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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주일학교 운동] 신 현 국 목사 (초대, 미국산호세 한인 장로교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알차게 발전하고 있는 전국 주일학교 연합운동의 모습을 볼때 감개가 무량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본 교단 주일학교 운동 초창기 (1960년대)에는 전국적인 연합운동은 없었을 뿐 아 니라, 각 노회의 주일학교 운동도 극히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경남 노 회 산하에서 신현국 전도사, 심군식 전도사 등이 주일학교 교육에 참여하면서 박윤 섭, 박기역 집사 등의 협조를 얻어, 교사 연합 수련회 등을 개최하여,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를 두고 효과적인 여름학교 교육을 위하여 교재해설, 교육 방법론, 아동 심리학(강사:심군식, 신현국, 조성관) 등의 강의가 있었고, 이런 행사들을 계기로 타 노회에도 동일한 소규모 행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주교교육」지를 통하여 "교사의 길잡이"(신현국), "어린이 동화'(심군식), 편집(김동철) 등으로 주일학교 교육에 대단 관심이 더욱 고조되기 시작했고, 신현 국, 심군식 목사가 부산 삼일교회로 부임하면서, 전국 주일학교 운동의 정지 작업이 시작되어졌다. 또한 총회적으로는 민영완 목사(당시 총회 종교교육부장)의 지도와 협조, 평신도 측에서는 이성희, 양상현, 박기용 장로(당시 집사)등의 적극적인 참 여 등으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가 총회 산하 운동으로 공식 발족되게 되었고, 초대 회장에 필자가 피선되게 되었다. 당시는 전국 연합운동의 태동기라 많은 행사는 갖지 못했으나 부산에서 전국 교사 수련회를 제1차로 개최하였고, 노회 단위의 행사는 연합회가 강사 지원 등으로 협조 하면서 주교 연합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운동에 주로 힘썼다. 그러나가 양상현 장로 (당시 삼일교회 집사)가 회장을 맡으면서 주일학교 운동이 행정적으로 기틀을 잡고 많은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초창기의 주일학교 연합회 활동] 양 상 현 장로 (제2·3대, 부산삼일교회) 지금으로부터 28년전, 당시는 교단적으로 보면 고신 · 승동측이 합동했다가 다시 환 원하는 때라 틈새 분위기는 아주 어수선했다. 부산노화 주일학교 연합회가 7∼8년의 전 통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때라 회장으로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총회가 대구 태평로 교회당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여러 임원들과 함게 참석을 하였다. 당시 전국 주일 학교 연합회가 어떠한 사업을 바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참석했다가 회장이라는 무거운 중책을 받아 내려왔다 필자는 신앙의 영향을 고 한상동 목사님과 부교역자이신 심군식 목사, 신현국 목사, 석원태 목사님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부족해도 주의 일 에는 순종해야 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아 무조건 교회 일은 '아멘'으로 받아 들여야 했 다. 그후 2년 동안 열심히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여기 저기 쫓아 다녔다. 지나간 일중에는 당시 여러 지역에서 '지도자 강습회'라는 이름으로 여름 성경학교 교사 강습회를 가졌는데 순회하여 격려해 주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순서도 없이 갑 작스럽게 축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한없이 당황하고 긴장된 순간이 많쌌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을너무도감사하게 생각했다. 어느날은 진주노회 강습회 순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경남 삼천포에서 국도를 달리다 새삼 스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승용차로 운전하다 돌아 오는 도중,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던 트레일러와 부딪린게 아니라 트럭 밑으로 우 리가 탄 승용차가 지나게 되었는데 순간 몸을 움츠린 채로 '이젠 죽었구나'하고 혼자 중얼 거렸다. 그런데 함께 동행을 했던 심군식 목사님이 '우리가하나님의 자녀들인 데 설마 자기 아들들을 내버려두겠어요' 라는 말씀에 '아! 믿음이 크니까 저렇게 담대 한 말씀을 하시는구나'를 느끼며 더욱 순종하게 되었다 그때는 재정적으로 너무나 열악한 상태였다. 교회에서나 그 어디에서도 지원이 없 이 회장 또는 임원들의 지갑을 열어야 했기에 연합회 일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 스러웠다. 당시 임원들 모두수고를 많이 했지만몇몇 분들의 적극적인 수고에 깊이 감사 드리고 싶다.
[제1회 전국 어린이 성경고사 대회 개최] 박 정 규 장로 (제4대, 항도교회) 1971년 1월 12일 오전 11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주최 "제1회 전국 어린이 성경 고사 대회"가 부산을 비롯한 서울, 대구, 광주 등 16개 도시에서 동시에 실시 되었 다 주일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공과 교재인데, 우리 교단에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카 교단에 앞서서 일찍부터 총회 교육부와 출판부에서 교단공과인 '생 명의 양식' 교사용을 매년 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용 교재는 교단적으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발행할 수가 없었다 다만 부산노회 주일학교 연합회에서 자체적으로 1970년 4월부터 매월 2천부 정도 발행하여 20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때는 전국 교회가 거의다 보잘 것 없는 교회교육 시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교사들의 뜨거운 열심과 기 도와 사명감만 가지고 어린이들의 신앙 교육에 임하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주일학교 교육을 교사들에게만 맡겨 놓았을 뿐 교사 양성문제나 자질 향상 에 교단적으로 신경을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버려운 문제였다. 그보다더 중요하다 고 생각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교단에서 하는 일은고작 교사용 교재를 발행하는 일 뿐이었다. 그 외에 교사들의 신앙 수련 활동은 각 지방 의 노회별 주일학교 연합회가 담당해서 여름마다 교사 강습회를 개최하여 교사들의 사명감을 불러 일으키고 신앙훈련과 교사들의 자질 향상에 힘쓰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구나 교단이 창설되고 주일학교 교육이 시작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주일학교 교육의 성과는 전국적으로 한번도 측정해 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측정해 볼려고 하는 기관도 없었다. 또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도 창립된지 4년이 되었으나 데계적으로 완벽하지도 못하고 또지리적으로 넓어 교통이 불편하여 임원 회가 한번 모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전국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성경 실력을 한 번 평가해 보고 그것을 교회 교육의 기초 자료로 삼자는데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 초 우리 나라의 사회적 형편을 생각하면 전국 교회 어린이들을 한 교회에 모아놓고 성경고사를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전국을 7개 노회별로 나누되 같은 노회라도 넓은 지역은 시찰별로 나누어 농촌 교회도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고사장 수를 17개 지역으로 세분화 하였다. 안동지역은성경 교 재가 맞지 않아 실시를 못땠다. 시험 범위는 당시 전국 교회가 다같이 사용하고 있었던 '생명의 양식' 5권 1-193쪽 까지로 하고 학년과 남녀는 제한하지 않고 한 교회에서 대표 3명씩만 참가할수 있 도록 하였고 성경문제는 150문제로 1문제 1점씩 배점하여 150점을 만점으로 하였 다. 