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총성·폭탄 연기속 '살신' 참스승
15명이 사망한 콜로라도주 리틀턴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현장에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인명을 구하기 위해 헌신한 영웅들도 많았다.
워싱턴 포스트가 22일 보도한 이들의 미담은 아수라장에도 참스승이 있었음을 일깨웠다.
- 데이브 샌더스는 여학생 야구팀 코치. 그는 총성이 울리자 피하지 않고 복도로
달려나갔다.
복도는 폭탄 연기로 자욱했고 그 속에서 학생들이 우왕좌왕했다.
그는 복도에 우뚝 서서 학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그러다 두발의 총성이 들렸고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동료 교사 켄 프리젠은 교실을 뒤져 응급처치 훈련을 받았을 법한 보이스카웃
출신의 고교 2년생 아론 핸시(17)를 찾아냈다.
핸시는 아디다스 티셔츠를 찢어 붕대를 만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대피를 멈추고 모여들었다.
너도나도 옷을 벗었다. 샌더스의 상처를 감싸기에 충분했다.
- 핸시는 교실 전화기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다른 전화로 간호사를 불러냈다.
핸시는 간호사가 아버지를 통해 지시하는 대로 응급처치를 했다.
다른 학생들은 샌더스의 지갑에서 아내, 딸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찾아내 샌더스의 눈앞에 흔들었다.
-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살아나야 한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었다.
샌더스는 『안될 것 같아』하며 낮은 신음을 뱉었다.
학생들은 『살 수 있어요. 조금만, 조금만 참아요』라며 매달렸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다. 경찰 기동타격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밖으로 대피하라』고 했다.
핸시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샌더스는 이내 눈을 감았다.-4/23/99/미주한국 -
* 교내 총격사건은 인터넷 시대의 비극
- 덴버 컬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2-3년 사이 미국 교내 총격사건은 점점 더 자주, 더 잔인한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다.
총으로 분풀이를 하는 아이들, 학교에서 조차 폭력의 공포를 감수해야 하는
아이들이 자라서 이룩할 사회가 앞으로의 미국 사회다.
덴버 총격사건은 미국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켜보라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용의자들의 치밀한 계획과 폭발물의
규모다.
두 청소년은 총기 뿐 아니라 부비트랩까지 준비하면서 대량살상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 후 수사관들은 용의자들의 집과 차량에서 시한폭탄, 파이프 폭탄등 30개의
폭발물을 발견했다.
이 아이들이 어디에서 이런 폭발물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해답은 인터넷이다.
인종증오를 부추기는 웹사이트부터 갖가지 폭탄 제조법을 자세히 소개하는 웹사이트들이
인터넷에 너무 많이 올라있다.
인터넷의 음란물도 문제지만, 그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이들을 비뚤어진 방향으로
세뇌시키고, 폭력을 고무하며, 대량 살상법을 소개하는 반사회적 웹사이트들이다.
- 청소년들에게 뚜렷한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다면 문제는 덜 심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도덕교육은 실종된 상태다.
게다가 결손 가정이 늘면서 분노에 찬 청소년들이 양산되고 있다.
무책임한 웹사이트들은 혼돈에 찬 아이들의 손에 살상무기를 마구 쥐어주는
꼴이다.
더 흉폭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 정부는 인터넷 정보에 대한 법적 여과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부모들은 인터넷 앞에 앉은 자녀에 방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 지를 반드시 감독해야 한다.
부모 세대가 접했던 정보와는 전혀 다른 정보의 세계가 아이들 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모의 관심은 자녀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 아울러 다시 한번 지적되어야 할 것은 느슨한 총기 규제다.
청소년이건, 정신질환자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현실이
사건의 빈도와 무관할 수 없다.
소속된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이 불특정다수에 대한 증오로 폭발,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정부가 총기규제를 강화하고, 소외감이 파괴 행위로 연결되지 않도록 학교와
가정이 문제 청소년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육감은 존재하는가 ?
- 사람에게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을까 ?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지는 것 이외에 6번째 감각이 있느냐라는
오랜 의문에 대해 실재한다고 믿게 된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육감은 일종의 초감각이나 본능이 아니다.
오히려 전부터 존재가 알려져온, 언제나 묵묵히 제 할일을 하고 있는
면역체계가 제 6 감각기관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이들의 견해에 다르면 면역체계는 인체에 침입한 미생물과 대적하여
싸우는 기제만이 아니다.
인체 안팎의 여러 정보들을 수집하여 그것들을 두뇌로 보내줌으로써 동물이나
인간으로 하여금 특정한 방법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특별한 바이오 센서 네트웍이라는 것이다.
