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학의 전개 양상과 그 의미
4․3문학의 전개 양상과 그 의미
김동윤 (Kim Dong-Yun)
김 동 윤** 제주4․3연구소 전임연구원.
1. 머리말
4․3을 예술로 형상화하고 그것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퍽 다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선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분야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문학은 다른 예술 분야는 물론이요 학문 분야나 저널리즘 차원의 접근보다도 상당히 앞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계나 언론계를 자극하여 그 논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4․3에 대한 문학적 재현의 노력이 그 동안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그것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4․3문학은 여러 변인에 의해 굴곡을 겪으며 전개된다. 4․3문학의 전개 과정에는 문학이나 문단의 내부 요인보다는 정치적․사회적 요인이 더욱 밀접하게 작용하였다. 그것은 4․3문학이 한국 현대사의 모순이 응축되어 나타난 제주4․3을 재현하는 양식이기 때문에 수반되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4․3문학은 네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 계기나 기점이 되는 것은 ‘「순이 삼촌」’과 ‘6월 항쟁’ 그리고 ‘4․3특별법’이다. 즉, 4․3이 발발한 시점에서부터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발표되기 전까지를 그 첫 번째 단계, 「순이 삼촌」이 발표된 시기부터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그 두 번째 단계, 6월항쟁 이후 4․3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를 그 세 번째 단계,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를 그 네 번째 단계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첫 번째 단계를 ‘피상적 접근 단계’, 두 번째 단계를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 세 번째 단계를 ‘본격화․다양화 단계’, 네 번째 단계를 ‘새로운 모색의 단계’로 각각 명명하였다. 필자는 「4․3소설의 전개 양상」(1998), 「4․3문학 어디까지 왔나」(2000) 등에서 4․3문학의 흐름을 ‘피상적 접근 단계’,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 ‘다양화․종합화 단계’ 등 세 단계로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셋째 단계의 경우 4․3운동의 결정적인 변화 계기가 된 4․3특별법 제정 이후의 양상이나 4․3문학의 현대적 위상에 대한 검토가 소홀하다고 판단됨에 따라 ‘본격화․다양화 단계’, ‘새로운 모색의 단계’로 나눠 보았다.
2. 4․3문학의 흐름과 그 의미
1) 피상적 접근 단계(1948~1978)
4․3의 문학화는 사태의 와중에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지인 작가들이 4․3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썼고, 제주 출신 작가들의 4․3문학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발표되었다. 아직 4․3이 금기의 영역이던 시기였으므로, 본격적 접근은 기대할 수 없었다.
(1) 외지인 작가들의 소설
허윤석의 「해녀」(1950) 이후 오영수의 「후일담」(1960), 곽학송의 「집행인」(1969), 박화성의 「휴화산」(1973)에서 4․3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황순원의 「비바리」(1956)에서도 4․3과 관련된 내용이 삽화로 끼어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소설에 나오는 4․3은 별로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대부분 역사적 인식이 결여된 피상적 취재를 근거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공히 토벌대 또는 외지인의 입장에서 4․3을 바라보고 있으며, 4․3의 본질을 바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허윤석의 「해녀」는 4․3 당시 토벌군으로 제주도에 상륙한 부대가 작전수행 중 겪는 일련의 사건이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 4․3의 지도부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있는데, 1948년 10월말 봉기 지도부 일원들이 제사지내는 장면에서 그것이 확인된다. 무장대들이 남로당 지령에 따라 행동하고 있으며, 인민군이 서울을 거쳐 여수까지 점령함은 물론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으로 도망갔다는 지령서 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오영수의 「후일담」에서도 토벌대였던 인물이 한 여인의 희생과 관련된 체험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4․3이 문학화된다. 이 작품에서도 ‘여수․순천 사건에 뒤이어 제주도 반란이 일어났다’는 등 4․3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이 드러난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때는 4․3 발발 6개월 후인 1948년 10월이니, 작가가 그 발발 시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곽학송은 4․3 토벌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 사실은 「집행인」이 도민들의 입장보다는 토벌대의 고충이나 번민, 고뇌 등에 더 무게가 실린 작품이 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토벌대의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일부 엿보이기도 하는데, 무장대와 내통한 자를 아무런 절차 없이 죽이는 행위라든가, 소개작전에 응하지 않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의 시각은 기존의 관변측 논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박화성의 「휴화산」은 4․3의 후일담으로, 사태의 전말 등이 직접 그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4․3과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그 사태에 휘말린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과 시련을 그렸다는 데 있다. 두 남녀의 사랑에 얽혀진 4․3, 그로 인한 여인의 수난, 그리고 그 이세의 정신적 고통 등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4․3에 대한 접근은 피상적이다. 작가는 나름대로 4․3의 역사적 맥락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작품 속에서 구체화시키지 못한다.
