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아침이슬'(1971, 김민기 작사‧작곡)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젊은이들의 최고 애창곡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대중가요로서는 크고 웅장한 스케일에다 문학적‧음악적으로 잘 짜인 구성력, 내용충만함까지 갖추어, 단지 저항가요로만이 아니라 한국대중가요의 손꼽히는 명작이라 할 만하다. 한 젊은이의 실존적 고민과 미래에 대한 결단을 노래한 이 작품은, 창작자의 의도와 달리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독재에 저항하는 젊은이의 결단을 노래한 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어 수십 년 동안 널리 불렸다. 그럼으로써 김민기의 것이되 김민기만의 것이 아닌 노래가 되었다.
2012/03 이영미
한대수 '물 좀 주소' (1974)
이미 목소리에서 그는 저항의 색조가 현저했다. 1970년대 초반 다들 낭랑하고 상냥하게 노래하던 시절에 한대수는 마치 쇠가 끼어있는 듯 까랑까랑하고 거친 소리를 조금의 억제와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뿌려댔다. 그 '프로테스트 강성(强性) 보컬'만으로도 스스로 말하듯 그는 포크 뮤지션이 아니라 로커였고 실제 자세의 측면에서도 포키 아닌 로큰롤러였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사람들은 곧바로 물을 자유와 동격화 했고, 물을 달라는 한대수의 요청을 자유에의 통렬한 갈구와 외침으로 알아들었다. 당대는 물론 후대들에게도 유신통치시대의 억압에 대한 그만의 반발적 자아가 히피의 슬로건인 자유와 평화에 기초한 청춘의 소리, 영원한 시대정신이라는 사실이 인식되었다. 2008년에는 이 곡 하나를 갤럭시 익스프레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어어부프로젝트 등 열둘 후배 인디 밴드들이 재해석한 헌정음반이 나왔다.
2012/03 임진모(jjinmoo@izm.co.kr)
송창식 '고래사냥'(1974)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 돌아 앉았네...' 송창식은 내 소리를 낸 것뿐이지 결코 어떤 메시지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저항성은 의식하지 않았으며 그냥 그때의 내 음악이었을 뿐이다!” 당대의 젊음은 그렇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들은 이 곡에서 억압시대의 절망과 청춘의 아우성을 포착했다. 작가 의도의 죽음을 대가로 저항성이 탄생한 것이다.
유신시대의 예술적 황폐화는 터무니없는 이 곡의 금지 사유가 증명한다. 가슴에는 슬픔만 하나 가득이라는 것은 일하자는 전체주의적 개발독재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망조의 비탄 아닌가, 또 고래가 바다의 왕자이니 곧 최고 권력자를 은유한 것은 아닌가. 심기가 불편한 당국은 이 곡을 금지 처분했다.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되어 이미 충분히 입력되고 저장된 사람들은 두고두고 이 곡을 삭제하지 않았다.
2012/03 임진모(jjinmoo@izm.co.kr)
'임을 위한 행진곡' (1982, 백기완 작시, 황석영 작사, 김종률 작곡)
국가 행사의 서두에 국민의례가 있듯, 1980년대 말부터 민주화운동의 집회를 시작할 때 민중의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은 국민의례 때의 애국가처럼, 민중의례에서 불리는 노래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투쟁적인 민중가요를 대표하는 노래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이 작품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 죽은 남녀의 영혼결혼식을 소재로 한 광주의 노래극 <빛의 결혼식>에 삽입된 작품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설정되어 있다. 항쟁으로 죽거나 사라진 동지와 찢겨진 깃발의 처절한 비극성과, 죽음의 고통을 딛고 미래로 향하는 투쟁적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2012/03 이영미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작시, 이성현 작곡)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정권 시대 최고의 저항 시였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바탕으로, 당시 연세대 학생이 지어 구전으로 퍼진 노래이다. 악곡의 전개나 구성력, 가사 소화 능력은 비전문인의 어설픔을 보여주고 있으나, 단조의 비장한 노래가 유행하던 1980년대 초의 작품 경향으로 김지하 시가 지닌 호소력을 드러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공연 때에는 중저음의 남자 가수들의 즐겨 불렀다.
2012/03 이영미
새벽 '그날이 오면' (1985, 문승현 작사‧작곡)
'새벽'은 한국 최초의 전문적인 진보적 노래운동 단체로 1983년에 결성되었다. 이 단체의 수장으로 1980년대 노래운동의 수장이었던 작곡가 문승현이 지은 대표작으로, 큰 스케일이나 잘 짜인 구성력 등으로 흔히 <아침이슬>에 비견되곤 한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저 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대의를 위한 자결을 앞둔 한 젊은이(창작 때에는 전태일로 설정되었다)가 자신의 삶과 죽음 전체를 되돌아본다는 설정으로, 삶에 대해 남은 미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해야 할 죽음의 결단을 '그날이 오면'이라는 절절한 소망의 언어로 표현한다.