그리하여 1971년 1월 12일 전국주일학교 연합회 임부장들은 인봉한성경 문제 지 및 답안지와 또 성경 퀴즈 문제를 가지고 아침 일찍 부산을 출발하여 각기 지정된 16개 고사장으로 향하였고(먼 지방은 전날 출발) 고사장에 도착하여 먼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이어서 어린이들에게 성경 시험을 치르게 하고 다음에는 성경 퀴즈 문 제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성경 퀴즈 대회를 열어 성적에 따라 미리 준비해 간 상금으로 시상을 했던 것이다. 필자는 당일 경주로 향하였다. 영하의 추위 속에 눈까지 내리는 중에 시외 버스 편으로 경주교회애 도착하였다. 어린이는 모두4교회 12명, 그러나교사와 학부모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예배와 성경 시험과 성경 퀴즈 대회를 다 마치고 다니 경주교회 여전도회에서 점심으로 떡국을 준비하여 어린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고 경동노회 협동총무되는 장중배 집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오후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전국 16개 지역에서 실시한 성경 시험 답안지는 한 곳에 모아 엄격하게 채점해서 개인별, 교회별 통계를 내고 여러 측면에서 비교, 분석하였다. 물론 평가에 있어서 시험 문제 자체가 교육목표에 부합하고 난이도나 변별도 등이 타당성 있게 출제되어야 하겠지만 우선 평가 내용이 상당히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보고 나타난 성적만 가지고 통계를 작성하였다 이 첫 성경고사는 전국 500여 교회 가운데서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교회를 비롯해서 총 79교회 232명의 어린이가 참가하였다. 학년 제한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3학년게서 6학년까지 고르게 참가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6학년이 평균 97점 (150점 만점)으로 제일 높고 5학년이 89점, 4학년이 80점, 3학년이 72점으로 전체 평균은 91점(100점 만점으로 61점)이었다. 남녀별로는 남학생이 120명에 평균 95점 여학생이 112명 참가에 평균은 84점으로 남학생이 높았다. 노회별로는 부산노회가 평균 111점 (100점 만점으로 74점)으로 가장 높고 전체 평균 91점을 넘는 노회가 부산과 경기노회 뿐이고 그외는 전체 평균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로는 대도시가 높고 면단위가 낮았다. 부산직할시가 114점, 서울특별시는 102점, 도청 소재지는 94점, 일반시 단위는 83점 , 읍 단위는 91점 , 면 단위가 74점이었다. 그러나 총 79교회가 참가한 중에 면단뒤 농촌교회가 27교회 (34%)나 참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16개 고사장별로 통계를 보면 전체 평균 91점을 넘는 고사장이 부산(114점), 진주(104점), 서울(102점), 대구(98점), 김해(96점), 마산(91점) 등 6개 고사장이었다 교회별 성적을 보면 1위가 부산 성서교회로 450점 만점에 426점(100점 만점에 95점), 2위가 부산 항도교회, 3위가 부산 대연중앙교회등 1위에서 7위까지가 모두 부산이고 8위가 대구 대현교회, 9위가 광주 광산교회와 부산 수정교회가 동점이었다. 개인 성적에는 부산 항도교회 김광섭 군과 부산 송도제일교회 박현숙 양이 공동 1위로 145점 (100점 만점에 96.7점)을 얻어 150문제중 5문제만이 틀렸다. 아무튼 어려운 여건 속에서 치러진 제1회 대회는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골고루 참여하여 그 의미는 매우 컸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전국의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성적을 처음으로 평가했다는 것과 이후로는 이것을 토대로 하여 계속해서 매년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과 또한 성적 결과를 가지고 각 교회들이 반성의 재료로 삼아 교회교육의 계획을 수립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찬송가를 편찬하던 시절] 박 기 용 장로 (제5·6대, 부산성산교회)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창립 30주년 초창기 주일학교 연합회에 봉사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몇자적어 본다. 앞서 선배님들이 터전을 닦아놓기도 했지만, 계속 창조적이고 새롭게 발전적인 일들을 연구개발해야 할 시기였으므로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다. 첫째, 주일학생들을 위한 성경 모범답안 대회 및 퀴즈 대회를 각 노회별로 시행하였기에 전국으로 찾아 다녀야 하는 애로 사항이 있었다. 둘째, 당시 전국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는 찬송가 문제가 아주심각했었다. 어른 찬송가를 아이들과 같이 사용하다보니 가사도 어렵고, 아이들 수준에는 맞지않는 실정이라 어린이 찬송가를 제작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뜻을 모아우선 가사와 곡 담당, 재정 담당 등으로 분류하여 분야별로 책임을 맡겨 작업을 시작하였 다. 가사 및 곡에는 현재 미국에 계시는 이종은 목사께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셨고, 재정은 여기저기에다 헌금 요청을 하였으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렵게 제작비를 마련하게 되어 찬송가가 나오게 되었다 이 어려운 중에서도 자부심을 갖는 것은 어린이 찬송가가 처음으로 제작 보급된 점과 초교파적으로 사용됨으로 우리나라 어린이 찬송가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 이다. 본회로서는 판매 수익금으로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었다는 장점을 가져오게 했었다. 이러한 유익한 일을 하는데에도 외부에서는 찬송가 제작을 하는 일에 방해하는 일들도 있었으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발행하게 된 것을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한다. 초판으로 5,000부를 발행하였으며 출판 기념회도 가졌었다. 그때 당시 출판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이종은 목사님께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첫 교사대회를 시작하여] 이 동 수 목사 (제7 · 8대, 경산중부교회) 1973년 5월 20일 마산 동광교회당에서 제7대 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에 피선되고 1974년 9월 19일 부산 성서교회당에서 총회를 개최하며 제8대 회장으로 피선되어 초창기라 일꾼이 귀한 때 겨우 임원 조직을 하여 그 당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동분서주 하였다. 여름성경학교에 땀 흘리고 지친 교사들에게 영육간의 안식과 새 힘을 주고 위로 한다는 뜻으로 제1회 전국 교사 대회를 경북 청도 동산기도원에서 개최하였다. 주 강사 이 선 목사님을 모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주제로 모인 이 첫 교사대회에는 158명이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다. 그 기간중 사회적으로는 "엑스풀로 74" 집회 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명이라는 성도가 모여 이루어졌고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8 · 15 경축 행사시 총격 피살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보다는 몇 년전의 일이기만 그때 당시 진주 중부교회당에서 전국 임원회가 어회록서기 자격으로 어렵게 교통편을 이용해 갔는데 마산 이양옥 장로만 왔고 그 외는 불참하여 손님맞이하는 김동완 장로는 정성껏 준비한 것이 호가 날 정도여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를 드린 사건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일꾼이 없었고, 조직만 있고 체계가 잡히지 않아 어려움이 많고 시행착오도 많았던 기억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부족한 사람을 회장으로 앞세우고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협조한 분들에게 늦게 나마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 원하면서 펜을 멈추고자 한다.
