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정원에서 거대한 돌덩이를 실어 나르는 공사가 2008년 가을 진행됐다. 외부에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높이 6m의 이 대형 비석은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를 그대로 본떠 만든 모형이다. 국정원은 2008년 정원을 공사하면서 10년 동안 그곳에 세워져 있던 광개토대왕릉비를 없앤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국정원장 구속, 압수수색, 국정조사 등 국정원의 시련이 이어지자 국정원의 기운과 터가 화제에 오르고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은 1998~1999년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원장의 지시로 만들었다. 그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라는 이름을 국정원으로 바꾸고 '국민에게 봉사할 것'을 강조했다. 이스라엘 건국에 핵심 역할을 한 정보기관 모사드를 국정원 개혁의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패기를 본받으라고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을 입구에 세웠다.
부산의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모형. 국가정보원에 있던 것을 2008년 옮겨왔다. / 국가기록원 제공
그런데 1998년 이후 '국정원 잔혹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전 원장은 언론 장악 시나리오 유출 파문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2000년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임동원(24대), 신건(25대) 전 원장이 불법 감청 지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는 등 전직 원장들의 시련은 이어졌다.
국정원이 파내어 옮겼다는 모조 광개토대왕릉비는 이후 어디로 갔을까. 22일 확인 결과 현재 이 비석은 부산에 있는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서 보관·전시하고 있었다. 최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과 관련해 '사라진 사초(史草)'로 구설에 오른 국가기록원 관련 기관에 문제의 광개토대왕릉비가 정착한 것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국정원이 정원 공사를 하면서 광개토대왕릉비가 국가기록원으로 왔다. 이 비석은 행정 박물(博物)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국가기록원에서 보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행정 박물이란 행정기관에서 사용하다 나온 문화·예술·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품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