(2) 제주출신 작가들의 작품
1970년대 들어 오성찬의 「하얀 달빛」(1971)․「잃어버린 고향」(1976)과 현기영의 「아버지」(1975) 등 제주도출신 작가들에 의해서 4․3을 소설화한 작품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삽화나 배경적 요소로 4․3을 다루는 차원의 작품들이었다. 오성찬과 현기영은 모두 소년기에 4․3을 체험했는데, 「하얀 달빛」과 「아버지」에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소년의 입장에서 보는 4․3의 공포적 상황이 그려져 있다. 「하얀 달빛」은 무장대에 협조 도장 찍은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처형당하는 사건이 형상화된다. 4․3 때 일본으로 밀항한 인물이 26년 만에 귀향하여 야박한 고향의 인심을 느낀다는 「잃어버린 고향」에서는 ‘4․3사건’이란 표현이 한 번 나오기는 하나 ‘좌익게릴라들이 일으킨 공포의 사건’ 정도로 묘사했고, 그나마 작품의 주된 소재로 다뤄진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폭도’로 입산한 아버지를 둔 소년의 의식세계를 심미적으로 그린 작품인데, 「하얀 달빛」과 마찬가지로 ‘4․3’이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아직은 4․3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단계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 시기의 시로는 김종원의 「봉개동」(시집 ꡔ강냉이 사설ꡕ(1970)에 수록)이 눈에 띈다. 이 작품에서는 “타 버려싱게/ 아홉 살 적 풋대추 찾아 기어오르던/ 안마당의 대추나무도/ 타 버려싱게/ 날만 새면/ 걸르지 않던 동네 식게/ 영장집 가마솥/ 인젠 찾아볼 수 어싱게”라며 오랜만에 고향을 다시 찾아 본 화자가 4․3의 비극을 담담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4․3 자체에 대한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3) ‘피상적 접근 단계’의 의미
이 단계는 4․3문학이 본격적인 궤도로 진입하기 전 단계로 규정할 수 있다. 4․3의 재현에 대한 제주 출신 작가와 외지인 작가들의 입장은 다소 다른 것으로 분석된다.
허윤석․오영수․곽학송․박화성 등 외지인 작가들의 작품이 4․3의 본질적인 면을 드러내지 못하고 피상적 접근에 그친 이유는, 정치적으로 경직된 당시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가들이 피해당사자인 제주인의 입장에 서지 못했던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대부분 외지에서 온 토벌대의 일원이라는 것이 말해주듯, 그 작품들의 관심은 4․3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지도 않았다. 단지 전해들었거나 체험한 적이 있는 특이한 사건을 소설화하는 데에 의미를 가졌던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제주출신 문인들이 1970년대 중반까지의 몇 작품에서 4․3을 피상적으로 접근한 것은 외지인 작가들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4․3에 대한 인식의 결여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로서는 4․3이 섣불리 다룰 수 없는 소재였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분석된다는 것이다. 경직된 정치적 상황 때문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1970년대 중반까지 4․3은 문학 속에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나마 4․3을 언급한 작품들마저도 작가의 입장이나 사회상황의 문제 등 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상당한 한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1978~1987)
정치권력에 의해 조장된 4․3에 대한 금기의 벽은 유신 말기인 1978년에 발표된 「순이 삼촌」을 계기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정치권력은 작가에게 폭력을 가하고 ꡔ순이 삼촌ꡕ을 금서로 묶어놓았지만, 일단 금이 가기 시작한 벽은 무너져갈 수밖에 없었다.
(1) 소년기 체험 작가들의 증언소설
이 시기의 4․3소설을 이끌어간 작가는 제주도 출신으로 소년기에 4․3을 체험한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3인이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은 억울한 양민 학살을 문제삼음으로써 잊혀지기를 강요당해왔던 4․3의 비극적 역사를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이다. 전국의 많은 독자들이 제주에 그런 불행한 역사가 있었음을 「순이 삼촌」을 통해 충격적으로 알게 되었다. ‘북촌리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4․3을 소설화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제주도 민중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제 당당히 증언해야 할 때임을 역설하고 있다. 「해룡 이야기」(1979),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길」(1981), 「잃어버린 시절」(1983), 「아스팔트」(1984) 등은 선량한 사람들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고발과 증언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하는 현기영의 작품들이다.
1980년대 들어 현길언이 「귀향」(1982), 「우리들의 조부님」(1982), 「지나가는 바람에」(1984), 「먼 훗날」(1984), 「신열」(1984), 「우리들의 어머님」(1985), 「꿩 울음 소리」(1985), 「불과 재」(1985), 「껍질과 속살」(1986), 「미명」(1987) 등에서 4․3을 소설로 형상화한다. 현길언의 작품들은 4․3의 비극적 상황을 드러내면서도 작품의 주조는 역사와 이념에 희생된 개인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된다. 「우리들의 조부님」은 한 노인을 중심으로 그 가족과 이웃들의 삶을 통하여 제주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한다. 특히 4․3으로 인한 제주사람들의 한이 얼마나 골수에 사무쳐 있으며, 해한(解恨)이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지를 적시하는 작품이다.
