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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회]
마니산의 높이는 불과 백오십여 장(469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산들처럼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광활한 산맥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강화도라는 섬에 우뚝 솟아있다는 것이 특별할 뿐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에 협소한 공간, 그러나 이곳은 예로부터 많은 은자들이 수련의 장소로 삼았다.
누가 믿을 것인가? 이 조그만 산에 꿈틀거리고 있는 엄청난 기운을. 일반 사람들은 결코 느끼지 못할 기운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공을 느끼고 기감이 발달된 사람이라면 이곳에 있는 신령스런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니산에 올라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흰색을 선호하는 조선의 은자들과 달리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이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복장은 조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원 땅에서나 볼 수 있는 복장이었다.
맨 앞에 서서 걸음을 옮기던 이가 산의 중턱에 멈춰 서서 마니산의 정상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드러나는 얼굴.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반들반들한 민 대머리에 햇빛이라고는 평생 보지 못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분명 중원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화천이었다.
화천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마니산의 정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느껴지는가? 이 거대한 기운이... 예로부터 이 땅의 시조이신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성한 제단을 쌓은 곳이다.
신성한 기운이 온 산을 감싸고, 하늘에까지 그 뜻이 통하니 천하에 이보다 더한 명당이 어디 있을 것인가?
만천하로 뻗친 지맥의 중심이 되니 이곳만 장악한다면 세상을 장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몽고의 더러운 놈들이 이곳을 빼앗으려 애를 썼으나 결국 우리의 조상들이 이곳을 지켜낸 것이 아닌가? 으하하핫!"
화천이 두 팔을 벌린 채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모습은 흡사 미친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 그가 미쳤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지어니... 어리석고 약한 생명은 도태되고 진실 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화천의 눈에는 광기가 떠올라 있었다.
오늘이 오기만 수십 년을 기다렸다. 귀원사가 멸망하고 홀로 살아남아 다시 재건하기까지 그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만약 화천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의지와 명왕가에 복수를 해야 한다는 복수심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지난 세월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이 영산을 둘러싼 이 이질적인 장막부터 걷어내자. 이제 당신의 차례다."
"크흐으~! 이곳이 천하에 둘도 없는 영산이란 말인가?"
화천의 말에 그의 등 뒤에 서있던 덩치 큰 남자가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쇳소리 비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 그가 앞으로 나섰다.
백용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분명 백용후의 몸에 예전 백용후의 얼굴 그대로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한 겹 붉은 기운이 덧씌워져 있었고, 묘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마치 붉은 안개로 이루어진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천이 백용후에게 말했다.
"아직도 완벽하게 몸을 장악하지 못했는가? 천...마여!"
"크흐흐! 넌 정말 대단한 몸을 내게 주었다. 이자의 영혼은 누구보다 강하고 굳세다.
나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만일 내가 약해진다면 그가 자신의 몸을 찾을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천마가 백용후의 몸을 차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계기만 주어진다면 백용후의 의지가 그를 누를 수도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지. 내가 당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준비했을 정도로. 이곳에 펼쳐진 결계를 부수는 것 정도는 문제없겠지?"
"흐흐! 물론이다. 이 땅의 결계가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나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른 마(魔)이다. 내가 부수겠다고 마음먹어서 부수지 못할 것은 세상천지에 없다."
천마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패도적인 기운이 산악처럼 뭉개뭉개 일어났다. 그에 화천이 침음성을 흘리며 옆으로 물러섰다.
'과연 천마! 부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런 존재감이라니......'
마니산에는 태곳적부터 거대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단군의 시대부터 이곳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참성단이란 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용도일 뿐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결계의 구심점이기도 했다.
이 땅에 나라가 세워진 이래 수천 년을 이어온 결계이다.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결계를 부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천마를 부활시켰다. 이곳의 결계를 부수고, 명왕을 죽이기 위하여......
그는 정말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난 이십 년의 세월을 모조리 투자한 것이다.
"난 천마, 하늘에 대항하는 역천의 마이다."
