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의 대면은 항상 긴장된다. 자라온 환경과 사고방식이 다르기에 아무리 절친한 죽마고우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의견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상대방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으로 보이곤 한다. 이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인간관계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기자들이 빈번하게 하는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예인이든,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기업인이든 초면인 사람과의 만남은 강한 흥분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점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스튜어디스 강지은 씨와의 인터뷰는 더욱 신경이 쓰였다.
물론 아리따운 승무원을 만난다는 사소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간단한 신상정보 외에는 주어진 것이 거의 없으니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던 탓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승무원만큼 사람을 대하는 것이 껄끄러운 직업도 없을 듯싶다. 그들은 승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언제나 환하게 웃는 얼굴과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로 답한다. 비행할 때마다 바뀌는 손님들 가운데는 정말 별의별 사람도 있을 터인데 끝없는 인내심으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기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이 외국이 돼버린 삶 수시로 공항을 들락거리는 국제선 항공기에서 일을 해야 하는 승무원은 '업무상'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다. 항공사들은 중심이 되는 도시에 승무원들의 근거지를 운영한다. 아시아나항공이나 대한항공은 당연히 인천이고, 일본항공은 도쿄다.
에미레이트항공에 근무하는 승무원들도 대부분 두바이에 거주한다. 강지은 씨도 한국인 동료 2명과 함께 두바이 시내의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스튜어디스는 모두 450명으로 영국,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두바이와 인천을 왕복하는 직항편이 개설된 것이 작년인 것에 비하면 대단한 수치다. 학력 수준이 높고 성격이 곰살궂은 한국인 승무원은 7년 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외국항공사의 한국인 승무원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비행기에만 탑승하는 데 반해, 이들은 다양한 노선에 투입돼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오히려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9개월 동안 일로 서울에 온 건 세 번뿐이에요. 서울은 외국인 승무원에게도 굉장히 인기 있는 곳이어서 스케줄 받기가 힘들거든요. 아마 한국 손님들이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기내식을 드시면 주무시는 분이 태반이죠." 설령 서울 땅을 밟는다고 해도 주어지는 시간은 하루 남짓이다. 이역만리에서 날아와 향수를 달래고 가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친구와 만나려면 군대에서 휴가 나오는 이등병처럼 미리 연락하고 약속을 해둬야 한다. 그 와중에도 빠뜨리지 않는 일은 한국음식을 사 가는 것. 두바이에서 먹을 일용 양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살다 보면 한국만큼 빠르게 변하는 사회도 없다고 느껴진다. 인터넷으로 퍼지는 새로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제거리에 끼지 못할 때면 문득 소외감마저 생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좀체 보지 않던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 보는 습관이 생겼다. 당연히 고국이 그리울 거라 생각은 했지만, 가끔은 많이 외로울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두바이'와 꽤나 친해졌지만, 여전히 낯선 듯했다.
사실 두바이는 세계적인 도시여서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단다. 햄버거나 커피도 배달되고, 한국과 물가도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곳이다 보니,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슬람 국가여서 금요일이 휴일이고, 뜨거운 날씨 탓에 은행이나 기업들도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또한 술 대신 '시샤'라는 물담배를 즐기고, 차도에 횡단보도가 없어서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야 하는 것도 두바이의 특색 있는 모습이다.
재즈처럼 산다 강지은 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비행기를 보며 승무원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그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면서 타국의 문화를 공부하고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았다. 미국 플로리다의 호텔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면서 재미와 행복을 동시에 경험한 것이 외국 항공사를 선택한 계기가 됐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보기보다 화려하지도 않고 고단한 직업이죠. 그래도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에 감사해요. 또 일한 만큼의 대우를 받는 것도 좋고요. 여기는 비행이 끝난 뒤에 사무장에게 불편했던 사항을 바로 얘기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에요. 단점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불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랄까요. 잠도 못 자고 10시간 비행하면 체력이 바닥나기 일쑤죠." 5주간의 스튜어디스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비행기에 탄 것은 작년 12월 31일. 그의 마음속에서 흥분, 걱정, 설렘 등 수많은 감정들이 무수히 교차했다. 조종실에서 이착륙 장면을 목격하고, 선배 승무원들을 도와주는 두 차례의 견습 비행을 무사히 마친 후 에미레이트항공의 승무원으로 인정받게 됐다.
다국적 승무원이 한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비행기에는 아랍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한 명씩 타고, 기항지에 따라 해당 언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배정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승무원 사이에서 에어버스와 보잉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보잉에 비해 작은 기종인 에어버스는 활동범위와 동선이 좁아서 경력자들이 좋아하고, 보잉은 기내가 깔끔하고 천장의 조명을 바꾸는 특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젊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에미레이트항공은 모슬렘들이 많다 보니 벌어지는 황당한 일도 있다. 이슬람은 메카를 향해 하루에 5번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무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신앙이 독실한 사람은 화장실이나 승무원들이 머무는 갤리 앞에서 담요를 깔고 절을 한다고 한다. 마침 음료 서비스를 해야 할 순간에 이런 일이 닥치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인도 쪽 사람들은 보디랭귀지가 달라요. 저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 부정의 의미인데, 그 사람들은 긍정을 뜻하는 거거든요. 또 손을 주먹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면 물을 달라는 것이고, 새끼손가락만 펴면 화장실을 찾는다는 거예요." 그는 방문하는 취항지마다 각 도시의 이름과 특징이 담긴 기념품 자석을 수집하고 있다.
일단 에미레이트항공이 가는 곳의 자석은 모두 모으는 것이 꿈이다. 또 다른 소망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에게 한국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주는 강사가 되는 것이다. 연륜과 경험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강지은 씨가 바라는 꿈은 두바이와 하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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