오성찬의 「사포에서」(1982), 「풀무에 관한 보고」(1984), 「공동묘지에서」(1984), 「크는 산」(1984), 「단추와 허리띠」(1986), 「표해」(1986), 「덫에 치인 세월」(1986) 등에서는 대체로 작품의 한 부분으로 4․3이 다뤄졌다. 「단추와 허리띠」는 ‘공비’가 토벌대원을 굴에 떨어뜨려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37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을을 취재하던 이들에 의해 그 유골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4․3으로 인한 갖가지 사연이 제주 땅 곳곳에 묻혀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고시홍의 「도마칼」(1985)과 한림화의 「불턱」(1987)도 4․3소설이다. 「도마칼」에서는 4․3의 충격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켜 도마칼을 들고 헤매는 현실이 그려져 있다. 「불턱」은 제주도의 고통스런 역사 속에서 살아온 제주여인들의 억척스런 삶을 서술한 소설로서, 그 한 부분에 4․3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고시홍과 한림화의 경우 4․3을 본격적으로 작품화한 것은 6월항쟁 이후에 이르러서다.
(2) 수면 위로 떠오른 4․3시
이 시기의 시에서는 김수열과 이산하 그리고 문충성의 작품을 거론할 수 있다. 시에서의 4․3 형상화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김수열의 경우 시인으로서는 선구적으로 진상규명을 향한 뚜렷한 인식을 토대로 4․3을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장」(1983)․「아버지의 그림」(1984)․「낙선동」(1984)․「들국화」(1985)․「조천 할망」(1985)․「국밥 할머니」(1986)․「사월의 바람은」(1986) 이 시들은 ꡔ어디에 선들 어떠랴ꡕ(파피루스, 1997)에 수록돼 있는데, 작품마다 발표 시기가 명시됐다.
등을 통해 민중수난상을 형상화하는 가운데 진상규명의 목소리를 가다듬어 나간다.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간 남편은/ 해방되던 해/ 사망통지서가 되어 돌아오고/ 하나뿐인 시동생은 무자년 음력 시월/ 웃드르 새각시 데려다/ 간촐하게 혼례식 올린 지 보름 만에/ 오발한 총에 맞아 죽”(「조천 할망」)은 무고한 죽음을 안타까워하는가 하면,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마을 건너 동백동산에서/ 산에서 들에서 길에서/ 외마디 소리 비명 소리/ 흐느끼는 소리 자지러지는 소리/ 아이 우는 소리 초가 타는 소리/ 하늘 무너지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인다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낙선동」)고 고발의 목소리를 높인다. 김수열 시의 4․3 인식은 현기영 소설의 그것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1986)은, 이 작품으로 인해 시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필화사건을 낳은 점이 말하듯이, 4․3문학의 흐름상으로 볼 때 다소 돌출적인 면이 있다.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洲)/ 그들의 병영에서 짐승처럼 사육되어 왔던 수많은 날들/ 그 수많은 신음의 밤들을/ 누가 잊을 것인가/ 누가 잊으라고 하는가/ 1948년 4월 3일/ ‘제2의 모스크바’/ 밤마다 먼저 간 동지들의 피를 묻고 살을 묻고 뼈를 묻는 혹한의 한라산”과 같은 서술에서 보는 것처럼 반미 의식이 뚜렷한 작품이다. 민중들이 수난상보다는 단선반대와 반제통일투쟁에 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60년 경북 영일 출신인 이산하는 4․3의 진실 규명 문제를 당시에 진보 세력에 의해 뜨겁게 분출되던 반미투쟁의 차원과 의식적으로 연계하면서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인다.
문충성의 시에서도 4․3이 형상화된다. ꡔ수평선을 바라보며ꡕ(1979)에 게재된 「연가․8―어린 날의 동구를 찾아」에서는 “春窮으로 뚫렸던 황토길도 가물가물/ 보인다 4․3事件 때나 6․25 때 죽은 몇몇 이웃들과/ 엄마 아빠가 된 동네아이들 각기 동산 꼭꼭 숨어 버리고”라며 어린 날의 기억 속에 있는 4․3의 편린을 더듬는다. 전 단계에서 나온 김종원의 시와 비슷한 경향의 작품인 셈이다.
