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오소호(從吾所好)!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리라!
인생은 단 한 번 살다가는 것입니다!
내 것의 소유만큼 내 삶의 의미에 집중합시다!
◈ 좋아하는 삶을 산 김득신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우려와 불안을 날려버린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김득신입니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조선 중기의 인물로 당시 최고의 시인이라는 명망을 얻었습니다.
그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며 부제학 김치(金緻)의 아들로 소위 “있는 집안”의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지독하게 나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해 뒤처졌습니다.
한자를 익히고 문장을 짓는 것에도 도통 재능이 없었고 방금 익히고 외운 문장도 돌아서면 잊어버렸습니다.
집안에선 김득신에 대한 기대 접고 양자를 들여 과거에 응시하라 성화였지만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의 노력을 믿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김득신은 자신의 지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사기 열전] 중 ‘백이열전’을 11만 3천 번을 읽었습니다.
36편의 다른 글도 모두 1만 번 이상 읽어서 그 의미를 완전히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지독한 노력은 김득신을 불안과 우울로 몰고 갈 수 있는 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결국 김득신을 웃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묘갈명(墓碣銘)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학문에 힘쓰는 자는 재주가 다른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선(한계)을 긋지 말라.
(勉學者, 無以才不猶人自晝也.)
이 세상에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 이루었다.
(莫魯於我, 終亦有成)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在勉強而已)
방금 외운 것을 기억하려 했을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그 참담함, 몇 백 번 읽었지만 그때마다 전혀 다른 글로 여겨질
때 그 멍청함, 이것을 감내하기가 어찌 쉬울 수 있겠습니까?
이 참담함과 멍청함을 받아들이고 노력을 한 끝에 김득신은 59세에 과거 급제하고 성균관에 입학했습니다.
그가 고향집을 떠나 성균관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그 벅찬 감동은 푸시킨이 말한 “기쁨의 날”과 같았을 것입니다.
또 공자가 내몰린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며 느꼈던 즐거움과 같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삶을 산 김득신을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