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 : 모 세 오 경
지 도 교 수 : 박 신 배 교 수
제 출 자 : 홍 기 배
과 정 : Th. D. 4차
제 출 일 : 2004. 06. 12.
서 울 기 독 대 학 교 신 학 대 학 원
목 차
Ⅰ. 서 론 ------------------------------------------- 1
A. 연구 동기와 목적 ------------------------------------------ 1
B. 연구 방법과 범위 ------------------------------------------ 1
Ⅲ. 본문주해 ------------------------------------------- 2
A. 사무엘 하 7장 1-17절 주해 --------------------------------- 2
B. 역대기상 17장 1-15절 주해 --------------------------------- 4
Ⅳ. 신명기 역사서와 역대기 역사서 ---------------------- 5
A. 신명기역사서 --------------------------------------------- 5
1. 신명기적 역사서의 편집연대와 배경 ------------------------- 5
2. 신명기 역사서와 신명기의 관련성 --------------------------- 6
3. 신명기 역사서의 메시지 ----------------------------------- 7
B. 역대기 역사서 -------------------------------------------- 8
1. 역대기적 역시 서의 편집 연대와 배경 ----------------------------- 8
2. 역대기 사가의 신학 ------------------------------------------ 8
3. 역대기 사가의 다윗에 대한 기술 -------------------------------- 9
Ⅴ.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 --------------------------- 10
A.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의 배경 ---------------------------- 10
B. 시내산 계약 전승 ---------------------------------------- 11
C. 다윗 계약 전승 ------------------------------------------ 11
Ⅵ. 결 론 ------------------------------------------- 12
Ⅰ. 서 론
A. 연구 동기와 목적
구약성경에는 여러 가지 계약이 언급된다.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인 아브라함 계약, 모세 계약, 다윗 계약 등의 큰 계약을 비롯하여 인간과인간의 계약인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 야곱과 라반의 계약 등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된 계약들이 구약성경에서 발견된다.
계약이란 서로가 지키기로 서약하는 어떠한 조건이 담겨있는 약속을 가리킨다. 특히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일 경우 모세 계약과 다윗 계약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모세 계약은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친히 백성 삼을 것을 나타내시지만 다윗 계약은 비록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어길지라도 하나님께서 채찍으로 징계하시되 다윗을 버리지 아니하시겠다는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약속인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 계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담고 있는 은혜계약이다. 이 계약은 신약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건이 곧 구약의 다윗 계약과 연관된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그들이 잘못할 지라도 '채찍'으로 징계는 하시지만 버리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다윗 계약을 깊이 연구하고 사무엘 하서와 역대기서의 다윗 계약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그 차이점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 두 가지 역사서 즉, 신명기적 역사서 와 역대기적 역사서를 중심으로 구약의 두 가지 계약 사상을 고찰해 보고 그 차이점을 해결해 보려고 한다.
B. 연구 방법과 범위
그러나 여기에서 특히 다윗 계약에 대한 두 가지 본문 즉, 사무엘 하 7장 1-17절과 역대기 상 17장 1-14절에서 다윗 계약이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그 차이점을 각각의 본문 주해를 통해 알아보고 그 차이점을 해결해 보려고 한다. 또한 구약의 두 가지 상이한 역사서 즉, 신명기적 역사서와 역대기적 역사서에 대하여 세밀히 살펴보고 두 역사서의 편집연대, 배경, 신학을 살펴보고 서로 비교해 보겠다. 그러므로 그 차이의 원인을 밝혀 내고 특히 다윗 계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그 배경을 심도 깊게 살펴보려 한다.
또한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의 차이를 알아보고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Ⅱ. 문제제기
사무엘 하 7장 1017절의 다윗 계약과 역대기 상 17장 3-15절의 다윗 계약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야훼께서는 다윗에게 사무엘 하 7장 5절 후반부에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부정적인 대답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역대기 상 17장 4절 후반부에서는 야훼께서 다윗에게 나단을 통하여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집을 네가 지어서는 안 된다." 라고 분명한 어조로 전하고 있다.
6절에 사무엘 하 본문은 "지파"로 전하고 있는데 반해서 역대기 사가는 "사사"로 전하고 있다. 사무엘 하 7장9절에서는 "네 모든 원수를 내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라고 말하는데 역대기에서는 10절에서 "내가 네 모든 대적을 굴복시키겠다" 라고 전한다. 사무엘 하 7장 12절에 의하면 다윗의 씨는 "네 몸에서" 나올 것을 말하는데, 역대기상 17:11절에서는 "네 아들들에게서" 나올 것을 말한다. 사무엘 하 7장 12절 이하에서는 이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 사무엘 하 7장 16절에는 "네 집"과 "네 나라"와 "네 위"라고 되어 있지만 , 역대기상 17:14절에서는 "내 집"과 "내 나라"와 "그 위"라고 되어 있다. 사무엘서의 "집"과"나라" 와 "보좌"는 다윗의 소유임을 의미한다. 역대기서에는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나라"로 되어 있다. 즉, 사무엘 하 17장14절은 "다윗"에게 모든 의미가 집중되어 있는데 반해서, 역대기상 7장14절은 하나님의 나라와 다윗의 씨에 의미가 집중되어 있다.