(3)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의 의미
이렇듯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에서도 소설이 4․3문학의 중심에 있었다. 「순이 삼촌」을 기점으로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세 작가가 중심이 되어 그 동안 금기시되었던 4․3에 대해, 특히 4․3으로 인해 제주도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 상흔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심스럽게나마 사회적으로 인식시킨 시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조심스러웠음은 경직된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따른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4․3의 진상을 정면에서 다루지는 못하였다. 특히 가장 민감한 좌우 이데올로기 문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보다는 제주민중의 피해 양상에 그 초점이 맞춰졌다. 즉, 이 시기의 4․3문학은 고발문학․증언문학의 성격이 매우 강했던 것이다.
시 분야의 경우 이 시기에 접어들어 비로소 4․3을 의미있게 포착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산하의 서사시는 다소 돌출적 성향의 작품이었으며, 김수열의 작품은 현기영의 소설과 비슷한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다. 4․3시의 움직임이 소설에 비해 미약하게 나타났던 것은, 묻혀져 가는 진실을 복원하고 증언하는 방식에서 볼 때, 그 장르의 성격상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희곡 분야의 경우 이 시기까지 4․3을 형상화하지 못하였다. 이는 제주 출신 극작가의 부재라는 데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고, 희곡이 공연을 전제로 한 문학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공연물로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3) 본격화․다양화 단계(1987~1999)
4․3문학은 1980년대 후반에 비교적 ‘여러 겹’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1987년의 6월항쟁을 그 계기로 볼 수 있다. 이는 6월항쟁 이후 4․3에 관련된 연구소, 논문, 증언집, 자료집, 신문연재물 등이 속출한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1) 소설의 다양화와 장편화
6월항쟁 이후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 더불어 4․3문학에서도 많은 변모가 있었다. 재일작가 김석범의 소설 ꡔ화산도ꡕ․「간수 박서방」․「까마귀의 죽음」․「관덕정」이 1988년 번역 소개되었고, 북한작가 김일우의 ꡔ섬사람들ꡕ도 같은 해에 남한에서 출판되었다. 김석범의 소설은 4․3을 체험하고 건너간 지도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삼은 점과 유격대 봉기문 같은 역사적 자료 소개가 많은 점 등에서 주목되었다. ꡔ섬사람들ꡕ도 북한에서의 4․3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각과 논의의 다양화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반미․반제적 시각을 견지했던 것이다.
6월항쟁 이후 새로이 4․3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김석희․오경훈․김관후․이석범․정순희․김창집․함승보 등이다.
김석희의 「땅울림」(1988)에서는 4․3 때 입산했다가 사태가 끝났음을 모른 채 보복과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36년간 숨어살던 사람이 나오는데, 그의 무리들은 4․3 당시에 ‘탐라공화국’을 꿈꾸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고여있는 불」(1989)은 20년 만에 열리는 마을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4․3으로 인한 비극의 응어리를 재인식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오경훈은 「당신의 작은 촛불」(1988), 「세월은 가고」(1989) 「호랑가시나무 추억」(1992) 등에서 민중수난과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차분히 4․3을 다룬다. 「당신의 작은 촛불」은 4․3 당시 서북청년단이었던 아버지와 제주여인 사이에 태어나 버려지다시피 자라난 인물 등을 통해 4․3 문제에 접근하고 있고, 「세월은 가고」는 여인의 수난사 한 부분에 4․3이 자리잡고 있으며, 「호랑가시나무의 추억」은 4․3과 관련해 경찰가족의 불행이 형상화된다.
김관후는 「저 섬에 불던 바람」(1995)을 통해 4․3과 관련된 미국의 횡포를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반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당신에게」(1998)는 4․3 때 총살 현장과 형무소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인물이 임종을 앞두고 50년 만에 제주의 본처에게 소식을 전하며 편지형식으로 과거를 술회하는 작품이다. ꡔ어허렁 달구ꡕ(1999)에 수록된 「두 노인」, 「그 사나이」, 「어허렁 달구」, 「흔들리는 섬」, 「하얀 운동화」 등도 4․3을 형상화한 소설들이다.
이석범의 「어둠의 입술」(1988)은 4․3 때 악연을 맺은 남녀의 자녀들이 세월이 흘러 현실의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데서 오는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고, 정순희의 「비올롱의 눈물」(1992)은 아버지가 입산했다가 피살된 이후 폐결핵 환자라는 이유로 마을 외곽으로 쫓겨나 살다 죽은 인물의 삶을 그렸다. 김창집의 연작소설 「섬에서 태어난 죄 ①~⑥」(1995~2000)는 철저한 현장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제주민중의 삶에 깊이 배어 있는 4․3의 다양한 상흔들을 추적하고 있고, 함승보의 「적을 찾아서」(1992)는 사태 때 부모를 잃고서 우익의 입장에서만 4․3을 인식하던 인물의 의식 변모를 추적한 작품이다.
