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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5일, 복습 제2강 ---
방광 복습정리
제1회 차 설법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1회 차 설법에서 여래께서 현상(現相). 상을 나타냈다.
어떻게요? 면문 치아(중치지간)에서, 또 미간 백호에서
무엇으로요? 빛으로요.
그 빛의 이름은 앞에 열 가지 이름을 쭉~~ 냈지요?
衆寶華徧照光明(중보화변조광명)
여러 가지의 보배 꽃이 두루 비추는 광명입니다.
온 세상에 천지사방으로 쫙~ 보배 꽃 같은 광명이 비추는 것.
정말 고요의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하잖아요. 정말 충만하지요.
여래현상품 제6권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隨緣赴感未不周(수연부감미부주) 而恒此處菩提座(이항차처보리좌)
인연을 따라서 두루 하면서도
한 번도 시성정각하신 보리수하를 떠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 7처 9회 설법을 하시는데,
도리천에 올라 가시면서도 늘 어디 계셨다고요?
보리수하에 계셨고,
보리수하에 계시면서 도리천ㆍ야마천도 동시에 하시고요.
보리수하에 계시면서 도리천ㆍ야마천ㆍ도솔천 동시에,
보리수하에서 한 번도 안 움직이시면서
도리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타화자재천까지 동시에 설법했습니다.
기신론에서는 俱時而有(구시이유)라고 합니다.
한꺼번에 동시에 갖추어져 있었다.
산승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손흥민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축구를 합니다.
손흥민은 우리나라 없는데 집에서 손흥민이 골 넣는 것을 봤다.
온 세계가 동시에 봤다.
손흥민은 영국에 있고요.
또 손흥민은 어디 보리수 아래 그 자리에 있습니다.
而恒此處菩提座(이항차처보리좌)
보리수의 그 자리에 항상 이곳에 있다.
隨緣赴感未不周(수연부감미부 주)
인연 따라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원하는 중생들이 TV만 켜면 나온다.
스마트폰만 터치하면 볼 수 있습니다.
방송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치가 그렇습니다.
모든 우주 만물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눈앞에 나뭇잎 하나부터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세존이 면문 치아에서,
부처님의 치아는 몇 개입니까? 40개라고 합니다.
우리는 32개ㆍ28개 그래요.
이빨이 부처님보다 점점 줄어들지요.
40개 치아로 부처님이 방광을 하시니까
그 앞의 집금강신ㆍ신중신 등 여기에 등장하는 보살대중과
전체 세주묘엄품의 대중들이 40부류 나옵니다.
부처님 이빨 하나의 빛줄기 하나에
모든 중생을 섭수하겠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40부류로 설명하면서 항상 곱하기 열을 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첫 번째 광명은 당연히 열 가지 이름으로 쓰고,
그 열 가지 이름이 중중무진으로 되기 때문에
광명이 자기 새끼 = 권속을 = 졸병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그 졸병이 또 권속을 데리고 다닙니다.
뿌리가 있고 줄기가 서고, 근간이 서면 옆에 가지가 뻗고,
가지가 뻗어서 잔가지가 뻗고 잔가지가 뻗어서 잎이 달리고,
잎이 달리고 옆에 쭉~ 쭉 옆에 나오잖아요.
그렇게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그렇습니다.
프랙탈 구조처럼 항상 이렇게 가득 차 있는 것이지요.
먼저 우주의 동영상 보셨지요. 화엄경의 세계,
그것이 프랙탈 구조로 설명하는 겁니다.
세존이 미간에서 一切菩薩智光明普照耀十方藏光明
(일체보살지광명보조요시방장광명)을 방출한다.
세존 미간에서는 一切菩薩智光(일체보살지광).
‘아~~ 보살행을 강조하는 구나.’ 이렇게 짐작 됩니다.
보살행은 우리 대승불교의 화엄경에,
화엄경 일승원교는 수행방법이 열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구체적인 열 가지 방법은 뭡니까?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반야ㆍ방편ㆍ원ㆍ력ㆍ지.입니다.
참선은 비파사나와 사마타는 중간에 포함되어있겠지요.
선정이 사마타, 반야바라밀은 비파사나라고,
지관수행이라고 기신론 같은 데는 얘기합니다.
布施ㆍ持戒ㆍ忍辱ㆍ精進ㆍ止觀 이렇게 묶어서
5바라밀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1심ㆍ2문ㆍ3대ㆍ4신ㆍ5행, 6념, 이라고 합니다.