이와 같은 다윗의 계약을 놓고 사무엘서와 역대기서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의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사무엘 하 7장1-17절과 역대기상 7장1-15절을 주해하면서 그 내용상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또한 신명기적 역사가와 역대기적 역사가의 신학적 차이점에 대해 알아봄으로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한다.
Ⅲ. 본문주해
A. 사무엘 하 7장 1-17절 주해
사무엘 하 7장은 신학적, 문학적으로 사무엘 하의 장점들 가운데 하나를 이룬다. 야훼께서 선택한 왕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영원한 사랑을 베풀겠다고 한 약속은 넓은 지평에서의 구약성서 신학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이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본문은 주목받고 개작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왕국 형성을 다룬 장들도 이미 대체적으로 신학적인 개작의 역대기 상으로 증명되었다. 그런데 구약성서 내의 본문 개작은 전승된 부분이 대체되거나 보충된 것이 아니라, 점차 경향에 밀려 변형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두드러진다. 옛 본문 자료와 나중의 본문 자료가 여러 번 결합되고 서로서로 층을 이루어 겹쳐졌음으로 현대의 독자는 본문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 졌다. 본 주석은 본문의 발전과 본문의 의도에 밀린 것 가운데 관찰할 수 있는 것을 묘사하고자 시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첫 번째 관찰 내용은 "집 건축" 모티브에 관한 것이다. 이 모티브에 대해 본문은 두 가지 의미로 말한다. 즉 다윗이 야훼의 집을 지을 것이며(2-3절), 야훼가 다윗의 집을 지을 것이다. (11절) 여기에서 "집"은 특히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또는"왕조"를 의미한다. 서로 상이한 이 진술들은 본래 서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현재와 같은 형태의 본문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더 이상 표현되지 않는다.
그 다음 나단의 태도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는 처음에 다윗의 건축 계획에 동의했다가 그 다음에 야훼의 계시를 이유로 이 입장을 철회한다. 뒤에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계획을 실현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게다가 성전 건축에 대한 나단의 항변들은 사실상 그러한 문제 자체를 문제삼을 정도로 원칙적인 것이다. 추측컨대 이 본문의 다음전개는 다음과 같이 개필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민담의 최초의 상태에서 두 가지 "집 건축"에 관한 말이 나왔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계획이다. 이것은 궁중 예언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다윗은 그 대가로 그의 "집" 즉 그의 왕조가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 이 민담을 "왕의 새 칙령"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왕의 새 칙령"은 이집트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문학 장르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사화들은 왕조와 이 왕조에 계시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용되며 이 사화들에는 다시 또 다시 하나님과 건축주를 찬양하는데 이용되는 건축 계획도 포함되곤 한다. 이러한 사화들을 계속 전하는 사람 자신들도 하나님이 창조하고 왕이 매개한 이 영광스러운 세계에 정착하며 그의 왕가의 약속된 "영원"에서 자기 몫을 차지한다.
다윗은 이미 여부스 사람들의 성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성전을 넘겨받아 그 성전을 수리하여 야훼(혹은 그의 법궤)에게 도렸음이 틀림없다. 12장 20절에는 다윗 시대의 성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자명하다. 물론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훨씬 포괄적이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도 신축 건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건물을 확장시킨 것이다. 그래서 후대 인들은 솔로몬을 성전 건축자로 여겼다. 그 때문에 후에 이 본문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야훼가 거부하기로 결정했음을 내용으로 하는 요소를 중심으로 더욱 고조되었다. 물론 이 거부가 오늘 날 존재하는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원칙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다음 개작은 신명기 신학과의 분명한 유사점을 제시해 준다. 지금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과거사가 함께 취급되며, 왕국은 다른 요소들 특히 출애굽 사건이나 토지 점령과 함께 야훼의 역사적 행동의 한 요소로 나온다. 그러나 야훼가 다윗 왕조를 도와 준다는 것이 무조건 통용되는가 아니면 왕의 훌륭한 행동이 조건으로 붙는가 하는 문제도 지금 중요한 역할을 한다.(14절)
끝으로 개작 자는 성전 건축 계획의 거부를 다시 끄집어내어 원칙적인 입장에서 그 이유를 제시한다.(5절 이하) 여기에서는 성전의 필요성 자체가 의문시되었다. 이 구절은 이사야 66장 1절과 같은 포로기 이후의 구절들을 상기시키며 정신사적으로 포로기 이후의 신학적 흐름에 편입될 수 있다. 이 개작 층들을 하나하나 따로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예를 들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개작 층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속을 꿰뚫어 볼 수 없는 형태로 되어 있는 11절이 분명히 편집과정의 솔기부분을 나타내 준다. 하더라도 말이다. 개별적인 주석을 하다보면 도처에서 그와 같은 언급이 제시 될 수 있다.
