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 1주기…현대사를 읽어내다
지난 22일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희 8시뉴스는 좀 이른 18일에 이미 관련 리포트를 했는데요,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선생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다시 살펴보게 됐습니다.
선생은 1950년(20살)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6.25전쟁이 터지면서 학교를 중퇴했죠. 이후 서울 동화백화점에서 일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1953년(23살) 같은 동화백화점 측량기사였던 호영진 씨와 결혼합니다. 결혼 후 20, 30대에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평범한 주부로 살았습니다. 당시 사진들을 볼까요?

(숙명여고 시절 박완서 선생)

(20대 주부 박완서)
6.25전쟁 이후 좌우익의 대립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첨철됐던 한국 사회. 그녀는 글쓰기를 결심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1970년(40살) 여성동아 신춘문예에 당선된 장편소설 '나목(裸木)'입니다. 아래 사진은 신춘문예 당선 당시 기념 사진(동아일보 자료사진)이라고 합니다.

선생의 마지막 작품은 2010년(만 79살)에 나온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릅답다'입니다. 글을 쓰신 기간이 무려 40년입니다. 그래서 선생을 우리 현대사의 맥을 모두 짚어낼 수 있는 유일한 작가라고 평가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2백 권이 넘는데요,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과, 영화나 TV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만 살펴볼까요? (발표연도. TV드라마와 영화화된 연도는 다를 수 있음)
1. 나목(1970년 이후 TV드라마)
2. 옥상의 민들레꽃(1979년 이후 TV드라마)
3. 그 가을의 사흘동안(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4. 엄마의 말뚝2(1981년 이상문학상)

51살, 이상문학상 수상식 사진...
5.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년 이후 영화)
6. 서있는 여자(1985년 이후 TV드라마)
7. 지알고 내알고 하늘이 알건만(1986년 이후 TV드라마)
여기서 잠시... 이즈음 1988년(58살) 선생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5월 남편 호영진 씨가 폐암으로 숨지더니 3개월 뒤인 8월에는 외아들이었던 호원태 씨(당시 25살 서울대 의대 인턴)를 교통사고로 잃게 됩니다. 이후 가톨릭에 귀의했는데요, 심리적으로 어려웠던 당시의 신앙 고백 내용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년)'에 담겨있다고 합니다.

다시 작품들을 살펴보죠...
8.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90년 이후 TV드라마)
9. 우황청심환(1991년 이후 TV드라마)
10. 미망(1991년 이상문학상),
11. 휘청거리는 오후(1993년 이후 영화)
12. 꿈꾸는 인큐베이터(1993년 현대문학상)
1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3년 중앙문화대상)
14.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년 동인문학상)
15. 마른꽃(1995년 이후 TV드라마)
16. 환각의 나비(1995년 한무숙문학상)
17. 그 여자네 집(1997년 이후 TV드라마)
18.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7년 대산문학상)
19.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9년 만해문학상)
20. 아주 오래된 농담(2000년 인촌상)
21. 그리움을 위하여(2001년 황순원문학상)
자...21번 '그리움을 위하여'를 쓸 때가 우리 나이로 71살입니다. 박완서 선생은 이후로도 '친철한 복희씨(2007년)'와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년)'까지 꾸준한 작품활동을 했는데요, 70대에 쓴 작품들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올라가는 등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주옥같은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죠.

"축구공만한 지구의를 조만간 하나 장만해야 겠다. 공 모양을 평면에 그려넣기 시작한 인간의 지혜 때문에 중심과 변방이 생긴 평면 지도를 보는 것보다 한결 지구촌이 더 사랑스러워질테니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中.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막아 주는 게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옥상의 민들레꽃 中.
"늙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산천이나 초목처럼 저절로 우아하게 늙고 싶지만 내리막길을 저절로 품위 있게 내려 올 수 없는 것처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나이가 좋다.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다. 안하고 싶은 걸 안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놓여나기 위해, 가벼워지기 위해 中.
"나는 정신대 할머니처럼 직접 당한 사람들의 원한에다 그걸 면한 사람들의 한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 그 여자네 집 中.
선생의 작품은 뭐라고 할까요?
일제시대부터 시작해 6.25전쟁, 분단된 조국과 좌우익의 대립...여기에 근대산업화와 가족의 해체까지... 굴곡진 우리 민족의 삶, 그리고 상처들을 두루 어루만져줬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특히 역사의 변혁 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소시민들의 섬세한 감정을 적확한 언어로 읽어내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내공 부족으로 문학적 표현은 못하겠네요...)

선생의 장녀인 수필가 호원숙 씨는 어머니의 작품이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도 큰 울림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나온 시대를 읽는 힘을 문학을 통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6.25를 겪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작품 속에서 6.25라는 전쟁과 민족의 비극을 많이 간접 체험했어요. 우리 현대사의 맥을 관통하는 어머님의 작품을 통해 (젊은이들도) 세상을 읽는 눈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작품 속 인물들의 생각과 언어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지 않을까요? 그것이 어머니께서도 바라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늘 얘기하시던 문학의 힘, 붓의 힘이...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느껴졌으면 하네요."
박완서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그녀의 작품을 다시 한번 찾아 읽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한 번 서점에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첫댓글 친절한 복희씨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저 요즘 박완서 작가가 쓴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깊은 마음,그리고 초우 모두를 사랑하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