[전국 어린이 내회의 시작] 최 병 현 장로 (제11 · 12대, 사상교회)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가 30주년을 맞게되어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린다. 세상에 허다한 기관이나 모임이 많지만 주일학교 연합회만큼 애착과 보람을 느껴본 곳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지난 과거를 회고해 보면 11대 회장시에는 경주교회당에서 주강사 이 선 목사님 을 모시고 "새 힘을 얻으라'는 주제로 큰 은혜를 받았으며 12대 총회시는 부산 기장 교회당에서 조재태 목사님을 주 강사로 모시고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주제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일할 사람이 없다고 회장을 한번 더 하게 되어 일년 동 안의 경험을 살려 의욕적으로 잘해 보자는 뜻으로 어린이 종합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이전에는 부분별 종목으로 대회를 진행하다가 종합으로 하니 규모가 크고 후진 양성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임원들과 임 · 부장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사랑으로 만나며 , 헤어지기 싫 어하고 밤을 새우면서 가진 진지한 회의와 친교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끈끈한 우정이 계속 이어지는 연합회의 분위기는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되어진다. 아무쪼록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30년사 편찬 위원들의 수고와 책을 만드는데 협력 한 여러분들께 감사 드리며,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의 앞날에 영원한 발전과 하나님 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
[제20장 주일학교 연합운동 30년을 회고하며 ·225 찬송가에 얽힌 이야기들] 김 창 국 목사 (제13대, 금산교회) 1979년의 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운 여름이었다. 날씨도 날씨려니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렇게 기억된다. 경남노회 주일학교 연합회가 제1회 교사 대회를 치르면서 다시금 새 출발하는 자 리 매김을 하였고, 그 열기를 안고 많은 교사들이 제6회 전국 교사 대회에 참석한 것 이다. 기장교회에서의 전국 교사 대회는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대회 중에 제13회 총 회도 치뤄졌다. 총회는 은혜롭게 마쳤으나 여기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것은 회장 선거에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와 오랜 연고를 가진 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와는 별다른 연고를 갖지 못하고 겨우 부회계로 있었 던 본인이 회장으로 피선된 것이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당시에 선출된 임원들의 면면으로 보아 회원들은 특정지역 중 심으로 운영되어온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에 다소간의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라면 명실공히 그 조직면에서나 정책면에 있어서 전 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렇게 제13대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는 출범하였다. 그러한 회원들의 뜻을 따라서 제7회 전국 교사 대회를 서울로 올라가 서울중앙교회에서, 그리고 어린이 대회를 마산 동광교회에서 개최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교사 대회 중에 북악 스카이웨이와 판문점 관광은 교사들을 크게 위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교사 대회 기간 중에 잊지못할 일은 어린이 새찬송가 문제로 연3일을 합동 찬송가 위원회와 담판을 벌인 일이다. 회의라기 보다는 차라리 투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린이 새찬송가는 1972년 본회에서 출판하 여 작금에 이르도록 본회의 주요사업 중 하나로 되어있음에도 사전에 어떤 협의나 하등의 통고도 없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합동 찬송가위원회에 항의를 하였고 당시 찬송가 합동위원회 위원장이 신 목사님과 3인의 위원들이 중앙교회로 오셔서 이 문제에 대한해결책을모색하였 다. 우리측에서는 회장인 본인과 섭외부장 김영조 집사(당시)그리고 협동총무 송 정화 집사 이렇게 3인이 회의에 참석하여 먼저 본회의 승인없이 어린이 찬송가를 발 행하게 된 경위와 그에 대한 사과를 듣고 전국 판권을 요구하였다. 아니면 남부지역 판권을 주든지 아니면 우리는 계속하여 어린이 새 찬송가를 출판할 것이고 손해배상 및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본 교단 총무를 모시고 와 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교단과 교단간의 합의에 의한 일이니 주일학교 연합회의 사 정은 교단내의 일이니 총무 목사님과 잘 협의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찬송가 합동위원회에서 어린이 찬송가 부분은 그 이익금을 교단별 분배 원칙 에 따라 본 연합회에 돌려주기로 하고 1차 배당분을 수령하였다. 그리고 본회에서 위원을 찬송가 위원회에 파송하여 정기적인 협의에 참석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업무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합의하였다. 그 때를 회상하면 당시 총무이신 민 영완 목사님께 너무나 심하게 항의하였던 것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그 이후 차시 어린이 찬송가가 본 교단 총회 출판국에서 출판된 것을 보면 이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고, 이로 인하여 어린이 찬송가 사업 마져도 연합회에서는 잃게 된 결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외롭게 악전고투 하던 회장을 도와 함께 수고해 주셨던 김영조 장로님과 송정화 집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무쪼록 교단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주일학교 연합회가 더 크고 더 넓게 힘찬 날개를 펴고 독수리 보다 더욱 활기차 게 비상하기를 기원한다.