이 민담의 최초의 형태는 다윗 왕조에 관한 민담 전체의 속해 있었음이 분명하며 이 민담은 다윗의 즉위와 관계된 부분과 왕위 계승부분 사이의 연결요소가 된다. 법궤의 도착과 제의 창설에 바로 뒤이어 선전 건축(증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며 다윗 왕조의 연속성의 문제는 이 민담의 요점을 미리 예시하지만 7장 위에 가면 이 요점이 더욱더 분명해 진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왕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이 이데올로기는 구약성서 전체의 전승 가장자리에만 나온다. 왕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이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이 사실은 본문에서도 곧 표현된다. 비교적 후대의 사람들이 솔로몬의 신전 왕국에 대한 중단되지 않은 말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즉각 불행한 일을 당해 마땅한 솔로몬의 탈선이 고려된다.(14b) 따라서 본문은 열왕기 상 11: 1절 이하를 예견하고 있는 셈이다. 즉, 다윗 왕조가 존속하기는 했지만 - 아무런 문제없이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왕조가 죄를 지으면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존속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약속은 조건적이고 제한적인 약속이 되었다.(열왕기 상 11:11-13)
야훼의 신탁의 전반부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 보면 야훼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장막에 거하였기에, 새삼스럽게 백향목 집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야훼는 사실상 한곳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시는 분이다.
브르거만(Brueggemann)도 사무엘하 7장은 사무엘서 전체에서 드라마의 핵심이며 동시에 신학적인 핵심을 이룬다고 본다. 그는 이 부분이 구약성서 중 가장 복음적인 신앙을 잘 나타내는 부분이라 보기도 한다.
정일선 교수는 야훼가 다윗과 그 후손에게 베푼 무조건적인 사랑의 정신이 포로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회망의 근거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정신은 후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까지 면밀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B. 역대기상 17장 1-15절 주해
역대기 상 17장에는 역대기 사가의 관점인 예배와 그에 따른 모든 격식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다. 16장에서 그는 예루살렘으로 성공적으로 이전한 사실 및 예배 준비를 다루었다.
1절이 "야훼께서 주변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다윗을 쉬게 하였을 때"라는 사무엘하 7장1절을 생략한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일과 성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 것 사이에 약간의 시간이 흘렀음을 암시한다. 이 두 이야기는 처음에 나단이 다윗의 열망에 동의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나단에게 임한 야훼의 말씀은 그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기자는 어떤 면에서 사무엘 하 7장에 쓰인 표현의 겪을 떨어뜨렸고, 다른 면에서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그것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4절에서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집"짓는 계획을 상당히 모질게 금지시킨다. 병행 본문에서 그것은 질문의 형태로 되어 있지 여기서처럼 강한 명령형태로 되어있지 않다.
이 신학의 논지는 야훼를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는 영예 대신에 야훼 스스로가 "너를 위해서 집을 세워 주겠다" 즉 자손을 제공해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일찍이 판관들이 그랬듯이 다윗과 그의 후손이 그들의 목자가 될 야훼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연관되어 있다. 다윗 자신은 전사로 활약해 왔으며 적들을 굴복시킴으로서 이스라엘이 억압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게 하였다. 기자는 분명히 그 모든 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자의 시간과 역량을 나라를 세우고 세상에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쏟아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울 치하의 불안정한 상황이 깔려 있다. 사울은 여기서 거의 전적으로 무시되어 있다. 역대기 사가는 자신의 자료와 마찬가지로 야훼의 뜻과 목적에 부합하는 현실 상황에 직면한다.