천마가 광오하게 외치며 허리에서 도를 꺼내 들었다. 바로 자신이 영혼을 봉인해 두어던 혈영신도이다.
천마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결계를 보며 공력을 집중하자 혈영신도가 찬란한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너무나 눈이 부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휘류류~!
천마를 향해 광폭한 기운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혈영신도를 통해 하나의 형상을 갖춰갔다.
그것은 천마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대한 악마의 형상이었다.
"타아앗!"
순간 천마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터져 나오며 그가 혈영신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미증유의 기운이 산악처럼 일어나며 마니산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를 향해 밀려갔다.
콰아아아ㅡ!
거친 기파가 사방으로 몰아치면서 천마의 기운이 결계와 충돌을 했다.
"......"
잠시간 이어진 고요. 그러나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결계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었는데도 결계가 멀쩡하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순간 천마의 고함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부서져라! 이야아아앗!"
그의 이마에 굵은 핏대가 일어서며 다시금 폭발적인 기운이 일어나며 결계를 향해 몰려갔다.
이번의 기운은 좀 전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패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콰ㅡ아ㅡ아ㅡ앙!
이어지는 이차 충격.
쩌ㅡ저ㅡ저ㅡ적!
푸화하학!
다시 잔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의 공간이 갑자기 이지러졌다.
결국 이제까지 수천 년 이상을 이어져 내려오던 결계가 천마의 파천황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고 만 것이다.
휘류우~!
이제까지 결계로 보호되고 있던 마니산의 진정한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크흐흐~. 과연 신성스러운 곳이라 할 만하군. 이런 기운이라니. 하지만 그래서 기분이 나쁘군!"
천마가 결계가 부서지며 나타난 진정한 마니산의 모습에 기분나쁜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가 타고난 기운은 어둡다.
그에 반해 이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무척이나 밝다. 그것이 그이 심령을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크하핫! 이제까지 수천 년 동안 외인의 발걸음을 거부하던 네가 드디어 속살을 드러냈구나. 으하하핫!"
화천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마니산 내부의 모습에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광소에 마니산의 나무들이 몸을 떨었다.
"결국 이곳에 외인들이 들어온 것인가?"
그때 마니산의 숲속에서 은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대를 이어 이곳의 참성단을 지키던 은자들이다.
그들은 결계에 이상이 느껴지자 곧장 산을 내려왔지만 미처 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천마가 결계를 부숴버리고 만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부술 수 없다는 결계가 한낱 인간의 손에 의해서 산산조각 부서지는 모습을 본 순간 그들은 오늘이 그들 최대의 고비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화천이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이 화천이 그렇게 만들겠다."
순간 그의 등 뒤에 있던 남자들이 은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땅에서 제일 신성한 곳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예로부터 대를 이어 마니산을 지켜오던 은자들이 하나둘 차가운 대지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안 된다. 이곳은 너희들이 감히 들어올 곳이 아니다."
"크크!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이미 이곳은 나의 땅이다."
"아...안 된다. 으아악!"
은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화천과 귀원사의 무리를 막으려 하였으나 부지불식간에 기습을 받은 데다 힘에서 워낙 열세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은자들은 사력을 다했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가슴이 쩍 갈라지며 피를 뿌려도 그들은 화천을 막기 위해 눈물겨운 몸부림을 쳤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그들의 목숨을 다 바쳤지만 예정돼 있는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털썩!
은자 한 명이 차가운 대지에 몸을 누였다. 그의 얼굴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어...저자고 신은 이...들에게 이런 힘을 주...었단 말인가! 누...가 있어 이들을 막는단 말인가?'
광소를 터트리며 혈영신도를 휘두르는 천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도 그의 일도를 막지 못했다. 누구도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저...자는 악마! 하..늘은 어쩌...자고 저...같은 악마를 세..상에 내보냈단 말인가? 누...가 있어 저자를 막는단 말인가! 세상의 종...말이구나."
눈앞이 흐려지며 시커먼 어둠이 그를 덮쳤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눈을 감지 못했다.
