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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16-23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두 달 전 처남이 군 입대 하고 몇 칠 지나 옷과 신발이 담긴 소포를 받고 제 장모님께서 몇 날 몇 일을 눈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또 첫 편지를 받고 장인께서 집사람에게 전화로 그 내용을 읽어 주시다가 울먹이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참으로 고귀한 사랑이며 마음입니다.
부모님들은 살아온 세상을 세상을 통하여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군대를 경험해 보았기에 ,얼마나 혹독하고 외로운 곳인가를 알기에 부모님이 걱정하고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눈뜨고도 코를 베어가는 곳이 세상이고 인정 사정 봐주지 않는 곳이 세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 세상이고
조금만 허점만 있어도 금방 도태되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부모님들이 경험했기에 그 자식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부모님은 걱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 와 같은 제자파송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병고침과 귀신을 몰아내고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
심히도 걱정하시고 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까지 주셨으면서도 걱정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앞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권한이 무엇인가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아니고는 세상이 복받을 통로가 없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역사할 방법이 없는 존재로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입니다. 내가 아니고는 내 아내 , 남편 , 부모 , 자식 , 형제, 이웃, 직장 동료가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만 구원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의 존재요 권한인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라는 일로써 세상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고 복의 통로라는 존재로 또 이 권한을 나타내며 사는 존재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구체적으로 이 권한을 성도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16 절 봅시다. “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
뱀이라는 동물에 비유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갖어야 할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비둘기 같이 순결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17-23절 까지는 세상이 성도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죄인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채찍질하고 가두고 끌려가고 심지어 형제들과 부모에게까지 자식에게까지 미움을 살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기독교를 적대시합니다. 환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최고로 재수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성도도 착함과 선함으로는 세상에 대해서 얼마든지 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보다 더 좋은 일 더 착한일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은 세상도 환영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이야기 하면 세상은 안면을 싹 바꾸어 버립니다.
극렬하게 비판합니다. 양보하지 않습니다. 왜 십자가에만 구원이 있느냐 ? 왜 교회만 옳다고 하는냐 ?
이것을 공격합니다.
세상에 기독교를 편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갖는 세상에서의 대접입니다.
세상에는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착함과 선함과 예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사람들은 착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십자가가 필요 없고 예수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윤리와 도덕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지 도덕과 윤리로 살리라 말씀 하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은 인간이 법 없이 살 수 있는 능력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외에는 구원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윤리와 도덕과 전혀 다릅니다. 아니 타종교와도 전혀 다릅니다.
세상이라는 그 이면에는 어둠의 권세 사탄이 조종하고 있는 겁니다.
겉으로야 그럴싸한 표정으로 도덕과 윤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뒷면에는 사람들을 죄로 무지하게 만들고 죄에 대해서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고도의 술책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병원 전도를 하면서 한주에 300 명 정도의 환자를 만나다 보니 별의 별 환자를 다 보게 됩니다.
그런데 병의 원인이 그냥 아픈가보다 , 그냥 다쳤나 보다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제가 4 개 병원을 들어가는데요
어떤 때는 교통사고 환자만 들어옵니다. 또 어떤 때는 다리 아픈 환자 , 또 어떤 때는 치질 환자가 제일 많아요
중풍환자가 제일 많을 때도 있고요 손가락 절단환자가 많을 때도 있고요 화상 환자가 많을 때도 있는 겁니다.
사람이 다치고 아픈데에 무슨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냥 우연히가 아닙니다.
이번주에는 화상 환자가 제일 많은 겁니다.
얼굴 전체가 익어 버린 할아버지 , 화공 약품에 손을 데인 환자 등 그 중에 3살 짜리 아이가 라면 끓는 물을 뒤집어 써서 얼굴과 상반신 전체를 데인 겁니다.
얼굴 전체를 가린 거제 사이에 슬픔에 잠긴 초롱 초롱한 눈망울을 보는데 어린 자식이 있는 아버지 입장에서 가슴이 너무 아픈 겁니다. 그래서 아이를 제 품에 끓어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 눈을 감고 묵상으로 한참을 기도하는데 제 눈에 시커먼 것이 왔다 갔다하는 겁니다.
순간 귀신이 이 아이의 가정에 침투해서 아이를 불에 데이게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그 말은 못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 아이 데리고 교회 나오세요 하나님께 맡기셔야 합니다. ”
그 말에 엄마가 피식하고 웃는 겁니다.
목사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면서도 피식웃는 겁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서 비웃는 겁니다. 정상인이라면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런데 비웃는 겁니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처럼 세상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끈질기게 환영하지 않습니다. 결사적으로 반대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을 향해 예수님은 뱀의 지혜로움과 비둘기의 순결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뱀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긴 몸둥이 하나밖에 없으면서도 물속에서는 수영하고 나무도 잘 타고 소리없이 빠르게 이동하고 냄새도 없습니다. 못가는 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지혜로 웠던지 하와를 실족케 할 정도였습니다.
