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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1일 주일메시지 ubf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말씀 / 요한복음 4:1-30
요절 / 요한복음 4:14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ubf 올해 상반기 히트 음료의 대세는 바나나였다고 합니다. 여름이 되면서 음료수 대세가 복숭아로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파리바게트,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로 유명한 SPC그룹이 잠바주스 라는 음료 브랜드도 운영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캠퍼스에도 커피도 마시고 주스도 마시며 공주대에는 클라우드 나인이 있고, 남서울대에는 마탐스가 있습니다. 나사렛대에는 바이올렛, 호서대 도서관에는 이디야가 있습니다.
ubf 우리는 마셔야 합니다. 마셔서 갈증을 해소해야 합니다. 먹으면서 마시고 마시면서 이야기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시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수를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생수!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생수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수의 시원한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예수님의 생수를 맛보시기를 기도합니다. ubf
1.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15) ubf
ubf 1-4절을 보십시오. 세례요한을 시기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자 예수님을 향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죽으실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는 경로를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로 잡으셨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이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우회하여 갈릴리로 오갔습니다. 우리가 연변이나 백두산에 갈 때 북한을 통하지 않고 중국으로 돌아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사마리아는 혼혈족의 땅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보다 사마리아를 멸시하였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사마리아 땅을 걸으며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실감나게 배웠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시간이 흐른 후 사마리아로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신들은 사마리아로 지나가는 것조차 거북스러운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하늘영광을 버리고 이 추한 세상에 오셨을까?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ubf
ubf 5,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은 정오쯤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날씨는 뜨겁고 긴 도보이동으로 배고프고 목마른 때 였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에 갔고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 혼자 그대로 앉아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굳이 예수님께서 행로에 피곤하여 그대로 앉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증언하고자 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인반신 상태가 아니라 완전한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피곤하셨고 배고프셨고 우리 인생이 가진 고통과 아픔과 고단함을 다 겪으신 분이십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실 수 있으십니다. ubf
ubf 7절을 보십시오. 이때 홀로 물을 길러 오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의 낮 시간은 조용한 시간입니다. 길은 한산하며 사람들은 외출하지 않고 쉬는 시간입니다. 괴로이 물동이를 이고 뜨거운 햇살 아래 우물가로 오다니! 이 여인은 사연 있는 여인 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고달픕니다. 마셔도 마셔도 또 물을 마셔야 하니 고달픕니다. 물을 뜨러 물동이를 지고 다녀야 하니 고달픕니다. 고달프고 왕따가 되어 고독하게 물동이를 지고 온 여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ubf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일부러 이마에 깨지고 다친 상처를 달고 다녔습니다. 길에 나와서 여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니느라 문에 걸려 넘어지거나 이마를 부딛쳤다는 자랑이었습니다. 그들은 위선을 보이며 여자들은 상대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요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원래 죄인들이 죄가 많기 때문에 죄 없는 척 하느라 위선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으로써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분으로써 얼마든지 자매님을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매님들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물을 좀 주시오” 예수님께서는 상처많은 자매님과 대화하고 그 영혼을 돕기 위하여 스스로 아쉬운 사람이 되시고 스스로 낮아지십니다. ubf
ubf 9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 이러라” 여자는 예수님께 일단 먼저 쏘아 붙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겸손히 대화하시고자 하십니다. 여자 아래로 더 낮아져서 이 여인과 대화를 이어가십니다.
