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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
고린도 교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곳이 또 있을까? 동시에 교린도교회처럼 문제가 많았던 곳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런 교회를 여전히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왜 바울은 그런 교회를 향해서 감사하고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는가? 공주야! 누구나 잘해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아빠도 처음 신앙생활에 입문 했을 때 하나님께서 세계적인 지도자를 붙여주셔서 기라성 같은 분들을 닮고 싶은 적이 있었다.
Is there another place where Corinth received a lot of God's grace like the church? At the same time, was there a place that had many problems like the Kyorindo Church? If so, what is the basis for saying that such a church is still a church? Why is Paul grateful for such a church and still looking forward to it? Princess! Everyone must have had a time when they wanted to do well. When my father first entered his religious life, he also wanted to resemble people like Giraffe because God attached him to a world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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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는 이 정도는 돼야지 하면서 그 양반들 목소리까지 그대로 따라서 했었구나. 수 많은 날을 꼬박 새면서 강의 tape를 녹음하던 찐빵 시절이 그립구나. 공주야! 바울 샘은 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에 약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사역하였단다(행18:11). 그가 고린도를 떠난 후 교회에 문제들이 발생했고, 바울은 편지로 교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여러 오해의 질문을 만들었고 교회는 바울의 답을 요청하였다.
A scholar was supposed to be like this, and he copied the voices of those nobles. I miss the days when I spent countless days recording the lecture tape. Princess! Paul stayed in Gorin Island for about a year and a half during his second mission trip, building a church and serving (Act No. 18:11). After he left Gorin Island, problems arose in the church, and Paul tried to correct them with a letter. However, his letter created a number of questions of misunderstanding, and the church asked for Paul's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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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교회의 또 다른 문제 상황들이 글로에의 집 사람을 통해 바울에게 전해진 가운데 발신자와 수신자 언급과 문안 인사로 시작한다(1-3). 이어 수신자로 인해 감사하고 있음을 언급하는 내용을 가만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박해자 바울을 자신의 뜻에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불러 쓰시고, 가망 없는 죄인이던 고린도 인들을 구별하여 거룩한 성도로 불러주셨다. 그것은 자기 맘대로 세상 방식을 추구하며 살던 삶에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하나님께 구별되어 속한 인생으로 부름 받았다는 뜻이다.
At the same time, another problematic situation of the church begins with mentioning the sender and receiver and greeting Paul through Gloe's wife (1-3). Then, please leave it alone to mention that you are grateful for the receiver. God called Paul the persecutor as the apostle of Christ Jesus according to his will, and distinguished the Corinthians, who were hopeless sinners, as holy saints. He left his life pursuing the way of the world at his disposal, and was called into a life that was distinguished and belonged to God mainly by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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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고린도 교회의 도덕적 타락은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영적 정체성을 의식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도는 지역 교회의 일원으로만 부름 받았을 뿐 아니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로 구성된 우주적 교회의 일원으로 부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의 분파적 태도는 다른 지체와 더불어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성도가 가져야 할 순종의 자세가 아니다. 특정 교단과 교파가 우월성이나 경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이 우주적 교회를 파괴하는 일이다.
Nevertheless, the moral depravity of the Corinthian church stems from not being aware of the spiritual identity given by full grace. Not only were the saints called as members of the local church, but they must have been called as members of the cosmic church consisting of all those who called the names of the Lord Jesus Christ. Therefore, the sectarian attitude of the Corinthian church is not the attitude of obedience that the saint who mainly serves Jesus should have along with other delay. It destroys the cosmic church that a particular denomination and denomination has superiority or competitive at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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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성도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은혜로 풍성한 말과 지식의 은사를 받았다. 이 은사가 공동체 분란의 원인이 되지만,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성도 안에 견고하게 되어 모두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믿음으로 잘 기다리는 자가 되는데 쓰도록 주신 것이다. 은사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현상은 이 공동체가 복음의 본질을 망각하거나 떠났다는 증거다.
The Holy Spirit of Corinth not only became a child of God through grace, but also received a gift of words and knowledge through grace. This gift is a cause of community strife, but it is a gift from God in itself. This is because the evidence of Christ has been solidified in the Holy Spirit, and everyone has been used to wait well in faith for the appearance of Christ. The phenomenon of incorrect use of grace is evidence that this community has forgotten or left the essence of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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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고 아들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 안에서 하나님 자신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존재일 뿐 아니라, 심판 날 책망할 것 없는 자로 견고하게 세워질 자들이다. 이미 시작된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가진 은사가 아니라, 오직 변치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이 완성해줄 수 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게는 어떤 은사를 주셨다고 생각하는가? 나(교회)는 바른 교회인가? 티칭에 대해 확신이 아직도 있는가?