[네가 어디 있느냐] 김 옥 수 장로 (제14대. 자성대교회)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1968년 대구 태평로 교회당에서의 제2회 정기총회 총대로 참석한 이후 지난 해 제29회 총회까지, 제주도에서 있었던 두 번의 총회에 불참했을 뿐 스물 여섯 번의 총회에 참석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하 여 건강을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자부심도 가지게 된다. 제4회 총회시 서기에 피선되어 서기 3년, 총무 3년, 부회장 등을 거쳐 1980년 8월 7일 서울중앙교회당에서 모인 제14회 총회에서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총회 당일 오 후에 참석한 교사들과 함께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견학하는 뜻깊은 행사가 이뤄지 기도 하였다. 당시 「통일 찬송가」가출판되어 「통일 어린이 찬송가」도 한국 찬송가공회에서 발행되었다. 우리 교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발행되었던 「어린이 새찬송가」를 포기하여 캬만되었다, 할수 없이 우리 교단도 「통일 어린이 찬송가」를사용케 되었다 우리 교단 대표로서 심군식 목사, 당시 음악부장이던 이태직 전도사(현재 목사)와 필자가 참석하여 거의 매월 일회씩 성서공회 소회의실에 초교파적으로 모여 당면한 문제를 의논하였다. 재임시에는 제3회 어린이 대회가 온천교회당에서 거행최었다. 제8회 교사 대회는 삼천포 삼한교회당에서 "네가 어디 있느냐"란 표제로 거행되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긴 후 배를 두척 빌려서 나눠 타고 삼천포 앞바 다를 나란히 달린 것이었다. 달리면서 음정을 최대한 높여 힘껏 찬송하고 환호하며 즐거움을 만끽했었다. 교사 대회 기간중 우수한 교사를 추천받아 그 우수성을 표창하고 널리 알려 다른 교사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큰 뜻으로 교사대상을 시작하여 초대대상에 김광자 집사(현 항도교회 권사)가 수상했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총무로 재임시 1977년도에 「즐거운노래」가 발간되기 시작했는데, 편집에서 보급 까지 거의 실비로 보급하였고, 또한 애로도 참 많았었다. 무엇 보다도 합법적인 신 청을 하지 않고 일찍이 강습회하는 곳에서 한권만 구입한 뒤 표지만 바꾼 해적판을 만들어 버젓이 교사강습회에 사용한지방도 있었다 또 어떤 곳은율동강사에 따라 우리가 애써 만든 「즐거운 노래」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아, 필자가 일찌기 인쇄업 을 경영한고로 이 일에 초창기부터 개척, 이바지하여 모두 21권을출판함에 두번을 제외하고는 모두내 손으로 만들어 온 것에 생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개 척당시 애로사항을 알아주는사람이 많지 않다는사실 앞에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 었음은 솔직한 마음이다. 필자가 서기로 재직갈 때 전국 성경고사 대회의 숨겨두었던 이야기가 있다. 당시 에 전국 성경고사 대회와 성경 퀴즈 대회를 전국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실시하였다. 현재의 대학 수능시험 같은 형식이었다. 전국 교회에 대회의 일시와 장소를 공문으 로 알리고 전국 17지방중에 가깔고 편리한 장소로 택하도록 했다. 당일 시험관은 시 험지를 이참해 파송된다 봉투에는 '개봉금지 , 시험일 즉석에서 개봉할 것'이라고 밀 봉되었다. 오전 11시가 되면 전국 17곳에서 시험이 실시되고, 답지는 모아져 다시 밀봉된 뒤 즉석에서 성경 퀴즈 대회가 실시된다. 성경 퀴즈 대회는 지역별로 즉석에 서 등위가정해지고, 성경 고사는 답지가 본부로 회수, 채점되어 개인과 교회별 단 게 등위가 발표되고 시상된다. 여기서 시험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거 창지방에 파견된 마산의 어느 시험관은 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거창 인근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교사와 어린이들이 모여 시험관을 학수 고대하다 결국 귀가하고 말았다. 그 후에 전국 연합회로 항의가 대단했었다. 그 다음 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험관은 믿을만한 신실한 임원들로 확정하고, 지난 해의 사건을 상기하여 만약의 경우를 위해 대기 시험관으로서 당시 서기였던 필자가 맡아서 준비물(시험지 봉투)도 예비로 만들어 본부에서 당일 대기하고 있었 다. 11시에 고사가 실시되는데 정한 시간까지는 별 이상이 없떴다. 그런데, 11시 25분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시외전화가 온 것이다. "여보세요. 여기 대전 한밭교회인데 어떻게 된 것이요?' 거세고 급한 항의 전화였 다. "예. 알았습니다. 지금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 시로." 그 지역담당 시험관은 서울의 모씨였는데 참관을 못한 모양이었다. 예비시험 지 봉투를 들포 급행열차편으로 대전을 향했다. 대전에 도착해 보니 캄캄한 밤이었 다. 그때까지도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원망 반, 반가움 반으로 필자를 맞아주었 다. 1970년대는전화도 교환전화이고, 열차도 뜸했으며, 팩스도 없을 때의 역사 속 에 흘러간 묻혀진 이야기, 역사 속에 묻혀져 가리라.
