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4)
밤바다, 그 울음의 지척
그 여름,
바람이며 물빛
몰아오던 파도 소리로 사립을 해 달은 바닷마을의
그 눈물겹게 달아오르던 민박집 문간방
경상도 사투리로 철썩이던
밤바다 파도 소리를 기억하지
졸린 눈에는 겹망사 푸른 면사포 같을 밤구름 아래
그 집 안마당 늦도록 물 듣던 수돗가까지
귀쌈 맞고 멱살 잡혀 새하얗게 끌려왔을 어린 파도
먹먹한 울음 끝 한쪽 귀 영영 놓아버렸을지도
어쩌면 내 마음 그토록 저물었던 그곳, 그 울음의 지척
깊게는 저 해연海淵 웅크린 소라 바지락 꼬막 속까지
곳곳 송곳니, 서슬 푸른 시간의 날랜 쇠고둥들 아니었으리
끝내도 못 떠나온 내 쓰라린 맨발 아니었으리
- 김명리(1959- ), 『적멸의 즐거움』, 문학동네포에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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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의 “끝내도 못 떠나온 내 쓰라린 맨발”이라는 문장에 눈길 오래 머뭅니다. 삶은 고비의 연속입니다. 그 삶의 고비를 넘기 위해 벗어야 했던 발, 마침내 두고 떠나온 그 발. 당신도 있지요. 물론 저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회한이겠지만, 지난 뒤 이렇게라도 돌아볼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때 발을 벗어서, 마침내 벗은 그 발을 “내 마음 그토록 저물었던 그곳, 그 울음의 지척”에 두고 홀연 떠나서가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 건, 지나와서입니다. 지나와서, “곳곳 송곳니, 서슬 푸른 시간”까지 또 홀연 지나가서입니다. 나름대로 다 있었을 “밤구름”마저도 “겹망사 푸른 면사포”로 보였을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애써 상상하지 않는 건, 쓰라림에서는 벗어났더라도 “끝내도 못 떠나온” 혼자만의 “맨발”, 드러내더라도 다 드러내지는 못하는 마음이야 여전하리라는 생각 있어서입니다. 다들 그러시죠. 보따리를 헐었으나 보여주다 말고 결국 슬금슬금 다시 거두는 마음, 다시 보따리를 싸안는 마음. 김명리 시인이 포항을 다녀갔습니다. 『단풍객잔』(소명출판, 2021)이라는 시 아닌 시인의 산문집 낭독회를 위해서였습니다. 주관하는 이의 이야기로는 사는 곳이 먼 곳이기도 하고, 쉬 바깥출입을 하기도 어려운 곳이라 초청은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나중 이야기로는 자가운전이 아니라서 오는데 세 번 차를 갈아타야 했다고 하고 시간도 만만찮아서 시인 역시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을 시인이 먼저 오겠다고 했답니다. 포항은 두 번째 방문으로 거의 30년 만의 방문이라고 했으니 한때 포항과도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혹 그 인연 때문이었을까요. 사실 시인을 만나기 위해 시인의 최근 시집 『바람 불고 고요한』(문학동네, 2022)과 1999년 출간하였으나 절판되었다가 최근 복간된 위 시집을 읽었으나 오늘 들려드리는 시에는 눈길 주지 못했는데, 시인의 방문 소회를 듣고 다시 읽다가 이 시에서 멈춘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시인의 육성으로 시를 다 감상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시인의 육성이 때로 감상의 눈을 열어주기도 하지요. 그러나 딱 여기까지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나머지는 읽는 이의 몫입니다. 어이없게도 몇 달간 추석까지도 이어지던 폭염이 홀연 멈췄습니다. 폭염이 멈췄으니 그럼 가을이겠구나 싶은데 너무 긴 여름을 보내서인지 아직 가을이 실감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니 곧 만산을 물들일, 시인과 낭독회 자리에서 함께 읽은 단풍을 노래한 산문 한 편 읽고 오늘의 시 산책 마무리하겠습니다. 「저 단풍 빛」전문입니다.
“집 근처 산책길에서 만났던 빈집.
무너진 담벼락, 폐허를 타고 오르는 홍황紅黃의 단풍 빛이 사람의 비애조차 궁륭으로 만드는 듯했으니 잡풀 무성한 빈집의 마당에 누군들 햇곡식을 말리고 싶지 않았으랴.
더 깊이 들어가 되돌아 나올 수 없는 폐허면 어떤가. 낮고도 잠잠해, 귀 기울이면 해금소리 한 자락 울려 퍼지는 왁자한 폐허.”(위 산문집 142쪽) (20241002)
첫댓글 김명리 시인은 처음인데요,
<밤바다, 그 울음의 지척>,
<저 단풍 빛>과 같이 시 제목에서조차 정감을 많이 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