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6녀 의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홍석씨는 한라문화제 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가수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잘 알수있듯이
어머니는 창을 아버지는 장구를 치는 예능인의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했고 그결과 초등학교때는 KBS어린이 합창단에서 활약할정도의 타고난 실력을 갖추었다.
2살때부터 찾아온 소아마비는 늘 목발을 짚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정도로 낙천적이고 성격이 좋아 대인관계가 원만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그의 친구들도 장애인보단 똑같은 상인으로 인식해 들과 산을 뛰어놀면서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의 주체할 수 없는 끼는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영락없이 발휘되었고
시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급기야 19살때는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대상을 타게된다.
공부를 잘했던 자식이기에 부모님은 공무원이 되길 바랬지만
홍석씨는 자신을 꿈을 이루기위해 섬을 떠나오게 되지만 사회는 장애를 안고있는 홍석씨에게 냉담하기만 했다.
하지만 한번도 자신과 사회를 원망하기보단 그러면 그럴수록 커져가는 오기와 각오는 더욱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자신의 노력 하나만으로 자신이 작사한 노래 "장난치지마"를 발표하게 된다.
첫 음반이 나오던 날 앨범을 끌어안고 3일동안을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보냈다고 하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온 그의 시간을 짐작할수 있을것 같았다.
2011년 4월 데뷔하고
그해 10월 월미도에서 단독콘서트를 가지게 된다.
유명 선배 가수들이 무대를 함께해줄 정도로 그의 가수에 대한 열정은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물론 콘서트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은것은 말할것도 없었으며 주변은 한때 교통 혼잡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인터뷰를 하는 동안 본 기자의 마음도 마치 현장에 있는듯한 착각을 했었다.
그런 홍석씨에게도 위기가 없었던것은 아니었다.
그의 노래하는 열정적인 모습에 반한 지금의 아내와 18살에 결혼하여 임신을 하던날 아내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가수를 그만 두라고 권유하자 선뜻 아내의 뜻에 따라 잠정 활동 ?을 접고 의상 디자인 공부를 하게된다.
지금은 동대문에서 주문을 받아 맞춤 의상 디자인을하는 어엿한 사장님 이지만 오히려 그때의 일들이 속 편안하게 노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오히려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면서 장애를 안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노래를 통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작은 힘과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더욱더 조심하고 더욱더 노력한다고 한다.
"할수있다" 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오늘도 최선을 다 하는 김홍석씨
처음 만날때는 몰랐었는데 한두번 만나면서 마치 10년 20년을 같이했던 친구처럼 가슴을 열고 지내는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것을 느끼게된다 이런것을 진국이라고 하던가............. ^^
인터뷰 내내 참 많은것을 배우고 느낄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더운물 한잔을 마시는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김홍석씨의 앞날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