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풍광(本地風光)
내 나이 이십대 초, 그러니까 사미계 받고 군에 가기 직전 잠시 종로 대각사에서 지낼 때다. 그 당시 나보다 출가 나이가 훨씬 많은 어느 선배스님에게 내 말 못할 속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스님에게 결례를 무릎 쓰고 단도직입으로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나중 생각해 보니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때는 혼자 감당이 서지 않았고, 그렇다고 스님께 말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평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선배 스님께 믿고 말했던 것이다.
“스님, 저는 요즈음 예쁜 처녀에게 장가가고 싶어요. 불도를 닦아도 장가가서 살면서도 가능하잖아요.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함께 살며 부처님 가르침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간절해집니다.”
“그래, 그럼 장가가면 되잖아.”
너무나 쉽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마 저는 어쩌면 장가갈 수 없을지도 몰라서요. 왜냐하면 우리 스님을 여기에 혼자 계시게 하고 내가 장가들어 어디로 훌쩍 가버리면 스님이 얼마나 외로워하고 섭섭하시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장가가서 우리 집에 와서 사시라고 하면 될까요. 안 되겠지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틀림없이 내가 장가가면 스님이 허전해 하고 속으로 크게 실망하고 슬퍼하실 텐데요.”
내 말을 다 듣고 난 그 선배 스님은 나를 이상한 친구라고 눈을 흘기고는 훈계 겸 핀잔을 주었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고 또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스님을 생각하여 못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투였다.
“너의 스님이 너를 낳아준 부모냐? 아니면 수십 년 함께 살아서 정이 푹 들기라도 했느냐? 어제, 머리 깎은 새파란 친구가 언제 스님과 정이 들었다고 스님이 불쌍해서 지가 가고 싶은 장가를 못 간다고 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의 일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 선배 스님 앞에서 쩔쩔매던 나의 초라한 모습이 그대로 선연히 떠오른다. 사실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일이기에 먼저 웃음부터 나오지만 그 당시로서는 장가도 가고 싶었고 스님 곁을 떠나기도 싫었다. 나는 혼자 속으로 끙끙거리며 갈등을 심각하게 겪었다. 스님과 헤어질 수 없다는 생각, 비록 어린 철부지 내 마음이었음에도 저절로 속에서부터 우러나왔다. 지어먹어서 만들어진 억지생각이 아니었고, 가슴속 저 밑에서 마치 샘물처럼 흘러나왔던 생각이었다. 내가 예쁜 색시 얻어서 스님 곁을 훌쩍 떠나면 스님이 외로워할 것 같아서 나 혼자 속 갈등을 겪으며 몸부림쳤고 결국은 스님이 애처로워 나의 발길은 떨어지지 않았고 끝내 장가도 갈 수 없었다.
사실은 그 당시 어느 여대생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그녀는 전북 군산에 있는 대학생이었는데, 글을 잘 썼고 시를 많이 외고 있어서 무척 운취가 있고 정감도 많았다. 어느 날 그녀와 만나서 인생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게 되었고, 그 뒤 다시 만나게 되어 인생과 불교이야기가 점차 길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만나는 횟수가 한 번 두 번 늘어나다 보니 그만 내 가슴에서 이성에 대한 애정이 살며시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를 만나러 군산에서 밤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가 어디 마땅한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곤 했다. 나를 만나러 서울까지 왔지만 내가 머물고 있던 절로 갈 수도 없고, 어디 음식점이나 제과점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우리가 잠시나마 머물 수 있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대각사 옆 종묘에 들어가 한 바퀴 빙 돌고는 그냥 왔던 길을 되짚어 서울역에서 군산행 열차에 다시 올랐던 것이다.
아무튼 내면의 진통과 갈등, 번뇌 속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예쁜 그녀 만나서 장가가는 꿈같은 일은 단념하고 말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못하는 것도,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분명 고통이다. 그리고 기쁨이나 고통, 그 모두는 인간의 삶이고 성숙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진지한 과정이라고 하면 누구나 내 주장을 순순히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것(인간의 오욕이나 철정까지도)을 ‘본지풍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히 그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느 것 하나도 따로 버리고 취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또 모든 일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생각해 보면 크나큰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로 버리고 취할 것이 도무지 없다는 말이다.
『벽암록』제24칙에 ‘만행문중 불사일법(萬行門中 不捨一法)’이라는 짧은 구절이 있다. 나는 ‘인생살이 순간순간 닥치는 온갖 일에 따로 취사선택의 분별심을 갖지 말고 그 모두를 크고 넓게 수용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가 바로 이 구절에 들어 있다고 보았다.
본지풍광, 과연 본지풍광이 진정한 뜻은 뭘까? 인간 무명의 내용이자 그 속성인 오욕(五慾)이나 칠정(七情)이 본심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일어나는 오욕칠정을 잘 조절하여 원동력으로 삼으면 오히려 바람직한 인간세상을 만들어 가는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언뜻 떠올려보게 된다. 아무튼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구의 해석은 제각각일 수 있으나 근본원리는 각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각도 그러한 뜻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그때를 되돌아보면 지금이나 그때나 스님은 항상 나를 지켜 주었고 인도해 주었다. 부족한 나를 출가수행자의 길로 이끌어준 스님의 자비가 나를 애욕의 파도 높은 바다를 무사히 건너게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스님은 내 인생에 결정적인 의지처였고 삶이었다.