각각 「도마칼」과 「불턱」을 통해 이미 4․3을 작품화한 바 있는 고시홍과 한림화도 6월항쟁 이후 본격적으로 그 작업을 전개해나간다.
고시홍은 제주사람들의 상흔을 형상화하는 데에 많은 비중을 둔다. 「계명의 도시」(1989)는 4․3 취재를 하려다가 좌절하는 언론인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 진상규명 작업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얼굴 없는 사람들」(1992)은 토벌대의 길 안내를 맡았던 인물이 겪은 4․3이 주로 서술되어 있고, 「작은 모스크바」(1994)는 4․3으로 폐촌된 마을 출신의 노인이 4․3 당시의 일을 수기형식으로 회고하고 있는 작품이다. 「해야 솟아라」(1987), 「저승문」(1989), 「유령들의 친목회」(1989), 「자서전 고쳐 쓰기」(1991) 등에서도 제주민중의 수난사적 입장에서 4․3이 그려지고 있다. 한림화의 「매고일지」(1987)는 전설과 4․3을 연결시켜 일지 형식으로 서술한 작품이고 「여정들」(1993)은 제주여성의 수난사의 한 부분에서 4․3이 그려진다.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세 작가의 4․3형상화 작업도 지속적으로 전개된다.
현길언의 「깊은 적막의 끝」(1989)에는 이덕구와 ‘인민유격대원’들이 등장한다. 유격대남동부지대가 학교에 주둔한 토벌군을 습격하자, 유격대 습격을 물리친 토벌군은 공비와 내통했다고 하여 마을양민들을 총살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무혼굿」(1987), 「관광요정 백록원 문영옥 마담 소전」(1988), 「집 없는 혼」(1988), 「미로여행」(1988), 「어떤 비밀」(1990) 등에서 4․3의 작품화를 계속하던 현길언은 장편 ꡔ한라산ꡕ을 통해 그 총체적 형상화를 시도한다.
오성찬의 경우 1980년대 후반 들어서 작품 전반을 통해 4․3을 다루려는 경향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4․3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토산댁」(1987), 「이만행 소전」(1988), 「나비로의 환생」(1988), 「한라구절초」(1988), 「바람의 늪」(1989), 「보춘화 한 뿌리」(1989), 「표류하는 세월」(1991)과 ꡔ푸른 보리밭ꡕ(1998)에 실린 「유년의 부활」, 「기억의 다리」, ꡔ진혼 아리랑ꡕ(1999)에 실린 「바람 불어, 인연」 등의 작품들이 6월항쟁 이후에 4․3을 다룬 오성찬의 소설들이다.
현기영의 경우 한동안 4․3소설을 발표하지 않다가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면모로 그 작업을 재개하여 주목받는다. 「거룩한 생애」(1991), 「목마른 신들」(1992), 「쇠와 살」(1992), 「마지막 테우리」(1994) 등은 그 새로운 모색의 산물이다. 이 소설들은 한동안 동어 반복이 아니냐고 지적받던 4․3소설의 양상을 깨트렸다는 데서부터 그 의미가 크다. 특히 「마지막 테우리」는 역사적 상상력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와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생태학적 상상력과 만나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이다.
1990년대 들어서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4․3소설의 장편화 경향은 이 시기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그것은 4․3을 종합화하고 총체적으로 접근해 보려는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4․3을 장편화한 작품은 한림화의 ꡔ한라산의 노을ꡕ(1991)이다. 이 소설은 1947년 ‘3․1사건’에서부터 1949년 6월초 봉기 지도자인 이덕구가 죽는 시점까지를 일지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해주대회 참석차 섬을 빠져나간 김달삼에 비해 제주도에 남아 끝까지 싸우다 최후를 맞은 이덕구를 영웅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현길언의 ꡔ한라산ꡕ(1995)은 해방 직전 상황부터 1947년의 3․1사건까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미국의 움직임 등 4․3전사(前史)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지식인 사회주의자들, 일반 서민들, 학생들, 민족주의 지식인들, 시골 유지와 농민들 등 여러 부류의 제주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어떻게 상황에 대처해 왔는가를 보이고 있다.
오경훈의 ꡔ침묵의 세월ꡕ(1997)은 1948년 6월부터 계엄군의 토벌작전이 절정에 이른 12월까지 한 젊은이가 무장대로 활동하면서 겪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봉기 지도자인 김달삼과 이덕구의 첨예한 갈등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점이 흥미를 끌며, 이덕구에 관한 평가에서 영웅적 이미지를 추구하지 않고 김달삼과의 거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점은 독특한 관점이다.
(2) 다양한 경향의 시
이 시기에는 시에서도 여러 부류의 시인들에 의해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된다.