11절을 너무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반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메시야적 의미를 반영하는데 "네 아들중 하나"라고 하는 설명적 첨가어가 기리키 듯이 솔로몬만을 나타내는 것 같다. 다윗의 후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왕좌의 연속성을 보장, 둘째 "나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는 약속을 이행함으로서 야훼께서 임재 하심을 증명한다. 13절과 14절은 매우 중요하다. 사무엘 하 7장 14-16절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기자 모두가 본문에 각각 특별한 분위기를 가함으로서 자신의 신학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이들 두 가지 시련의 시기 이후에 다윗 왕국이 지속하리라는 것을 믿었다.(사무엘 하 7:14, 느헤미야32-37) 동일한 사상이 야훼와 기름 부은 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성을 강조하는 제왕시들(2편, 89편, 132편) 속에서 보다 선명하게 선포되어 있다. 이 구절들이나 제왕 시들은 전체적으로 보아 메시야적이다.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물론 그런 사상은 그렇게 많이 강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풍부한 시적 심상과 우주적 전망을 가진 제왕 시들은 보편적이고 종말론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보다 협소하게 왕조나 국가에 제한되는 여기서의 산문적인 기록보다는 훨씬 생생한 묘사를 제공한다. 나단의 전체적인 전망은 다윗 왕조를 종교적 기구로서의 국가에 연결하는 것인데 이는 구약성서 신학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Ⅳ. 신명기 역사서와 역대기 역사서
A. 신명기역사서
1. 신명기적 역사서의 편집연대와 배경
신명기는 모세 오경의 마지막 책으로서 그 첫 머리는 모세가 요단강 저편 아라바 광야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란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장일선 교수는 그 말씀을 듣는 청중의 정체에 대하여 주전 7세기 히스기야-요시야 시대에 예루살렘에 살았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한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야훼 종교 개혁가들이 북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남 왕국으로 망명하여 히스기야 때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므낫세 치하의 박해 대 그들의 입장을 문서화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숨겨 두었던 것이 요시야의 성전 청결운동 시 발견되어 새로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고 보았다. 학자들은 요시야가 발견한 율법서가 곧 현재 신명기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신명기는 신명기 편집자가 원 신명기인 신명기 5-26장에 지금의 서론 부와 결론 부를 첨부하여 신명기를 형성하였다고 본다.
그러면 신명기의 편집자는 누구인가? 노트는 포로시기의 어는 역사가가 모세로부터 포로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신명기, 여호수아서, 사무엘서, 열왕기서를 통해 정리하여 북 왕국의 멸망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노트는 이 역사를 신명기 역사서 라고 부른다. 니콜슨은 1934년에 처음 발견된 노트의 「전승사 연구」의 영역본 서론에서 노트의 부족 동맹체 가설은 이제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고 있지만, 그의 신명기 역사 연구는 아직까지 정설로 인정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 노트는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가 개인적인 자료로 구성되었다는 문서설을 배격하고 신명기로부터 열왕기 하까지 총체적으로 하나의 독립적인 역사문서임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신명기 역사서의 형성문제 뿐 아니라 예언서 형성에 미친 영향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단일 저자라고 보기보다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과 더불어 학파라는 쪽으로 이해한다.
2. 신명기 역사서와 신명기의 관련성
니콜슨은 세 가지 면에서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서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을 주장한다.
첫째는 언어와 문체의 유사성이다. 그는 신명기의 서론 부분1-4장, 결론 부분 31-34장 그리고 본론 5-30장의 복수 2인칭 부분은 신명기 사학파에서 왔다고 본다. 그리고 문체 면에서는 신명기 사가가 신명기 저자들의 것을 계승했다고 본다.
둘째는 신학적 전승 문제로 신명기 역사 서에는 모세 계약 전승과 다윗 계약 전승이 병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다윗 왕조도 모세 계약법에 순종 할 것을 강요함으로서 신명기가 제시하는 시내산 계약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니콜슨은 설명한다.
셋째로 신명기의 성명신학이 신명기 역사 서에도 반영되어 하나님의 거처는 하늘이고 시온 산은 그의 이름 만 거하는 곳이 되며 또 법궤도 비신화화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니콜슨의 첫 번째 주장에 대해 노트도 신명기 31-34장은 신명기1-4장과 직접 연결되는 신명기 사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레벤손은 신명기 1-4장안에 단수 2인칭과 복수 2인칭이 섞여 있는 것은 포로기 편집자가 단수 2인칭으로 된 신명기 초기의 정복 설화를 자신의 2인칭 복수 설화 속에 삽입시켰다고 보는 카젤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신명기 3장 29절 -4장 40절과 28장 69절- 32장47절은 신명기 법전을 둘러 싼 울타리와 같은 견해를 표하면서 이 울타리는 포로기 신명기 사가의 작품이라고 본다. 니콜슨이 주장하는 모세 계약 전승과 다윗 계약 전승이 병행되다가 다윗 계약 전승이 모세 계약 전승에 종속되었다고 하는 점은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궤 문제는 P전승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보좌로 취급한데 비해 D전승은 단지 법궤가 십계명을 넣어두는 상자로 취급한 것이다. 폰라트에 의하면 법궤는 원래 정착된 생활권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막 전승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막 개념이 법궤가 하나님의 보좌라는 개념을 축출하였다고 본다. 솔로몬이 법궤를 예루살렘 성전 안에 안치한 후에는 법궤의 신학적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니콜슨은 위와 같은 연관성을 주장하면서 신명기를 쓴 이들과 신명기의 역사 서를 쓴 이들이 모두 북 왕국에서 넘어 온 예언 집단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명기 역사서 편집자들이 신명기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 역사를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3. 신명기 역사서의 메시지
