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는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잠언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오랜 시간 남아있는 것은 ‘참된 사랑의 힘은 태산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그 힘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황금일지라도 무너뜨리지 못한다’던 셰익스피어의 구절.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의 불멸성을 비웃고 통속성에 지쳐가면서도 막연하게 상상하던 그 사랑의 증표를 만나게 되면 어떤 사심도 없이 박수를 치게 된다. 오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났다.
줄거리를 모두 알고 가더라도 가슴 속 울림이 느껴지는 영화가 참으로 귀하다. 명작이란 언제 다시 봐도 명작인 법임에도 반전만이 전부가 되어버린, 스포일러의 공개란 죄악시되고 터부시되는 요즘 영화판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게다가 이미 스포일러가 공개된 리메이크작이라면 작품 재해석이라는 천형도 지고 가야할 짐이다. 그 중에서도 수없이 많은 리메이크작이 쏟아져 나온 킹콩, 극장 문을 들어서기 전이라면 아득하게 답이 없다. 피터 잭슨이란 걸출한 천재는 모두가 아는 그 이야기에 애정을 쏟아 사랑을 완성했다.
관점과 취향에 따라 영화의 호오(好惡)와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로 깔고, 영화 사상 가장 성공한 카피 중에 “Size does matter"(Godzilla, 1998)가 있다. 말 그대로 사이즈만 문제가 됐을 뿐 작품 자체는 워낙에 형편없어 카피도 부정적이다. 허나 이 카피를 킹콩에 대입하면 조금 다른 답이 나온다. 일단 고질라와 덩치가 비슷하고,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훌쩍 흐르는 러닝타임(186분), 서스펜스, 호러, 어드벤처, 액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영화장르는 모두 망라돼 있음에도 무엇 하나 소홀함 없어, ‘꿈과 사랑이 있는 놀이동산’에 놀러온 기분이다. 왜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포스터 속의 그의 눈빛만 봐도 이젠 가슴이 아프다. 눈물을 멈출 수 없어 지치게 만드는 2005년판 킹콩은 ‘블록버스터 멜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게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사에 지평을 새롭게 연 셈이다.
어린 시절 내 마음에 남아있던 그는 한낱 괴수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그는 처연한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눈빛의 소유자였다. 새롭게 탄생한 킹콩, 헐리웃의 황정민이다.
첫댓글 헐리웃의 황정민 !
킹콩보고싶다.킹과 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