김명식의 시에서는 일관되게 투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ꡔ유채꽃 한 아름 안아들고―처형도ꡕ(1989)․ꡔ한락산―이 한 목숨 이슬같이ꡕ(1992) 등 서사시와 ꡔ제국의 굴레ꡕ(1989)․ꡔ낫과 호미ꡕ(1989)․ꡔ한락산에 피는 꽃들ꡕ(1994) 등의 시집을 통해 그는 반미․민족해방투쟁으로서의 4․3의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김관후는 시집 ꡔ섬곶 떠난 내 아비ꡕ(1996)에서 같은 맥락의 입장을 표명한다. 김명식의 작품보다 서정성이 강하지만, 반미․반제 이데올로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은 비슷하다.
4․3체험 세대인 시인들의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김용해와 문충성을 들 수 있다.
4․3만을 다룬 시집인 김용해의 ꡔ민중일기ꡕ(1989)와 ꡔ아버지의 유언ꡕ(1998)에서는 수난사적인 입장이 강하다. ꡔ민중일기ꡕ에는 4․3논의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ꡔ아버지의 유언ꡕ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4․3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아십니까?/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수만 명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 그토록 처절한 비극의 역사가 50년 동안 봉쇄당해 말을 못한 까닭을 아십니까”(「국민들에게 보내는 진정서」)라거나 “4․3으로 원진 가슴 풀어 줍서/ 4․3으로 맺힌 상처 낫게 합서”(「소망」)라는 시로 요약될 정도로 평이하고 동어반복적인 것이 많다.
문충성은 ꡔ방아깨비의 꿈ꡕ(1990)․ꡔ설문대할망ꡕ(1993)․ꡔ바닷가에서 보낸 한철ꡕ(1997) 등 여러 시집에서 4․3을 작품화한다. “암호 받아 외고 동네/ 연자방앗간 앞에서/ 죽창들고 보초도 섰네/ “누구냐! 정지! 암호는?”/ 입안에서 뱅뱅 도는/ 무서움에 오줌을 쌌네”(「4월제․2」) 등에서 보듯이, 소년기의 체험이 기조가 되어 서정성과 조화를 꾀하는 가운데 이전 시기 작품보다 4․3이 구체화되고 있다.
4․3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경향의 시로는 강덕환의 ꡔ생말타기ꡕ(1992), 김경훈의 ꡔ운동 부족ꡕ(1993), 김수열의 ꡔ어디에 선들 어떠랴ꡕ(1997), 문무병의 ꡔ엉겅퀴꽃ꡕ(1999) 등에 실린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운동의 차원과 연결하면서 작품을 썼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특히 문무병의 작품들은 굿의 형식을 빌려 4․3의 원혼들을 위무하고 그 참다운 역사적 자리매김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고정국의 ꡔ진눈깨비ꡕ(1990)․ꡔ겨울 반딧불ꡕ(1995), 김광렬의 ꡔ가을의 시ꡕ(1991)․ꡔ희미한 등불만 있으면 좋으리ꡕ(1999), 김석교의 ꡔ넋 달래려다 그대는 넋 놓고ꡕ(1999), 김순남의 ꡔ돌아오지 않는 외출ꡕ(1997)․ꡔ남몰래 피는 꽃ꡕ(1999), 나기철의 ꡔ남양여인숙ꡕ(1999), 양영길의 ꡔ바람의 땅에 서서ꡕ(1999), 홍성운의 ꡔ숨은 꽃을 찾아서ꡕ(1998) 등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4․3을 성찰하는 작품이 많다.
김경홍의 시집 ꡔ인동꽃반지ꡕ(1999)는 주목할 만한 4․3문학이다. “1948년 한라산에 입산한 아버지와 1950년 학살당한 조부모, 1950년 토벌군인과 개가해 의붓형을 낳은 어머니, 1956년 자수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결합, 이후 의붓형을 둘러싼 두 분의 갈등, 재산을 뺏긴 채 거리로 나앉은 가족사를 시대순으로 써내려간 연작시”라는 시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4․3의 한복판을 꿰뚫는 파란만장한 질곡의 가족사를 통해 4․3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때론 아버지가, 때론 어머니가, 때론 시인 자신이 화자로 등장하여 그 절절한 사연들을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토로한다.
③ 4․3희곡의 등장
이 시기에는 4․3을 형상화한 희곡들이 발표된다. 장일홍과 김경훈의 작품들이 특히 주목된다.
장일홍의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1988)에서는 4․3 때 서청단원이었던 인물이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아내로 맞기 위해 약혼남과 그녀 아버지를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그녀를 강제로 취한 일로 인해 견디기 힘든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한 가족의 비극을 형상화했다. 또한 「강신무」(1990)에서는 4․3의 와중에서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무녀의 기구한 운명이 그려지며, 「붉은 섬」(1991)은 3․1사건에서부터 1949년 6월까지 한 마을에서 진행되는 4․3의 전개 양상을 재현한 장막극이다.