"크하핫! 정말 좋구나. 으ㅡ헛허허!"
천마가 광소를 터트리며 은자들을 도륙했다. 그는 마치 피에 굶주린 악마와도 같았다.
손에 느껴지는 짜릿한 촉감이, 몸에 튀는 뜨거운 선혈이 그를 더욱 흥분되게 했다.
그 어떤 절세미인과의 방사도 이만큼의 쾌락은 주지 못하리라. 지금 이 순간 천마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정말 광인이 따로 없군.'
천마의 모습을 보며 화천이 중얼거렸다.
왜 그렇지 않을까?
혈영신도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은자들을 도륙하며 피의 향기에 취한 모습은 세상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야심가인 화천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것은 전설보다 더했다. 백여 년 간의 잠에서 깨어난 천마의 영혼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날이 갈수록 더욱 피를 원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제는 화천마저도 그의 곁에 있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그래도 명왕을 죽이려면 어느 정도의 광기가 필요한 법이지.'
화천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위로했다.
마침내 모든 살육이 끝났을 때 마니산은 은자들의 몸에서 흘러 내리는 선혈로 붉게 물들었다.
"크흐흐! 정말 오랜만에 몸을 풀었구나. 이제야 피로가 풀리는 것 같구나."
천마가 혈영신도를 도집에 꼽으며 화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화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한 쾌감이 그대를 기다릴 것이다."
"네가 말한 명왕이란 자 말이냐?"
"그렇다! 그는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일을 팔짱끼고 지켜볼 인간이 아니기에."
"그가 정말 그렇게 강하단 말이냐? 그러고 보니 내 몸의 주인의 기억 속에도 똑같은 이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천마의 말에 화천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자식이다. 아비는 조선에서 명왕으로 불렸고, 아들은 중원에서 명왕으로 불렸지.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많은 은자들과 백무귀들의 희생이 필요했지."
"그래! 그것 참 아쉽군. 그토록 강한 자라면 나의 갈증을 어느정도 풀어줄 수 있을 텐데."
"흐흐! 그의 아비도 아들 못지않지. 아니 오히려 더 괴물일걸. 그 혼자의 힘으로 예전의 귀원사가 무너졌으니.
그 당시 귀원사의 전력이라면 중원에서 제일로 쳐주는 소림사와 버금갈 정도였는데 말이야."
"흥! 소림사 따위는 내 안중에 없다. 하지만 구미가 당기는군. 그토록 강한 자가 이토록 좁은 땅덩어리에 숨어 있다니 말이야.
정말 이곳 조선은 여러모로 신기한 곳이야. 얼마 되지도 않는 땅에 이토록 많은 인재들이 숨어 있다니 말이야."
솔직히 천마는 적지 않게 놀란 상태였다. 처처마다 은자들이 숨어있고, 그들의 수준은 결코 중원의 무인들에 뒤지지 않는다.
중원과 조선의 크기를 비교했을 때, 그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비록 마도를 걷고 있지만 그 역시 중원인. 이제까지 존재도 제대로 몰랐던 조그만 나라에 중원이 밀린다고 생각하자 피가 싸늘히 식어왔따.
'이 기회에 이곳에 있는 은자들의 씨를 모조리 말려버려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중원에 후환이 없다.'
그것이 천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화천의 계략에 순순히 따라주는 것이다.
솔직히 산의 기운을 건드리는 것만으로 세상이 멸망이 온다는 허황된 말은 믿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지기가 흐트러져 세상의 혼란 정도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이 조선의 힘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 천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천은 앞장서 산을 올라갔다. 천마 역시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곳에서는 천하가 모두 내려다 보였다.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강화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따. 그리고 정상에는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연석들에 의지하여 둥글게 쌓은 하원단(下圓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방단(上方壇)의 이중으로 구성하고 잇는
특이한 형태의 제단을 보는 수난 천마는 심장이 멎을 듯 놀라고 말았다.
넓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걸음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금방 끝이 보일 정도로 초라하다. 그러나 속에 숨겨진 기운이라니......