약찬게에 이어서 기신론을 배울겁니다.
그 열 가지의 바라밀행을 강조하면서 쭉~~ 나갑니다.
그것은 10신ㆍ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 배대하고,
같이 설명하는 것이 흔히 사섭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보시섭ㆍ애어섭ㆍ이행섭ㆍ동사섭.
마지막까지는 독극물도 그냥 같이 먹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하면 동사(同事). 일을 같이 도모하는 겁니다.
보통 ‘너만 죽어라. 난 이것은 못하겠다.’ 하잖아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마지막의 동사섭은 서장에 배웠듯이
入泥入水拖泥帶水(입니입수타니대수).
물에 빠지면 물에 빠진 대로,
진흙에 빠지면 진흙에 빠진 대로 같이 건져준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和盤托出(화반탁출)이라고 합니다.
화엄경을 그렇게 얘기하지요?
떡을 쪄서 시루째 그냥 내어준다는 말입니다.
소쿠리 채 몽땅 주고, 그냥 상 채 ‘네 다 가져가라.’ 이런 겁니다.
카페에서 거피 잔도 같이 줘야지 거피만 주면 안 되잖아요.
화반탁출(和盤托出) = 소반까지 다 준다.
開口懸膽(개구현담) = 입을 딱~~ 벌려서 쓸개까지 보여준다.
화엄경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일체의 보살행을 상징하는 광명을 미간에서 방출하십니다,
석굴암 부처님 이마에 괜히 다이아몬드 박아놓은 것이 아니지요?
화엄경에서 나오니까 같이 박아놓은 것입니다.
그 광명은 다시 불사를 마치고 부처님의 오른쪽으로 돌아서
어디로 들어갑니까?
미간에서 나왔던 광명이 부처님 발바닥으로 들어갑니다.
1회 차에서 부처님 발바닥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럼 2회 차 설법에서는 당연히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발바닥에서 광명이 튀어나옵니다.
세존이 양 발바닥에서 백억광명을 방출하는데,
발바닥은 딛고 서는 근본이 되므로 신심을 의미합니다.
다음에 3회 차 설법은 어디입니까? 수미정상게찬품에서,
세존이 양 발가락에서 백천억묘색광명을 방출한다.
발가락은 지탱하는 힘이므로 이해력을 뜻합니다.
발가락에서는 10주 법문을 합니다.
4회 차는 야마천궁게찬품에서,
세존이 양 발등에서 백천억묘색광명을 방출한다.
발등은 움직여 걷는 역할을 하므로 곧 실천행을 뜻한다.
그러니까 야마천궁에서는 무슨 법문 하겠습니까?
당연히 10행 법문 하겠지요. 그렇지요?
다음 5회 차는 도솔천궁게찬품에서
세존이 양 무릎에서 백천억나유타광명을 방출한다.
무릎은 굴신작용을 하므로 곧 회향을 뜻합니다.
屈(굴) = 굽히는 것. 굽히는 것은 뭡니까?
아만이나 옹졸한 생각ㆍ잘못된 생각을 굽히고, 없애고,
伸(신) = 펼치는 것. 펼치는 것은 지혜로운 생각,
廻小向大(회소향대)라 하지요.
못난 것은 내가 소화 시켜서 없애버리고,
잘난 것은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사과 장사가 둘이 사과를 놓고 파는데요.
남이 오면 무조건 큰 것만 주는 사람은 빨리 팔고,
남이 오면 큰 것은 옆에 밀쳐놓고
두 번째 큰 것만 주는 사람은 못 판다 아닙니까?
맛있는 것 먼저 주면 나한테만 계속 먼저 주는 줄 알고,
제일 좋은 것 주는 줄 알고 그 집 계속 가거든요.
그런데 보통 보면 제일 좋은 것은 옆에 놔두고,
다음 것을 주면 항상 올 때마다 전부 불만입니다.
사과(四果)가 열려야 사과 장사라도 할 수 있습니다.
6회, 타화자재천궁품에서는 10지 법문을 하니까
당연히 어디에서요? 미간 백호에서 합니다.
자~ 보십시오. 하체 방광을 할 때는
발바닥ㆍ발가락ㆍ발등ㆍ무릎은 방광이 이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상체 머리 위로의 방광은 방광이름이 있습니다.
세존이 백호미간상에서 菩薩力焰明(보살력염명)을 방출한다.
백호미간상은 일승의 중도를 의미합니다.
다음에 여래출현품.
여래가 출현하시니까 당연히 방광하시겠지요.
