을 그대로 느끼는 대나무숲 말이다. 글이라는 보호막을 앞세워 나를 드러내기에 더 안전하다 느꼈고, 굳이 노력하지 않으면 실제 삶의 현장에서 마주하지 않는 고맙고도 허전한 장소인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한 만남이었기에 더 진솔하게 나의 글을 발표할 수 있었다. 글쓰기 학교는 콱 막혔던 마음에 바람이 오고 갈 수 있게 해준 대나무숲, 그것도 아주 고마운 숲이다.
4학기 졸업을 앞두고 이제야 글쓰기가 '진짜' 재밌다. 그전까지는 몰랐던 글쓰기의 고통, 즐거움, 어려움, 개운함을 느끼며 삶이 글로 풀어질 때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알겠다. 외할아버지께서 왜 평생을 책을 읽고 글을 쓰셨는지, 한글을 익히기도 전이었던 어린 손녀딸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가서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사주시고 <좋은 생각>에 실린 당신의 글을 보여주셨는지, 틈만 나면 살아오셨던 삶을 글로 쓰신 후 출판사에 맡겨 자꾸만 프린트해서 집에 가져오셨는지 알 것 같다. 살아가며 종종 힘든 순간이 올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기억에서 잊혀지고 시간에 묻혀 사라지려 할 때마다 글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숨통 트이는 창구가 되어 손녀딸을 지켜주기를 바라셨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글을 제대로 배움으로써 글쓰기와 독서의 무궁무진한 넓이와 깊이를 맛보게 해준 글쓰기 학교, 로고스서원 식구들, 그리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