[가장 보람된 직분은 교사이다 ] 최 진 호 장로 (제15대, 동래제일교회) 먼저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를 30년 동안 성장 발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 다. 부족한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제15대 회장의 중임을 맡아 수종들 수 있는 기 회에 유능하고 신실한 임 부장들을 불여 주셔서 대과없이 임기를 잘 마쳤음을 지면 을 통해 다비한번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연합회는 당대에 자기만 하고 끝나는 사업 이 아님을 항상 염두해 두고 대를 이어 협조하며 격려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이런 미덕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회고해보면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것 뿐이다. 당시 수입은 어린이 주일 헌금 (오늘의 교육 헌금)에 위주해서 사업을 전개했다 8월에 종회가끝나면 다음해 5월 어린이 헌금이 입금될 때까지 당대 회장이나회 계가 대납을 해야하는 실정이었는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계획된 사업을 100% 달 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이다. 믿고 기도하는 자와 함 께 하시고 성취케 하시는 하나님께 할렐루야! 임기동안 잊혀지지 않는 사건은 음악부장 신모 전도사(현 목사)께서 연합회에 대 한 불평을 운운하면서 음악부장 사표서를 전국에 유인물로 배포함으로 일어난 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며, 그 유인물을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을정도로 마음에 상처 를 입은 일을 생각하니 하나님께 죄송스립고 고개를 들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노회 연합회 사업과 전국 쿠일학교 연합회의 사업은 규모나 내용이 구분됨에도 자기 소견 에 맞지 않는다고 물의를 일으키는 일들은 삼가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성장과정 에 일이라 하겠지만, 특히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는 교사들로서 구성된 단체임을 재 인식 하시기 바라고 말보다 실천에 솔선수범 하시기를 바란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니라 할까 사명감을 후배 교사들에게 몇자 소개하면 1956년에 부산 범천교회(담임 김갑석 목사)에서 보조반사 임명을 받고 감사감격이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교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능한 나를 보조반사로 임명하다 니 정말 감개무량 했고 기어코라도 이 직분만은 감당해야 겠다고 다짐하면서 '주님 힘주시고 디혜주시며 도와주옵소서'의 기도를 계속 드렸다. 중학교 2학년때 받은 가 장 처음의 교회직분이라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했는지! 또래보다 2∼3년 앞서 받은 직분이기에 얼마나 마음이 부풀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이 일에 즐거움으로 자 발적으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생활을 함으로 주일이 되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 지 거의 교회당에서 사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오늘날 주일낮 예배만 드리고 마는 교 인들을 볼 때 이해하기가 어렵다. 내가 가르치는 생명들이 말씀으로 자라서 교회의 각 기관에서 앞장서 봉사하는 것을볼때 그 보람,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요 감사이다. 범천교회 주일학교에서 처음느로 유치반 부터 초등학교 졸업까지 7년 동안 한반 을 맡아 졸업 (제20회)시킨 그 학생들 중에 목사 1호가 탄생되었는데 울산교회 김두 삼 목사이다. 40여년 동안 목사님들도 수명이 목회 일선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는 것을 볼 때 이보다 더 보람있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 필자가 장로로 봉사하고 있지만 이 보다도 교사의직딕분이 얼마나 귀중하고 무게가 실리는지‥‥ 참으로 보람된 직분 교사 잘 준비해서 성공하는 교사들이 되시 기를 소원한다 몇 회째 교사 대회인지는 잘 몰라도 60세 넘는 할머니 교사가 교사 대회에 참석하여 손자 손녀 교사와 같이 아침 구보를 할 때 그 할머니는 교사 대회에 참여한 모든 교사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많은 교사들이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을 보 았을 때 한 사람의 교사의 위치가 너무나도 중요함을 느끼면서 감사했다. 우리 교사 님들 땀흘리고 수고한 만큼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믿으면서 최선을 다 하시는 교사 가 되시기를 바란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교회가 요구하는 일꾼으로, 부모가 바아는 자녀로, 국가와 민족 앞에 쓸모있는 인물로 가르 치기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교사가 되도록 힘쓰자. 내가 가르친 인물 가운데 요셉, 다윗, 모세, 바울 같은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 되기를 기대한다.
[율동강사 집체훈련을 시작] 안 병 천 장로 (제18대, 부곡중앙교회)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 행사로 1984년 8월 2일 고신 대학원에서 제11회 교사 대회 개최 중에 정기 총회를 개최하여 제18대 회장으로 피선되어 취임사를 통해 '주 의 복음 증거를 위해 헌신 봉사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보다 발전적이고 의욕적인 사업계획들을 수립하여 동기 수련 회를 제2가나안 농군학교에서 189명이 참석하여 동기 수련회를 가졌는데 김용기 장로님의 근면절제 정신을 보급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율동강사 집체 훈련을 통해 강사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교사 강습회에 파송하여 율동과 음악에 새로운 활력 소를 제공하게 되었다. 많은 일들 중에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제12회 전국 교사 대회를 거창 위천 캠프장에서 개최하는 중에 2일째 새벽 5시경 총무 이약신 집사와 순찰을 하던 중에 개천에 물이 갑작스럽게 많이 불어나고 있었다. 텐트 친 야영장으로 올라올 것 같이 예상되어 비상을 걸어 철수지시를 내리고, 약 1시간여만에 철수를 시키고 나니 급 류가 온 야영장을 몽땅 횝쓸고 가버렸다 다행히 인명과 재산은 피해가 없었으나, 류정조 장로는 작업 중 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가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와 중에도 위천중학교 교실로 대피하여 새벽집회를 가졌는데 큰 은혜를 받았다. 시편 59편 16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퍼난처심이니이다'하는 말씀대로 위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한다. 부족한 본인을 회장으로 세워주시고 임기를 마치게 해 주신 하니님께 감사를 드리며, 임원, 실행위원, 선배 회장님, 교사 대회에 참석하신 교사님들, 협력해 주신 여 러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해 드린다.
[교사통신대학과 함께 한 교사 대회] 류 정 조 장로 (제19대, 공항제일교회) 제19대 회장직에 임하여 졌을 때 먼저 순종하든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으며 , 첫 사업으로는 임 ·부장 단합대회를 대둔산에서 가졌다. 이로 인하여 주일학교를 위하여 더욱 열심히 봉사하자는 다짐도 하였었다 둘째로는제8회 어린이 대회를서울등촌교회당에서 개최하였는데, 유래없이 3개 교회(서을 등촌교회, 제일교회, 영신교회)에서 분산 개최하였으벼, 눈이 많이 내려 빙판길이라 대회 진행상 상당한 어려움이 많았었다. 분주하였지만 임 ·부원들의 차분 한 통솔력으로 인하여 아무런 사고없이 무사히 마치게 되었었고, 참가자 수가 1, 500여명이나 되어 많은 신경이 쓰였고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음악율동 집체훈련이 이어졌고 지노회 교사 강습회 때의 파송과 각 지오회를 순회 하여 주일학교를 위하여 수고 하시는 여러 교사들에게 격려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 으며, 86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해라 사회적으로 조금 분주한 때였다. 그리고 제13회 전국 교사 대회를 고신대학 송도 캠퍼스에서 가졌었는데, 이때 교 사통신대학 출석수업을 신학대학원 강당에서 같이 개최하게 되었다 교사동신대학 은 총회가 승인하여 개설, 총회 교육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1기생이라 학생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교사통신대학은 제35회 대한예수교 장로회가 승인하여 총회 교육위원회에서 운영 토록 하고 개설되었는데 1기생이라 학생수는그리 많지 않았다. 이 기간에 157명이 전국 교사 대회에 참석하여 4일 동안 아부런 사고 없이 진행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리는 바이다. 교사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가르침의 은사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교사로서의 사명과 인식을 새롭게 가져 수고와 땀과 눈물을 하나님께서 모두 기억하시는 바 되어 언젠가는 면류관과 함께 기쁨과 보람을 만끽할 것이다. 교사 대회를 통하여 새로운 사명과 활력을 얻는 재충전의 기회가 되기를 바랬으 며, 이 지면을 통하여 수고하신 모든 임 ·부원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내 드린다.
