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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1998년11월,2008년7월,2011년6월의 금강산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1998년11월,2008년7월,2011년6월의 금강산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011년 6월 17일,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 대변인 명의로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은 특구법에 따라 특구내의 부동산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정리하게 된다"면서 "특구 내 부동산을 보유한 현대아산 등 남측 당사자들은 30일까지 특구로 오라"고 통고했다.
대변인은 이어 "금강산국제관광특구가 나오고 특구법이 채택된 것과 관련해 금강산관광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의 많은 투자가들과 관광업자들이 금강산국제관광사업에 참여할 것을 적극 제기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 관계자는 17일 "오후 2시30분께 금강산에 나가있는 직원들이 북측에서 문서로 통보를 받았다"며 "관계당국이나 금강산에 투자한 다른 기업들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통고가 당분간 강경기조로 대남압박 드라이브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진단하고 있다. 語不成說이요, 言語道斷이다. 이제 이런 수법은 쓰지 말아야 하는데...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발전적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여기서 2008년 7월의 금강산을 회상해 본다.
“水作銀杆春絶壁 雲爲玉尺廣靑山 / 月白雪白天地白 山深水深客愁“(폭포수는 은절구통같이 봄절벽을 찧고 /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로 청산을 재도다 / 달빛은 희고 눈빛도 희며 천지도 모두 희고 /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근심 또한 깊도다.) 금강산을 찾았던 김삿갓의 ‘신음소리’다. 그런데 이 소리는 절경(絶景)에 대한 감탄사이다. 산(山) 곳곳이 시(詩) 그 자체이고, 감탄사의 메아리가 태고(太古)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산(山)자락엔 해금강과 삼일포가 또한 절경이다. 그 절경 속에 장전항이 있다.
지금은 고성항이라고 더 많이 불리우는 장전항은 금강산 첫 관광이 있었던 10년 전과 달리 그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군부대가 있던 곳에 금강산패미리비치호텔이 자리잡는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금강산해수욕장ㆍ고성항횟집ㆍ해금강호텔’로 이어지는 해변은 산책로로 제격이고, 특히 비치호텔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는 조화옹(造化翁)의 걸작품이다. 식당 ‘풍악’과 편의점 ‘금강봉사소’도 관광객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필자는 2008년 7월 10일 금강산 패미리비치호텔에 몸을 맡겼다. 위쪽에 있는 5동에서 내려다본 금강산과 금강산해수욕장은 황혼의 아름다움과 어둠의 아늑함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 해수욕장에서 물 속을 거닐었다. 다음날 새벽 5시 40분 쯤 방을 나섰다. 해변으로 내려와 해금강호텔 쪽으로 가려다가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정자인 영락정에서 본 사위(四圍)의 풍광은 영롱한 이슬처럼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 금강산호텔에서 금강산예술소조 가무단 공연을 관람하고 비치호텔에 도착하니 금강산골프장 관리인이 같은 호텔에 투숙한 여자 관광객이 새벽에 피살되었다고 말했다. 문득 민통선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연두색 휀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북측의 룰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가이드의 주의사항도 생각났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12일 오후 2시 경 남측 출입사무소를 거쳐 화진포 아산휴게소에 도착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기자들의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늘 17일 제헌절 아침까지 신문 방송과 인터넷에는 ‘거짓과 진실’이 가득했다. 물론 필자도 어느 것이 거짓인지 잘 모른다. 또한 주관적 소견은 있지만 표현할 수도 없다. 다만, 정해진 법은 지켜야만 한다는 말과 법을 지키는 것도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다.
1998년 11월 18일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남북 분단사에서 가장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1989년 1월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방북하여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그 후, 1998년 11월 14일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의 시험 운항을 마치고, 마침내 11월 18일에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그런데 초기엔 유람선을 타고 금강산 앞바다에 위치한 장전항까지 가서 낮에는 소형 선박으로 육지로 이동하여 관광하고, 밤에는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유람선으로 돌아와 숙박하면서 4박 5일간 진행되었었다. 그리고 10년! 금강산 관광을 성공시킨 ‘현대아산’의 노력을 만천하에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지금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고 말았다. 금강산에서 만난 아주 똑똑한 북측 사람들, 많이 상냥해진 북측 봉사원들, 열(熱)과 성(誠)을 다하는 현대아산조장(가이드)들, 관광을 시작할 때 모두 나와 즐겁게 인사하는 현대아산 직원들, 온정각 앞마당에서 떡메를 쳐 인절미를 만드는 남정네...그 많은 남과 북의 사람들, 멀리서 돈 벌러 온 조선족 동포들, 그들은 지금 일자리를 잃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누구의 것이든 존엄하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파장이 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한 핏줄임을 더 생각해야 한다. 한 핏줄이기 때문에 더 남과 북의 동족이 더 아팠다면 고인도 용서할 지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금강산관광의 조속한 재개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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