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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풀러신학교 교수이자 교회성장학의 대가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지난 98년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세계에서 개교회 가운데 가장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는 한국의 김광신 목사가 이끄는 은혜한인교회다.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선교를 많이 하는 두 교회가 미국에 있는데, 이 두 교회의 선교실적을 합쳐도 은혜한인교회를 따라가지 못한다." 은혜한인교회는 미국 LA에 있는 이민교회로 출석교인 2천5백여 명에 불과한 지극히 평범한 교회다. 수십만 성도를 자랑하는 초대형 교회들을 모두 제치고 은혜한인교회가 거둔 선교실적은 분명 기적이다. 교회성장학 분야의 연구에만 30여년 이상을 매달려온 피터 와그너 박사가 찬사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광신 목사는 평소 "나는 선교를 위해 주님께 부름 받았다"는 간증을 한다. 그가 그토록 선교를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연초 국내 선교활동차 일시 귀국한 김광신 목사를 만나 그 사연을 들었다. 김광신 목사와 은혜한인교회의 선교영역 은혜한인교회는 2003년 2월 현재 세계 46개국에 1백68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한 교회가 단독으로 이 많은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하기는 아마도 여의도의 순복음중앙교회(조용기 목사) 다음이 될 것이다. 은혜한인교회가 구소련지역과 남미지역, 중국 대륙, 아프리카, 일본 등지에서 벌이고 있는 선교활동을 살펴봄으로써 은혜한인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그 규모를 짐작해보기로 한다. ▶구 소련(CIS)지역 90년대 들어 구소련지역에 집중적인 선교의 포문을 연 은혜한인교회 선교팀은 러시아에만 46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전국적으로 1천8백여 교회를 개척 설립하였다. 특히 93년도에 설립 운영하고 있는 은혜신학교를 통해 1천7백여 명의 현지 교역자를 양성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은혜선교센타교회와 그 지교회를 개척하여 기하급수적인 교회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광신 목사의 선교 프로젝트 중에 93, 94년도에 시작된 '은혜가족페스티벌'이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소련 전지역에서 일만 명의 은혜가족을 한자리에 모으는데 성공했고, 그 여세를 몰아 지금까지 '사랑의 불꽃' 운동인 'TRES DIAS' 운동(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영적 힘의 공급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체험하는 운동)을 현지인 중심으로 전개, 더 큰 도약을 바라보고 있다. ▶남미(South America)지역 베네주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과테말라 등지에 14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어 아마죤강과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원주민 복음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베네주엘라에 은혜신학교를 세워 현지 목회자 양성을 통한 교회개척을 도모하고, 원주민들에게 집중적인 단기성경공부를 시키는 등 복음전파에 전력을 쏟고 있다. ▶중국대륙(Mainland China) 13억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대륙, 선교의 황금어장으로 인구 수 만큼이나 무한한 선교 가능성으로 많은 목회자가 필요한 곳이지만, 이 나라만큼 선교하기 어려운 국가도 없다. 은혜한인교회 선교팀은 그동안 조선족 중심으로 선교를 펼치다 이제는 한족 선교로 옮겨가고 있다. 소위 처소교회라 불리는 가정교회를 무려 3천여 곳에 세워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거대한 중국대륙을 복음화 하는 전초기지로 삼아 지경을 넓혀 가고 있다. ▶아프리카(Africa)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은혜신학교를 설립, 그 졸업생들이 세운 교회가 현재 4백여 개에 이른다. 특별히 맛사이라는 문명 없는 지역에서는 문화선교도 실시하여 학령 전 아동들을 위한 유치원, 초등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에 앞장을 섰던 것이 선교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다. 특히 동부아프리카 20여 개 지역에서는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하여 목회자 재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교회가 없는 지역에 예배당 세워주기 운동과 나무밑교회, 임대교회 운동을 통하여 선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JAPAN) 은혜한인교회는 선교 불모지역인 일본에 2012년까지 개척교회 1천개를 설립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오사카 현지에 은혜신학교를 설립, 주의 종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밖에 은혜한인교회는 베트남에도 7백여 교회를 개척하였고, 미얀마에도 신학교를 설립하여 목회자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북한지역에도 선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특별히 김광신 목사는 이스라엘에서의 선교활동을 강화, 계시록에 나오는 14만4천명의 전도자를 양성한다는 거대한 비전을 바라보고 있다. 김 목사는 이를 위한 실천의지를 다지기 위해 조만간 현지답사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이상의 선교현황에서 보듯, 은혜한인교회는 전세계를 무대로 삼아 폭발적인 교회개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본격선교에 나선 이래 지난 20년 동안 교회 예산의 70퍼센트를 선교비로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혜한인교회는 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6천여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김광신 목사, 그는 과연 누구인가? 1935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광신은 증조부 때부터 예수를 믿는 골수 신앙집안 출신이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듯에 따라 유아세례도 받았다. 그러나 커가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수가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광신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진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에는 숙명여중고에서 영어선생으로 재직하다 1977년 그의 나이 42세 될 때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그는 이국 땅에서 그의 생애를 뒤바꿔 놓은, 고국에서 만나지 못했던 예수를 극적으로 만난다. "당시에 전 실존주의 철학에 빠져 있었어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증명해보려고 벼라별 생각을 다 했었죠.