[교사수첩 '牧羊'기획, 출판] 이 선 영 장로 (제20대. 연산중앙교회)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제20대 회장을 역임한지도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전담간사와 사무원을 둘 수 있도록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가 성장하게 된 것을 하 나님께 감사드린다. 선배님들이 잘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출범한 제20대 회기중에서 특별한 사업이라 고 하면 교사들을 위한 '牧羊"이라는 교사수첩을 제작, 배포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 각한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교사수첩이 작은 노트 또는 비지니스용 이거나 아니면 타출판사에서 발행한 것을 사용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 그리하 여 우리 교단의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알맞는 교사수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牧羊"이라는 교사수첩을 발행하기로 하였다. 교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 한 내용을 담기위하여 보기좋은 수첩으로 만들어 보고져 인쇄소를 찾아다니는 등 땀의 대가로 교사수첩 초판을 발행할 수가 있었다. 각 노회 주일학교 연합회를 통하 여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보급하여 좋은 반응과 격려를 받았다. 그 후에도 총회 교육위뭔회에서 주관하여 양적으로, 질적으로 향상된 교사수첩이 지속적으로 발행되어서 일선에서 수고하는 교사의 손에 쥐어지게 되는 것을 볼 때에 가슴 뿌듯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비록 작은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어린 영혼의 구원사역에 활용되도록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정 순 근 장로 (제21대, 부산동일교회) 1987년 8월 12일 거창 가산국민학교에서 제21회기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가 출발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은혜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의 역사를 이어가게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영광을돌린다 제20회기 회장 이선영 장로님으로부터 연합회 기를 이어 받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업이오니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시며, 하나님 의 나라가 확장되시기를" 기원하였다. 재임시의 여러 활동들을 회고하면 다음과 같다. 1.전국 어린이 대회에 제주도 지방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경주 지방을 관광시키고, 노회 '예선과 관계없이 대회에 참석시킨일. 특히 총회 교육부 목시텀뜰 과 장로님들이 전원 참석하시어 격려해 주신 일 2.안병천 장로님이 회장으로 있을 때부터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율동 강사 교육 을 율동위원회(초대 위원장 박성애 사모)로 정식발족시켜 율동 강사를 집체 교육시 키고, 각 노회 주일학교 교사 강습회에 공식적으로 파견시켰던 일. 3.남마산노회 주일학교 연합회(회장 옥추수 장로)치 초청으로 전국 주일학교 연 합회 실행위원들이 거제도 해금강 등지를 관광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만끽 하였던 일. 4.각 노회 주일학교 연합회 여름성경학교 교사 강습치에 모두 참석하여 격려하 였던 일. (당시 부회계 차문석 장로님의 적극적인 지원). 5.전국 교사 대회를 88올림픽이 열리는 서을 잠실의 땀실중앙교회당에서 개최하고, 63빌딩, 아이멕스관, 국회의사당, 과천 서울랜드, 북악 스카이웨이 판문점 등 지를 관광하고 가평 수원지에서 그 동안흘렸던 땀들을 말끔히 씻어 버리고 유쾌한 시간으로 전국주일학교 450여 교사들을 위로하였던 일. 6.총회 교육위원회 사무실에 필요한 컴퓨터를 기증찰 수 있었던 일 7.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처음으로 심야 총회를 개최하였던 일.
[강원도 오지의 교회 어린이 초청해 관광시켜] 김 수 석 장로 (제22대, 부산남교회)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린다.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역사를 편찬 하게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1988년 8월 10일 잠실중앙교회당에서 체22대 회장으로 피선되어 1989년 1월 어린이 대회 89년 8월 교사대회 큰 행사를 치르면서 특기할 만한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려 한다. 30년 동안 연합회를 하는 동안 중복되고 계속된 사업에 대하여는 재조명할 필요가 없으므로 생략하고 본인이 회장으로 재임 중 두 가지 특기할 내용만 소개하고자 한 다. 첫째는 1월 10일 개최한 어린이 대회를 세 교회에 나누어서 개최한 것이 처음이고 아마 마지막이 아니었는가 생각되어 진다. 매년 행사를 부산지역에서만 개최하는데 대하여 항의가 있었다. 이로인해 지방 노회에서 순회 개최를 강력하게 건의하여 본 인이 회장일 때 이를 전면 수용하여 마산에서 개최하되 세 교회로 나누어 개최하는 거사를 단행 차였다 마산제일교회에서는 개회 및 시상식과 웅변, 동화, 독창, 합창을 실시하고, 마산 삼일교회에서는 성경고사와 유초등부성경 퀴즈A B팀을 실시하고, 마산서부교 회에서는 성경암송(유치, 유년, 초등) 대회를 진행하였는데 세 곳에 분산하여 대회 를 진행하다보니 종합적인 관리가 되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무전기가 등장하여 총무인 김일겸 집사가 마산 제일교회에서 총괄하고 각 교회에 파견된 협동총무, 부 회장들이 무전기로 연락하고 셔틀버스를 운행하여 대회 장소로 왕래시켰다. 바쁘고 번잡하고 힘이 들었는데도 협조가 잘 되어 사고없이 잘 진행되어 힘든 것을 생각할 때 그 복잡한 진행 중에서도 아무런 사고없이 진행됨을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고 평가회 때 감사를 드렸다 두번째는 벽지교회 어린이와 교사를 초청하여 어린이 대회에 참가하고 친교하며, 관광시키는 일을 어렵게 결정하여 처음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이 일에는 부회장 김 정의 집사님이 너무 수고를 많이 했으며, 대회 전날 벽지 교회 어린이들이 잘 도착 할 수 있포록 이 행사에 앞서 기도로 준비를 하였다. 강원도 태백시 탄팡촌에 위치한 화천교회를 중심으로 몇 교회 학생과 교사 약 20명 을 초청하여 진해 해군통제부를 교섭하여 견학하게 하고 통제부 안에 함대를 승선 하여 산골아이들에게 배를 태워주었다. 그리고 마산 지역 주일학교 젼합회 주선으로 어린이들과 교사들을 같은 어린이집에 분산 민박하여 친선을 도모하고 가족들과 함 께 지내는 특별한 친교를 가짐으로 어린이들간에 교분을 열어주어 지금도 서로 편지 를 내왕하며 친교를 갖고 있다. 