여래출현품은 7회 차 설법의 11번째입니다.
보현행급여래출. 보현행품 다음에 여래출현품이 나오잖아요.
미간의 如來出現光明(여래출현광명)이 다시
如來性起妙德菩薩(여래성기묘덕보살) 정수리로 들어간다.
7회 차의 미간 백호의 방광을 여래출현광명(如來出現光明) 입니다.
이 광명이 어디로 들어갑니까?
여래성품이 일어나는 묘한 덕을 갖춘 보살,
여래성기묘덕보살(如來性起妙德菩薩) 정수리로 들어갑니다.
정수리로 부처님의 방광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것을 우리는 灌頂授記(관정수기)라고 합니다.
摩頂授記(마정수기)라고도 많이 들어습니다.
정수리에 물을 쏟아붓고 관욕하는 것이 전부 관정(灌頂)입니다.
물 부을 관(灌)자. 논산의 관촉사 할 때 관자입니다.
우리 흔히 관정수기(灌頂授記)ㆍ마정수기(摩頂授記) 하는데,
부처님의 무상심심미묘법을 정수리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최고의 인생의 가치관을 부처님에게 그냥 전수받았다.’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산승도 아무리 못나도, 이렇게 앉아 있지만,
제 일생이 통째로 여기에 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저의 찌꺼기이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밖에 있는 차도 뭐도 저의 찌꺼기이고 지금 여기 있는 이 몸,
이빨하고 반짝거리는 눈하고 제 일생의 전체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전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화엄경을 보고 있고요.
저금통장이든 뭐든 바깥에 있는 것은 전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나와 계속 같이 다니는 것이 우리의 일생 전체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못난 것도 있지만,
그 사람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잘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냥 아무 조건 따지지 말고, 위치ㆍ명예 현재 조건 따지지 말고
그대로 숨 쉬는 사람만 따져도,
그 사람의 위대한 일생이 여기에 다 와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니까 사람이 모두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은 사람 없고,
시방세계에서 또한 비교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그것 전부 다 우리 각자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세존이 다시 입속에서 다시 7회 2번째 방광을 하십니다.
입 속에서 無礙無畏大光明(무애무외대광명)을 방출하시니.
다시 보현보살의 입 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애무외(無礙無畏) = 장애됨이 없고, 두려움도 없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어요.
겁나는 것 많은 사람은 ‘잃을까? 못 얻을까?’
겁을 많이 내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있지요?
대인공포증이 있는 이런 사람들은 욕심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마음에서 근심 걱정이 안 떠난 사람은 두렵겠지요.
산승은 머리깍고 지금까지 문을 잠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없어진 물건도, 잃어버린 것도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돌아오니 도반스님이 창문이 깨졌다고 하던데
산승은 그냥 열면 되니까 캘 필요가 없었겠지요.
도리어 동네 거사님이 법당에 조석으로 들렸다고,
부처님 전에 참배객이 올린 돈을 모았다가 주었습니다.
큰스님은 열쇠 꾸러미도 크도 금고가 있던데
산승은 열쇠도 없고 금고도 없으니 큰스님은 어렵겠네요.
상좌도 없고, 상자(금고)도 없고
괜히 산승따라 하다가 뭐 없어졌다고 하지는 마세요.
心無罣碍無罣碍無有恐怖(심무가애무가애무유공포)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
눈이 확 뒤집혀버린 사람들은 두려움이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남을 해코지 합니다.
칼 들고 설치고, 병들고 설치다가 결국에는 병들어 죽지요.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 칼 들고 설치고 병들고 설치고,
남 애먹이고 그런 짓도 않고, 욕하지 않습니다.
한 번에 물어뜯어 버리는 사자는 소리로 짓지도 않습니다.
마을 똥개는 겁나서 짓거든요.
진돗개하고 똥개하고 족보 있는 개하고 구분하는 방법은?
지나가다가 혹시 ‘저 개가 나를 물건가? 안 물건가?’
앉아서 돌을 던지는 흉내를 내보면 압니다.
똥개는 전생부터 맞았던 아뢰야식에 딱 찍혀서 도망가 버립니다.
돌 집으려고 앉는 순간에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나 진돗개나 사나운 개들은 돌 던지려면 ‘던~ 져?
한번 던져 봐? 확 물어 버린다.’ 하듯이 딱~~ 쳐다봅니다.
똥개는 돌멩이 딱 집으려면 도망가 버려요.
떼거리로 도망가 버려요. 한 떼거리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나 진돗개나 진짜 족보 있는 개는 공격할 준비 합니다.