"천하에 이런 곳이 존재했단 말인가?"
중원에도 천단(天壇)이라는 곳이 있어, 천자가 하늘에 제를 지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뿐이지 이곳과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중원의 오악에도 나름대로의 제단이 있지만 그곳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신령한 기운이 풍기지 않았다.
화천이 제단의 위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중원의 제단은 크기만 하지, 아무런 쓸모도 없지. 그저 높은 산에 쌓으면 다인 줄 아니까.
그에 반해 이곳은 그야말로 태곳적부터 신성하게 지켜져 온 곳이지. 몽고의 놈들이 이 땅을 휩쓸었을 때도 이곳만큼은 철저하게 지켰을 정도니까.
때문에 이 나라가 세워질 무렵의 기운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지."
"대단하군! 내 오악을 다 돌아다녀봤지만 이토록 거대한 기운은 처음이야."
"흐흐! 하늘과 통할 정도로 기운이 뭉쳐 있는 곳이다. 오죽하면 이 땅의 시조께서 하늘에 제를 올렸겠는가?
하늘과 통할 정도로 깨끗한 기운이 뭉친 곳은 천하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이곳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인 것이다."
화천의 자부심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비록 지금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대륙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드넓은 대륙을 호령했었다.
이제 잃어버린 기상을 내 손으로 다시 찾을 것이다."
"흐흐! 세상을 멸망시킨 뒤에 말이냐?"
"그렇다!"
"하지만 비록 이곳의 기운이 강렬하다고 하나 이 정도의 기운을 해방시킨다고 해서 세상이 멸망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는 너도 알 텐데."
"그것은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곳은 대륙에서 뻗어 나온 황룡의 맥과 바다에서 육지로 향하는 청룡의 맥이 만나는 그야말로 천하의 명당 중의 명당이다.
그야말로 대륙의 기운과 바다의 기운이 만나는 접점이라고 볼 수 있지.
원래 천하의 이치대로라면 청룡과 황룡이 싸워서 조화가 깨어져야 하나
이 땅의 시조인 단군께서 제단을 세워 두 용의 기운을 억눌러 놓았기에 아직까지 별다른 일이 없이 천하가 안녕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용의 기운을 억눌렀던 제단을 파괴한다면 어찌될까?"
귀원사에서 내려오는 비서에는 이곳을 쌍룡맥(雙龍脈)이라고 표현했다. 진짜 용이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용의 기운이 잠재돼 있다고 해서 붙인 말이다.
더구나 이곳은 상극이랄 수 있는 황룡맥과 청룡맥이 교차되는 곳이다.
천하에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은 많고 많지만 이렇게 황룡맥과 청룡맥이 교차되는 곳은 오직 천하에 이곳뿐이다.
귀원사의 비서에는 이곳의 기운이 깨질 경우 청룡의 기운과 황룡의 기운이 서로의 기운에 반발해 크게 움직일 것이라 하였다.
두 기운은 서로가 소멸할 때까지 싸울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용맥까지 깨어나 천하의 조화가 깨질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화천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 번 폭주하기 시작한 기운은 온 천하로 번져갈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미약할지 모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세상의 기운이 약해질 대로 약해지다 종국에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생명력이 약한 인간은 알아서 죽을 것이고,
은자들처럼 고도의 무예를 익힌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떼거지로 모여서 질시와 시기를 반복하는 우매한 인간들은 모조리 없어지고
그야말로 선택받은 자들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후천세상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진정한 미륵이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화천의 얼굴에는 지독한 광기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옆에 있는 천마마저 섬뜩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이제는 일식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천지의 기운이 절정으로 치닫는 그때를 기다려
이곳 전체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 참성단을 파괴한다면 청룡맥과 황룡맥이 크게 힘을 얻어 서로를 누르기 위해 싸울 것이다. 크하하핫!"
살아있는 동물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고, 구름조차 이곳을 비껴나가는 듯 옆으로 흘렀다.
천마는 화천을 보며 눈을 빛냈다.