폰라트는 신명기 역사서의 신학적 목적이 단지 587년 사건의 회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명기 사가가 주전 6세기 포로기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공동체의 당면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즉, 공동체가 현재 처한 포로기 생활을 충실히 살며, 야훼와의 계약 안에서 미래를 책임 있게 선택하려고 도와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폰라트는 신명기의 역사서의 마지막 구절이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의 언급이 아니라 다윗 집안에 대한 야훼의 약속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그 약속 때문에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은 이스라엘이 야훼께 불성실해서 721년과 587년의 재난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재난이 제 아무리 이 재난의 정당성이 강조되더라도 신명기 역사서는 587년이 이스라엘의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포로기간 중 여호야긴을 석방시켜 줌으로 인해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백성을 보살펴 주신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야훼께 돌아가기만 하면, 야훼가 그들의 구주가 되리란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신명기 사가는 야훼께 돌아서는 일이 진심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신30: 2, 왕상 8: 48) 이 전향은 야훼의 음성을 듣고(신8:30), 모세를 통해 증거 된 모든 계명을 지킬 때(신30:8) 가능한 것이다. 전향은 또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는 일이다.(왕상 8:47)
사사시대 때 이스라엘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이방 신을 제거하였다.(삿10:15-16) 솔로몬도 성전 봉 재난을 받을 때 이스라엘 야훼께 간구하면 들어주실 것을 요청하였다(왕상 8:47-49. 52) 그러므로 신명기 사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종용한다. 전향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회개한 이스라엘은 야훼가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공의를 베풀어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왕상 8:49) 야훼는 이 같은 이스라엘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주실 수도 있고(신30:3), 그들의 강압 자들로 하여금 자비를 베풀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왕상 8:50) 신명기 30장에는 이스라엘의 전향이 하나님의 전향을 가져오게 된다고 말한다.(신30:3)
B. 역대기 역사서
1. 역대기적 역시 서의 편집 연대와 배경
페르시아 시대란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538년부터 희랍의 알렉산더 대제가 팔레스타인 일대를 정복한 333년 까지 무려 200여 년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고대근동 역사에서 페르시아 시대의 역사적인 기록은 오히려 앗시리아나 바벨론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성서에서는 학개 스갸랴가 페르시아 전성기를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으나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결여되어 있는 만큼 구체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재구성은 무척 어려운 형편이다.
구약성서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역대기 상, 하 에스라, 느헤미아서를 역대기 역사라 부른다. 역대기 사가는 신명기 역사인 사무엘 상, 하 와 열왕기 상, 하를 자신의 중요 대본으로 삼고 거기에 맞추어 따라가면서 자신의 역사를 서술해 나간다. 그러므로 신명기 역사와 역대기 역사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인용하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삭제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그 내용만을 간추려 부연시키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명기 역사서에 전혀 담겨있지 않은 역대기 사가 자신의 자료도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역대기 역사가 신명기 역사를 자신의 중요한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왕조의 역사에 있어서는 신명기 역사와 거의 평행이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는데 신명기 역사가 여호야긴의 석방으로 끝이 나는 데 비해 역대기 역사는 그 보다 더 후대인 에스라와 느헤미아의 포로 귀환 공동체 시대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스룹바벨이 제2성전을 짓고 그 성전에서 유월절 행사를 지키고 에스라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등의 일 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역대기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모세의 법대로 살게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역대기 상은 신명기 역사와 평행 되는 사울 왕의 쇠퇴(역대 상 10/ 삼상31) 이전 부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스라엘 족보를 모두 9장에 걸쳐 소개함으로서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총 망라하고 있다.
2. 역대기 사가의 신학
역대기 사가가 이스라엘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역사해석을 어떻게 하였는가?
귀환 공동체는 종교적 유대를 결속시키기 위해서 성전 제의를 강화 시켰다. 역대기 사가는 이 같은 예루살렘 선전 제의중심사상을 그의 역사 해석의 관건으로 삼고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 선전 제의를 강조하다 보면 자연히 성전을 짓게 된 다윗과 솔로몬의 공헌을 논하게 되며 여기서 나단 신탁을 통한 다윗 왕조의 선택 사상이 부각된다. 장일선 교수는 역대기 사가의 신학적 경향은 예루살렘 선전 제의라는 기둥과 다윗 왕조의 선택 사상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 사이의 공공의 응보 사상이 결합되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고 보았다. 응보 사상은 신명기 역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된 단계에서 야훼의 계명을 준수한 남 왕국 왕들은 복을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잇는 솔로몬 왕에 대한 이미지는 역대기서가 우리에게 제시해 준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유공자이기 때문에 역대기 사가는 그를 하늘같이 떠받들어 올린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그에게 불미스러운 것들은 다 생략해버렸다. 솔로몬이 당한 정치적 곤경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왕상11:1-40) 신명기 역사는 솔로몬이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그들이 영향을 받아 점차 야훼 종교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왕상 11:1-3) 솔로몬이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며 이방신당을 지은 것은 솔로몬의 이방 여인들과 교역하는 상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같은 결혼이 야훼 종교의 순수성을 약화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대기 역사가는 솔로몬을 존경하는 나머지 이 모든 자료를 그의 역사에서 제외해 버린 것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솔로몬이 경건한 성전 건축가요 현명한 통치자라는 인상을 길이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시행하고 야훼 종교를 회복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 사람이었으나 뜻밖에 불행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3. 역대기 사가의 다윗에 대한 기술
역대기 사가가 다윗을 기술할 때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주목할 만하다.