또한 참가 어린이들은 예선(각 지노회 별로 예선을 거쳐 전국대회 참가)을 거치지 않고 전원 원하는 부서와 기능에 응시하여 참여케 하 여 전국 어린이 대회에 참가하는 특혜를 받도록 조치하여 너무도 감격적인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떠날 때 김정의 집사님이 특별 배려하여 선물도 준비하여 주었으며 참 좋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한 가지 첨부할 것은 교사 대회를 함양 대남교회에서 개최했는데 물 좋은 함양 땅 데서 실시하면서 교사 대회를 특색있게 진행키 위하여 노력했다. 그 시기는 한창 이 단 종파로 교단과 교회가 진통을 겪고 있을 때 였으므로 박정덕 목사님을 모시고 이 단 종파에 관한 특강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도 이단 문제가 나오면 고인이 되신 박정덕 목사님의 정열적인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당시의 교육위원장이신 오병세 박사님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주일학교 연합회가 일약 약진 한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었다. 주님의 평안을 기도 드리면서 감사드린다.
[믿으며 가르치며] 김 정 의 집사 (제24대, 남서울교회)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창립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보다 더 힘찬 발설음으로 주일학교 교육 향상의 견인차 역할을 잘 감당하는 기관이 되기를 기원한다. 지난 일 을 회고하면 선배들의 열정적인 참여와 헌신적인 봉사로 우리 연합회가 안정적인 성 장을 거듭해 왔으나 본 연합회는 지리적으로 회합을 갖기가 너무 힘이 들고 업무 또 한 너무나 광범위하고 과다하여 업무처리의 효율성를 극대화하고, 또 한편 단순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모든 사업을 전체 실행위원회가 소집되어 처리하던 관행 을 과감하게 소위원회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모든 임원과 실행위원들이 수행할 업무규정과 업무분담 내역을 제정하여 부회장 들은 회장을 보좌하여 분담된 업무의 책임자가 되고 주요 사업별로 구성한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행사 및 사업 위원회별로 회의를 소집하여 업무를 처리하게 하였다 특히 율동강사들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교육과 관리와 파송을위하여 율동위원 회를 조직하였다. 교사들의 실무 교육을 위하여 교사헌신예배를 갖고 이어 제1회 성 경 교수-학습 협의회를 가진 것과 본 교단 찬송가 쒸원회와 총회 출판국의 동의를 얻어 「어린이 찬송가」 보급 특판을 취득하여 우리 연합회의 권익과 재정자립을 도모 하였으며 , 또 한편으로는 지노회 연합회와 도서 벽지 주일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다. 총회를 방문하여 신축중인 총회 회관에 본 연합회의 사무실을 배정 받았으며, 전 국 교사대회를 위하여 교사대회준기위원장 김창환 부회장님과 울릉도를 답사하던 중 폭풍우에 9일 동안 갇혀 1990년 연말과 1991년 새해를 울릉도에서 보낸 기억이 새롭다. 또 표제로 사용하던 '믿으며 가르치며 (신 6:4∼9)'를 우리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의 영구 목표로 설정하였다.
[총회회관 건립을 위해 헌금] 김 창 환 집사 (제25대, 남일교회) 전국 추일학교 연합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30년의 긴 역사를 보내고 이제 성년이 되어 새로운 도약의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은 오직 하나 님께서 도우신 은혜이다.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가선배들의 열정적인 헌신으로 말미암아 오늘에 이르렀고, 이 좋은 밑거름이 되어 21세기의 주역이 되는 교사들의 토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는다. 지난 날들을 회고하면 본회 처음으로 대도시가 아닌 거창 지역에서 어린이 대회를 개최했던 일, 전국 교사 대회 때 처음으로 시도했던 미혼의 교사의 만남을 위한 모 임은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된다. 그 교제를 통하여 더욱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교사 대회 기간중 총회 회관 건립츨 위해서 교사들이 기도와 헌금을 하여 교단 의 중요 사업에 동참하고, 관계자들을 측면 지원한 부분은 본회 자랑이기도 하다. 개체노회 교사 강습회 때 노회 임원들을 격려차 장거리 여행중 교통사고로 인해 여 러 사람들을 잠시나마 걱정 시켰던 일, 그 시기에 있었던 서울노회 불화 문제로 인 해 어린이 대회 기간중어핀이들 참석시키는 문제로 인해 여러날 마음 졸이면서 기 도했던 일들이 있었다 본인이 오늘처럼 성장한 부분도 본 연합회에 감사를 드린다. 이 30년의 역사가후일 주일학교 운동에 작은 참고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 께 앞으로 50년사는 더 좋은 역사의 자료로 간행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제주에서의 교사 대회] 김 일 겸 집사 (제27대. 부곡중앙교회) 필자가 본 연합회에 몸을 담고 봉사한지 10년만에 회장이 되었으며, 그전에 여러 선배님들의 닦아놓은 전통과 사업들을 물려받아, 더욱 발전적으로 교단 교육과 어린 영흔들의 구원 사업에 헌신 · 봉사하고저 다짐을 하였다. 본 연합회의 임원으로 봉사하면서 느낀 점과 경험을 살려, 조직을 확대하여 전문 위원회별로 업무를 분담하고 긴밀한 업무 체제를 갖추게 하였다. 특별한 사업의 하나로는 역대에 「즐거운 노래」 발간과 노래 테이프는 제작해 왔었 지만, 율동 비디오 테이프가 필요 하다는 것을 느끼고 제작에 들어갔다. 이 테이프 를 전국 노회 강습회시에 보급하여 교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본 연합회의 사업 이 더욱 활발하게 되어졌다. 해마다 계속 이어지는 교사 대회였지만 몇년전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제주 서광교회 에서 개최키로 결점을 하고, 준비에 임하였다. 서광 교회에서 교사 대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서광교회 당회장 강성조 목시님과 당회에 깊은 감사를 드리 고 싶다. 1,000여명의 교사들을 숙소와 식사 문제 그리고 관광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린다. 그때 따라 비가 장대같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하 심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때를 돌아보면 지금은 하나의 이야기 거리이지만, 총회가 끝나고 조직적으로 일년 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예산 약 8천여 만원을 편성하였으며 , 각종 대회 및 지노회 순회 방문 등으로 회장의 머리 속에는 주일학교 연합회 일이 잠간도 떠나 지 않고, 그리하여 자주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 어느 기관보다 주일학교 교육의 중 요성과 보람을 느끼고 한평생 교사의 직분을꼭 충성 봉사하고 싶은 직분으오 생각 되어진다. 끝으로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가 21세기를 준비하며 더욱 전진만 있기를 기원한다.