'진짜 악마는 이 녀석이었군.'
그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 햠을 느꼈다.
그때 화천이 천마를 보며 말했다.
"흐흐! 이제 이곳 전체를 죽음의 산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자. 명부의 명왕이라도 결코 살아나갈 수 없는......"
"크아악!"
"제발 용서를......"
"으아악!"
이제까지 조선의 명산에 숨어 있던 은자들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신황이 오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두 팔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금강산을 내려와 강화도로 가는 길, 신황은 철저하게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그는 명왕가에 등을 돌린 은자들을 철저하게 굴복시켰다.
비록 강화도로 가는 시간이 촉박했지만 신황은 그가 가는 길에 있는 은자들은 철저하게 짓밟았다.
신황 일행과 같이 움직이던 불산자는 그런 신황의 과격한 모습에 질린 얼굴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전대의 명왕보다 더하구나. 그래도 전대의 명왕은 일말의 자비심이라도 있었는데, 당대의 명왕은 정말 잔인할 정도구나.'
신권영은 일단 항복하면 손을 쓰지 않았는데 신황은 그렇지 않았다.
신황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은자들에게는 결코 손을 쓰지 않았지만, 이번 귀원사의 부활에 관계된 은자들에게만큼은 추호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그들도 후회하니 사정을 봐주자는 신원의 말에 신황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아주 중요한 때이다. 지금 여기서 약한 모습, 또한 인정을 보인다면 조선의 은자들은 우리를 우습게볼 것이다.
한 번 우습게보기 사작하면 그 감정은 전염병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전체로 번져 나간다. 그리 된다면 나중에는 더 많은 피를 봐야 한다.
지금 확실하게 해야 한다. 지금 피를 보더라도 확실하게 우리의 존재를 각인시켜 두어야 더 큰 혈사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에 대한 이들의 반감이 더 커질 거야. 너무 강압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키게 되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어차피 정상적인 상황도 아니야.
쌍룡맥을 건드린다는 발상을 하고 그에 동조를 한 자체가 이미 이 땅의 은자로서의 자격을 포기한 것이야.
지금 확실한 선례를 남기지 않으면 후대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은자들이 역심을 품으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은자들은 단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에 얼마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때문에 은자지법(隱者之法)이라는 규약을 두어 이제까지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두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은자지법이 무영지물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의 위치와 존재이유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유사시에 그들을 징벌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 명왕가의 존재를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비록 이 일로 인해서 영원히 살귀들의 집안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일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면 내가 한다.
설령 이 일로 인해 영겁의 세월을 지옥의 제일 밑바닥에서 윤회를 하더라도... 모든 업보는 내가 짊어진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다.'
신황의 눈에는 어떤 역경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굳은 의지가 배여 있었다.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후대의 누군가 또다시 이 지독한 피의 길을 걸어야 한다. 누군가에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자가 되기는 싫다. 그것이 신황의 의지였다.
신황은 아직도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서있는 몇몇 은자들을 보았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은자들이다. 신황은 그들을 보며 진득하게 살기를 담아 말했다.
"이것이 나의 경고다. 두 번은 없다. 앞으로도 명왕가는 은자들과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은자들이 어떤 일을 하건, 또한 어떻게 살아가건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허황된 야심을 품는다면 언제든 다시 나의 후예가 너희들을 방문할 것이다. 오늘의 공포, 오늘의 치욕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경계하거라, 너희들의 허황된 야욕을.... 그렇지 않다면 다시 명왕이 방문할 것이니."
"으...으!"
"아!"
은자들이 이를 덜덜 떨었다. 지독한 공포 때문이다.
그들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은자들이다. 때문에 직접 명왕을 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명왕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도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충격이었다.
솔직히 명왕이라고 해서 선대의 은자들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우습기도 했다.
자신들의 능력이라면 중원에 나가서도 뛰어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은자지법이란 고리타분한 법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운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오늘 직접 명왕을 만나고 나니 자신들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절실하게 느꼈다.