The Saints are not only beings who are called by God's grace and enjoy abundant companionship with God himself in union with their son Jesus, but also those who will be firmly established as those who cannot be reproached on Judgment Day. Our salvation, which has already begun, is not the gift we have, but only the unchanging and faithful grace of God can be completed. What is it that makes the church church church? What kind of gift do you think you gave me? Am I (church) the right church? Are you still confident about t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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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도입(1-3)
a.발신자와 수신자:1-2
b.문안인사:3
고린도교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4-9)
a.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이유:4
b.감사 이유에 대한 첨언1, 독자를 중심으로:5-7
c.감사 이유에 대한 첨언2, 하나님을 중심으로: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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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따라(1a)
그리스도 예수의(1b)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1c)
바울과 및(1d)
형제 소스데네는(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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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에 있는(2a)
하나님의 교회(2b)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2c)
거룩하여지고(2d)
성도라 부르심을(2e)
입은 자들과(2f)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2g)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2h)
예수 그리스도의(2i)
이름을 부르는(2j)
모든 자들에게(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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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 아버지와(3a)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3b)
은혜와 평강이(3c)
있기를 원하노라(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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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4a)
너희에게 주신(4b)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4c)
내가 너희를 위하여(4d)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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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너희가(5a)
그의 안에서(5b)
모든 일(5c)
곧 모든 구변과(5d)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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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증거가(6a)
너희 중에(6b)
견고케 되어(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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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7a)
모든 은사에(7b)
부족함이 없이(7c)
우리 주(7d)
예수 그리스도의(7e)
나타나심을(7f)
기다림이라(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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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너희를(8a)
우리 주(8b)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8c)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8d)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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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불러(9a)
그의 아들(9b)
예수 그리스도(9c)
우리 주로 더불어(9d)
교제케 하시는(9e)
하나님은 미쁘도다(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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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부름 받다 be called by grace
은사를 받다 receive a gift
고린도 교회의 성도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다
The Corinthians are saints and members of the Church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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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향 미쁘신 하나님, 바울의 문안을 받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겠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흠이 없고 정결한 교회로 교제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지켜가겠습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더 깊고 충만한 인격적 관계로 성숙해져 나가게 하옵소서. 부르심에 따라 주의 은혜 안에서 공동체를 섬기고 다시 한 번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하옵소서.
Thank you for letting Paul be visited by the unwavering God and for making him a man who has nothing to reproach on the day of the Lord Jesus Christ. I will keep God's will to associate with a church that is flawless and clean. May the Corinthians mature into deeper and more full personal relationships. In accordance with your call, serve the communit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let it rise again as if the grace were inconsistent.
2026.6.1.mon.Clay
신학 비평//
문제가 많아도 여전히 교회인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은사의 풍성함인가, 아니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인가? 고린도교회는 신약성경 안에서도 가장 역설적인 공동체입니다. 은사가 넘쳤지만 사랑은 부족했고, 지식은 풍성했지만 공동체는 찢어졌습니다. 방언과 예언은 뜨거웠지만, 성찬은 가난한 자를 배제했고, 심지어 음행과 분쟁이 교회 안에 공공연히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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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바울은 편지 첫머리에서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교회”,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왜일까요?당신의 글은 그 이유를 아주 정확하게 짚습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근거는 인간의 성숙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보며 먼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은혜”를 보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고린도교회는 실패한 공동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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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울은 현재의 혼란보다 먼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중요합니다. 교회는 완성된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미완성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신이 반복한 “부르심”의 구조는 매우 탁월합니다. 바울도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 고린도교회도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 결국 모든 신앙은 자격이 아니라 “호명”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현대 교회에도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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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는 종종 은사를 성공주의로 바꾸고, 교단을 브랜드화하며, 성장과 영향력을 영적 우월성처럼 소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를 먼저 말합니다.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라고 주어진 선물이지, 자기를 과시하라고 준 계급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이 지적한 이 문장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정 교단과 교파가 우월성이나 경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주적 교회를 파괴하는 일이다.” -
바울에게 교회는 지역 조직이기 전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의 연합체입니다. 교회는 자기 이름을 증명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함께 부르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얼마나 자주 “우리 교회”, “우리 진영”, “우리 교단”을 절대화합니까? 고린도교회의 분파주의는 사실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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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공동체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분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쁘도다.” 결국 고린도전서 서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인간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나(교회)는 바른 교회인가?” “티칭에 대해 확신이 아직도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사역의 효율을 묻는 게 아닙니다. 은사가 아직 살아 있는가, 아니면 자기 확신만 남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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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에서 인상적인 것은, 젊은 시절 “세계적인 지도자”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밤새 tape를 녹음하던 기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처음 사랑”의 흔적처럼 읽힙니다. 신앙의 본질은 거대한 성공 경험보다, 다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투성이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무너진 공동체 속에서도 여전히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