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근거에 대한 논의는 결국 ‘성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웨스터호프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성서해석을 놓고 두 입장이 날을 세우고 대립해던 상황을 언급합니다.
즉 로마가톨릭은 ‘성서와 전통’이라는 이중 잣대를 내세우는데 반해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진영은 ‘오직 성서’ 라는 단일잣대를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의 입장에서 ‘전통’이란 성서를 놓고 교회가 권위 있게 내놓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이란 결국 교황을 위시한 고위성직자들이 성서에 내린 해석을 의미합니다. 여기엔 아무나 성서를 해석할 수 없고 교회의 상층부만이 제대로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는다는 주장이 들어 있습니다. 중세엔 성서도 라틴어로 읽고 예배로 라틴어로만 드렸습니다.
그러니 라틴어를 아는 사제들 말고 일반인들은 애당초 하느님의 진리에 접근할 길이 막힌 셈입니다. 사실 종교개혁은 성직자 그것도 고위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성서해석권에 문제가 많다고 반발한 운동입니다. 그러다보니 전통의 가치를 격하시키고 오직 성서만이 진리의 근거여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서를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서와 별로 일치하는 것 같지 않은 전통을 폄하하려니 프로테스탄트쪽은 “성서에 없는 것은 허용하지 말자”는 부정적 톤이 강했습니다.
이렇게 두 입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을 때 성공회는 중도(a middle way)를 택했다고 웨스터호프는 말합니다. 즉 성서가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은 믿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성서와 분명히 모순되지 않는다면 믿어도 무방하다는 입장입니다.
로마가톨릭이 ‘성서와 전통’이라는 이중 잣대를, 프로테스탄트는 ‘오직 성서’라는 단일잣대를 말할 때 성공회 변증가들은 ‘성서, 전통, 이성’이라는 삼중 잣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삼중 잣대는 성공회의 구별된 특성이 되었습니다. 양 진영이 흑백으로 대립하고 있을 때, 내용보다도 내용에 이르는 방법론을 제안함으로써 양 진영 모두에 발 디딜여지를 주었습니다. 또한 서로 대립하는 입장들을 포괄하고 통합하는 풍모가 그대로 성공회 에토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공회 영성이라 하면 ‘포괄성’을 특징으로 꼽게된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 한번 기록된 말씀(성서)을 놓고 다른 시대 다른 상황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처지에 의미 있도록 해석하는 과정(이성)을 필경 거치는데, 또 다른 시대와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와 더불어 앞선 사람들이 이성적 작업을 통해 내린 해석(전통)을 참고하면서 다시금 자신들에 합당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성공회 신앙의 이해”, 존 웨스터 호프, 대한성공회)
로마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할 것 없이 동일한 진리의 근거는 “성서”입니다. 다만, 로마가톨릭은 성서를 교회(의 고위성직자)가 해석한 ‘전통(교회법)’을 진리의 근거에 포함시킨 것이고, 개신교는 그 전통을 폐기하고 종교 개혁가들이 성서를 해석한 신앙고백문(교리)을 앞세운 것입니다. 개신교 일부가 근본주의로 흐르게 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의 신앙고백문을 절대화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회는 ‘교회법’과 ‘교리’를 절대화하는 두 입장에서 뒤로 물러서 있습니다. 교회법과 교리는 불완전하며 완전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입장입니다.
<성공회 포털 커뮤니티 "홀리로드" http://www.holyroad.kr/ 에서 퍼왔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주여 임하소서 우리마음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