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 시대 중년 남성의 고독
지은이 : 홍사안
적자생존 구조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는 어지러운 먹이사슬로 얽힌 살육전 그 자체다. ‘아름다운 패배보다는 추악한 승리가 낫다’는 말이 부끄럼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치열한 경쟁에서 최후에 이긴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살벌한 전쟁터인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에는 ‘부정(否定)의 안대에 눈이 가려져 있다’는 비판이 따를 수도 있다. 아무튼 현대사회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그에 걸맞은 지위와 자리를 얻게 되지만,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또 다른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 경쟁에서는 질 수도 있다. 인생이란 그렇게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고, 도전의 연속인 것이다.
보통 직장인의 일상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기상을 알리는 알람시계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뜨고, 먹는 둥 마는 둥 아침 식사를 하고는 서둘러 직장으로 달려간다.
직장 조직은 많은 책무를 요구한다. 직장에서 인간적인 배려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개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그다지 뾰족한 수가 없다. 젊은 날 일벌레가 돼 땀흘려 일한 덕에 부서장 자리 하나를 차지했더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위치가 요즈음의 중간관리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 하는 소용돌이 속에 동료들이 보따리를 싸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 하나 지키기도 버거운 것이 요즘 중년의 직장생활이다. 사내에는 능력 있는 후배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이들이 윗자리를 박차고 올라와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감각이 따라 주지 않으니 승진은 바랄 수도 없고, 정년퇴직까지 다닌다는 생각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한때는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따끔한 충고를 해 줄 정도로 당당했건만, 어느 순간부터는 봐도 모르는 척 넘어가기 일쑤다. 그와 달리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하찮은 일에도 버럭 화를 낸다. 그렇게 편협한 성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뜨끔거린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보직이 없어지거나 부서의 전반적인 책임을 지다 보니 감원 대상에 속하여 어쩔 수 없이 퇴직하기도 한다.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이지, 자신의 뜻에 상관없이 일터를 빼앗기는 것이 오늘날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누적된 일 때문에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는 퇴근시간이지만, 그대로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직장인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러나 그마저 쉬운 일은 아니다. 술자리를 갖다 보면 귀가시간이 늦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가족은 가족대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가장의 권위는 무너져 간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은 중년 남성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직장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느라 가족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데 훈련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년은 불면증을 앓는 시기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통해 차곡차곡 저축하며 키워온 소시민의 평범한 꿈마저 아이들 교육비와 노후에 대한 고민으로 깨지고 만다. 위기감이 날로 커지건만, 솔직한 심정을 아내에게조차 털어놓기 어렵다. 우리의 가계구조는 대부분 가장 한 사람의 소득에 의존하고 있다. 가정 밖의 일은 남편, 가정 안의 일은 아내가 맡아 꾸려 간다. 이렇듯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직장 일에만 매달려 살다 직장에서 버림받으면 막상 돌아갈 가정이 없다. 직장 일 이외에는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던 터라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소리다. 무능력자로 퇴조돼 가고 있다는 자격지심만 어깨를 짓누를 뿐이다.
평소 따르던 후배나 절친했던 동료와 친구들이 처음에는 그럭저럭 어울려 주지만, 그들과의 만남도 점점 줄 수밖에 없다. 그때의 소외감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터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만 한마디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다단계 판매회사에 취업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물건을 파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사업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이니, 비교적 실패할 위험이 적다는 ‘먹는 장사’를 해 보려고 전문 조리학원의 문을 노크하는 중년 남성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살벌한 경쟁에서 뒤쳐져 아픈 상처를 삭히며 늘어진 어깨를 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중년 남성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남자는 성공해야 한다’거나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따위의 일그러진 남자다움을 요구해 왔다. 그런 고정관념이 남자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힘든 일을 해서 피곤하거나 몸이 아파도 참고 견뎌야 남자다운 것으로 여겼기에, 이 땅의 남자들은 남자답기 위해 끊임없이 앞만 보고 뛰고 또 뛰어야 했다. 이 시대 남성들의 어깨에는 사회인으로서의 책임, 아버지로서의 책임, 남편으로서의 책임, 자식으로서의 책임이 얹어져 있다. 그 책임은 마음속의 부담을 넘어서 차라리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연일 술을 마시다 보니 한국의 40대 남자 사망률이 세계 1위라는 비극적인 통계까지 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냥 앉아서 한숨만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중년의 남자들이 병들고, 가정이 흔들리고, 사회가 무너진다. 우선 아직도 일할 능력이 많은 중년 남성을 위한 사회교육기관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정부는 재취업 훈련 과정을 수료한 40~50대 인력을 신규 채용하는 중소제조업체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재취업 훈련 과정에서 터득한 기술이 그간 일했던 분야와는 동떨어진 것이 많다 보니 일단 취업을 하더라도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간의 전문지식을 살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족의 부양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남자의 일생은 고달픔 그 자체다. 끝없는 벼랑으로 가는 것처럼 앞이 캄캄하고 고독이 엄습해 와도 ‘남자는 울면 안 된다’ 하여 남 앞에서 울 수조차 없는 남성들. 남성은 정말 불행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엉엉 울고 싶어도 감정을 억제할 수밖에 없는 남성들의 고독.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남성들이 어둠보다 짙은 고독 속에서 소나기 같은 눈물을 속으로 속으로만 펑펑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의 따뜻한 격려다. “아빠 힘내세요”하는 아들의 말 한마디, “당신을 믿어요.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전하는 아내의 엷은 미소, “아들아, 너는 언제나 이 집의 기둥이여”하며 어깨를 도닥거리는 어머니의 정겨운 손길에서 남성들은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꾸고 용기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