김경훈의 희곡들은 모두 마당극대본들인데, 4․3의 실체에 접근함과 아울러 4․3진상규명운동의 대중화에 힘쓰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헛묘」(1991)는 4․3과 마을공동체 문제를 형상화하고 있고, 「꽃놀림」(1992)은 북촌리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며, 「살짜기 옵서예」(1993)는 제주도내 유명 관광지들이 4․3 때의 집단학살터였음을 환기시킨다. 「마지막 빨치산」(1998)에서는 최후까지 투쟁한 4명의 무장대들의 활동을 극화했고, 「격랑의 자서전」(1999)은 일제시대 이후 4․3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관되게 혁명을 추구했던 인물의 생애를 다루었다.
강용준의 「폭풍의 바다」(1993), 하상길의 「느영 나영 풀멍 살게」(1995), 장윤식의 「목마른 신들」(1995), 문무병의 「동이풀이」(1997) 등도 4․3을 형상화한 희곡들이다. 이 작품들은 장일홍의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붉은 섬」, 김경훈의 「살짜기 옵서예」․「마지막 빨치산」과 함께 4․3희곡선집으로 간행된 ꡔ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ꡕ(각, 2002)에 실려 있다.
(4) 운동으로서의 4․3문학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4․3문학의 형상화 작업이 전개되었다. 대학문학동아리 ‘신세대’와 문학동인 ‘풀잎소리’ 등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제주청년문학회와 제주문화운동협의회가 결성되면서 사회인 중심의 문학․문화단체가 결성되었고, 이러한 단체를 중심으로 4․3의 문학적 형상화 작업이 구체화된다. 제주청년문학회의 경우에는 기관지 ꡔ청년문학ꡕ(1990~1993)을 통해 그 성과물들을 내었다. 1994년 결성된 제주민예총 문학위원회에서도 ꡔ섬의 문학ꡕ(1995~1997)을 통해 4․3의 문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을 벌였고, 4․3문학제를 해마다 개최하였다. 제주민예총 문학위원회가 확대개편되면서 1998년 결성된 제주작가회의에서도 4․3문학제를 통해 4․3문학의 밤, 문학심포지엄 등을 가졌으며 반년간 문예지 ꡔ제주작가ꡕ(1998~ )를 통해 그 결과물들을 발표했다. 제주작가회의에서는 4․3 발발 50주년을 기념하여 ꡔ바람처럼 까마귀처럼ꡕ(1998)을 내었는데, “예술로서의 문학이 갖는 역사적 책임감과 작가적 양심으로 4․3당시 자행된 양민학살의 참혹성을 고발함과 동시에, 그 역사적 후유증이 제주도민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제주작가회의, 「제주4․3 50주년 기념 시선집을 내면서」, ꡔ바람처럼 까마귀처럼ꡕ(실천문학사, 1998), 6~7쪽.
를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집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5) ‘본격화․다양화 단계’의 의미
이 시기는 6월항쟁을 기점으로 민주화의 열기 속에 4․3논의가 분출하면서 4․3문학이 본격화된 단계다. 4․3문학이 외연을 확장하고 다양화한 시기인 것이다.
재일 작가 김석범과 북한 작가 김일우의 반미․반제 시각의 4․3소설들이 국내에서 출판되면서 4․3문학은 새로운 양상을 띤다.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3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4․3의 소설화에 고시홍과 한림화가 본격적으로 나서고, 뒤이어 김석희․오경훈․김관후 등도 가세하면서 다양한 경향을 보인다. 특히 1990년대 들어 4․3을 형상화한 장편소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4․3을 종합적인 면에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시 분야에서도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발표된다. 반미․반제 성격의 김명식․김관후의 작품, 소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충성․김용해의 작품, 진상규명운동의 차원과 연결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문무병․김수열․강덕환․김경훈 등의 작품,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4․3을 성찰하는 고정국․김광렬․김석교․김순남․나기철․양영길․홍성운 등의 작품 등이 그것이다.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연작시로 엮은 김경홍의 작업도 주목된다.
이 시기에는 희곡에서도 4․3 작품이 나온다. 장일홍은 무대극의 형식으로, 김경훈은 마당극의 형식으로 희곡을 쓰는 대표적인 작가다. 강용준․하상길․장윤식․문무병 등도 4․3을 희곡화한다.
