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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르다 | ||||||||||||||||||
[홍성담 소설-첫회] 同行 - 유다와 예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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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르다’ 그이가 해면을 빨아서 한번 입술에 적시더니 곧 진저리를 치고 나서 머리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며 아래쪽으로 숙였다. 그이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번졌다. 피는 강한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도록 하얗게 반짝거렸다. 하늘에 둥 떠오른 오전의 태양 빛은 언덕의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릴 듯이 강했다. 유다는 골고다 언덕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왼편 언덕 올리브 나무 아래 풀숲에 납작 엎드려 예수가 이곳까지 끌려와 십자가에 매달리는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몸을 숨기기 위해 갈대 잎으로 엮은 거적 쪼가리를 주워서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쓴 탓에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 거적 쪼가리도 누군가가 시체를 싸는 용도로 썼다가 버렸던 것이 분명했다. 가끔 개미가 목덜미까지 올라와 물어뜯었다. 건너편 언덕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을 몰래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이마를 땅에 몇 번이고 박았다. 그의 얼굴엔 깊은 절망이 깔려 있었다. 군중들은 결국 그이의 죽음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물론 명색이 제자들인 우리들마저 모두 어디론가 도망가 숨어버렸는데 군중들이 그이의 죽음 앞에 나서서 분노할 리가 없었다. 군중들은 우매하고 모두 겁쟁이들뿐이다. 그이는 이런 우매하고 비겁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맡겼던 것일까. 며칠 전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만해도 군중들은 우리 일행을 향해 환호성을 외쳤다. 그들은 나귀위에 앉은 그이를 큰 소리로 부르며 그이의 옷자락이라도 서로 먼저 만져보려고 난리를 쳤다. 눈물을 쏟으며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군중들을 보며 그이도 안심이 되는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사타구니로 기어들어간 개미가 연한 살을 물어뜯는지 몹시 가려웠다. 저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허리춤으로 손을 넣어 사타구니를 긁었다. 허리에 맨 전대가 옆구리를 괴어 귀찮았다. 어제 만찬장의 남은 비용을 미처 계산하지 못하고 혼자서 빠져나온 탓에 전대가 줄어들지 않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언덕의 상황이 다시 어수선해졌다. 엎드려 있던 유다는 눈앞을 가린 풀잎을 손으로 제치고 숨을 죽이며 건너편 언덕을 주시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힘겹게 올려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유다는 알고 있었다. 8개월 전에 요르단 강에 숨어있던 그이를 찾아내 함께 십여일 간 머물다가 그이와 다시 갈릴리로 향했던 날, 새벽에 숲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이가 흥얼거리던 그 노래였다. 그 때 유다는 자신의 움막에 누워 날이 밝는 대로 그이와 헤어질 것을 생각하며 밤새 잠을 설치고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전날 밤 유다에게 먼저 잠을 자라며 혼자서 숲으로 올라간 그이가 새벽이 다되어 언덕을 내려오면서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이의 발자국과 나지막한 노래 소리는 유다의 움막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이는 유다를 불렀다. 유다, 떠날 준비를 하게.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세.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이의 얼굴엔 하늘에 대한 원망마저도 사라졌다. 주변을 지키던 백부장이 그이를 쳐다보며 무슨 말을 했다. 갈릴리에서부터 선생님을 시중들던 여자들 몇이 급하게 일어나 십자가 쪽으로 다가가려하자 병사들이 창으로 막아섰다. 한 여인이 몸으로 창을 밀며 십자가 밑으로 다가가 쓰러지듯 예수의 못 박힌 발등을 싸안았다. 막달라의 마리아가 틀림없었다. 그이가 이곳까지 끌려와 십자가에 매달릴 때 까지 줄곧 어머니 마리아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아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여자들 밖에 없었다. 그가 힘겹게 다시 고개를 들고 무엇인가 찾듯이 오른쪽에서부터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가 유다가 숨어 들어있는 건너편 언덕 풀숲 쪽에 머물렀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었지만 그이의 깊은 눈엔 맑고 서러운 미소가 숨어있었다. 유다는 그이의 그런 시선을 분명하게 느꼈다. 유다에게 보내는 원망조차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런 눈빛이었다. 유다는 하마터면 그가 둘러쓰고 있던 거적 쪼가리를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서서 그이를 부르며 뛰어 나갈 뻔 했다. 그는 곧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눌러 참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깊이 삼킨 속울음 때문에 어깨가 후드득 떨렸다. 그러나 아직도 한 가닥 믿음이 그에겐 남아있었다. 그동안 그이는 사람들과 함께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만들었다. 그런 그이가 저 언덕에서 하잘것없는 살인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순 없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그이가 기어코 죽어야만 한다면 이 세상은 당연히 종말의 길로 가야한다. 그렇다, 위선과 부패와 분열에 찌들대로 찌든 이 세상은 순식간에 사라져야 한다. 하늘에서 저렇게 버젓이 빛을 내고 있는 밝은 태양도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며 거짓과 위선으로 뒤덮인 저 도시들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분노의 불길에 모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이 도시에 불벼락을 내려 보내지 않고 끝까지 그이를 못 본채 해버린다면, 그이는 온몸에서 붉은 피를 짜내어 이 썩어가는 도시 예루살렘을 덮어버려야 한다. 쇠못이 박힌 그이의 손목과 발 그리고 창에 찔린 가슴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골고다 언덕 아래로 개울이 되어 흐르고 성벽에 뚫린 ‘심판의 문’을 지나 미쉬네 저택들의 정원에 활짝 핀 봄꽃들을 휘감고 ‘윌슨 아치’ 아래 고였다가 성전의 쪽문 ‘웨렌 문’을 열고 계단으로 올라가 성전 안의 하얀 휘장을, 하느님이 이 땅에 머무는 곳이라는 지성소의 하얀 휘장을 그이의 피로 온통 붉게 적셔버려야 한다. 그이는 어떻게든 결코 사람의 아들이 가진 권능을 한껏 보여줄 것이다. 저 썩어 문드러진 도시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하늘이 내린 불바다 속에서 고통스럽게 타 죽으면서 비로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유다는 그이의 죽음과 함께 이 세상이 멸절되는 광경을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봐 두겠다고 명심했다. 그러나 다시한번 그이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이 죽음에서 벗어나 줄 것을 기대했다. 그이가 죽은 다음에 하늘이 별스런 조화를 부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 바로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 그이가 하느님의 아들로써 마지막 기적을, 사람의 아들로써 마지막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를 유다는 절대 포기하지 못했다. ‘이제 당신의 진정한 힘을 보이실 마지막 순간입니다’ (계속) 홍성담/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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