수십에 달했던 은자들 중 살아남은 이는 고작 그들 몇 명뿐이다.
만약 그나마도 명왕이 봐주지 않았다면 두 발로 서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명왕의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신원은 오연히 서있는 신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형은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을 하려는 것인가? 이미 형의 무예는 명왕권의 틀을 뛰어 넘었다. 도대체......'
예전과 달리 신황은 상황에 따라 명왕권과 월영인을 적절히 섞어 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경계가 모호해지더니 전혀 새로운 모습의 무예가 간간히 나타나고 있었다.
신원은 그것을 진화(進化)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무공의 발전이라고 보기에는 불가사의 한 발전 속도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사람은 명왕권의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신황의 무공에 대한 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진정한 명왕권은 형의 대에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신원은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다고 느꼈다. 동시에 형에 대한 경쟁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비록 격차가 있지만 반드시 형을 따라잡고 말 것이다.'
자신이 평생을 두고 따라가야 할 목표가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 그의 행보가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신황은 은자들에게 경고를 한 후 몸을 돌렸다.
은자들은 그런 신황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망연히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명왕의 곁에 웬 여자 둘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는 명왕보다 어려보이는 여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 대여섯 살 정도의 여아이다.
그녀들은 명왕의 양쪽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명왕의 눈에도 따뜻한 기운이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가혹하게 은자들을 몰아붙이던 명왕이 저런 표정을 짓다니, 그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겨우 서있던 은자가 중얼거렸다.
"누...가 있어 명...왕의 발걸음을 막을 것...인가? 다른 곳에 있는 은자들에게 불어 닥칠 피...바람이 눈에 보이는 듯하구나.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귀원사의 일에 동조한 은자들에게 불어 닥칠 피바람이 눈에 환했다. 잘못된 결정 한 번에 그들은 너무나 무서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죽음이라는.
신황일행은 좁은 산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
불산자는 일행의 뒤에 처져 내려왔다. 그의 얼굴은 편하지 않았다. 왠지 자신이 은자들을 숙청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구나. 정말 이들을 믿어야 하는가?'
가공할 만한 신황의 무력은 불산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지리산에 들어가 이제까지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수도에만 열중했다.
그동안 그에게 모든 것을 넘겨준 스승은 세상을 떠나고, 이제 그의 밑에 있는 제자만 다섯이다.
특출한 재능이 있어 스승의 마음을 기껍게 만드는 제자들은 이제 일가를 이룰 정도로 성취를 이루었다.
그렇게 제자를 키우는 동안 그의 능력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해 하늘의 비밀을 엿볼 경지에 이르렀으니 은자로서 누릴 만한 복은 모두 누린 셈이다.
그러나 천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원하지 않더라도 후대에 있을 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잠을 자도, 하늘을 봐도,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도 그의 뇌에는 끊임없이 하늘의 천기가 들어왔다.
그것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그는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커다란 환란을 겪게 될 후손들이 불쌍해,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이 땅의 백성들이 불쌍해 그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은자들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명왕가를 찾았다.
다행히 신권영은 그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확답을 주지도 않았으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때 그는 명왕가의 뒤를 이을 신황 형제를 보았다. 그 당시도 신황은 유난히 눈에 띄는 소년이었다. 그는 어른인 신권영 못지않은 천성적인 살기를 가지고 있었다.
불과 열 살이 갓 넘은 소년이 그 정도의 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때문에 불산자는 무척이나 인상 깊은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십 수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난 신황은 불산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신황의 나이가 불과 서른 살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성취였다. 거기에다 그의 공격적인 성향은 오히려 전대의 명왕보다 더한 것 같았다.
받은 만큼 반드시 돌려주고, 일단 손을 쓴 이후에 대화를 한다. 때문에 당하는 상대는 감히 그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동료들이 죽어 나뒹구는데 어찌 그의 말에 거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예전에 봤던 열 살의 소년은 이제 저승의 사자 목줄이라도 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절대강자로 성장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불안했다. 만일 이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그야말로 조선의 은자들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구나. 잘만 쓰면 천하에 크게 이롭게 쓰일 것이다. 이들이 딴 마음을 품는다면 천하에 이들보다 무서운 이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불산자가 걱정하는 바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또 다른 것이어서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을 걱정하는 늙은 은자는 그렇게 불안한 시선으로 신황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때 신황이 자신의 등 뒤에 꽂힌 불산자의 시선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왔다.