- 큰 소리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거나 갑자기 불이 번쩍이면 눈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체 곳곳에 퍼져있는 면역체계의 송신소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상황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몸이 떨리거나 계속 잠을 자는 것 등은 아프거나 기운없을 때
나타나는 일반 증상들이 실상은 면역체계가 수동성, 공격성, 성적 매혹 등
질병과 전혀 관계없이 일으키는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것.
- 어떤 실험에 의하면 여성의 두뇌가 누구와 데이트할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면역체계다.
유니버시티 오브 콜로라도의 신경과학자 스티븐 마이어는
『우리는 면역체계는 본질적으로 감각기관이라고 본다.
면역체계는 인체 전반에 대부분의 감각기관보다 훨씬 더 많이 퍼져있다』
고 말하고 있다.
-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뇌의 의사가 면역체계에 전달됨을 알아왔다.
백혈구중 스트레스 호르몬 같은 특정 뇌 화학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반대로 면역체계가 뇌에 의사를 전달하는지는 알아내기가 어려웠는데
최근 발달된 기술로 면역체계에서 분비된 미량의 화학물질이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할 수 있게 됐다.
- 열이 나고 몸이 떨리고 계속 졸음이 오고 성욕과 식욕이 감퇴하는 발병 행태는
보통 감염에 수반되므로 많은 의사들이 질병과 싸우려는 인체의 노력과 함께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동안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체는 아플 때면 일부러 이런
행태를 애써서 더 조장한다는 것이다.
- 즉 질병에 대한 반사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뇌에 의해 조정되는,
동기가 확실한 행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험용 동물을 아프게 만들어 놓고 체온이 필요한만큼 올라갈 수 없는
추운 방에 넣어놓을 경우 그 동물은 체온은 올리기 위해 자기가 아는 온갖
행동을 다 한다.
이는 고도의 감각체계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바탕을 둔 행태라는 것.
-면역체계는 또 동물과 인간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면역체계의 어느 부분엔가에서 상대방이 탐지해 분석할 수 있는 냄새가
나게 되어 있어 쥐의 경우 면역체계의 구성이 자기와 가장 판이하게
다른 놈을 좋아한다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여러 남자가 여러 날 입었던
티셔츠의 냄새만 맡고 사귀어 보고 싶은 남자의 옷을 선택하게 한 결과
거의 언제나 선택된 것은 자기 자신과 면역체계가 가장 크게 다른 남자의 것이었다.
- 의사들은 장차 면역 세포 검사만 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두뇌 상황을 진단해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르며 우울증이나 기타 두뇌질환 관련 약은 멀리서 찾을 것 없이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중에서만 찾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 4/23/99/미주한국 -
* 한국의 지금의 교사들의 악몽
- 개학을 기다리는 초중고 교사들은 어느때보다 착잡하고 두렵다.
사실 교사들에게는 지난 한해가 악몽같았다.
최근 한 교사가 피시통신에 어렵게 꺼낸 하소연이다.
“아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손을 드는 아이들은 한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서, 아니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다.
이전에만 해도 60명 아이들의 눈빛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사실 재미있는 것들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도 하고, 듣는 데 약간의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님 얘기해 주세요’해서 시작한 진지한 이야기는
‘선생님 썰렁하네요’로 끝났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라도 해서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최근에는 선생님이 말하려 하면 아이들이 아예 막아 버린다.
수업하다 시간이 남아 무얼 할까 물으면 ‘잠 좀 자게 해달라’고 한다.”
- 학교에서 ‘왕따’는 아이들 사이에서만 있는게 아니다.
지난 한해 학교와 교사들은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아이들의 마음이 학교에서 떠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학교의 구실을 크게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로 나눌 때, 학교는 교과지도 면에서 꾸준히
사교육에 밀려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수업은 늘 재미없고 따분하기만 하다.
입시와 관련된 중요한 수업이고 진학에 관심있는 아이들이라 해도 학교보다는
학원이나 과외에서 더욱 열심이다. 학생들은 전과 컴퓨터 등을 통해 최신의
다양한, 그리고 개방된 문화를 익히 보아 왔다.
-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닫혀 있다.
전혀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다. 두발은 물론 신발, 가방, 양말, 스타킹까지 색깔과 규격을
규정하고 있다.
말만 교복자율화이지 대부분의 학교는 아이들의 뜻은 아랑곳 없이 교복을 입혀 놓고 있다.
심지어 추운 겨울날 교복 안에 폴라를 걸치고 싶어도 막는 학교가 있다.
“학교? 졸업장을 위한 통과장치”
- 지난해 여름 서울 송파구 영파여중에서 조원배 교사가 익명의 반 학생들로부터
받은 학교소감문 중 하나다.
“학교, 짜증나는 곳.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숨통이 막혀오는 곳.
