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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64
1152독, 돌아갈 귀(歸) - 첫 번째
흔히 ‘버킷 리스트’라는 말을 합니다.
금생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말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저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 ‘ 묻는다면...
리스트’라고 하니까, 단수는 아닐 터이고 복수일 터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만 남겨놓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저의 경우는 《무량수경- 새로운 번역, 새로운 해설-》의 출판입니다.
새로운 번역이 필요한 것은 종래의 번역이 “모두 다” 많이 틀린 오역(誤譯)들이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어떤 번역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강승개 (康僧鎧)역본 단 하나만을 저본(底本)으로 놓고서 번역을 한다면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강승개 역본의 한문 번역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한역본 4종과 대조해 본다면, 더 나아가서 범본까지 살펴볼 수 있다면 강승개 역본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저본이 되는 한문의 역본에 오역이 많다면, 당연히 아미타불의 참뜻은 올바로 전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번역을 하고 새롭게 그 의미를 천착해야 할 까닭입니다. 《무량수경》이 갖는 정토신앙 안에서의 위상을 생각할 때 이 일은,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해내야 할 불사입니다.
그런데 다 경험하듯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늘 그 일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네 일상이 아니겠습니까. 《무량수경》으로 달려가는 길 앞에 정말로 많은 일들이 놓여있습니다. 헤쳐 나가야 하고, 치우고 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늦어집니다.
할 수 없이, 조금씩이라도 해가야 하고, 해갈 수 있는 외부적인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 출발한 정토문헌학회에서 “새로운 《무량수경》”이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시작합니다. 오는 4월 30일, 그 첫 장을 엽니다.
이 강의 도중에 책이 출판된다면, 강좌는 중지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계속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8월까지는 2개월에 한 번씩 강의를 하고, 정년이 되는 내년 9월부터는 매 달 한번 씩 강의를 할 생각입니다. 매 강의 때마다 번역의 초고(草稿)를 제시하고, 강의를 통해서 독자들의 의견수렴을 하고, 다시 수정하고 보완할 생각입니다.
이 불사는 저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결사(結社)입니다. 이 ‘무량수경 번역 결사’에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나무아미타불
이제 「정신게」 공부를 합시다. 우선, 오늘의 「정신게」를 독송합니다. ‘돌아갈 귀’에 주목해서 읽어주십시오. 모두 5번 나옵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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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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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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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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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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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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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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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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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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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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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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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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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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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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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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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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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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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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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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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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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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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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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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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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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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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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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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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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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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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정신게」를 시작하자마자 ‘돌아갈 귀’가 나옵니다. 다시 확인해 볼까요?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무량수여래가 아미타불이라는 점은 새삼 설명드릴 것도 없습니다만, 오늘 우리 공부의 주제는 바로 ‘귀명’입니다. ‘귀명’이라는 말은 천친 보살을 찬탄하는 ‘귀명무애광여래’ 속에도 한 번 더 나옵니다. 아미타불을 달리 표현했을 뿐, ‘귀명’이라는 말은 똑같습니다. ‘귀명무량수여래’나 ‘귀명무애광여래’나 다 칭명염불, 즉 아미타불의 명호를 일컫는 염불입니다.
무량수여래에 대해서는 ‘귀명’이라고 하였으며, 불가사의광여래에 대해서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뜻의 말입니다. ‘나무’는 범어 ‘namo(⟵namas)’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겼습니다. 뜻으로 옮긴다면, ‘경배, 경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명사지만 동사의 의미로 번역됩니다.
소리로만 옮기지 않고, 뜻으로 옮길 때 ‘귀의(歸依)’라거나 ‘귀명’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귀명’보다는 ‘귀의’가 더 친숙합니다. 법회를 처음 시작할 때, 삼귀의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삼귀의를 하면서 법회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신식입니다. 정토진종에서는 삼귀의를 하면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정신게」를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정신게」 첫머리에 “귀명무량수여래, 나무불가사의광”이 있기에 부처님께 귀명하는 것으로 법회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삼귀의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현재 우리가 하는 법회의식에서의 삼귀의는 팔리(Pali) 불교에서 온 것입니다.
Buddham saraṇam gacchāmi.
붓담 사라남 갓차미.
