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디오 신규사업을 언제까지 방기할 것인가?
- 공동체라디오협의회가 최시중 위원장에게 드리는 항의서한 -
최시중 위원장님!
며칠 전 방송통신위원회는 서울시를 수도권 영어FM사업자로 선정하셨더군요. 지난 5월 2일, 밀실에서 영어FM 개국을 위한 기본 계획을 심의·의결한지 꼭 두 달만입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발 빠른 행보입니다. 영어FM라디오 심사기준이 확정된 5월 30일로부터는 불과 한 달만의 쾌거입니다. 온 국민을 촛불의 광장으로 내몰았던 쇠고기협상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경쟁과 효율의 철학이 다시 한 번 빛을 본 탓이겠지요.
한데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영어 FM과는 너무나도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라디오입니다. 시범사업만 4년째입니다. 공동체라디오의 법제화가 이뤄진 지난 2006년 이후로도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군다나 시범사업자들과 신규 사업을 준비하는 공동체의 요구에 밀려 정규사업을 약속했던, 지난 해 11월로부터도 이미 8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직까지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라디오 사업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똑같은 라디오를 추진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영어'와 '공동체'에 대한 현 정부의 철학 탓인가요? 그도 아니면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하나는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들'이기 때문인가요?
최시중 위원장님!
혹시 공동체라디오에 대해 들어는 보셨는지요.
공동체라디오는 기초자치지역을 권역으로 하여 방송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주민 참여 매체입니다. 2005년 4월부터 전국 8곳의 시범사업자들이 방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라디오는 시범사업 3년 동안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지방자치에 기여해왔고, 지역민들이 방송에 직접 참여하면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습니다. 또한 사회에서 소외 받는 사람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등 공동체라디오의 도입 취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갈수록 상업화되고 독점화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공동체라디오는 이처럼 지역주민 참여와 소수자 참여를 통해 미디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이에 많은 지역에서는 공동체라디오의 취지에 공감하고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여 동안 공동체라디오를 준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들이 정부 기관의 책임방기와 무관심으로 인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2007년 11월 방송위원회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정책방안과 사업추진의 일정을 발표하였습니다.
몇 가지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1) 2007년 12월 중으로 지역별 가용주파수 사전수요조사를 실시하고
2) 2008년 3월 신규사업자를 공모한 다음
3) 2008년 6월 공모사업자에 대한 심사와 선정 작업을 마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동체라디오를 추진하고 싶은 지역에서 스스로 가용 주파수를 찾아오지 않으면, 사업자 공모 신청 자체를 할 수 없게 하는 등 주파수 관리와 분배의 책임을 공동체에 전가했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무기관이 찾아야할 주파수를 지역공동체가 직접 조사하고 찾아야 한다니요. 더군다나 이번 영어FM 사업과는 너무나 딴판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방통위에서는 영어FM 주파수를 찾기 위해, 방송발전기금 운용계획까지 변경해 11억원을 주파수 탐색에 투자하셨더군요.
어찌됐건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지역에서는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의의와 희망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비를 털어 주파수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면 나온다던 주파수 결과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입니다.
담당부서에 전화를 하면 결과가 곧 나온다, 지금 검토 중이다 하고 차일피일 하더니, 최근에는 서류를 검토해보지도, 검토할 시간도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더군요.
정부 정책의 집행과정이 도대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사업지연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차일피일 일정을 미루고, 정책의 일관성도, 계획도 없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 정책을 집행할 의지가 있는 것입니까? 그동안 공동체라디오를 염원하는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의 간절한 요구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헤아리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습니까?
그간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 과정에서도 정책상 많은 문제들이 제기 되었습니다. 특히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공적지원 구조의 미비와 낮은 출력 등은 그동안 수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 지적되어 왔습니다. 비영리로 운영되어야할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공적지원을 줄이기 위해 공동체라디오마저도 광고경쟁으로 내몰고, 500m~1km 밖에 가지 못하는 1W라는 출력이 너무 낮아 지역방송을 할 수 없다며 출력을 올려달라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도 번번이 묵살해 왔습니다.
그동안 영어FM사업의 일방적 추진과 공동체라디오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인 일련의 행태는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기만행정이요, 더 나아가 공공의 자산인 주파수에 대한 국가의 월권적 독단 행위이며, 국민의 기본권으로서의 방송접근권과 참여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 행위입니다.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추진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여러 지역 주체들은 공동체라디오협의회를 구성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체라디오 정책을 올바로 수립하고 추진해 갈 수 있도록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며, 방송통신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공동체라디오 가용주파수 검토 결과를 즉각 발표하라!
둘째, 비영리, 공익적 관점에 입각한 공동체라디오 정규사업을 조속히 시행하라!
셋째, 졸속적인 영어FM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공동체라디오 주파수를 확보하는데 적극 나서라!
넷째, 공적지원 확대와 출력 증강 등 공동체라디오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
이와 같은 요구가 조속히 시행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법적인 소송을 비롯한 가능한 범위의 모든 행동을 취할 것이며, 이에 따르는 모든 결과에 대해 공동체라디오 사업을 방기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특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엄중 경고하는 바입니다.
덧붙여 위원장님이 그토록 강조하시는 '효율'의 가치가 매사에 능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소통은 풀뿌리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며, 풀뿌리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디어가 바로 공동체라디오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제라도 모든 정책추진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국민과의 소통에 더욱 신경써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2008년 7월 17일
공동체라디오협의회(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