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의 매혹
하모니카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이다. 마음이 평정을 잃고 심란할 때 하모니카와 친구가 되면, 잔잔한 바다를 거니는 양 고요를 되찾는다. 그러니 친구 중의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친구도 아주 정직한 친구다. 아래위로 입술을 움직이며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면, 틀림없이 곧이곧대로 불려는 소리가 나온다. 한 치의 속임도 없이 부는 그대로 정직하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준다. 부는 강도에 따라 기쁘고 즐거움의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애조 띈 슬픈 소리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하모니카는 친구 중의 친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 인생의 반려자가 돼 버렸다. 하모니카가 있어 마음이 비상할 정도로 즐거우니, 이만한 친구가 어디 또 있으랴.
내가 하모니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족히 60년은 되었으리라.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누구에게 지도를 받거나 악보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노래를 따라 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모니카 역사 60년이 되었건만, 지금도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그냥 불어보는 것이다.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입술을 갖다 대면 그대로 술술 아름다운 멜로디가 되어 나온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이상하다. 그러니까 내가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분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60년 하모니카 인생을 헛산 것이 아닌가도 싶다. 자신이 부를 수 없는 노래라 할지라도, 악보를 보면 따라 불 수 있어야 진짜 하모니카 연주자라고 할 수 있을 터인 데 나의 하모니카 연주는 당초부터 크게 잘 못 배운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노래는 건반을 치면 노래가 되어 나온다. 그런데 악보를 보고는 눈 뜬 장님 격이 되고 만다. 내 피아노 솜씨는 남들과는 유다르다. 오른손을 이용해서 음반을 누르고 왼손의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통해선 배스를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만 단조롭지 않고 듣기가 훨씬 돋보이는 것 같아서다. 그러니 피아노 솜씨도 나만이 홀로 독백처럼 즐기는 연주로 굳혀졌다.
마음이 울적할 땐 하모니카 친구를 부르기도 하고, 피아노 친구를 초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바로 친구가 돼 준다. 무엇보다 음악은 마음의 활력소를 선사한다. 특히 하모니카는 배의 힘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악기라서 불고 나면 소화도 잘 된다. 따라서 먹은 음식이 소화가 잘 안 된다 싶으면, 나는 하모니카를 부는 습성이 생겼다. 한동안 불고 나면 더부룩한 배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어서 기분까지 상쾌하다.
1950년 말쯤만 해도 농촌에선 악기가 귀했던 터라, 방학 때 고향인 농촌에 내려가 하모니카를 불면 꼬마 아이들이 구경하러 몰려들곤 했었다. 그 땐 하모니카의 인기도 대단했다. 내가 처음 하모니카를 배울 땐 고향의 봄과 애국가 그리고 동요 몇 곡을 선택해서 불기 시작했다. 처음엔 배스도 넣을 줄 몰랐고 겨우 음만 맞춰 불었으니 듣는 사람들은 아마 시끄러운 소음으로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을 보면, 하모니카에 대한 취미가 다분했던 것만 같다.
특히 근래 들어 내 하모니카 연주는 빛을 발하고 있다. 노인대학 강의에서 제 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1시간 강의를 할 경우엔 시간이 부족해 하모니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지만, 2시간 연달아 강의를 할 때는 제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시간 째 강의가 계속되면 아무래도 노인 학생들은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유머나 위트 있는 말을 사용해야 함은 물론, 재미있는 쪽으로 강의를 진행해야만 지루함을 잠재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자연히 마지막 피날레는 하모니카가 감당하게 된다. 하모니카 연주를 한다 하면, 노인 학생들은 야! 야! 하고 좋아서 야단법석들이다. 꼭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좋아서 얼굴엔 만면의 미소가 가득하다.
처음엔 합창을 유도한다. 분위기를 처음부터 고조시키기 위해서다. ‘고향의 봄’을 신나게 다 함께 부르도록 한다. 이어, 흘러간 옛 노래 세 곡 정도를 연주한다. ‘이강산 낙화유수’와 ‘울고 넘는 박달재’ ‘번지 없는 주막’을 연주하면 휘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지면서 박수갈채가 요란하다. 다음엔, 최근 유행하는 노래들을 연주한다. 그 가운데도 가사 내용이나 유행 감각으로 봐 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고장 난 벽시계’와 ‘부초 같은 인생’ ‘시계바늘’을 메들리로 연주하면, 신바람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면 차분히 마무리 발언을 하고 강의를 끝낸다. 이 하모니카 연주가 이렇듯 늘그막에 유용하게 쓰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내 하모니카 연주는 일품은 아닐지라도, 연륜만큼 세련돼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마음의 평온과 즐거움으로 자족하기 위해 불기 시작했던 하모니카가 늘그막에 이렇듯 효자 구실로 자리 메김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노인대학 강의가 아니더라도, 나는 생명 다하는 날까지 하모니카를 입에서 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내 인생은 하모니카와 동거동락하는 하모니카 인생이 분명한 것 같다. 따라서 하모니카는 나의 친구 중의 친구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