인격을 기른다구? 난 학교에서 인격 따위가 성장해본 적 없어.
학교란 인격이 없는 곳이니까.
학생들은 인간이 아냐. 무조건 시키는 대로 복종해야 하는 병신같은 노예들.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루종일 딱딱한 의자에 견디며 앉았다 가는 곳.
(중략).
학교가, 선생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한다구? 지랄하지 말라구 그래.
우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구?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애들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를 든다구?
위선 떨지 말라구 그래. 위선이 다른 건줄 알아? 그런 게 바로 위선인 거야.
스승의 은혜 따윈 애당초 없었어.
그렇잖아?
(중략).
어둡고 칙칙한, 네모난 콘크리트 상자곽.
조그만 교실에 벌레 새끼들처럼 우글우글하게 집어넣고…,
징그러! 학교?
더러운 곳! 에이즈 병균보다 더 더러운 온갖 병균들이 득실대는 곳.
기분 나뻐! 그리고 대체 왜 이런 걸 쓰라는 거야?
어차피 이런 거 안써도 우리가 학교 싫어 한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잖아?”
- 이처럼 극단적인 반감을 갖진 않는다 해도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는 이미 졸업장을
따 진학하기 위한 통과장치 이상의 의미가 없는 곳이 됐다.
스승관 또한 비슷하다.
핵가족 아래에서 태어나 부모의 응석 밑에서 하고 싶은 대로 자랐으며 서구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예전처럼 어른이라고 해서 스승을 무조건 공경하지도 않는다.
그럴 시간 있으면 또래의 10대 스타에게 매달린다.
- 교사들은 갈수록 아이들을 통솔하기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한다.
“설상가상이 됐다.
지난 한해 동안 교사들을 향해 불명예스런 언론공세가 펼쳐졌다.
교육부도 덩달아 교사들을 더욱 옭아맸다.”
전교조 현원일 학생생활지도국장의 푸념이다.
한 교사는 이렇게 항변한다.
“‘촌지 받는 교사 신고하세요.
체벌은 절대 금지니 이것도 신고하세요.
나이 든 교사는 돈만 축내니 정년은 60살로. 맘에 들지 않는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나서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게 새정권 들어 교육부가 내놓은 정책들이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교사들의 사기와 권위는 더욱 땅에 떨어졌다.”
- 사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 1월12일에는 인천 서구 걁고에서 자율학습시간에
딴전을 피운데 대해 체벌했다고 학생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인천시 계양구 衁여중에서는 여교사가 수업시간에 잡담한다며
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려 하자 화가 난 학생이 되레 교사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부산 북구 衁여고는 담임이 체벌한다고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소동을 부렸고
결국 담임이 교체됐다.
- 서울 관악구 ꁁ여고의 이아무개 학생은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도 최근 곤욕을 치르는 선생님들에 대해 내심 고소해 하고 있다”
고 말한다.
경기 광명중의 주희선 교사는
“아이들이 내신성적 등의 문제 때문에 표현을 못할 뿐이지 은근히 교사들을
미워하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져 있다”
고 전한다.
“학교를 적대시 하는 아이들은 군사정권 시절 시위를 할 때 전경과 맞부닥치는
심정으로 교사들을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전경’에게는 방패는 물론 사과탄도 없게 됐다.
무서울 리가 없다. 무서워 하지 않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우호적이어야지, 적대적인 감정에서 무서워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가 왕따 당하는 것도 이때문이다”(현원일 국장).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요즘은 아이들이 교사를 잘 만나는 ‘선생복’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좋은 제자를 만나는 ‘제자복’이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교사들 사이에 오간다. 한 교사의 말이다. “왕따나 절도하는 아이가 있으면 담임도 자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저 하루하루를 다치는 아이 없이, 내가 매를 들지 않게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무시히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 교사들도 ‘막힌 의식’을 깨야 한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학생들을 원망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학생들에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불만은 교육부로 향해 있다.
한 교사의 불평이다.
“학교마다 여건과 상황이 다른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획일적으로
‘새물결 운동’이니 ‘수행평가’니 지시한다.
‘교육비전 2002’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교사들의 소감을 적어 보내라고 지시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숙제 하듯’ 억지로 해야 했다.”
- 지난해 9월 경기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는 교육청의 지시로 ‘열린 교육’을
한다며 7개 교실의 교실과 복도와 사이를 터버렸다.
그러나 넓어진 교육환경을 위해 학교쪽은 추가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되레 옆반의 수업 소음 때문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어렵다”고 호소했고 이내 칸막이를 다시 설치해야 했다.
교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야말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어 둔’ 열린 교육의
희극적 종말이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개발원의 한 간부는
“교사들 스스로도 문제가 많다.
