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황새바위 순교 성지: 박해시대 한국교회의 심장. 흙 한 줌, 돌 하나에도 믿음이 배어 있는 땅.
순교자들의 피는 숭고한 꽃이 되고
살점은 부활의 희망이 되다.
■한국천주교회의 심장 황새바위 순교 성지 [대전교구]
우.32541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1-41 (공산성 서문 건너편 낮은 언덕에 위치)
☎ (041)854.6321~2 (식사 예약은 최소 인원 30명부터 예약 가능)
▶연혁: 2008.12.27. '황새바위 순교 성지' 충청남도 기념물 178호 지정
2011.09.24. 황새바위 순교자 337위 명부 봉헌식
2016.11.01. 부활 경당 완공 미사
2017.09.14. 순교 기념관 개관
▶미사 시간: 매일 오전 11:00 (월요일 09:30)
▶홈페이지: http://www.hwangsae.or.kr/
- 황새바위: 황새가 많이 서식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죄인들에게 씌우던 형구인 항쇄(목에 씌우는 칼)를 쓴 죄수들이 이곳에서 많이 처형되 었다 하여 항쇄바위라고도 불리었음.
- 역사적으로 기록된 순교자들 중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기록되어 있는 곳.
(1,500여 명의 순교자들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337위인 국내 최대 순교 성지)
-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은총이 되어 흐르는 곳.
▶성지 소개
https://www.youtube.com/watch?v=JHDpKq6CtMQ&t=7s (13‘00“)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노베르트 베버‘(독일 베네딕도 수도원 아빠스) -1911년 4월 최초의 외국인 순례자 신부로서 황새바위를 직접 찾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직접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글로 남기고, 순교자들의 신앙을 담아가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문화 정보: 충청남도 기념물 제178호(2008.12.22. 등록)
○공주지역 천주교 전래
한국 초기 교회사에서 공주는 순교 유적지로 빛나는 곳입니다.
공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전교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인데, 그는 조선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서 세례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전교에 힘써, ‘내포의 사도’ 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공주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은 1784년(정조 8년) 무렵으로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고향 인근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천주교 신앙은 천안, 면천, 공주, 한산 등으로 전파되었고, 1791년의 신해박해를 겪으면서 청양, 논산 지역과 전라도, 충청북도, 경상도 지역에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의 심장
황새바위는 공개 참수 처형지로서, 향옥터는 교수 처형지로써 병인박해 시기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주 지역은 충청감영(現 공주사대부고)이 있었기에 인근의 수많은 신자가 공주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사학죄인으로 판결 받아 참수, 교수형으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봉헌한 장소인 순교 성지로써 황새바위 순교 역사는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황새바위 순교자
▶성인
- ‘손자선 토마스’(1844-1866년): 1968년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
1984년 5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 천배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복자
- ‘이국승 바오로’(1772-1801년)
"지난 10년 동안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비록 형벌을 받아 죽는다고 할지라도 신앙을 지키는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김원중 스테파노’(?-1866년)
"주님 명에 순종하면서 살다가 죽은 후에 천당에 가서 서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오.“
’이도기 바오로‘(1743-1798년):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
“정산 고을을 전부 주신다 해도 천주를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성모마리아님, 하례하나이다.”
▶하느님의 종
-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1752∼1801)
“이제라도 한 말만 하면 살리리라” 답왈, “만 번 죽어도 못하나이다.”
감사 왈, “그러면 배교 아니하는 표로 네 손등을 물어떼라.”하매 그대로 순명하니 이에 죽이기로 결단하여 병인년(1866)2월초 7일에 잡히고 그 달 20일에 죽이니... 그때 관 속들이 그 옥중에서 염경(念經)함과 대소재(大小齋) 지키는 것을 보고 다 말하되, “이 사람은 참 천주교 사람이라” 하며 “불쌍하다”하더라 『병인치명사적』 6권, 10권
- ‘최종여 나자로’와 ‘최천여 베드로’, ‘고의진 요셉’, ‘배문호 베드로’, ‘김화숙 베드로’, ‘고선양’
성지는 선조 신앙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성지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순교성인들의 숨결을 느끼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고 응답하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예수성심상: 예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는 마음의 표현이며, 인간의 응답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원의를 보여주고 있음.
- 돌문: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 자신을 낮추며 기도의 준비를 하고, 기도를 마치고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갈 때는 머리를 숙이는 겸손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음.
- 순교탑: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공주 교동 본당에서 세움(높이 13.8미터). 순교자들이 처형당할 때 사용되었던 두 개의 칼을 서로 맞대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음.
두 개의 칼이 상징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칼과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유혹의 칼로써 세상을 향한 두 개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고 날카롭게 서 있을 때 참된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하늘로 향하는 걸음을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음을 의미.
-황새바위 무덤경당: 예수님의 돌무덤을 형상화,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공존하는 곳. 2012년 로사리오 성월에 세우다. (건축가 ‘김원 안드레아’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가 27년 만에 재설계를 하고, 원래 설계대로 통돌쌓기 방식으로 다시 지어 축복식을 갖게 됨. 순교탑과 무덤경당을 설계한 ‘김원 안드레아’ 건축가가 빛이 쏟아지게 설계를 함)
‘김원’ 건축가가 무덤경당 설계를 할 때 ‘아씨시’에서 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작은 기도방 같은 것, 또는 미리내 순교지의 김대건 신부 경당처럼 작은 공간,「전례 또는 기도의 집」, 순례자들이 오면 잠깐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순교탑과 경당 두 개를 대비시키자는 생각을 했다는 후일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 돌무덤 형태의 무덤경당 지하묘실: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공존하는 곳. 관과 제대가 설치되고, 공주의 순교자 337위의 명패가 벽에 새겨져 있음.
- 열 두개의 빛돌(순교자 광장 무덤경당 앞): 12사도를 상징하며, 동시에 황새바위에서 순교하신 337명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비석.
뒷면에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337위의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음.
“집 짓는 자를 내버렸던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이다.(시편 118,22)
성지 조성 당시 교인회장이 가져온 돌들인데, ‘김원’ 건축가가 돌들을 보고 느낌이 좋아 비석처럼 그냥 세우자고 하면서 ”이 돌을 여기다 세우자“, ”키 순서대로 세우지 말고 순서 없이 세우자“라고 하여 투박하고 거친 모습 그대로 세워짐.
-대경당: 2002.11. 축복식 (2009년부터 대경당을 보수해 성당으로 사용).
부활경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영원한 부활의 진리를 노래하는 경당으로써 경당 안에는 4,000여점의 백자 도자기 평판 벽화 작품들이 모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음.
☞출처: goodnews, 황새바위 순교 성지 홈페이지&리플렛, 공주시 홈페이지, 평화신문
황새바위 순교 성지 순례는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운전봉사자 형제님께서 황새바위 순교 성지에만 있는 『빛의 길(부활에서 성령 강림까지의 14처』구매를 원하여 중동 성당과 차로 불과 5분 거리인 성지로 향했습니다. 안 갔으면 많이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가기를 잘했고 감사했습니다.
무덤경당 지하 묘실 석관 앞에 섰을 때의 마음은 그 먹먹함에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비바람이 심해서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기는 했으나, 우리의 순례 여정이 이루어진 모든 과정이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하행길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해결 과정에 모두의 손에 묵주가 들려있는걸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걱정 하나 없이, 화기애애하게, 기도로 여유있는 넉넉함을 보였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음을 체험한 하루는 교리교사들의 부활 엠마오이자 성지순례 외의 또 하나의 은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