[광주에서 개최한 17회 어린이 대회] 윤 배 훈 장로 (제28대 ,서울시민교회 )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많은 발전을 해온 연합회 위에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현 회장님이하 임원 및 실 행위원들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부족한 사람이 맡았던 28회기를 되돌아보니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대과없이 지낸 것을 감사드린다. 제17회 어린이 대회를 우리 교단의 불모지인 광주 은광교회에서 개최하는 은혜가 있었다. 당회장 조재태 목사님을 비롯하여 당회원의 여전도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 조로 잘 진행 되었음을 감사드린다. 특히 작업복을 입으신 조 목시럼께서 대회 전날 각지역에서 도착하는 그 늦은 시각까지 진행에 불편한 점이 없을까 살피시며 청소하 시는 모습이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시상식 진행의 시간절약을 위한 개선책으로 시상대에 회장단 전원 등단하 져 동시시상으로 많은 시간을 줄여 진행에 원활한 개선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 제22회 전국 교사 대회를 황석산 수련원에서 개최하여 강성조 목사님(제주서광 교회 담임)을 주 강사로 모시고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다. 특별히 노고산 관광으로 심신의 피로를 푸는 기회가 되었고, 3일째 저녁에는 캠프 파이어를 통하여 우리의 헌신을 다짐하며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율동위원들의 헌 신과 수고를 깊이 감사드리며 출판 위원회의 많은 수고로 많은 발전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크신 주께 영광을 돌리며] 조 용 선 집사 (제29대. 신흥교회) 넓고 크시고 인자하신 우리 하나님의 파랑을 진심으로감사 드린다. 만삭되지 못 하여 난 자 같은 부족한 종을 택하여 어린 영흔들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신 것 얼마나 감사한지 ‥‥ 물 맑고 공기 좋은 안의 계곡 황석산 수련원에서 회장의 임무가 맡겨졌을 때의 심정 은 솔직히 두렵고 떨림뿐이었다. 이때 본인은 앞을 내다보기 전에 나의 뒤를 돌아 보았다. 오늘날 까지 그 숱한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넘어 지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고 굳 건히 지내올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며 굳게 붙잡아 주셨던 우리 주님의 손길을 느끼 게 되었다. 그 순간 회장직도 주님께 의탁하면서 여러 임 · 부원들을 세워 주시고 같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동역자들을 떠올리면서 마음 든든함을 느끼게 되었다. "더욱 의지하고 겸손하게 임하자.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대로 진행해 나가되 사람 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므로 서로 화합하면서 수행 하리라" 몇번이고 다짐을 했었 다 모든 계획에 윤활유가 되는 재정이 너무 없어서 회장단이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합 해 각자 형편대로 모은 것이 육백오십만원(650만원)을 차입해 넣었으며 , 이것은 회 기말에 가서야 정리할 수 있었다. 제18회 전국 어린이 대회를 개최함에 있어 매년마다 장소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 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도권에 생각을 많이 했으나 결국 김해 중앙교회와 활천제 일 교회에서 치루게 되었으며 특별히 새롭게 시도해 보았던 것이 개회 예배를 이분 화 했던 것진데 의외로 좋은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제23회 전국 교사 대회 또한 잊지못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장소 문제로 기도 하 던중 하나님께서 또 좋은 장소를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물 좋고 공기 좋기로 유 명한 소백산 국립공원내 단양 한알 유스호스텔이다. 강사 역시 예비해 놓으셨다. 미 국에서 유학을 마치시고 국내모 들어오시기로 되어있는 강남중 목사님이셨다. 미국으로 몇 번 연락을 드리면서 승락을 받고 많은 기도로 준비했었다. 교사 대회 기간 중 새벽과 저녁 시간에 계속 연결되는 깊은 말씀에 많은 은혜가 넘쳤으며 마지 막날 저녁 집회 후 주강사 강남중 목사님이 인도한서로의 교제 시간은 영원 잊지 못할 것이다. 남녀노소가 구분이 없었으며 통회와 자백의 눈물, 감사와 기쁨의 눈 물, 헤어지기 아쉬워 머뭇거리는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들리는 소문 인데 교사 대회 이후 모 교회는 교사들이 완전히 변화되어 주일학교가부흥에 불붙 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관광 역시 천혜의 동굴, 충주호등등 하나님의 놀라 운 솜씨에 저절로 찬양이 나왔다. 기억하고 싶지않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부회장 중 한분이 완전 사임이 아닌 활동 중단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시간 낭비가 너무나도 많았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자정이 넘도록 집 앞에서 기다렸던 이런 일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또다시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정환기 장로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숙연해진다. 그 연약한 몸을 이끄시고 출판 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 하시다가 결국 지금 현재까지도 병상에 누워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하나님과의 독대를 이루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위로 의 상급을 준비해 '놓고 계시리라 믿는다 정말 부족한 종을 도와주셨던 많은 임부원 과 실행위원들, 협동총무들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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