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이판사판(理判事判)
이판승과 사판승. 공부승과 살림승. 모든 승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참선간경 등 수행하며 홍법하는 소임과, 가람과 대중을 외호 하는 소임을 크게 나눈 뜻이다. 선원수행과 대중소임을 번갈아 하며 이사(理事)에 상참(相參)하며 이사호임(理事互任)하는 것을 수행자의 본분으로 여긴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의 대처육식(帶妻肉食)하는 직업적 승려들의 영향으로 이판사판의 전통적인 이해가 왜곡되기도 하였다.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권하 「이판사판사찰내정(理判事判寺刹內情 )」에
"조선 사찰 안에는 이판과 사판승으로 구별하는 호칭이 있다.
이판(理判)이란 대개 참선, 강경, 수행, 홍법하는 스님이다<세간에서 말하는 공부승>.
사판(事判)이란 무릇 재산을 운영하고 사업을 일으키며, 절의 일을 처리하고 사무를 담당하는 스님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산림승이니, 산림이란 일체생산업과 사무를 일컫는다>.
이(理)와 사(事) 둘 중 하나라도 빠질 수 없다. 이판(理判)이 아니라면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판(事判)이 아니라면 가람을 보호하고 유지하지 못한다.
청허(淸虛) · 부휴(浮休) · 벽암(碧巖) · 백곡(白谷) 여러 대사는 모두 이판으로 사판을 겸했고...
전등(傳燈) · 용주(龍珠) 여러 절의 총섭(總攝)은 모두 사판으로 이판을 겸했다."
朝鮮寺刹之內 有理判僧 事判儈之區別名稱. 조선사찰지내 유리판승 사판승지구별명칭
理判者 謂凡參禪講經修行弘法之儈也<俗所謂工夫儈〉 이판자 위범참선강경수행홍법지승야<속소위공부승>
事判者 謂凡營產立業辦事處務之儈也<俗所謂山林儈 山林者 卽幹辦一切產業事務之謂也> 사판자 위범영산입업판사처무지승야<속소위산림승 산림자 즉간판일체산업사무지위야>
理事二者闕一不可 非理判儈 則不能以續佛慧命 非事判儈 則不能以護 持伽藍也. ····· 이사이자궐일불가 비리판승 즉불능이속불혜명 비사판승 즉불능이호 지가람야
清虛 浮休 碧巖 白谷 諸大師 皆以理判兼事判者也. ····· 청허 부휴 벽암 백곡 제대사 개이이판겸사판자야
傳燈 龍珠 諸寺摠攝 皆以事判制判者也. 전등 용주 제사총섭 개이사판제판자야
☞ 이판사판(理判事判)
理 다스릴 리. 判 판단할 판. 事 일 사. 判 판단할 판.
출처 :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
이판(理判)은 참선, 강경, 수행, 교화 등 진리를 닦고 전하는 소임을 맡은 소위 공부승을 말하고, 사판(事判)은 사찰 운영, 재정, 공양, 건축, 행정 등을 맡는 소임을 맡은 소위 산림승, 즉 살림승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수행만으로도, 행정만으로도 사찰은 유지될 수 없으므로 이(理)와 사(事)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훌륭한 선지식들은 이판과 사판을 함께 맡기도 했습니다.
이판사판이라면 이와 같이 이판승과 사판승을 가리키는 모든 승려를 가리키는데, 항간에서는 막다른 궁지 또는 끝장을 의미하고, 뾰족한 묘안이 없어 될 대로 되라는 비유로 쓰이는데 이런 의미로 쓰인 연유는 무엇 인가요?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의 대처육식(帶妻肉食)하는 직업적 승려들의 영향으로 이판사판의 전통적인 이해가 왜곡되기도 하였다.'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이판사판'은 오늘날의 뜻과 불교 본래의 뜻이 크게 달라진 대표적인 불교 용어입니다.
이판사판이란 용어가 왜 '막다른 상황'이라는 뜻이 되었을까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불교는 오랫동안 억불정책을 받아 승려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찰에서는 이판승에게도 사찰 운영을 맡기고, 사판승도 수행을 병행하는 등 역할이 뒤섞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또한 민간에서는 "이판이든 사판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생겨났고, 이것이 점차 "수단과 방 법을 가릴 수 없는 궁지" "될 대로 돼라."라는 관용어로 굳어졌습니다. 즉, 원래 불교 용어가 세속에서 비유 적으로 확대되어 오늘날의 의미가 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왜곡은 무엇인가요?
여기서 말하는 왜곡은 용어의 의미뿐 아니라 승가 제도 자체의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독신소식(獨身素食)하며 계율을 지키며 수행해 왔는데, 일제강점기에는 당시 일본식 불교 제도가 강하게 도입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승려들이 대처(帶妻. 결혼), 육식(肉食), 직업 승려화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행 중심의 이판승 전통이 약해지고, 사찰 운영과 직업성이 강조되면서 이판 · 사판의 본래 정신도 흐려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판사판이 다 ○판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민간의 자조적인 표 현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광복 이후 한국불교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불교정화운동을 전개하여 비구 중심의 전통 승가 를 다시 세우려 노력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후기 승려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는데 그런 탄압과정에서 이판사판 이 다함께 부당성에 맞서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와 다 나서 봐도 효과를 내지 못하자 "어쩔 수 없다"는 의미 가 함축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사찰의 경제 기반이 약해지고 승려 수가 줄어들면서 한 사람이 여러 소임을 맡는 일이 많아졌고, 이러한 현실이 민간 속담과 결합하여 오늘날의 "막다른 궁지"라는 뜻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이판사판에 대하여 다시 정리해 봅니다.
'이판사판'은 본래 "수행하는 승려와 사찰을 운영하는 승려, 곧 승가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었습니다. 불교 에서는 두 역할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 가는 데 꼭 필요한 소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의 어려운 현실과 민간에서의 비유적 사용을 거치며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라 는 뜻으로 변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승려 제도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이판 · 사판의 의미와 승가 운영 방식까지 일부 왜곡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이판사판"은 본래의 불교적 의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원래는 이 (理)와 사(事)가 조화를 이루어 함께 불법을 지탱한다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라고 이해하 는 것이 바르다 하겠습니다.
🌿 이판(理判)이 없으면 수행의 방향 잃고,
사판(事判)이 아니면 수행 터전 무너지니,
이사(理事)는 둘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네.
언어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의미가 변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뜻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판사판' 도 그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理)가 없으면 수행의 방향을 잃고, 사(事)가 없으면 수행의 터전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옛 선 사들은 "이와 사는 둘이 아니며(理事不二), 수행과 실천은 함께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을 읽고 마음을 닦는 것이 이판이라면, 가정과 직장, 이웃을 위해 맡은 바를 성실히 하는 것이 사판입니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수행은 생활이 되고, 생활은 수행이 됩니다.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헌법의 가치를 새겨보는 날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이판사판의 바른 의미도 생각해 보는 맑고 향기로운 하 루 보내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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