2012/03 이영미
들국화 '행진 (1985)
대한민국의 70, 80년대는 급진적 산업화와 불완전했던 민주주의의 기틀이 서서히 잡혀나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의 권위주의적 정치상황은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탄압'은 상황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다. 정부가 행하는 고귀한 뜻에 반(反)하는 것은 모두 자르고, 삭제하고, 또 금지시켰다.
해우소는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서구의 문화들이 유입됨과 동시에 팝송과 통기타가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표출했다. 대중매체를 위주로 활동했던 '주류 음악'과 록과 포크를 중심으로 하던 '비주류 음악' 또한 구분 없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비주류를 대표했던 들국화의 '행진'은 청춘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읽혀졌다. 곱지 않은 시선들이 익숙해져 버린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해주는 안식처였으며, 페이소스(Pathos)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 난 노래 할 거야 매일 그대와 / 아침이 밝아올 때 까지 ”
2012년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나만의 특별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결국 현실에 타협하며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고, 취업이 젊은 시절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기보다는 의심하고 포기하고 마는 나약한 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우리의 마지막 날까지 인생은 행진하고 있고, 다시 아침을 밝아온다는 것이다. 이제는 너와나 모두에게 '행진의 정념(情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12/03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노래를찾는사람들 '솔아 푸르른 솔아'(1987, 안치환 작사‧작곡)
1980년대 말에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민중가요로,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의 음반으로 발표된 1989년에는 텔레비전 가요차트 프로그램에서 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 가슴 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 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세상 자유 위하여 /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새벽 회원이자 연세대 학생이던 안치환이 1987년에 자신의 동아리 선배가 시위를 주동하고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지은 노래로, 이후 노찾사를 거쳐 솔로로 활동하는 안치환의 첫 히트작이다. 박영근의 시에서 여러 구절을 조합하다 보니 가사의 이미지는 다소 일관되지 못하나, 산뜻한 절정부가 호소력을 발휘한다.
2012/03 이영미
정태춘 '황토강으로' (1990, 정태춘 작사‧작곡)
한국대중가요의 비판적 포크 가수의 대표주자는, 1970년대의 김민기와 1990년대의 정태춘으로 요약된다. 1970년대 후반 포크의 후발주자로 활동을 시작한 정태춘은 1987년 6월시민항쟁을 거치며 저항적인 민중가요 자작곡가수로 변모했고, 1990년대 초중반에 대중가요음반에 대한 검열 철폐를 이끄는 역사적 성과를 남겼다.
'저 도랑을 타고 남치는 황토물을 보라 / 쿨렁쿨렁 웅성거리며 쏟아져 내려간다 / 물도랑이 좁다 여울목이 좁다 / 강으로 강으로 밀고 밀려 간다 / 막아서는 가시덤불 가로막는 돌무더기 / 에라 이 물줄기를 당할까 보냐 차고 차고 넘쳐 간다 / 어여 가자 어여 가 굽이굽이 모였으니 / 큰 골짜기 마른 골짜기 소리 지르며 넘쳐 가자 / 여러 가자 어여 가 성남 몸짓 함성으로 / 여기저기 썩은 웅덩이 쓸어버리면 넘쳐 가자 / 가자 어서 가자 큰 강에도 비가 온다 /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 가자 어서 가자 가자 넘쳐 가자 / 어여 가자 어여 가 쿠르릉 쾅쾅 산도 깬다 / 옛다 번쩍 천둥번개에 먹장구름도 찢어진다 / 어여 가자 어여 가 산 넘으니 강이로다 / 강바닥을 긁어버리고 강둑 출렁 넘실대며 / 가자 어서 가자 옛 쌓은 뚝방이 무너진다 /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 가자 어서 가자 가자 넘쳐 가자'
이 노래는 이 시기 그의 노래를 대표한다.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역사의 진보를, 낡은 방죽을 무너뜨리고 힘차게 흐르는 황토강에 비유한 힘찬 가사와,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국악 구사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012/03 이영미
꽃다지 '서울에서 평양까지' (1991, 조재형 작사, 윤민석 작곡)
1980년대 말 새롭게 부상한 노동자 소재와 통일 소재 민중가요의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 시기 민중가요의 막강한 수용층으로 등장한 노동자들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지닌 대학생에게까지 두루 인기를 얻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이만원 /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만 왜 못 가 / 우리 민족 우리 내 땅 평양만 왜 못 가 / (후렴)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 꿈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 분단세력 몰아내고 통일이 된다면 / 돈 못 받아도 나는 좋아 이산가족 태우고 갈래 / 돌아올 때 빈차걸랑 울다 죽은 내 형제들 / 묵은 편지 원혼이나 거두어 오지 / (후렴)'
택시운전수였던 작사자는 관념적이기 쉬운 통일이란 주제를 생활인의 시각으로 형상화했고, 당시 대학가 최고 인기 작곡가였던 윤민석은 생산직 노동자들의 음악 취향을 고려해 1960년대 스탠더드팝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했다. 1995년 신형원의 음반에는 검열을 의식해 '분단세력 몰아내고'라는 가사가 바뀌어 취입되었다.