獅子遠行에 不求伴侶(사자원행불구반려).
사자 먼 길을 떠날 때 짝을 구하지 않는다.
딱~ 바라보고 있다니까요.
‘던지기만 던져 봐? 확 물어 버린다.’
그러니까 두려움이 많은 것은 어쨌든지 똥개입니다.
제8회에는 부처님의 방광이 없습니다.
다시 보현보살의 입속으로 들어갔으니까
이세간품에는 방광이 없다고 도표에 대각선 쫙 그어놨습니다.
하지만 보현보살의 보현행원 설법 자체가 진리의 광명입니다.
미간에서 普照三世法界門光明(보조삼세법계문광명)을 방출한다.
處染常淨(처염상정)을 표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고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하고 고고한 자태를 간직한다.
이 말을 마음에 새겨 청정하고 올곧은 삶을 살아 봅시다.
9회 차 설법에서는
삼세법계문광명(三世法界門光明)을 방출했으니까 입법계품입니다.
사자빈신삼매에서 보현보살이 삼매의 근본을 설하고,
문수보살이 지말법회를 이끌어 줍니다.
이어서 삼매(마음을 3번 꽉 잡아 매라 = 정신통일)로 넘어갑니다.
삼매 복습정리
삼매 보겠습니다.
삼매 1회는 누가 들어갑니까? 보현보살이지요.
2회는 설법 주는 문수보살이지만,
삼매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보현보살은 자체가 비로자나입니다.
보현보살은 그대로가 또 문수보살하고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보현보살을 우리는 흔히 후득지(後得智)라고 합니다.
後得智(후득지)를 一切種智(일체종지)라고 합니다.
문수보살을 근본지(根本智)라고 합니다. 근본지.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금생에 어떤 마음을 만들든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조작할 수 없는 無조작 입니다.
허공을 조작해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우리 마음을 조작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의 마음을 컨트롤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입니다.
남양 혜충국사하고 대이삼장하고 얘기 산승이 자주 했지요?
마음을 조절해서 여기로 보냈다가 저기로 보냈다가할 때,
대이삼장이 他心通(타심통)으로 다 알아 맞췄잖아요.
그런데 혜충국사가 마지막에는 마음을 어디로 보냈습니까?
아무 곳에도 보내지 않으니까 대이삼장이 쩔쩔매지요.
대면강의를 해야 혜충국사 애기를 많이 할텐데 아쉬워요.
보현보살ㆍ문수보살ㆍ비로자나 부처님을
화엄의 三聖圓融(삼성원융)이라고 합니다.
무르녹아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을 흔히 金剛(금강). 다이아몬드로 비유하잖아요. 金剛은 어떻습니까?
이 本體(본체). 바탕의 입장에서는 금강이 어떻습니까?
體用(체용)이라고 할 때 體는 어때요?
금강이 단단하다. 안 부서지는 이것이 바탕이라는 겁니다.
우리 심리가 = 마음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깥으로 = 작용으로 = 현상으로 나올 때는 어떠냐?
작용할 때는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스스로는 남한테 부서지지 않고,
남은 다 잘라내고 예리합니다.
예리한 것은 뭐라고요?
우리 마음의 지혜이고 작용이고,
안쪽으로 단단한 것은 本體다.
단단한 것은 누구냐? 펼치면 문수보살이다.
문수보살을 흔히 과거 7불의 스승이다.
南無五峯聖主(나무오봉성주). 오대산에 사시는 문수보살.
七佛祖師(칠불조사). 과거 7불의 스승이신 문수보살이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금강 당체와 같다. 이 겁니다.
다이아몬드 본체(本體)가 단단해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는 것처럼
그렇게 이 세상에 다른 것이 침탈할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금강(金剛)이 羖羊角(고양각)이라는
새카만 염소 뿔에 부딪쳐서 깨져버리지요.
금강경오가해 육조서문에 나옵니다.
고양각(羖羊角)이 뭘 깨뜨려요?
무명(無明)이 우리 진여자성을 덮쳐서 덮어버렸지요.
그런데 이 진여자성을 덮친 이 흉칙한 고양각(羖羊角),
단단한 새카만 염소 뿔을 깨뜨리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賓鐵(빈철)이라고 합니다.
빈철(賓鐵)이 고양각(羖羊角)을 깨뜨린다.
이 빈철(賓鐵)은 뭡니까? 반야바라밀이라 하잖아요.
