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의 초대(1125)
유 병 덕
“여보, 이번 주말에 집에서 김장하신다고 오라고 하는데 갈 수 있어?”
사무실에서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로 물어왔다.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어 일정을 확인했다. 선약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지난여름 정비한 향리의 산소를 살펴보고 시제를 지내는 일이다.
“여보, 이를 어쩌지. 이번 주말에는 서산 선영에 성묘하고 시제를 지내고 와야 하는데, 다음주말에 가면 어떨까”
그 말에 아내는 알았다는 듯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이천에다 다음주말에 간다고 연락드려야 겠네,”
하는 음성이 전화기 속에서 들려왔다
나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장인어른께 직접전화를 드렸다. 안부를 여쭙고 이번 주말에 초대해주셔 감사하다는 말씀과 부득이 서산에 다녀올 일이 있어 다음주말에 갔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전화를 마치고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처갓집의 초대는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까? 장인과 장모님의 연세가 80대중반이다. 아는 친구는 어머님께서 80초반에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집에서 모실수가 없어 요양원으로 모셨다고 한다. 또한, 어떤 집은 70대 후반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다투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나는 80대 중반 되신 장인과 장모님으로부터 초대를 받으니 고맙고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다. 이러한 초대도 장인, 장모님이 살아계시고 건강하니 가능 한 일이다. 나는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장인과 장모님과의 정이 누구보다도 각별하다.
아내는 외동 맏딸이다. 아래로 4형제가 있다. 지금은 결혼하여 각자들 자리 잡고 대전, 청주, 의정부 이천에 각각 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셋째 처남이 부모님 인근에 살면서 봉양하고 있고, 장인과 장모님의 뜻을 형제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시간이 날 때면 장인과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휴가를 함께 다녀온 적이 여러 번 있다. 남해안이나 동해안 그리고 제주도를 여행하였다. 장인께서는 흥이 많으셔서 여행 중에 노래방에 들어가시면 마이크 잡는 것을 좋아하였다. 또한, 평소 등산을 많이 다니셔서 잘 걷는 편이다. 장모님도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시지만 집안일 챙기시느라 때로는 장인만 모시고 다니기도 하였다.
어느 부모님이나 나이에 불구하고 자식을 챙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장인과 장모님은 누구보다도 헌신적이다. 특히, 장모님은 가정에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 생겨도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신다. 무던히 참고 이해하고 자식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장모님의 손을 만져 보니 한평생 고생하신 흔적이 또렷하다. 잔일을 많이 하여 손가락 이 무디고 마디가 울퉁불퉁하다. 장인어른도 부지런 하시다. 잠시 동안 쉴 틈 없이 논으로 밭으로 축사로 다니며 일을 챙긴다. 하지만 요즈음 함께 걸어보면 힘이 예전만 못하시다. 또한 대화를 하다보면 잘 들리지 않아 큰소리로 말을 해야 알아들으시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김장준비를 해놓으시고 초대한 것이다. 평소에 가보면 장인은 밭이랑 이곳저곳에 무와 배추 등을 심어 가꾸고, 장모님은 고춧가루, 젓갈 등 양념을 준비하고 배추를 뽑아다 절여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이제는 연로하셔 힘들어 하신다.
다시, 연락이 왔다. 인근에 사는 셋째 처남댁이 장모님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어머님께서 고모부님과 고모님 금요일 날 오셔서 배추를 다듬어 절였으면 하셔요.”
예전 같으면 토요일 오후에 도착하여 준비된 절임배추와 속을 넣어 버무려서 가져왔다. 이는 장모님께서 하루 전에 배추를 다듬어 절여 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는 힘이 부치셔서 그 일을 할 수 없으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금요일 날 갈 수가 없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강의가 있어 늦게 귀가한다.
토요일 새벽에 아내와 함께 가기로 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걱정되어 알람을 새벽 4시 반에 맞추었다.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어 자는 둥 마는 둥하다 알람소리가 들리기 전에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세면을 하였다. 어제저녁에 아침대용으로 사온 김밥과 김장 담아올 김치 통을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실었다.
아내는 대전에 사는 큰 처남댁에 전화를 하였다. 큰 처남이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차로 함께 가야 했다. 차를 몰고 지상으로 나오니 칠흑 같은 밤이다. 자동차 라이트를 켜고 도안에서 출발하여 둔산을 경유하여 처남의 댁에 도착 했다.
큰처남의 댁이 가지고 나온 김치 통을 자동차 트렁크에 함께 싣고 대전 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니 6시 가까이 되었다. 해가 짧아서인지 아직도 어두운 밤이다. 화물차를 제외하고 차량이 많지 않아 1차선으로 달렸다. 다른 때 같으면 중부고속도로 오창 휴게소에 들려 차 한 잔하고 갔는데 이번에는 쉬지 않고 갔다.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니 서 이천 IC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제 아침이 밝았다. 처갓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서 장인과 장모님께서 아침 일찍 오느라고 고생하였다며 반겨 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칼을 들고 나와 배추를 다듬었다.
아내와 처남의 댁은 넓은 여러 함지박에 물을 받아 배추를 넣고 소금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여섯 집이 먹을 김장이니 배추가 꽤나 많아 보였다. 오전 내내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무, 파 등 양념재료를 준비하다보니 대충일이 끝났다. 그런데 장모님께 배추 절이는데 얼마나 걸 리냐고 여쭈어보니 하루가 걸린다고 하였다.
장모님께 배추가 저는 동안 외출 나가서 맛있는 것 드시고 오자고 말씀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안 가신다는 것이다. 배추 절이는 소금의 양이나 배추 속에 넣을 무생채 양념에 신경을 쓰시는 것이었다. 장모님께서 한 말씀을 하신다.
“자네 정 가고 싶으면 장인이나 모시고 다녀오게나,”
나는 장인어른을 모시고 양평에 있는 용문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은행나무아래 찻집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장인께서 좋아하시는 메뉴로 음식을 대접하고 돌아오니 해가 저물었다. 야간에 할 일은 배추 속에 넣을 무를 써는 일이다. 생채 칼로 썰어 두 함지를 만들어 놓으니 오늘 할 일은 모두 끝이 났다.
장인은 고스돕을 좋아하신다. 큰 처남이 매형인 내가 왔다고 하여 인사차 왔다. 내일 아침 용인현장으로 6시까지 나가보아야 한다고 한다. 장인어른은 11시까지 고스돕을 하자고 하신다. 처남이 내일 일찍 출근하여야하니 한 시간만 하자고 양해 말씀을 드리고 고스돕도 쳤다.
다음날 일요일 새벽, 장모님이 걱정하신다. 배추가 너무 절이면 맛이 없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불을 켜놓고 함지박에 있는 절임배추를 꺼내어 물에 헹구어 냈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마당에서 배추를 버무리기 시작하였다.
장모님은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는 취향을 다 알고 계시다. 김장을 담가가는 량은 각자 필요한 만큼 하지만, 배추 속에 넣는 양념만은 장모님께서 점검 하신다. 00집 김장 속은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00집 김장은 젓국을 더 넣으라고 말씀 하신다. 형제들이 모여 3시간정도 버무리는 작업을 하니 김장이 끝이 났다.
바로 장인 장모님 모시고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절임배추와 수육을 맛있게 먹었다.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부모님께 감사의 뜻도 전하고 형제간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파티였다.
나는 앞으로도 처갓집의 초대를 계속 받고 싶다. 가족과 형제간의 우의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 김장파티는 장인과 장모님의 지혜이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처갓집 초대 받을 수 있도록 장인과 장모님께서 건강하시 길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