2012/03 이영미
강산에 '라구요' (1993)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퍼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실향민의 실제 스토리라는 것은 고향 함경도에 돌아가고 싶은 아버지(2절은 어머니)의 절절함이 밴 가사가 웅변한다. 충청도 분이셨던 강산에의 어머니는 함경도에 시집을 갔고 아기가 한 살 때 한국전쟁이 터져 남편과 떨어져 피난길을 떠났고 결국 거제도의 피난민 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어머니는 역시 함경도분인 스물네 살 위 아버지를 만났으니 부모가 모두 실향민이었다.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대목은 그런 신분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리얼함의 극점이다. 아마도 통일이라는 주제를 이처럼 부담을 떼고 친근하게 또 호쾌한 창법으로 포착한 가요는 없을 것이다. 생활형 통일노래. 강산에 스스로도 자기 이력의 베스트로 뽑는다.
2012/03 임진모(jjinmoo@izm.co.kr)
천지인 '청계천 8가'(1993)
록 담론이 고개를 든 1993년에 민중가요를 록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운동권 진영에서는 위험한 일이었다. 록은 그들에게 순수한 음악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 록밴드 '천지인'은 록 사운드의 덩치가 시대감각과 어울림을 빚어내면서 대학과 노동파업 현장에서 환영을 받았다. 소외된 자들을 향한 연민과 동행에의 의지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메시지 록은 통쾌했으며 동시에 부드러웠다.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 찬 땀 냄새 가득한 거리여/ ...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 빈 거리여/ 칠흙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들은 하위 20%를 위해 노래했는지 몰라도 지금의 세상은 1% 대 99%로 급격히 하위수치가 증폭했다. 가난의 풍경은 곳곳의 구석을 덮치고 있고, 실업자 청춘은 비참정서에 휩싸여있다. 청계천은 단장된 관광 하천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청계천 8가가 상징하는 고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끈질긴 우리의 가난한 삶과 사랑은 계속된다.
2012/03 임진모(jjinmoo@izm.co.kr)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메 다니네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16년 전의 가사가 21세기의 세태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은 실로 유감이다. 변한 게 있다면 노래에 열광하던 '청소년'이 '어른'이 되었다는 점일까. 1995년 발표된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은 사회 비판적인 내용으로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가사 수정을 요구 받았다. 이를 대처하는 서태지의 답은 명료했으며 통쾌했다. 아예 가사를 들어내고 연주만 앨범에 수록한 것이다. 껍데기만 발매된 시대유감에 분노한 팬들은 조직적인 서명운동과 거리시위를 벌여 마침내 '사전심의'를 철폐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시대유감은 사회를 반영하는 음악의 1차적 역할을 넘어 한국 가요계에 자유를 선사한 뜨거운 항쟁가다.
2012/03 김반야 (10_ban@naver.com)
패닉 '왼손잡이' (1995)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 그런 눈으로 욕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 난 왼손잡이야
왼손으로 젓가락질 한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혼난 기억이 있는가. '바른 손' 즉 오른손으로 모든 걸 집는 세상에서 왼손잡이는 재빨리 고쳐야할 못된 버릇과도 같았다. 그리 옛날 얘기도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세 번째 앨범의 '교실 이데아'로 전국의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약 1년 뒤 패닉의 데뷔 앨범이 나왔다. 이미 삐뚤어진 가사와 과격한 사운드에 귀를 적셔온 사람들에게 '왼손잡이'는 귀여운 앙탈에 가까웠지만 파급효과는 상당했다. 패닉은 문제의 대상으로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정면으로 대꾸한다. 배배꼬이며 꺾이는 목소리와 날렵한 기타리프는 빈정댐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편견을 관심으로 바꿔버린 노래다.