ubf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소개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오신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물을 얘기 하셨고 물 중에서도 생수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생수문제를 영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ubf
ubf11,12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님의 겸손한 대화에 여인은 대화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여인은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합니다. 이래뵈도 나도 야곱의 자손이라는 것을 부각 시키고자 합니다. ubf
ubf 13,14절을 보십시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여인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여인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인생 행로는 목마름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더라도 그것을 노골적이거나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오직 여인만이 인지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 한 영혼의 고통을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한 영혼의 존재를 구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여인은 갈증을 압니다. 여인은 영혼의 갈증이 무엇인지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깊이 이해하시고 여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소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여인은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 깊은 문제를 말씀하시는데, 예수님께서 깊은 이해를 담고 계시고 무엇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신중하게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ubf
ubf 예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무엇에 열정을 쏟았는지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조심 조심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ubf
세상 사람들은 직급이 높은 사람 앞에 가면, 말을 조심해서 합니다. 직접적인 표현을 걸러내고 가급적 부드럽고 온유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자기가 보기에 만만한 사람에게는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함부로 말합니다. 결론을 먼저 내려주기를 아주 즐거워합니다. 딱 잘라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감추고 있어도 오래 기다리십니다. 거짓말을 슬쩍 슬쩍 섞어 넣어도 맞다고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고자 이해하고 섬기고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ubf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ubf 이제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을 활짝 엽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자신에게 그것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자의 지난 삶은 세상의 우물에서 물 길으러 다니는 삶이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우물에서 사람의 우물에서 갈증을 해소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 삶은 고달프고 수고로운 것이었습니다. 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물 길으러 다니느라 많은 아픔과 수고를 당하였습니다.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자는 깊은 이해와 섬김으로 대화하시는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소원을 드디어 솔직하게 말하였습니다. ubf
ubf 이해와 존중이 마음을 열게 합니다. 사랑과 배려가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내놓게 합니다. 오늘날 이해와 존중, 사랑과 배려가 매우 빨리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열심히 ‘친일파’ 정죄논리와 ‘종북 빨갱이’ 정죄가 퍼지고 있습니다. 일베냐 오유냐 네이버냐 다음이냐 하더니 요즘은 영화보는 것도 ‘인천상륙작전’보면 보수꼴통, ‘부산행’ 보면 좌빨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미천한 사마리아 여자에게도 깊은 이해와 존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동일한 이해와 존중을 보여주셨습니다. ubf
ubf 16~18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말씀하신 것이 죄의 환부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숨은 죄를 공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다고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그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남편을 불러 오라는 말씀에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발뺌을 하였는데, 오히려 그 말이 맞다고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여인의 과거가 다섯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현재도 여섯번째 남자와의 동거생활로 점철되어 있음을 다 아시고 계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낮추어보거나 판단하지 않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또, 이 여자가 알고 있는 메시야관은 ‘우리가 행한 것을 다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ubf
ubf 19절을 보십시오. 따라서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말씀하셨다고 해서 삐치거나 토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자신을 이미 다 아시면서도 정죄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인격적으로 대화해주신 예수님을 놀라운 분으로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뿐 아닙니다. 여인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예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냅니다.(20절) ubf
ubf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죄가 사람을 망치고 죄가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간이 죄악된 모습을 벗어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죄악된 습관이 있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섬김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ubf
ubf 21~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혼란스러워하는 예배에 대하여 올바른 교훈을 주십니다. 누구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관건은,
첫째, 예배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장소가 진정한 예배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대상을 올바로 해야 합니다. 이론과 교리를 향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ubf
둘째,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말하며 형식과 모양이 아닌 영적인 예배여야 함을 말합니다. 예배를 사람들 보러 오는 것으로 만들어서는 않됩니다. 일하러 오는 것으로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영이신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ubf
셋째,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기꺼이 응답하십니다. ubf
ubf 2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사마리아 여자의 내면에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피어났습니다. 이 여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은 메시야 이십니다. ubf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바로 여인이 소망하던 그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라”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위해서 이땅에 오신 메시야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천한 사마리아, 비천한 사마리아 여자에게도 메시야가 되어 주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통해서 메시야를 인격적으로 체험하였습니다. ubf
ubf 27-30절을 보십시오. 메시야를 만난 여인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을 피하던 여인이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자신을 숨기던 여인이 자신을 오픈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인의 내면에는 메시야를 만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생수가 흘러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에게서 흘러나는 생수가 사마리아 온 동네로 흘러나기 시작했습니다. ubf
여인은 떠났고 여인이 버려둔 물동이는 우물가에 남았습니다. 물동이는 물 긷느라 고단하였던 여인의 삶입니다. 여인은 물을 마셔서 목마름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였습니다. 무거운 물동이 고달프게 하던 물 긷던 인생은 물동이와 함께 던져 버렸습니다. ubf
ubf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배웁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깊이 이해하신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우리는 상처가 많고 우리는 죄로 인하여 삐뚤어져 있을 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ubf
우리에게 진정한 영생수를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ubf 인간은 목마른 존재입니다. 우리 인생은 목마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인생의 모든 자산들을 소모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지 않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밖에서 계속 리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리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Living water는 내 속에서 계속 솟아나는 최고의 생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갈증해소를 이루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갈증이 해소되었나 하면 다시 목마르고 갈증이 해소되었는가 하면 또 목말랐습니다. 일시적이었으며 근원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줍니다. ubf
ubf 예수님의 주시는 물은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가진 땅위의 물이 아닙니다. 이 물은 신령한 물 영혼을 만족시키는 물로써 예수님을 영접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 우리는 잃었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행복과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ubf
ubf 여인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여인의 내면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여인의 죄, 우리의 죄를 다 지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에게 영생의 확신을 주시고 하늘나라의 기쁨을 주십니다. 영혼이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기쁨,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우리를 가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우리 인생, 나의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시려고 오신 메시야 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에게 위로와 인정을 구걸하며 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서 위로를 구하는 일은 비참하고 고단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내안에 계실 때 우리는 사람에게 요구하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아픔 겪는 일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ubf
ubf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 나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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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센터에서 바라본 배방산과 태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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