뱀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동물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도 위험에 처하면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전제가 있습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뱀처럼 위기에서 빠져나와야 하지만 결코 순결성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상징합니다.
비둘기는 아무것이나 안먹습니다. 저 먹는 것만 먹습니다.
죽더라도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만 먹기 때문에 죽는 동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기도로 승리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 외에는 세상의 지식 , 돈 , 권력을 의지 해서는 안됩니다. 죽어도 좋으니 세상에서 좋다는 것에 터럭 만큼도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순결하기는 비둘기처럼 하되, 지혜는 뱀 같아야 한다고 둘의 장점만 닮는 성도가 되라고 동물을 비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를 적대시하는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견주어야 할 자세가 바로 이런 지혜이며 순결입니다.
이 지혜를 가지고 적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공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도 가지게 하고 내가 서있는 자리에 그들도 들어 올 수 있게 하는 싸움에서 이기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죽이는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을 악으로 갚는 싸움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갚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 지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순결함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둘기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세상과는 썩이지 않는 겁니다.
나와 세상은 적과 적입니다. 세상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 존재 합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내가 가진 의와 거룩과 생명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고 고귀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나태내어
세상의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깨닫고 내 자리 , 진리의 자리로 오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싸움입니다.
내가 어떻게 당신과 다른가 ? 당신이 있는 자리가 얼마나 비극의 자리인가 ? 왜 당신이 나 있는 자리에 와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아니고는 절대로 우리 인간의 자리는 아무리 번지르르 하고 고급스러워도 그것은 쓰레기라는 겁니다. 이것을 증명해 내야 합니다.
사탄에게 속는 사람들을 봅시다.
세상은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자기 멋대로 , 자기 방식대로, 자기 하고 싶은데로 사는 것이라 말합니다.
좀 여유 있으면 술 먹고, 담배 피고 , 기분 나쁘면 그릇 깨고, 마누라 때리고, 돈 몇푼 주어서 이혼하고 젊은 여자 데리고 여행이나 다니고
대학생들이 집안에 돈이라도 많으면 십원 한 장 벌지 않으면서 외제차 끌고 다니며 술이나 먹고 여자 사냥이나 하러 다니고 이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인 줄 압니다.
요즘 같은 방학에는 매일 비디오나 빌려보고, 밤새도록 피씨방에서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집에서 잠이나 오후 2-3시 까지 실컷 자고
이것이 세상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결국 자신을 이리 만드는 겁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다 병걸리고 이혼하고 결국 멍청하게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다가 찜질방 보다 몇천배 뜨거운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나를 참되게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성격을 바꾸고, 내 기질을 바꾸고, 내 스타일을 바꾸고, 내 관념을 바꾸고, 내 눈을 바꾸고 이것을 계속 훈련해 가는 것이야 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굉장한 고통이 수반 됩니다. 자고 싶은데 일어나야 되고, 그릇을 깨고 싶은데 참아야 하고 놀고 싶은데 절제하고요 술담배 하면서 기분내고 싶은데 참아야 하고요
보너스 조금 탄 것 가지고 쓰나미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금도 하고요 이렇게 살아보세요
인생이 얼마나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지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 진리의 사람으로 , 거룩한 사람으로 존경 받다가 인생이 마치는 그 날에 천국가니 얼마나 좋아요
이것을 세상은 스스로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통해서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러기에 뱀같은 지혜, 비둘기 같은 순결함 가지고 끝까지 견디는 겁니다.
지혜가 없고 순결이 없으면 견딜 이유가 없는 겁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니라
우리의 지혜와 순결은 바로 우리를 적대시 하는 세상을 향해서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인간다움인가 이것을 보이기 위해 사랑으로 , 성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책 한권을 세시간만에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춘선이라는 이미 3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0 년을 맨발로 다니시면서 서울 지하철에서 전도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맨발의 전도자의 모습이 엠비씨에 “ 인간시대”라는 다큐멘타리 제작자인 김우현씨에 의해 발견되고 그의 뒤를 따라 다니며 그의 발과 사람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책으로 역은 겁니다.
처음에 김우현씨는 그냥 지하철에서 “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을 외치는 평범한 광신자로 알았답니다.
하지만 그 분의 전도 방식이 너무 특이 했답니다.
맨발로 전도하며 “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십니다. ”
역사상 큰 자비의 초대 십자가
불수록 아름다운 미스코리아 유관순 볼수록 아름다운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선생님은 그 웃는 얼굴 , 안광이 김구 주석 꼭 닮았어요 , 축하합니다.