1) 사무엘 자료들에 나타난 다윗에 관한 많은 사건들과 큰 단락들이 역대기에는 빠져있다. 이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헤브론에서 다윗이 통치한 일과 사울 가문과 투쟁, 밧세바의 사건, 아들 압살롬과 베냐민 지파 세바의 혁명, 그리고 말년에 잇따른 왕위 계승에 연루된 문제들이다.
2) 사무엘에게서 취한 전승은 상당부분 첨가되었다. 이것들은 성전 건축을 위한 다윗의 준비 사항들, 성전 구성원의 조직, 그리고 국가와 군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행정조직들에 대한 기술도 포함한다.
3) 강조 점은 이스라엘 백성의 통일성과 다윗이 그 이상적인 국가를 다스리면서 전혀 도전을 받지 않은 완전한 통치권에 있다.
4. 역대기의 특징
역대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은 설교 문들, 기도들, 신탁들 그리고 사무엘 서와 열왕기의 경우 보다 여러 전승들과 사건들에 대해 더 종교적이고 신성한 분위기를 주고 이 작품에 매우 설교적이고 교화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경건한 내용의 첨가물들이다. 여러 곳에서 역대기 사가는 차이를 보이는 전승과 혹은 신학적인 전망을 조정하려고 한다. 사무엘 상 17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자로 묘사되지만 사무엘 하 21:19에서는 달리 그의 죽음을 알려지지 않은 엘하난에게 돌린다. 역대기 상 20:5에서 엘하나는 골리앗의 아후 리흐미를 죽였다고 말한다. 따라서 두 전승을 수정하고 조정하고 있다. 사무엘 하 24:1에서 야훼는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격려한다. 역대기 사가는 이 사가를 사단이 다윗을 자극하였다는 후기 신학으로 조정하고 있다.(역대기상 21:1)
사가는 하나님이 인간을 생활과 역사를 주관하고 개개인을 그들의 신앙 지침들에 순종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헌신했느냐에 따라 보답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유다의 아비야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그의 대대적인 이스라엘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유다는 참 신앙을 보존하였고 정당한 방식으로 그리고 적법한 성전에서 참되고 신실한 성직자에 의해 지탱되는 이스라엘 종교와 성직자는 북쪽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고 강조하였다.(대하13:1-12) 그러나 북쪽의 백성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수한 위치를 거절 당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대하 13:12)
Ⅴ.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
A.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의 배경
이스라엘의 신학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뿌리들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을 몇 가닥으로 묶어 보려는 것은 무리지만, 그래도 그것을 정리해 보면 북 왕국 전승과 남 왕국 전승을 분류해 낼 수 있다. 초기에는 유다 지파가 세력을 떨치지 못했고, 요셉 지파, 그 가운데서도 에브라임 지파가 주도 권력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출신이었으며, 또한 사사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이 에브라임 중심으로 이루어 졌고, 사무엘 역시 에브라임 출신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신앙 전승은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북 왕국 전승 : 북 왕국 전승은 시내 산 전승, 시내 산 계약, 또는 모세 전승, 모세 계약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시내산에서 율법 수여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남 왕국 유다 전승은 다윗 전승, 시온 전승이라고도 한다) 사무엘 시대까지 법궤는 실로에 있었고, 엘리 제사장도거기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통적인 야훼 신앙 수호자들이 남아 있었고, 후에 아히야는 여로보함을 지원해서 북 왕국 독립을 이루게 한다.
이에 비해 남 왕국 전승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 왕이 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신학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북 왕국 전승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북 왕국 전승이 지파 체계와 율법 준수를 기반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고대 전승이라면, 남 왕국 전승은 왕정체계와 왕가로 인한 복 받음을 기반으로 하는 신학전승이다. 이스라엘 신학 사상은 이 두 전승 궤도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면서, 또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풍성하게 형성되어 왔다.