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다면?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나는 유한한 존재고,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인데 결국 나로서는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다는 생각으로 당황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나에게 당신을 나타내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무릎을 쳤어요." 이 일이 있고난 후 김광신은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철벽과도 같은 하나님의 존재 앞에 좁쌀보다도 작은 자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으로 그는 통곡하며 부르짖었다. '당신이 정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면 저를 제발 만나주세요...' 그날 새벽이었다. 평소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그는 곧장 성경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평강과 충만한 기쁨이 그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마치 온몸에 쇠사슬을 칭칭 묶고 다니다가 그것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까지 찾고 찾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를 만나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의 종이 되기를 결심하고 만학의 부푼 꿈을 안고 비올라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2년 그를 따르고 인정해 주는 세 가정과 함께 LA에서 은혜한인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그의 가슴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명감이 있었다.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으며, 이같은 열정은 날이 갈수록 식을 줄 모르고 불타올랐다. 그래서 그의 목회 좌우명으로 정한 것이 있다. 첫째,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선교한다. 둘째,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을 선교일꾼으로 세워 하늘의 상급을 쌓도록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김광신 목사가 선교에 열정을 쏟는 이유 김 목사는 1977년 예수를 영접한 후 성경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임을 깨닫고 주야로 성경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가복음 9장을 읽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통곡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어찌 통곡까지 하시는 안타까움을 나타내시면서도 이 세상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는 것인가? 그 의문은 그를 한없이 괴롭혔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에 돌입했다. 그때 하나님이 그의 의문에 해답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먼저 믿는 자녀들을 사랑한 나머지 그 자녀들에게 귀중한 영혼 구원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피땀을 흘린 대가로 많은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손발을 묶어 두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깨달음을 얻은 후 영혼 구원에 전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 목사는 안으로는 성도양육에 전념하면서, 밖으로는 오로지 선교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됐다. 개척초기부터 교회재정의 70퍼센트를 선교비로 사용하겠다고 결심했고 이 약속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한인교회의 놀라운 선교열매 뒤에는 이와 같은 확고한 선교적 비전이 있었던 것이다. . 지금 은혜한인교회는 자체 교회건물이 없다. 보이는 교회보다 보이지 않는 교회인 영혼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목사의 주장이다. 이를 가상히 생각한 모교 비올라신학교는 그에게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주어 선교열정에 힘을 보탰다. 김광신 목사는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기보다 사랑 받는 목회자가 되기를 늘 기도한다. 은혜한인교회 성도들도 김 목사를 목사님으로 부르기보다 믿음의 아버지, 사랑스러운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잘못을 야단만 치고 꾸짖고 화만 내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들과 말이 통하고 부족함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커버하여 주는 아버지로 알아 따른다는 것이다. 국내 은혜선교센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박건석 전임 회장이나 현 김윤수 회장도 김 목사를 이렇게 평가한다. "김 목사님은 한마디로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누구에게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하시지요. 자신의 육신의 연약함도 돌보지 않고 영혼구원을 위하는 일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는 순교의 종이요, 섬김의 종입니다." 김광신 목사는 주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교회를 세계선교의 선두주자로 사용하시길 원한다고 말한다. 그는 말세에 한국교회에 이러한 대추수의 사명이 주어질 수밖에 없는 일곱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세계선교,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 첫째는 성령충만한 민족이어야 할 것, 둘째는 전국적으로 기도운동이 확산되는 민족, 셋째는 오직예수 신앙으로 무장한 민족, 넷째는 신학교에 주의 종을 서원하는 젊은이들의 대열이 줄을 잇는 민족, 다섯째는 국가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하고 핍박하지 않는 민족, 여섯째는 물질축복을 받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는 민족, 일곱째는 세계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갖추어 어느나라에서도 지도자로서 일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민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두루 갖춘 민족이 한민족밖에 없다는 것이다. "5천년 우상을 섬기던 민족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세계선교의 맨 앞줄에서 달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이 사명의 촛대를 우리민족으로부터 거두어가지 마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기도제목이라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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