신황은 무이와 홍염화를 신원과 먼저 가게하고 자신은 불산자의 곁에서 같이 걸음을 옮겼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지 물어보게나."
"전에 아버지에게 했던 말씀, 후대에 찾아온다던 재앙 말입니다. 혹시 그것이 화천으로 인해 벌어질 일을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신황은 에전에 불산자가 말했던 커다란 환란이 혹여 지금 화천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의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산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산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늘이 보여준 것은 화천과는 상관없는 듯 보였네. 그리고 지금의 일이 아니라 먼 미래의 일이었네."
"그럼 당신이 보신 미래가 어떻기에 자존심을 죽이고 우리 가문을 찾아오신 것입니까?"
"그...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미래였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후회하고,
모든 것이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만 보였네. 그런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산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단지 그의 표정만으로도 신황은 불산자가 본 미래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백 년의 세월동안 수도를 해 높을 경지에 이른 늙은 은자가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그가 본 미래가 그만큼 잔혹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황은 그렇게 이해했다.
불산자가 신황을 보며 말했다.
"만약 화천의 음모를 막지 못한다면 수백 년 후의 미래가 조만간에 다가올지도 모르네. 마니산의 참성단은 결코 풀어서는 안 되는 봉인이네.
참성단의 봉인은 단군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네. 참성단이 부서지는 순간 쌍룡맥이 활동을 시작할 것이네.
일단 쌍룡맥이 깨어나면 다른 용맥들도 활동을 시작할 테니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결코!"
신황은 마지막 단어에 특히 힘을 주었다.
그의 친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신황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울림을. 화천은 단지 그 과정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것이 신황의 생각이었다.
폭풍 같은 대혼란이 조선을 강타했다.
신황이 은자들의 세계를 몰아치는 동안에 변방에서는 여진족의 준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에 변방은 전시체제로 들어가면서 수많은 병사들이 집결했다.
수많은 백성들이 이미 여진족에게 침탈을 당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이번 사태에 매우 단호하게 대응했다.
이쯤 되면 평소 여진족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국경너머 퇴각했어야 한다. 그들은 약탈을 원하지,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그들은 국경을 넘어 퇴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토벌군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때문에 민심은 흉흉해지고, 나라의 관심은 온통 북방으로 쏠렸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목이 온통 북방으로 쏠린 사이 조선의 내부에서도 엄청난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단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전쟁은 오히려 북방에서 일어난 분쟁보다 위험했으며 더욱 험악했다.
그 중심에 신황이 있었다.
그는 강화도로 가는 동안 무려 다섯 곳의 산을 방문했다.
그동안에 신황의 손에 목숨을 잃은 은자들의 수가 물경 수십을 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은자들도 신황의 공포에 진저리를 쳐야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귀원사와 손을 잡은 것을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해야 했다.
정말 귀원사와 손을 잡은 것이 이런 최악의 형태로 그들에게 후환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신황의 공포는 천하를 진동시켰다.그야말로 폭풍처럼 거칠 것 없는 행보였다.
이제 은자들은 확실히 깨달았다. 그들이 어떤 사람을 건드린 것인지. 그들이 건드린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 존재인지.
그는 결코 자신을 건드린 존재를 그냥 놔둘 정도로 마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무이와 홍염화가 없었다면 나머지 인물들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은자들은 신황에게서 공포스런 명왕의 그림자를, 무이와 홍염화에게서는 선녀의 모습을 느꼈다.
그렇게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행보를 하길 열흘, 그들은 드디어 목적지인 강화도에 도착했다.
신황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마니산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피를 뿌리기에는 무척 아까운 산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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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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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마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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