교육개혁의 출발점은 교사다.
스스로 별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교육부 탓을 하고 있다.
교사들 중에는 자기 자식 학원 보내기 위해 촌지를 받으면서도 학원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동료 교사가 뭔가 알찬 프로그램을 해보려고 하면 ‘혼자 튀려 한다’며
막는 경우도 많다”
고 질타한다.
- 부천 원종고 정현숙 교사는
“물론 교사들도 문제가 있다.
관성이 된 투쟁 일변도와 무사안일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새 도약을 하는데 교육부가 디딤돌은 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교조가 합법화됐지만 학교행정 민주화의 뼈대인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는
빠져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도 심의기구일 뿐더러 학생들의 참여는 배제됐다.
사립학교에서는 자문기구화에도 실패했다.
일선 현장에서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공간이 아직도
너무 비좁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교육부의 중앙집권적 지시를 따르는데 허덕인다”
고 비판한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윤지희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교사가 과거 권위와 교육행태에 집착하고 변화된 교사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는 면도 있다.
자체 정화도 필요하다.
교육부의 책임도 같이 있다.
몇십년 동안 잘못된 관행을 묵인 내지 허용해 왔던 교육부가 공동의 책임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교사의 일방으로 몰아가면서 자신의 권위주의는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선진국처럼 교사들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해 주어야 한다.”
- 주체가 대상이 되버린 교육개혁
- 지난해 교육계는 누구나 교육개혁을 외쳤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학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한국교육연구소의 이인규 국장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여전히 교육개혁의 주체로 서지 못한채 교사들은 되레
개혁의 대상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신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부는 물론,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교육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 한겨레/2/4/99 -
* 한국의 선생님을 누가 죽이는가
- 교사들은 지난 98년을 ‘교사 죽이기의 해’라고 말한다.
교원 정년 단축과 교원수 축소는 교사가 천직이며 안정된 평생직장이라는 신화를
깨뜨렸다.
게다가 ‘교육을 위한 매’가 더이상 인정되지 않아 교사가 수업중 경찰에
붙잡혀가는 수모까지 당했다.
‘군사부 일체’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되고 말았다.
- 국가가 망쳐놓고 책임 전가한다 불만
이제는 교원 사회도 변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더 빨리 변하고 있고, 가르쳐야 할 내용도
그만큼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의 많은 교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라는 양축의 교육이 사실상 교사의 손을 떠났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교과지도는 학원수강과 과외가 대체하고, 아이들의 생활은 대중매체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새로운 교원정책의 수립을 통해 교사의 질을 높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재 작업이 진행중인 새 교원정책 수립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다시 말해 교육수요자(학부모와 학생)를 중심으로 하고, 공급자(교사와 학교)는
경쟁과 구조조정을 통해 변화하는 교육시장에서 적응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가를 중심으로 한 5차까지의 교육과정 개정과, 지역과 학교 교육과정 개념을
도입한 6차와 대별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바로 이 대목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차 교육과정까지가 마치 교사 중심이었던 것처럼 말하며 교사에게
교육 부실화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지난 6차까지도 일관되게 국가가 주체였고, 교사는 단순히 그 대리자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국교육연구소의 이인규 연구국장은
“지난날 교사들은 국가가 정해주는 교과과정의 내용과 방법에 따라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었다.
이제 와서 정부가 교육의 질이 낮아진 것이 교사들의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
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교사의 교육과정’이다.
교사가 자율적으로 학생들의 관심과 수준에 따라 교육내용을 선택하고 재구성해
가르치는 것이다.
획일적인 교과과정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맞추어 교육현장에 가장 알맞는 형태의
교육을 교사가 선택·적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의 대강은 국가, 지역, 학교 등이 정한다는 전제는 있다.
또 이들은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쟁이 아닌 다른 방안을
제시한다. 교사의 양성·임용·연수 과정에 좀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 교원정책 연구팀의 하병수 교사는
“교원양성기관의 교육과정을 현실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과
질을 높이는 지름길”
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국가가 책임을 지고 전문양성기관을 통해 전인적인 교사를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 경쟁이 교사의 질 높이는 최선인가?
물론 이런 전교조의 주장에 대해 교육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육부가 개발하는 교원정책 자체가 교사의 자율성에 바탕둔 질과
전문성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임시 교사, 계약직 교사 등을 통해 교사시장을 유연화하고, 임금과 직급
등을 차별화함으로써 교사들의 경쟁을 촉진해 교사와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런 양자의 견해차를 어느 일방으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한 교육학자는
“교사의 교육자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국가 책임하에 교사를 양성·임용·재교육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교육의 질은 단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담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최소한의 교사평가제를 통해 교사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가장 쉽고도 어려운 문제는 이것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