처음의 금강은 금강 불성이라 하고,
금강 불성이 무명 번뇌에 덮이는데, 그것이 고양각입니다.
이 금강 반야로, 지혜로써 깨뜨려서 다시 원성을 회복한다.
보현ㆍ문수ㆍ비로자나불은 한 덩어리라는 것이 대충 알겠죠?
진짜 근본 중의 근본은 비로자나지만,
진리이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진짜 이치이기 때문에요.
그럼 누구를 통해서 나오느냐? 진체(眞體)와 진용(眞用)으로 나온다.
진짜의 바탕과 진짜의 작용을 통해서 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지요.
보현보살은 바라밀의 상징이라 해서 뭐라 합니까?
南無法界願王(나무법계원왕).
법계(法界)가 여기서는 入法界(입법계)입니다.
법계(法界)를 깨닫는다. 또 법계에 들어간다는 말은
바깥에서는 이 방안을 모르지만,
이 방안에 들어오면 환하게 다 알잖아요.
入室弟子(입실제자). 그렇지요?
마루에 서 있어도 저는 上堂(상당) = 마루에 올라온 사람.
입실(入室) = 방안에 들어온 사람.
방안에 들어오면 어디를 볼 수 있습니까?
이쪽 구석ㆍ저쪽 구석. 이쪽 구석을 뭐라 하지요?
“심오하다.” 하지요. ‘매우 깊은 구석이다.’
바깥에서 저쪽 구석은 보지만 문 옆의 구석은 볼 수가 없지요.
누구라야 볼 수 있습니까?
방안에 들어온 사람이라야 볼 수 있습니다.
入法界라 할 때, 입(入)은 증입. 증득.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법계원왕(法界願王) = 원력의 왕.
그 사람이 행하는 행동은 萬行(만행)입니다.
만행(萬行)은 바라밀 행입니다. 어떻다고요? 無窮(무궁)하다.
법계원왕, 만행무궁, 보현보살. 이렇게 하잖아요.
옛날 예불은 그렇게 아침마다 계속 했는데,
4頂禮(정례)ㆍ6정례ㆍ8정례ㆍ10정례까지 했습니다.
정화 이후에 예불 문이 바뀌어서 요새는 그런 것 안 하고
至心歸命禮(지심귀명례) 7정례만 하고 말지요.
1회 차는 누구요? 보현보살.
1회 차 보현보살은 비로자나부처님하고 동급이니까
당연히 어디에 무슨 삼매에 들어가야 되겠습니까?
보현보살이 毘盧遮那一切諸佛如來藏身三昧
(비로자나일체제불여래장신삼매)에 들어가
시방 일체제불의 가피를 받고,
여래의 依報(의보)와 正報(정보)를 답하는 果法門(과법문)을 설한다.
보현보살이 왜 비로자나일체제불여래장신삼매에 드셨는지 아시고,
2회 차는 문수보살.
다음에 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누구를 언급해야 합니까?
일란성 쌍둥이 중에 둘째 아들인 문수보살입니다.
이것은 불경 중에 가장 훌륭한 겁니다.
다음 (3회차) 이런 것들을 중생들이 이해를 못하니까,
지식적으로 지혜를 키우기 위해서 어떤 보살이 등장하느냐?
지혜 혜(慧) 자가 들어가는 법혜(法慧)보살.
법혜보살이 善方便三昧(선방편삼매)에 들어가서
일천 불찰미진수세계의 법혜불에게 가피를 받고 십주법문을 설한다.
법혜보살이 나중에, 사과 꽃이 자라면 사과되고,
배꽃이 자라면 배가 됩니다.
여러분 화엄경 하나의 꽃밭에서 일생을 걸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것 잘못 배워놓으면,
나무 하나 꽂아놓고 이것저것 접붙여서 감도 열리기를 기다리고,
사과도 기다리고, 배도 기다리고, 딸기도 기다리고,
여러 가지 열리기는 열리겠지만 바른 열매가 되겠습니까?
하나만 잘 키워야지요.
한번 따라 해보세요.
막신(莫晨). 말 막ㆍ신명날 신. 이보다 더 신명나는 것이 없다.
莫晨一好(막신일호).
하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것은 없습니다.
화엄경만 하나만 좋아하세요.
다음(4회)에 功德林(공덕림)보살.
왜 공덕림이란? 숲처럼 행동을 하면 매일ㆍ매일 자란다.
공덕림보살은 무슨 삼매요?