2012/03 조아름(curtzzo@naver.com)
크라잉넛 '다죽자' (1999)
이 노래가 갑자기 회자된 것이 작년 5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학교의 학생들이 꿈을 잃고 스스로 세상과 작별하며 청춘의 의미를 상실해가던 무렵, 한경록은 축제무대에 올라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들 죽지마세요!” 그리고 터져 나오는 세글자. “다죽자!”
“나는 거짓말쟁이 너도 거짓말쟁이 / 우린 지금 모두 여기 다 죽자 / ...찢어진 나의 날개로 난 보지 못했어요 진실을“
역설이 만들어 낸 웃음이라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잔재하는 병폐를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갑갑한 시대에 목 졸려 어느덧 피폐해진 20대에게 다 죽자고 외치는 크라잉넛이지만, 왠지 듣는 당사자들은 그래도 분루를 삼키며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한다. 거짓말을 하는 가짜라고 다 죽을 필요는 없다. 요즘 시대에 진짜,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설령 가짜라고 한들 어떠한가. 누구보다 진짜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이들에게 가짜라는 임시 이름표를 부여하는 것뿐이다. 그 명찰에 적힌 '가짜'의 발음만큼은 '젊음'에 가깝게 들린다. 이 단어가 가진 상처 입은 순수의미는 덕분에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았다.
2012/03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2000)
아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국의 청년폭도/ 힘차게 맹진하며 골로 가는 청춘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피를 흘리게 하라/ 성난 이빨을 드러내어라 피를 흘리게 하라
사실 '청년폭도맹진가'는 저항의 대상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있는 곡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앞 뒤 재가면서 덤비는 놈보다는 앞 뒤 양옆 안 가리고 돌진하는 돌아이(!)가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치기'는 때로 무시 못 할 만큼 광포한 무기로 돌변한다.
누구 말마따나 '아프니까 청춘'이라면, 그래서 분노할 수 있는 것 또한 청춘이다. 여기, 분노의 힘 하나로 새천년을 맞이하던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2012년, 우리의 목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정녕 우리는 언제까지고 현실을 '인정하기만' 해야 하는 세대인가.
2012/03 여인협(lunarianih@naver.com)
에픽 하이 'Lesson 2 (Sunset)' (2004)
'민주, 자본주의 = 파탄의 숲의 뿌리/ 갈래진 혀끝이 우리 법을 내뱉으니/ 애국심이란 수면제가 책임감을 재우니/ 반역심의 긴 수면이 독재를 깨우니/ 배불리 처먹는 자들이 자유경제 삼켜/ 불경기라는 극 꾸며 경쟁심을 깎어/ 내가 왜 내 땀의 열매를 타인에게 바쳐?/ 어째 내 꿈을 조립 라인에게 맡겨?'
지금 한국 사회가 딱 이런 모습 아닌가. 교육은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은 국민의 삶은 헤아리려 하지 않은 채 자기 이익 챙기기 바쁠 뿐이고, 각자의 개성 없이 획일화된 인생을 살기를 강요당하는 세상. 이런 곳에서 모든 것이 거짓처럼 여겨지고 현실을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듯하다. '기어 다니는 자의 달콤한 혀'가 만연한 세상에 언제쯤 신뢰와 믿음이 풍성하게 자라나게 될까?
2012/03 한동윤(bionicsoul@naver.com)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 '잔돈은 됐어요' (2009)
전공한번 살려보겠다고 다니던 중소기업은 월급도 받기 전에 망했고 그나마 인턴으로 들어갔던 대기업에 서너반년 넘도록 잡일만 했죠 나름 4년제 나와서 그게 아까워서 아직 막일은 안 해봤어요 근데 아저씨 택시할려면 면허말고 또 필요한 거 있나요 아니에요 다왔네요. 내릴께요.
얼큰하게 취했던 술자리가 파하고 집에 들어가는 택시 안은 왠지 쓸쓸하다. 친구와 동료 앞에서, 선배 앞에서 털어놓지 못했던 쭈뼛한 이야기들을 기사 아저씨에게 털어놓았던 경험 한 번쯤은 있었을 게다. 즉각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 순간 사람 좋아 보이는 기사 아저씨는 연륜 있는 랍비가 되며,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구루가 되는 것이다.
알코올 냄새가 밴 한숨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사회를 향한 첫 문턱도 밟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청년의 짐과, 모든 게 빡빡해 보이는 세상 안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소시민의 고충 사이에는 부등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 해가 뜨면 숙취를 안고 또다시 생존경쟁에 돌입해야하겠지만 모든 일반인은 오늘의 아픔을 잊기 위해 뜨거운 술잔을 기울인다.
2012/03 홍혁의 (hyukeui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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