아주머니는 그 인자한 미소와 자태 , 신사임당 꼭 닮았어요 , 축하합니다.
진짜 안중근 가짜 아니예요 , 진짜 이순신 가짜 아니예요
why two korea ( “왜 두개의 코리아” 그런 말입니다. )
맨발에 이상한 문구를 새겨 넣은 모자며 옷차림 , 성경 내용과 독립 투사들의 사상을 뒤석은 그 분의 외침은 망령된 노인내 였습니다.
인터뷰하면서 왜 신발을 신지 않느냐고 물으니 “ 통일이 되면 신을 겁니다. ”고 말하더랍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미친 사람이요 광신도라 생각하고 온갖 조롱을 보냅니다.
영하 15 도의 날씨에도 맨발로 전도 나온 할아버지를 사람들은 놀립니다. “ 열이 펄펄끓는구만 ” 발 안시렵지요 ?
젊은 사람들 재밌다는 듯 ,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봅니다.
이것이 50 이 넘어 82살 까지 전도한 할아버지의 방법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망든 노인네라고 조롱했고 지하철 관계자들에 의해 끌려 나가기도 goTtmqslke.
김우현씨도 이 사람이 걸인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알고 봤더니 한남동에 동생이 해준 아담한 단독 주택에서 번 듯이 살아가는 사람이고
자식들 5 남매가 모두 교육자였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분이 상해 임시 정부 시절 독립 운동을 하던 독립 투사였고 동양에서 명문대학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시고 5 개국어를 마음 대로 구사하는 실력을 가졌고 부모에게 물려 받은 땅이 수십 만평이나 되는 갑부였던 것입니다.
현재 김포공항에서부터 인천까지 가는 김포 매립지 일대의 땅이 모두 최춘선 할아버지의 소유 였는데 모두 가난한 사람들과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과 고아원과 학교에 그 땅을 다 기증했답니다.
그 분의 큰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었답니다.
70 년 대 초까지 집에 승용차만 5 대가 있었답니다. 이분은 원래 목사님 이셨답니다. 그러면서 학교장과 이사장 고아원장 양계장 등 많은 사업을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재산을 다 헌납하고 수백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그 고생을 시작한 겁니다.
5 남매가 아버지를 이해 하지 못했답니다. 독립 유공자이기에 국가에서 돈도 나오고 자녀들 대학까지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연금 한번 안탔답니다. 조국이 통일되지 않았는데 무슨 유공자냐는 겁니다.
지금은 이 5 남매가 모두 다 아버지를 훌륭한 아버지로 존경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김우현 피디가 그 분을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베포한 겁니다.
그랬더니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엄청난 충격과 감동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겁니다.
지하철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전도를 하며 광신자요 거지인 줄 알고 조소를 보내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지금 그 동영상을 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사람이지 알게 되는 겁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모두 가짜라는 양심의 밑바닦을 거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갈 수 있는 그 외로운 길을 주께서 홀로 가셨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그분은 가셨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30 년 간의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 할아버지를 읽으면서 저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분은 가지고 있는 부귀 영화를 버리면서 예수를 쫒았는데 저는 이 분이 버린 것을 잡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이분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철에서 전도하고 돌아가는 할아버지에게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천당, 날마다 천당
그렇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천당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천당을 살고 있는 겁니다.
돈이 많아서 천당이 아니고 예수님이 있어서 천당인 겁니다.
그 분의 집 벽에 색연필로 써 논 “ 온세상 날버려도 주예수 안버려 ” 정말 힘이 있는 문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세상에서의 출세가 아니라 오직 예수 입니다. 오직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이런 아름다운 천국의 삶을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이 세상에 십자가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부족합니까? 돈이 부족하다고요 , 아니요 우리에게는 믿음이 부족한 겁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 속물 근성이 우리의 목줄을 움켜 잡고 온갖 걱정 근심속에 우리를 한심스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공하려고 발버둥치니 걱정과 염려가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충성입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하려니 고통이 따라 오는 겁니다.
최춘선 할아버지께서 수원행 전철 속에서 전도하시다가 편안히 눈을 감으셨답니다.
그 때 전철을 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한마디가 “ 충성도 열매 중 하나입니다. ” 였답니다.
나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지혜를 갖고 순결함을 놓치지 않고 진리안에서 거룩하게 사는 방법은 성공을 쫒아 사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며 사는 겁니다.
저는 더 충성하려고 애쓰는 사람 못 봤습니다. 더 성공하려는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
삶이 옥조여 오고 돈 줄이 마를 때 더 충성하려는 사람을 저는 못 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앙은 충성하는 신앙입니다. 이것만이 지혜요 순결입니다.
충성 합시다. 진정한 부요는 성공에 가난하고 충성에 부요한 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