운동으로서의 4․3문학이 본격화된 단계이기도 하다. 제주청년문학회․제주문화운동협의회․제주민예총문학위원회․제주작가회의 등의 단체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렇듯 6월항쟁 이후 4․3논의가 봇물처럼 터지면서 4․3문학도 모든 장르에서 본격화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전단계의 문학에 비해서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역사기록물 등이 그동안 4․3문학이 맡고 있던 역할을 상당부분 대신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변화된 국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4) 새로운 모색의 단계(2000~ ): 과제와 전망을 겸하여
1999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0년 1월부터 시행되기에 이르면서 4․3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소설에서는 2편의 장편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오성찬의 ꡔ죽은 장군의 증언ꡕ(2000)은 4․3 당시 국방경비대 연대장이었던 김익렬의 유고를 소설화한 작품이고, 노순자의 ꡔ백록담 연가ꡕ(2000)는 4․3 관련 연재를 부탁받은 화자가 제주도를 취재하면서 사태의 비극에 접근하는 장편이다. 이 두 작품은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장편들이지만 기존 작품의 성과를 넘어서는 인식이나 전망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아직 소설에서 이뤄내야 할 4․3의 영역은 많이 남아 있는데도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거의 이어지지 않는 점이 문제다.
시에서는 김경훈의 작업이 단연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동시에 펴낸 ꡔ한라산의 겨울ꡕ(2003)과 ꡔ고운 아이 다 죽고ꡕ(2003)를 통해 현장에서 얻어진 참혹하고 기막힌 상황들을 날것으로 내보이고 있다. 4․3만을 다룬 시집이 여러 권 출간됐지만 이 시집들처럼 적나라하게 사태의 면면을 드러낸 경우는 없었기에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4․3 시 전반에서 볼 때 이런 충격요법의 시도 필요하지만 서정과 성찰을 바탕으로 역사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4․3은 현실의 격정으로서만이 아니라 오래오래 사람들의 가슴속의 정서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희곡에서도 김경훈의 작업은 돋보인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2000)는 4․3 이후 드러난 레드콤플렉스에 대한 집단 광기를 실험적인 기법으로 포착한 작품이며, 「소옥의 노래」(2001)는 역사와 공간을 넘나드는 큰 스케일 속에서 4․3의 민족사적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다.
제주작가회의에서는 4․3시선집에 이어, 4․3소설선집 ꡔ깊은 적막의 끝ꡕ(2001), 4․3희곡선집 ꡔ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ꡕ(2002) 등을 펴내고 있다. 4․3문학심포지엄이나 4․3문학기행을 통해 4․3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4․3문학의 대중화에 좀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4․3사건 진상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도 머지않아 표명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성과 대중성을 함께 만족시키는 과감한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창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3. 맺음말
이 글은 4․3문학의 사적 전개 양상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씌어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4․3문학을 ‘피상적 접근 단계’(1948~1978),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1978~1987), ‘본격화․다양화 단계’(1987~1999), ‘새로운 모색의 단계’(2000~ ) 등 네 시기로 구분한 후, 시기에 따라 어떤 특징을 보이며, 그것이 각기 4․3문학의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검토해 보았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피상적 접근 단계’에서는 4․3이 문학 속에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허윤석․오영수․곽학송․박화성 등 외지 출신 작가들의 경우에는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 서지 못한 점 때문에, 제주 출신인 오성찬․현기영․김종원의 초기 몇 작품은 경직된 정치 상황 때문에 피상적으로 4․3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둘째, 「순이 삼촌」을 계기로 시작된 ‘사태 비극성 드러내기 단계’에서는 증언문학․고발문학의 양상을 보였다. 소설에서는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세 작가가 중심이 되어 4․3의 와중에서 제주도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 상흔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4․3의 비극성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킨 시기다. 시 분야의 경우도 이 시기에 접어들어 비로소 4․3을 의미있게 포착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산하의 서사시는 다소 돌출적 성향의 작품이었으며, 김수열의 작품은 현기영 소설과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셋째, 6월항쟁 이후 전개된 ‘본격화․다양화 단계’의 경우, 소설에서는 현기영․현길언․오성찬 중심의 작업에 고시홍․한림화가 본격적으로 나서고 김석희․오경훈․김관후 등도 가세하면서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장편소설을 통한 4․3 형상화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시에서도 반미․반제 성격의 작품, 소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 진상규명운동 차원과 연결하면서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작품, 가족사를 연작시로 엮은 작품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발표됐다. 희곡에서는 장일홍․김경훈 등의 작품이 나왔고, 운동으로서의 4․3문학이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4․3 관련 역사기록물이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멀어져간 독자의 관심을 붙들만한 4․3문학이 전개되지는 못했다.
넷째, 4․3특별법 제정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모색의 단계’는 4․3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4․3문학도 다시금 도약과 전환을 모색하는 시기다. 소설의 경우 최근의 장편들을 보면 기존 작품을 넘어서는 인식이나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절실해지고 있다. 시와 희곡에서는 김경훈의 진지하고 격정적인 작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제 4․3문학은 역사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작품의 창작을 통해 재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 ABSTRACTS <
Unfolding Aspects of 4․3 Literature and Its Mea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