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한 손
김기자
자반고등어를 산다. 등줄기에 선명한 푸른빛과 적당히 염장되어있는 자태가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해서다. 뿌리박혀 온 내 고유의 입맛, 그것이 향수인 것일까, 아니면 그리움의 맛일까. 그 옛날 시골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비릿한 생선 구경도 오일장이 서야만 볼 수가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장날 고등어를 사다가 엄마가 소금항아리에 넣고 보관하는 모습이다. 바다가 먼 곳에 사는 형편이었으니 그만큼 고등어의 대접은 특별했다.
내게 고등어 한 손이란 말은 무척 가깝게 있다. 가장 작은것에서 오는 어떤 온정 같은 것이기도하다. 지금이야 그보다 좋은 것이 넘쳐 나는 세상이건만 유독 친근하고 수월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숨길 수 없다. 바로 과거로부터 잠재돼있는 내 안의 짙은 울림이 되기에 그렇다.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어릴 때 늘 듣던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다가와서다. 효도라는 것은 부모 살아생전에 고등어 한 손이라도 사다 주며 자주 찾아뵙는 일이라 했다. 그때 장성한 자식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쓸쓸한 마음을 이제야 읽는 기분이다. 귀하고 값진 것을 들고 오랜만 에 집에 찾아오기보다는 그렇게라도 자주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효도라는 가르침이었다. 오랜세월이 흘렸어도 그 말이 지금껏 생생하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나이가 들수록 더 기다려지고 보고 싶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원치 않게 큰병원 문을 드나들게 되엇다, 더구나 지방에서 서울로 방사선치료를 받기 위해 매일 가야 하는 일이란 새로운 걱정거리였다. 길에 사는 아들이 때마침 보배로 다가왔다. 통원 치료 동행을 자청한 것이다. 왕복 네 시간이 넘는 거리를 퇴근 후에 함께해 주겠다고 한다. 치료를 저녁 시간으로 배정받은 다행함도 있있지만, 아들의 지원이 얼마나 큰 감격인지 우리 부부는 놀라고 말았다.
아들은 결혼해서 우리 집 인근에 산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은 본가로 찾아온다. 손녀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제 부모를 살펴주기에 애쓴다. 내게 가장 큰 복이라면 이런 아들의 마음씀이다. 출세하고 남들보다 나은 직장에 다녀야만 자랑스러운 자식이 아니있다. 그린 이야기는 니와 거리가 멀고 상관이 없다.
아들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로 나가서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원했다. 이런 바람과는 달리 우리 곁에서 터전을 잡고 결혼하였다. 그 모습을 보미 문득문득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는 한다. 흔히들 말하기를 자식이 외국에서 살면 해외 동포요,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란 우스갯소리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말이다.
아무리 자식이라해도 고마웠다. 제아비지의 치료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보습이 얼마나 고마운지 다 표현 할 수가 없다. 곁에 살면서 자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흡족한데 제 부모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자랑이 늘어간다. 이리 큰 재산이 어디 있나 싶기까지 하다. 꼭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내 살과 피를 나누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있다.
이미 아들은 우리에게서 어엿한 독립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피부에 직접 닿는 효도에 대해서도 아직은 거론할 때가 아닌 줄 알았다. 세월에 떠밀려 부모가 되었고 남들처럼 사는 것이 내 몫인 양 알고 지내온 시간이었다. 과연 나는 자식에게 어떤 부모일까 하고 돌아보지 않았었다.
누구나 그러했으리라. 뼈가 흔들릴 정도로 아프게 낳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가며 보살펴주지 않았던가. 보상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부모 마음이란 크고 깊숙한 내면의 울림이 끝없기에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랑 내려놓지 않으리라 믿는다. 초로 의 세월이지만 그래도 자식에게 준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니 뿌듯할 뿐이다.
고등어 한 손을 빗댄 아버지의 말씀은 현답이었다. 죽은 다음에 아무리 좋은 음식과 좋은 의복을 드린다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흘려보냈었다.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쏟는 애정을 보며 돌아가신 부모님이 더욱 떠오르는 순간이다. 효도란 작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내 아버지의 말씀이 정말을 옳았다. 어쩌다가 전화를 드리면 고맙다는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남아 있는데 돌이켜보니 두 분이 사시면서 빈둥지 같은 세월을 보내시느라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싶다.
아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뒤따라오는 며느리와 손녀딸들의 잔걸음도 반갑기만 하다. 숨겨둔 것은 없지만 무엇이든 꺼내어 주고 싶다. 소소한 것에서부터 느끼는 촉감은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비릿하면서도 짭조름한 서민적인 생선, 자반고등어처럼 우리는 그렇게 포개어 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아버지가 바라시던 효도를 지금의 내가 충분히 누리는 기분에 젖어 있다. 그래서 아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끔은 과분한 생각까지 든다.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립다. 고등어 한 손이라도 자식의 손에 들려오는 기쁨을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귀한 보답으로 여기시던 모습이 아릿하게 다가온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을 터인데 그때 나는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늘도 가지런히 포장된 자반고등어 한 손을 꺼내 들며 비릿한 냄새를 따뜻한 기억으로 전환 시킨다. 마침 아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중이다. 조림으로할까, 노릇하게 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