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자본주의 극복이 불평등해소의 길
- 과학은 통계적 실증에서 나온다 : “21세기 자본” 서평 -
김성혁 사단법인 시화노동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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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의 저자로 주목받고 있는 피케티는 자본주의에서 역사적인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저 통계 분석에 대한 해석으로 기존 경제학자들의 상아탑을 뒤흔들었다.
주류경제학에서 불평등 문제는 미국 쿠즈네츠의 “bell curve”로 일반적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는 미국의 35년 기간(1913~1948)을 연구하여, 산업화 초기단계에는 불평등이 심하지만 일정한 궤도로 경제가 성장하면 낙수효과로 사회전반에 성장의 열매가 나누어진다고 제기하였다.
콥과 더글라스는 노동과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1인 생산함수를 가정하여 소득에서 차지하는 자본의 양은 α로 고정되어 있어 자본과 노동에 대한 분배는 안정적이고 성장은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보았다.
모델리아니 등은 β = s/g 법칙은 자본총량과 소득 및 생산이 장기적으로 동일한 속도로 증가하는 균형성장 경로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β=자본/소득 비율, s=저축률, g=성장률)
기술개발과 인적자본이 중요해지면서 기술을 다루는 노동에 대한 분배가 높아져 불평등에 해소되고 있다는 낙관적인 이론도 있었지만 검증되지 못했다.
복잡한 수학과 과도한 가정들을 사용한 주류경제학자들의 불평등과 성장 이론은 일정한 조건에서 성립하기도 하지만 실증적 토대가 약했고 실제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객관적인 설득력으로 광범위한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은 주로 협소한 데이터의 사용, 자유시장을 옹호하려는 냉전적 시각 그리고 역사적 현실에 기반을 두지 못했기 때문에 보편적 설명력을 가질 수 없었다. 반면 피케티는 세계 20여 국가의 200년에 걸친 인구, 소득세 등 세금, 국민소득, 경제성장률 데이터를 분석하여 자본주의 출범부터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를 망라하여 나라별, 시대별, 대륙별로 불평등을 분석하였다.
초기 경제학과 달리 현대 경제학이 불평등 해소에 주력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미국 등에서 엘리트 계층의 일각을 구성하고 있으므로 진보적 조세제도 개혁에 반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 대학의 경제학 교수 연봉이 경영대학원에 버금갈 정도로 치솟았다.
피케티가 주목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자본이 현재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β(자본/소득 비율)이다. 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전체 소득 중 자본에 분배되는 몫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500억 원의 자본(공장·설비·특허권 등)을 가진 회사가 매년 100억 원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이 회사는 소득 100억 원 중 55억 원을 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45억 원은 이윤으로 챙긴다. 그렇다면 이 기업의 β(자본/소득 비율)는 500%(500억원/100억원)다. 자본 입장에서는 500억 원을 투자해서 45억 원을 벌어들인 것이므로 자본수익률은 9%(45억원/500억원)이다. 현재의 소득 100만 원 중 자본이 차지한 몫의 비중은 45%(45억원/100억원)로 나타난다.
유럽에서 1700~1914년(1차세계대전 발발)까지 ‘자본/소득 비율’은 600~700%였다. 당시 사회의 전체 자본(부)이 연간 국민소득의 6~7배에 달했던 것이다. 1910년 당시, 유럽의 상위 10%는 총자본(전체 부의 규모)의 90%, 소득의 45%를 장악하고 있었고 상위 1%는 총자본의 60~70%를 소유했다. 이런 자본에서 나오는 배당금·이자·임대료 등의 소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1914~1945년 기간 동안 대공황, 사회주의 혁명,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자 조세정책과 사회보장 정책 실현으로 자본/소득 비율은 200~300%로 감소했다. 그러나 가장 평등했던 1945~1975년 자본주의 황금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대였다.
공산권 몰락 이후 민영화,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 전면화로 인해 자본/소득 비율은 다시 1980년대부터 증가하여 2010년에는 500~600%가 되었다.