공덕림보살이 善思惟三昧(선사유삼매)에 들어
일만 불찰미진수세계의 공덕림불에게 가피를 받고
십행법문을 설한다.
공덕림보살은 왜 선사유삼매(善思惟三昧)에 드나요?
남들이 공부 안 하려고 하니까
이 방편 저 방편 써서 어쨌든지 이론을 전달하려고
이론에 그런 가설에 가설을 세우니까 선방편이고요,
행동을 하려고 하니까
깊은 사고력이 수반 안 되면 행동은 어긋나기 싶습니다.
더 깊은 실천을 하려고 하면 심사숙고하는 겁니다.
선사유삼매(善思惟三昧). 이런 삼매 사실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메시지만 주는 겁니다.
그것을 재빨리 알아차려야 됩니다.
벌이 맛있는 꿀을 모으니까 그에겐 당연히 독침이 있지요.
금고에 자물쇠가 잠겨 있으면 금덩어리가 있겠지요.
아무것도 안 잠가 놨으면 쓰레기. 이치는 확실한 겁니다.
사람 얼굴빛이나 말소리만 딱 들으면,
중노릇 한 10년쯤 하면 대충 알아봅니다.
이런 것 맞추려면, 100일만 다부지게 염불하면 눈이 밝아집니다.
5회는 金剛幢(금강당)보살.
당자니까 높이 저 태양처럼 높이 깃대를 세우고,
왜 우리 幢竿(당간)지주 처럼 높이 올려놓은 것은 무슨 뜻이죠?
널리 멀리까지 퍼져서 회향하는 느낌이 있기에 金剛幢보살.
금강산(金剛山)이라고 해도 되고, 금강당(金剛幢)이라고 해도 되고,
다이아몬드창고라면 금강장(金剛藏)이라고 하면 됩니다.
옛날 당나라 때 그림 잘 그리는 분이 영정을 다 그려놓으니까,
배휴가 와서
“야~ 그림은 좋은데 옛날 이 선사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주지 스님이 대답을 못해서 난감해 있으니까,
배휴는 원각경 읽다가 깨치신 규봉 종밀선사의 제자 아닙니까?
법은 못 받았지만 규봉 종밀선사 한테 공부 좀하고,
얄궂지만 배휴 상공이 공부는 많이 했지요.
그분이 우리 불교에 여러 가지 업적을 많이 남겨놨지요.
“이 절에 참선하는 스님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때 성질 안 좋은 황벽 희운스님 있지요? 황벽스님.
塵勞逈脫事非常(진로형탈사비상)이요,
緊把繩頭做一場(긴파승두주일장)이라.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가?
치문 마지막 글귀에 나옵니다.
속세의 번뇌를 미탈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비상(事非常)이라.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단단히 화두 부여잡고 공부 한바탕 지어 봐라.
뼛속까지 추위가 한번 사무치지 않으면
매화가 어찌 코 찌를 향기를 토할 수 있으랴?
그 시를 썼던 분이니까 얼마나 모질게 공부하는 스님이겠습니까?
글만 보면 그 사람 알지요.
황벽스님이 계신다고 그러니까 “그럼 와 보라고 그러세요.”
황벽스님의 성질이 麤粗(추조) 사문이라고 굉장히 거칠거든요.
임금이 와도,
3경 넘어서 절에 오면 임금 멱살 잡아서 흔들어버린 스님이 황벽스님입니다.
임금이 야행 민찰 돈다고 평복을 입고 왔다가
절문을 똑똑똑 두드려서 누구냐고 그랬더니,
임금이라고 하니 “임금이면 임금이지 왜 이리 시끄럽노?”
멱살 잡아 흔들어버렸던 스님이 황벽스님입니다.
황벽스님의 제자 중에 임제 의현스님 호랑이 하나 나옵니다.
천하를 다 잡아 삼켜 먹어버렸던 임제스님.
마조도일 만큼이나 위대한 스님이지요.
배휴가 황벽스님한테 걸려 놓으니까,
一日之狗가 不知虎畏(일일지구부지호외)
하룻강아지 범이 두려운 줄 모른다. 이 겁니다.
하룻강아지 범이 두려운 줄 모르고 달려들다가,
“뭔데? 물어보라.” 이러니까,
“아, 여기 그림에 고승들이 좍~~ 되어있는데,
그림도 다 좋고 인물도 좋은데 이 고승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이러니까,
“배휴야 ” “예~~” “거기 있네.”
깜짝 놀라버렸지요. 소름이 쫙~~ 끼쳤겠지요.
