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흔적.hwp
* 시애틀문학 제6집(2013)에 실었습니다*
주부의 흔적
살다 보면 이것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은 게 있는가 하면, 이것만 없다면 살겠다 싶은 것도 있다. 내 인생의 ‘이것만 있다면’ 목록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한 때는 ‘나도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중에는 ‘금배지’가 나의 소망 목록의 최상에 있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고학위의 욕심은 만학(晩學) 끝에 충족시켰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나서 가지는 소망은 그저 ‘내 아내가 나보다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것만 없다면’ 목록은 어떠한가. 이렇게 자문(自問)하고 보니 딱히 내 인생을 불행하게 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감사한다. 우선 나 자신에게 장애가 없을 뿐 아니라 장기간 몸져 누워계셨던 부모도, 나를 못살게 구는 악처(惡妻)도,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자녀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게 되는 이런 인생의 짐을 흔히 ‘십자가’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십자가’란 ‘내가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날마다, 순간마다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쉽게 말해 삶의 기준을 ‘나의 이익’에서 ‘남의 이익’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2009년 미국 시애틀에 1년간 머물면서 ‘비염의 축복’이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수년째 고통을 겪지만 이와 같은 잔병치레가 오히려 ‘큰 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축복이 아니겠는가 하는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정말 당시에는 비염만 없다면 살 것 같았다. 아침마다, 밤마다 갑작스러운 연속 재채기와 함께 쉼 없이 흘러내리는 콧물로 인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코에 스프레이만 한 번 뿌리면 괜찮은 것이다. 원인도 모른 채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이것만 없다면’ 싶었던 한 가지가 사라지자 곧 다른 한 가지가 생겨났다. 양손의 거의 모든 손가락 끝이 딱딱해지면서 쪼이고 가끔씩은 갈라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비염과 마찬가지로 이 현상도 건조한 겨울철에 심하다. 피부과에 갔더니 ‘주부 습진’이라고 했다. 내가 집안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것을 모르는 의사는 “손을 너무 자주 씻지 말라”고 하면서 피부연화제와 함께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아침저녁으로 연고를 바르고, 핸드크림을 가지고 다니면서 바르고, 손 씻는 횟수를 줄이고, 설거지를 할 때는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을 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보았지만 차도(差度)가 없다. 굳어진 손끝이 갈라지면 몹시 따갑다. ‘이 놈의 주부습진만 없다면’ 정말 살 것 같다. 아니, 훨훨 날 것만 같다. 비슷한 시기에 발바닥에도 습진이 생겼지만 연고와 크림만 바르면 굳어지지는 않고 더 심해지지도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된다.
비염과 마찬가지로 주부 습진도 한 방에 때려잡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오래도록 ‘더불어 살(共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끈질긴 ‘친구’이다. 한 번은 이 습진을 쑥뜸으로 일거에 퇴치하기 위해 손가락 끝마다 쑥뜸을 떴지만 화상만 입고 말았다. 의사는 손톱 밑에 주사를 맞으면 빨리 낫는다고 했지만 겁도 나거니와 이 ‘친구’와 한동안 더 사귀어 볼 심산으로 버티고 있다. 그나마 손가락 전체나 손바닥으로까지 번지지는 않고, 색깔도 붉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손가락과 손바닥 전체에 붉은 습진이 발생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많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환우들이 있는 것이다.
주부 습진을 단번에 퇴치할 수 없다면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마치 한국이 ‘말썽꾸러기 동생’ 북한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과 같다. 짜증이 난다고 해서 ‘극단적인’ 대응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주부 습진 관리의 요체는 긁지 않고 뜯지 않는 것이다. 습진으로 굳어진 피부에 연고를 바르면 자연스럽게 부스러기가 생기고 껍질이 벗겨지는데 이 때 긁거나 뜯으면 악화된다. 안 그래도 의사가 “뜯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고, 건드리면 말끔하게 정리될 것 같은데 안 건드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 고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잘 참다가 기어이 건드려서 ‘참화(慘禍)’를 입고 마는 시행착오가 연속된다. 내가 성숙된 성품의 소유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바로 주부 습진 관리이다.
주부 습진이 설거지로 인해 생긴 것이라면 ‘주부의 흔적’으로서 내게는 일종의 영광이다. 나는 벌써 몇 년 전부터 ‘남성전업주부’를 자처하였기 때문이다. ‘主婦(주부)’가 아닌 ‘主夫(주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소임을 다하다 보면 그에 따른 삶의 흔적이 남는 법이다. 내 돌아가신 어머니의 ‘갈고리 손’이 바로 그러한 흔적이다. 평생을 교사로 봉직한 사람에게는 만성 인후염이 그런 흔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평생을 기독교의 복음 전도자로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이라면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장 17절)이 남을 것이다. 바울 선생에게는 육체의 지병(持病)도 있었는데 선생은 그 병이 자신을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이해했다.
‘이것만 있다면’의 소원 목록이 다 이뤄지지 않는 것에도, ‘이것만 없다면’의 기도 목록이 다 응답되지 않는 데에도 뜻이 있나 보다. 나의 소원이 다 이뤄지고 나의 기도가 다 응답된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의 소원과 기도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세계 최고 부자의 소원과 기도 중에도 이뤄지지 않은 게 있는가 하면, 노숙자의 소원과 기도 중에도 실현되는 게 있기 마련이다. 결국 인생은 공평한 것이다. ‘주부의 흔적’인 주부 습진의 의미를 묵상하는 중에 떠오르는 단상(斷想)이다.
첫댓글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이것만 없다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저의 남편이 '화장실 출입만 스스로 한다면'
이런 바램은 늘 갖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하나님이 저에게 건강을 주시고 그렇게 살아라 하는가 보다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니까, 수고하셨습니다.
병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보신 교수님의 생각이 제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
김윤선 회장님, 이경자 샘, 감사합니다. 손의 습진이 정말 끈질기네요. 습한 여름에는 괜찮을까 했더니 정도의 차이일 뿐 여전히 괴롭습니다.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게 하는 녀석입니다. 경자 샘, 남편이 화장실을 스스로 출입하지 못하지만 함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죠? 저는 얼마 전에 갑자기 아내가 먼저 떠나는 상상을 해 보았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지옥 같았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배우자에 대한 최고의 의무인 것도 같네요~~
서로가 끔찍한 삶을 살지 않도록 모두 건강합시다. 하하. 감사합니다.
김윤선 회장님, 감사합니다. 날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건조해지니 습진이 더 심해지네요. 김밥 옆구리 터지듯이 손가락이 갈라터질 때는 정말 괴롭네요~~피부과를 옮겨보았지만 역시 바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