그런데 왕정 초기의 상황을 살펴보면, 북 왕국의 전통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 신학적인 주류에서 밀려났으며, 새로운 인물들에 의해서 다윗 시대의 신학이 형성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북부 지역 종교지도자들은 솔로몬 말기에 아히야를 중심으로 결집되었으며 여로보암을 지원해서 북 왕국을 독립케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들을 동요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실로가 아닌 단과 벧엘에 국고로 성소를 세우고 거기에 자기의 삶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부임케 했으며, 전통적인 이스라엘에 월력 체계와 다른 종교 절기를 정해서 실행하게 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행위는 아히야를 비롯한 전통적인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심각한 배신으로 비춰 졌으며, 그의 행위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르호보암에게 망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북 왕국 전승이 남 왕국 전승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남 왕국에서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B. 시내 산 계약 전승
장영일 교수는 <출애굽-시내 산 계약> 전승의 발전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실례를 계약신학이라고 보았다. 보통 조건적 계약이라고도 불리는 시내 산 계약의 특징은 계약 당사자의 어느 한 쪽이 계약 조건을 어겼을 경우 양자의 계약 관계가 결렬된다고 본다. 신명기는 북 왕국의 출애굽전승 및 시내 산 계약 전승을 이어받고 있다. 신명기가 주전 7세기의 작품이라고 볼 때, 고대 중앙 성소를 통해 이어지는 시내 산 계약 전승이 E전승 그리고북 왕국의 예언 전승에 이어 신명기 까지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신명기 법전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신명기 역사가가 신명기를 자신의 역사서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만큼 신명기 역사서 전체가 신명기의 시내산 계약 정신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신명기 역사서가 첨가한 신명기의 서론과 결론 부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신명기 역사가는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은 야훼의 계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방 사람들은 말하기를 야훼께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였느뇨. 이같이 크고 열열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뇨 하면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야훼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야훼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야훼께서 이 땅을 향하여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야훼께서 진노와 분한과 크게 통탄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 내사 다른 나라에 던져 보내심이 오늘날과 같다하리라.(신29:24-28)
장영일 교수는 <출애굽-시내 산 계약>사건과 구약신학의 핵심 주제를 구원의 하나님 야훼, 공의 심판의 하나님, 약자의 하나님, 비하와 등귀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으로 본다.
C. 다윗 계약 전승
신명기 역사가는 다윗의 밧세바와 우리아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를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한다 클라인은 신명기 역사 서에서 모세, 여호수아, 다윗만이 야훼의 진정한 종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한다. 다윗은 모든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고(삼하 8: 15), 신실하게 야훼를 추종하고(왕상3:6), 야훼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며(왕상3:14), 야훼의 길을 따르는 사람(왕상11:33)으로 묘사되어 있다. 신명기 역사서는 다윗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야의 일 외에는 평생을 야훼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 하였음이라(왕상 15:5). 솔로몬 때 나라가 갈라지지 않은 것도 다윗 덕택이고(왕상 11:12) 나라가 갈라진 다음에도 한 부족이 다윗의 후손에게 남아 있게 되었고(왕상11:13) 야훼가 아비얌에게 예루살렘서 다스리게 하신 것도 다윗 때문이며(왕상 15:4), 악한 왕 여호람 때 다윗 가문이 완전히 망하지 않은 것도 다윗 때문이며, 히스기야 때 예루살렘이 무너지지 않은 것도 다윗 때문이다(왕하 8:19)
사무엘 하 7장의 나단 신탁은 야훼가 다윗에게 "집" 즉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다윗의 집은 16절에 영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18-19절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는 다윗의 집안에 영원한 왕조를 약속해 주는 신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명기 사가의 저작이다.
메카시는 나단의 신탁이 사울의 패망으로부터 다윗의 등극에 이르기까지 신명기 역사를 잘 반영한다고 보며, 나단 신탁이 신명기 역사에 그 구조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본다.
크로스 역시 사무엘 하7장 신명기 역사 전체를 요약해 놓은 것이라고 본다.
레벤손은 다윗 계약은 삼하 7장과 시편 89편에 나타나는 것으로 인간의 순종을 전재로 하지 않고 야훼가 일방적으로 선물을 주시는 은총의 계약이라고 말한다.
브루거만은 삼하 7장의 나단 신탁에 "영원히"란 부사가 다섯 번 나온다고 지적하면서(24-28절) 야훼의 은총이 587년 사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미래가 곧 포로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케리그마로 임하는 것이라고 본다.
Ⅵ. 결 론
여호수아서부터 에스더까지를 하나의 묶음으로 역사서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역사서는 하나의 역사서는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가 하나의 완결된 역사 서를 이루고 또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나의 묶음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복음서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네 개의 복음서들이 크게 공관 복음서와 요한복음서로 나누고, 또 공관복음서에 속하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도 각기 독특한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와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묶음의 역사서가 동일한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 분명하고, 또한 동일한 시대의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즉 신명기 역사서로 부르게 된 책들은 신명기의 신학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했다. 이 신명기적 역사서의 기록 된 역사적인 관점은 신명기의 관점과 동일하다..