“배상공~~” “예~~” “거기 있네.”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마음이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화엄에 견주어서 얼마나 고결한지 이런 시간을 통해서
한번씩 자꾸 다듬고,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원효스님은 원효스님은 天上天下에 唯我獨能(능).
백고좌법회= 인왕경법회 할 때,
원효스님은 장가갔다고 빼버렸거든요.
“원효, 얘는 요석이 한테 장가갔으니까 빼자.
원효가 오면 법회가 이상하게 될 것 같다.
똑똑하긴 똑똑한데 이놈이 오면 우리보다 말도 잘하고 법문도 잘하니까 빼버리자.”
핑계는 장가갔다고 빼버렸어요.
원효스님은 입이 툭~ 튀어나와 있다가
나중에 금강삼매경론 강설할 때는 원효스님 혼자 뽑으니까,
원효스님 복수의 글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아이고야, 석가래 100개를 뽑을 때는 나를 안 뽑더니,
대들보 하나를 뽑을 때는 나를 뽑네.”
백고좌법회에 참석했던 스님들은 전부 석가래 이고,
당신은 대들보입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유아독능(唯我獨能)이라.
내가 오직 獨能 = 능히 강설할 수 있다. 이렇게 했습니다.
다음 6회는 금강장보살이 대지광삼매에서 십지 법문을 설한다.
일천 → 일만 → 십만 → 십억. 먼저 얘기 했지요?
진짜 이렇게 일천 불찰미진수. 일만 불찰미진수.
십만 부처님 세계를 누가 헤아려 봤겠습니까?
숫자가 주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박복하게 소설이니, 불설이 아니니,
그런 박덕한 소리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석가모니 당시에서는 사람도 그렇고 부처님도 그렇고,
이정도로 얘기해서는 주고받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본질로 돌아가려는 뜻을 많이 써 놨습니다.
소승 아라한 스님들끼리만 잘난 척하고 수행이 당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체중생 自他一時成佛道(자타일시성불도)잖아요.
대승은 내가 열반에 들어가고 4과(수다원과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아라한과)를
증득한다 하더라도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것을 포기하고라도 自未得度라도 先度他(자미득도선도타)라.
나는 제도함을 얻지 못했더라도 先度他 = 남을 먼저 제도하겠다.
拔苦與樂(발고여락). 남의 고통을 뽑아주고 즐거움을 주겠다.
기신론은 離一切苦得涅槃樂(이일체고득열반락).
모든 고통을 여의고 열반락을 얻겠다.입니다.
그것이 전부 보살 정신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으레 누구입니까?
보현보살ㆍ문수보살ㆍ법혜보살ㆍ공덕림보살ㆍ금강당보살ㆍ
금강장보살. 보살은 뭡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보리살타 = 覺有情(각유정) = 깨달은 중생.
깨달은 중생은 自利利他(자리이타). 나도 좋고 너도 좋다. 입니다.
깨닫지 못한 중생은 利害打算(이해타산).
수지 안 맞으면 안 한다. 이겁니다.
다음 7회는 부처님이 삼매에 드십니다.
십정품은 첫 번째 나옵니다.
①십정 ②십통 ③십인품 ④아승지품 ⑤여수량 ⑥보살주처
⑦불부사의부품 ⑧여래십신상해품 ⑨여래수호공덕품 ⑩보현행품
⑪여래출현품
열 한품 중에서 십정품에서 삼매(정)에 드시고요.
그리고 마지막 여래출현품 에서는 방광하십니다.
세존께서 刹那際三昧(찰나제삼매)에 들어가셨다.
찰나제삼매를 대승기신론 해석을 빌려서 해석을 해놓았습니다.
청량국사도 이와 같이 해놨습니다.
대승기신론에는 이렇게 해놨습니다.
도표 중간 오른쪽에
↓찰나제삼매는 찰나마저 없기에 번뇌가 범접할 수 없다.
覺心初起에는 心無初相이다.
覺心初起(각심초기) = 마음이 처음 일어난 것을 딱 깨달을 때는,
心에 無初相(심무초상) = 업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잡념이다. 이겁니다. 무명의 업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遠離微細念故 卽無刹那 (원리미세념고 즉무찰나)
그래서 遠離微細念故(원리미세념고) =
미세한 아주 작은 티끌만큼도 금덩어리도 불순물도 없다.
미세한 잡념마저도 없어서 깨끗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잡념이 하나도 없는 까닭으로
卽無刹那(즉무찰나)며 = 곧 찰나도 없다.