신대륙인 미국은 초기에 구유럽만큼 자본총량이 높지 않아서 물려받은 상속재산보다는, 자기 세대에서 일한만큼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이민자들은 저렴한 광대한 토지를 일구며 자작농이 되거나 산업자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대공황이후 루우즈벨트 대통령은 한때 소득세 최고세율을 80%나 부과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되자 CEO의 연봉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등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2010년 현재 미국은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이 70%를 넘어 유럽(60%대)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은, 피케티에 의하면 전체 소득에서 노동으로 번 돈보다는 자본으로 번 돈(이자, 배당금, 임대료, 로열티)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식, 주택, 채권, 예금 등)을 상속받은 계층이 노동력밖에 없는 계층보다 갈수록 더 많은 부를 점유하게 된다.
β(자본/소득 비율)가 높을수록 ‘전체 소득 중 자본의 몫’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10%는 1910~1920년대에는 국민소득의 45~50%를 점유했다. 이 수치는 1950년대부터 35% 내외로 감소했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치솟아 100년 전의 수준으로 복귀하고 있다. 피케티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21세기가 저물기 전에 중산층이 몰락하고 과거 세습 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세계 자본/소득 비율은 2010년 450%에서, 2050년 550%, 2090년 700%에 근접할 것으로 예측했다.
피케티에 의하면 이러한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경제성장률과 인구증가율뿐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2%대의 저성장 체제가 구조화되고 있으며, 산업화이후 세계경제 성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해 온 인구증가율 역시 정체되고 있다.
2050~2100년에는 인구증가율이 (-) 또는 0 수준이 되고, 경제성장률도 1%대로 하락할 것이다.
노인 인구의 비중이 커지고 있고, 이는 소비보다 저축률을 높이고, 저축은 다시 자본으로 전환되어 전체 자본의 규모를 확대시킨다. 이처럼 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저축률이 상승하면 자본/소득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이에 더해 자본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돈(자본수익률)이 일해서 버는 돈(임금 등 소득=경제성장률)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따라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일하지 않고 과거의 돈에 의탁하는 경향이 심화된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은 더욱 지체되고, 자본/소득 비율은 더 상승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더욱이 자본의 분배는 소득의 분배보다 더욱 불평등하다. 결과적으로 세습 자본주의가 재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이 갈수록 소수의 손에 집중되며 어떠한 자연적 제약도 없다. 그 결과 자본수익률 하락으로 극심한 자본 간의 경쟁이 전쟁이 발발하든지, 또는 자본의 몫이 증가하여 노동 측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경제 메커니즘 스스로 불평등을 제어할 수 없으므로 피케티는 진보적 조세정책으로 소득을 재분배하자고 제기한다.
소득 상위 1%에 대해서는 최고 80%의 한계세율을 적용하고 전 세계의 자산에 연간 5~10%까지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한다. 이는 부자들이 다른 나라로 자산을 빼돌릴 수 있으므로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자본세는 국가의 재원 조달이 주목적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고 금융 및 은행 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전 세계 금융자산 보유실태에 대한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피케티는 협력을 거부하는 조세피난처를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금융자산에 자동화된 신고체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피케티의 진단과 해법은 매우 온건하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건드리지 않고 생산성을 뛰어넘는 초고액 연봉 세습된 자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진보적 조세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불평등의 원인인 경제의 금융화와 자산소득의 증가에 대한 처방은 없다. 이러한 금융화를 주도하는 세력관계의 재편은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도 별로 없다.
감세와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다. 감세로 국가 재정이 축소되어 사회복지 재원이 사라졌고, 민영화로 공공의 부(통신, 방송, 에너지, 교통 등 독점적인 기간산업)가 헐값에 민간의 부로 전환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불평등의 해소방안도 진보적 조세와 함께 민영화의 대안으로 공공화,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혼합경제가 검토되어야 한다. 시장경제 자체가 불평등을 양산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보완 없이 불평등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피케티가 실현 가능한 것부터 접근하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큰 그림을 통하여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