신명기 신학은 야훼의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그래서 타종교에 대해서는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종교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인 개혁의 시발점이다. 야훼 유일신 사상은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서 야훼종교의 절대성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방에 대한 적대적 태도, 특히 가나안 일곱 족속에 대한 진멸의 명령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방 세력의 축출과 이스라엘 민족의 강력한 결속을 강조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야훼 종교 이외의 타종교에 대해서 강력한 규제 조치를 취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신명기 신학은 중앙성소의 확립으로 나아간다. 예루살렘을 중앙 성소로 정하고 지방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며, 급기야는 신당과 성소를 훼파 해 버림으로서, 지방종교 지도자들의 기틀을 와해시켜 버렸다. 본문에는 여러 가지 제사예물이 언급되고 있는데, 중앙성소에 대한 규정이 제정되기 전에는 이 예물들이 모두 지방 산당과 성소에 바쳐졌던 것들이다. 중앙 성소화는 이렇듯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를 만들려는 정치적인 구상이 담겨있다. 그리고 다윗 가문을 중심으로 해서 나라를 결속시키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지방 성소에서의 신학형성의 근거를 배제해 버림으로서 신학적으로도 통합된 신학을 제시하려 하였다.
신명기 역사가는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그것이 이스라엘의 범죄(신명기 역사가는 앞에서 말한 신명기 사상에 근거해서 인간들의 행위를 평가하고 신명기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그것을 범죄라고 규정한다)의 결과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해 간다. 어느 누구도 신명기 역사가의 날카로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이 신명기 역사서의 중심 사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서 그들을 심판 하셨지만, 결코 그들을 그대로 내 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사사기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사사기에는 '범죄 -심판 -회개 -구원'의 양식이 반복되고 있다. 신명기 역사 서에는 이스라엘은 지금 범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라는 강력한 희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신명기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케 한 심각성과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희망이 잘 조화되어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 이후 돌아온 1, 2차 귀환 자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에 힘 입어 새로운 각성을 함으로서 그 공동체는 유대교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었고, 이들의 개혁으로 유대교가 태동하게 되었다. 당시 사마리아와의 관계는 귀환 초기부터 적대적인 관계를 보이다가 점차 사마리아 공동체가 예루살렘 귀환 공동체와 결별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종교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두 공동체의 대립관계는 더욱 첨예화되었다. 이러한 분위 속에서 역대기가 기록되었으며, 사마리아와의 대립의 첨예화가 역대기 신학의 발생을 촉진시켰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귀환한 예루살렘 공동체는 자신들이 누구이며, 유다 왕국이 멸망되고 다윗 왕가가 끊어진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는 시점에서 과연 그들의 조상들이 지켜온 야훼 신앙이 그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역대기는 기록되었다. 역대기는 다른 책들에 비해 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역대기 기자는 기종 자료들과 여러 신학들을 섭렵할 수 있었다. 역대기 기자가 속한 공동체 역시 이 자료들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기존의 자료들을 그 이전의 역사가들과는 다르게 사용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 요구되는 신학을 설정하고 이 신학을 근거해서 기존의 자료들을 때로는 그대로 수록하기도하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확장, 축소, 삭제, 수정하기도 했으며, 기존의 자료에 주석을 첨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책들에는 언급되지 않은 자료들을 발굴해서 수록했다. 이러한 의도적인 자료 정리 작업을 통해서 역대기 기자는 기존의 역사가들이 다루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역대기의 고유한 구성과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역대기 사가는 이렇게 기존의 자료들을 이용해 역대기 사가의 관점으로 역대기적 역사 서를 기록하였으며, 그 특징은 다윗을 이상화하고 다윗을 돕는 사람들로서 레위인을 부각시키고 예배를 강조하며 성전예배에 있어서 그들이 담당했던 기능들, 특히 음악적인 기능들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성가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에 대한 강조가 나타난다.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역대기적 역사 서에는 235회 나오지만, 반면 사무엘, 열왕기에는 123회가 사용된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귀환 공동체에 있어서는 예루살렘의 의미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기 기자는 또한 성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과 솔로몬을 전치가와 군대 지도자가 아니라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실제로 성전을 건축하며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제도를 확립하는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귀환 자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단순한 상징물이나 생명력 없는 형식체가 아니고 , 그들의 삶의 중심이며 하나님 나라의 지상을 실재였다. 또한 역대기 역사서는 율법을 강조한다. 또한 역대기기자는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자료를 사용함으로서 다윗과 솔로몬을 이상화시키고 어떤 사람들은 다윗에 비해 솔로몬을 더 이상화 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이 역대기 사가에는 깔려있는 것이다.
다윗 계약에도 이러한 신명기적 역사가와 역대기적 역사가의 차이가 존재하며 역대기 사가는 다윗을 이상화시킴으로서 다윗 계약 역시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이상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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