찰나가 없기에 시간이 없으면 무엇도 달라붙을 수 없다,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공간마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인연을 벗어나 버렸습니다.
인연을 벗어나면 연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연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다른 말로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고 합니다.
아무 생각도 일으키지 않은 있는 그대로 상태입니다.
“배휴~~ ” “예~~ ” “거기 있네.”
부르면 그냥 대답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제7회 차 설법까지 와서
드디어 찰라제삼매(刹那際三昧)를 보여주는데,
찰라제삼매에서 찰라(刹那)가 없는 것이 견성(見性)입니다.
得見心性(득견심성) = 마음의 성품을 알게 된다.
시간을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산승도 화엄에 열중하다 보면 배가 고픈지,
시간이 가는지 모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찰라제삼매는 하루가 갔는지 열흘이 갔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다음 8회 이세간품에는,
세간의 인연법을 다 벗어나서 가장 인간답게 살려면,
보현보살이 佛華莊嚴三昧(불화장엄삼매)에 들어 제불의 가피를 받고
보혜보살의 200가지 질문에 2000가지의 行門(행문)을 설한다.
불화엄삼매 = 불화장엄삼매 = 부처님의 화엄삼매.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해인삼매지만,
보살행을 실천할 때는 화엄삼매(華嚴三昧)라고 합니다.
화엄삼매는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보현보살이 제불의 가피를 받고 보혜보살의 200가지 질문에
2000가지의 수행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얼마나 자비롭습니까?
구름이 뭉게뭉게 올라오듯이 200가지로 질문하니까
물을 쏟아붓듯이 2000가지로 그냥 답을 해버리잖아요.
다음 9회 입법계품에는
부처님께서 드디어 근본법회에서 사자빈신삼매에 드시고
보현보살이 사자빈신삼매에 대해서 쫙~~ 설명을 합니다.
세존이 獅子嚬伸三昧(사자빈신삼매)에 들고
보현보살이 삼매의 근본을 설하고,
문수보살이 지말법회를 이끌어 줍니다.
문수보살이 찬탄합니다. 누구만 알아듣습니까?
光焰幢及修彌幢(광염당급수미당) 이런 분들만 알아듣고,
누구는 못 알아들어요?
마하목건련. 사리불. 이런 사람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부처님 제자들이 못 알아듣는 것을 화엄경에 뭐라고 합니까?
最初華嚴三七日(최초화엄삼칠일) 화엄경을 21일 설하고
阿含十二方等八(아함십이방등팔) 아함경 12년, 방등경 8년
二十一載談般若(이십일재담반야) 반야경(금강경)을 21년
終談法華又八年(종담법화우팔년) 끝으로 법화경을 8년 설했다고
천태지자 대사의 科判(과판)에 의거해입니다.
처음에 화엄을 설법할 때, 궁자경악화엄시라고 하죠.
窮子驚愕華嚴時(궁자경악화엄시) = 화엄은 거지가 놀라서 달아나고,
除糞定價阿含時(제분정가아함시) = 아함경은 똥을 치고 일당 받고,
出入自在方等時(출입자재방등시) = 방등경은 출입이 자유롭고,
令知寶物般若時(영지보물반야시) = 반야경은 집안의 보물을 알고,
傳付家業法華時(전부가업법화시) = 법화는 가업을 이어받는다.
처음 화엄경을 설하니까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근본법회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如聾如盲(여롱여맹)이라고 했습니다.
귀먼 사람ㆍ눈먼 사람 같아서, 보고 듣지 못했다.
부처님께서 사자빈신삼매에 턱~~ 드시니까,
보현보살이 “부처님 삼매는 이런 뜻이다.” 설명합니다.
그리고 문수보살은 너무 좋아서 찬탄을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제자들이 못 알아듣는 겁니다.
이런 것이 대승불교가 일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안다고 우쭐대고 머리 깎고 가사 입고 허송세월로 대충 살면서,
‘내가 스님이니 속인보다 위라고 절받고’
갈 길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전혀 모릅니다.
잘난체 하지 말고, 아는체 하지 말고, 있는체 하지 말고
모르면 묻고 배워, 아는것 알려 주고, 있으면 나눠 주고
생색도 내지 말고, 현위치 바로 지켜, 화엄의 꽃길 갑세.
-- 6월 25일 14강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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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실뢰합니당
사람의 치아는 치아
동물의 이빨은 이빨
텔레비젼에서도 사람을보고 이빨이빨 하던데
대법사님께서 홍보를 해주심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