이제 수십 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그 의지처가 어느 한순간 와르르 무너졌고, 그로 말미암아 내 공허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공허한 내 심정의 일단을 표현했던 구절이 공책 갈피에 끼어 있기에 이 글의 말미를 삼는다. 2543(1999)년 6월 17일(목), 새벽예불을 마치고 쓴 글이라고 조그맣게 부기되어 있다.
경모(敬慕)
스님이 보고 싶다.
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한지 살과 뼈가 따로따로 아프다.
나는 감당하지 못해 그만 몸져눕는다.
낮이나 밤이나 누워서 꿈을 꾸었고
그 꿈길에서도 스님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스님이 너무나 보고 싶다.
잠을 자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스님, 스님 불러보기도 한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소리내어 스님을 불렀고 두리번두리번 스님을 찾았다.
꿈속에서 울었는지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아 어둠 속에서 울었는지
도무지 모를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가며 스님을 찾았다.
나는 분명 실성한 사람.
제 정신 아닌 중증의 병자였다.
훤한 낮에도 스님이 보고 싶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구름을 보고 풀과 나무를 보아도
온통 스님 생각이다.
그 모두가 스님 모습으로만 보이는 나는 정녕.
계절이 바뀌고
꽃이 바뀌고 잎이 달라져도 심상하기만 했고
스님 찾는 나의 슬픈 공허는 가을하늘처럼 높아가기만 했고
아득히 멀어져도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커가는 중이었다.
나는 사실 스님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 생을 그만 종결짓고 싶었다.
바로 그 날, 그 시간
스님 육신은 다비로 다없어지고
새벽달은 조는 듯 멈추어서 희미한 빛을 다비장에 내리고 있던 순간.
남은 몇 점 뼛조각마저
기어이 삼키려는 불길만 이글이글 기염을 토할 때
그 불길 속에 조용히 엎드려 나머지 뼛조각을 안고 싶었다.
넉넉히 삼분이면 다 안을 수 있다는 계산도 했다.
그렇게 했다면 병자처럼 아픈 나의 그리움도 벌써 끝났을 텐데.
하지만 왜 이렇게 스님이 보고 싶은지 아직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그것도 무슨 인생의 비밀일까.
나무보현보살마하살
광덕스님 시봉일기 3, 구국구세의 횃불, 지은이 송암 지원 스님, 도피안사
첫댓글 본지풍광을 사전으로 찾아보니 본래 부처로서의 면모라고 하네요. 인간의 오욕 칠정까지도 부처로서의 본모습으로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것이라면 지원스님께서 장가 가고 싶었던 그 마음까지도 본지풍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님을 공경하고 사모하는 그 마음은 역시 본지풍광이고요. 지원스님의 큰스님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 정말 큰스님께 대한 효성이 대단하신 송암스님...
아랫 글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그 마음이 절절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이제는 큰스님을 보내드리셨겠지요, 아마도. _()()()_
겉모습, 말만 보고 속지 마
... 겉모습, 말 너머의 세계를 항상 보는 습관을 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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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 _()()()_
말만 그립다 보고 싶다 하기는 참 쉬워요. 하지만 그리운 삶을 사는 건 전혀 차원 다른 문젭니다. 정말로 스승이 그렇게 그립다면 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맨날 신도들 앞에 스승 그립다 소리만 하면 될까요? 스승님 떠난 한두 해는 모르지만, 십년이 넘어도 그리움 타령만 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그리우면, 그리운 이가 좋아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구나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는 인연이라면 더욱 그래요. 그래야 그리움이, 내 '애욕'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리워해봐야, 내 욕심 내 집착이 되고 맙니다.
말만 많은 그리움, 되지 마십시다...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그리움에는 책임이 따릅지요
공짜 그리움은 없습니다. 특히 남앞에서 그립다 운운 할려면, 그 말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워하는 이가 있고 그리움이 온통 나를 태우는데, 어찌 내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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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진짜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을 노래할려면, 유행가만 부르고 있으면 아니 됩니다. 그리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요
성철스님의 법을 따르는 몇 곳의 절에 가면 스님의 모습은 잘 안 느껴지고 무서운 법만 살아있는 모습이 아쉬운 것과도 같은가요. 책임이 따르는 하나하나의 행동들! 참회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효자 중 제일 못난 효자가 '사후 효자'지요
부모님 죽고 나서 이 불효자가...하면서 엉엉 우는 거지요
가슴을 집어 뜯으며(
)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사람들은 정말 효자 났구나(
)고 하시지요... 하지만 사후 효자는 아무 쓸모 없어요
그저 내 한풀이 하는 게 사후 효자입지요...
살아 계실 때 잘 해야한다고 맛있는 것 있으면 꼭 포장해서 사 오는 분을 보았습니다.내 한풀이 사후효자..._()_
송암스님의 말씀이 진실이라면 두 스님은 인연이 아주 깊으신가 봅니다. 그리워만 하지 말고 책임을 다하기...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