‘갓차미’는 ‘나는 간다’라는 말입니다. 동사입니다.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인데, 이 단어는 타동사를 둘 갖습니다. 이중목적격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부처님을 의지처로 삼아서 저는 갑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겨놓고 보면, 목적어(목적격)는 ‘부처님을’ 하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지처로 삼아’라는 것은 목적격이 아니지요. 하지만, 범어에서는 똑같이 목적격입니다. 그래서 이중목적격을 갖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삼귀에서는 ‘귀명’이나 ‘귀의’로 번역되는 ‘나무/나모’라는 말이 안 나왔습니다.
이제 ‘귀명’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살펴보기로 합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님의 《나무아미타불》 「육자」에 보면, 이 귀명의 의미를 일본 정토불교의 세 종파에서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178쪽입니다.
①정토종 : 아미타부처님께 신명(身命)을 바친다는 뜻.
②진종 : 아미타부처님의 칙명(勅命)에 따른다는 뜻.
③시종 : 아미타부처님의 명근(命根)으로 돌아간다는 뜻.
각기 호넨스님, 신란스님, 잇펜스님의 순서가 됩니다. ‘돌아갈 귀’에 대해서는 의미해석에 차이가 없습니다만, ‘명’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자로 ‘命’이 ‘목숨 명’도 되지만, ‘명령 명’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넨스님과 신란스님은 차이가 생깁니다. 잇펜스님은 ‘목숨 명’으로 보는 점에서는 호넨스님과 의견을 같이 합니다만, 호넨스님이 귀의하는 중생만의 ‘목숨’을 말하는 것에 반하여 잇펜스님은 중생과 아미타불의 공유하는 목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성입니다. 호넨스님은 귀의 주체를 ‘명’으로 파악하였고, 잇펜스님은 귀의의 대상을 ‘명’으로 파악했습니다.
호넨스님의 ‘귀명’ 해석에서 운동하는 자는 중생이고, 중생이 아미타불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하지만, 신란스님의 ‘귀명’ 해석에서는 중생이 아미타불에게 향하여 나아가 기 전에 아미타불이 중생을 향해서 먼저 다가오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가오셔서는 명령합니다.
신란스님의 저서 《교행신증》 제2 행권(行卷)에서 신란스님은 “귀명이라는 것은 본원이 부르는 칙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른다’는 말은 ‘초환(招喚)’이라고 하였습니다. ‘초’나 ‘환’이나 다 ‘부른다’는 말입니다.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니다. 길을 가는데, 저 앞에 아는 사람이 지나갑니다. 만약 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의지하는 사람이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을 불러서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 살참이고, 좋아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못 본 체 지나갈 것입니다.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좋아한다, 믿는다, 의지한다’는 이런 동사로서 포괄되는 말은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돌아갈 歸’라는 글자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이 우리를 부른다는 행위에는 아미타불이 우리에게 ‘돌아가는(=돌아오는)’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 봅니다. 즉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귀명하는 것이 곧 중생을 부르는, 초환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부르는 행위가 곧바로 ‘명령’입니다. 부른다는 말은 오라는 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라는 명령을 받아서, 그분을 믿고 그 명령에 따르는 것을 귀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 귀명은 곧 “네, 부처님, 갑니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행위가 곧 칭명염불입니다. ‘귀명무량수여래’이고, ‘귀명무애광여래’라고 봅니다. 그래서 귀명은 응답이자 대답입니다. 순명(順命)입니다.
학자들이 「정신게」의 내적인 구조를 분류할 때, 여러 가지로 분류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둘로 나누는 이분설(二分說)인데, ‘귀명무량수여래’에서 ‘난중지난무과사’까지를 의경단(依經段)이라 평가하고, ‘인도서천지론가’에서 ‘유가신사고승설’까지를 의석단(依釋段)이라 부릅니다. 이는 신란스님이 전자는 경전에 근거해서 시를 지었고, 후자는 고승들의 주석에 근거해서 시를 지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분류법에 반대합니다. 그리고서 저 나름의 새로운 분류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신란(親鸞) 정토사상의 몇 가지 특성 - ‘정신염불게(正信念佛偈)’를 중심으로 -」(『불교학보』 제95집)라는 논문에서입니다. 종래의 이분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귀명무량수여래, 나무불가사의광’의 의미가 축소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3구 ‘법장보살인위시’부터 ‘유가신사고승설’까지의 118구는 모두 ‘귀명무량수여래 나무불가사의광’의 두 구절을 해설하고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토불교는 바로 ‘귀명무량수여래 나무불가사의광’, 즉 우리로 말하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육자로 시작해서 육자로 끝나는 불교라고 저는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긴 편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에 들에 꽃들이 피웠다가 집니다. 나날이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기를 빕니다.
귀명무량수여래
(2024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