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7일 주일대예배 설교문 / 마 9:9-13 / 제자의 반열에 이르렀던 마태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먼저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영상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축복의 나라인가를 단편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갓. 영어로 God은 하나님이시죠. 선교사들은 조선 사람들의 머리에 이미 하나님을 이고 다녔다고 감탄해했습니다. 조선은 영어로 Chosen People 즉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아침 조(朝)자는 해와 달과 십자가가 있습니다. 낮에도 십자가, 밤에도 십자가. 이것이 조자입니다. 선(鮮)자는 물고기 어에 양 양자입니다. 물고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와 어린양. 이것이 고울 선자입니다. 뜻으로 설명하자면 낮에도 십자가 밤에도 십자가, 이런 교회와 성도는 아침이 고운나라 대한민국이란 뜻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맥추절입니다. 일 년 중 첫 농사인 밀과 보리를 다 추수하고 나서 감사로 예배를 드린 감사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성경의 삼대절기 중 하나입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일찍부터 선택받은 대한민국은 복음이 들어오자 봄에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켰습니다.
또한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킴으로 여름에도 감사, 가을에도 감사했습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다고 하지요. 세상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감사를 많이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사회문화적으로 볼 때에 설날과 추석에도 감사하니, 감사가 감사를 낳고 또 감사가 감사를 낳으니 대한민국은 영원히 감사가 넘치는 복된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 선택받은 제자, 마태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두 가지 이름이 있었습니다. 원래 자기 민족 언어인 히브리어식의 이름. 그리고 당시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던 헬라어식 이름 이 두 가지 이름을 혼용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헬라식 이름, 레위는 히브리식 이름. 그러니까 성경에서 세리 레위, 세리 마태라고 하면 동일인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이고, 마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는 본 이름은 레위인데 이 레위가 워낙 훌륭한 일을 해서 마그누스 테오스(하나님의 위대한 자)를 줄여서 마태라고 부르면서 초대교회가 존경했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11-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은 레위를 창녀와 같은 반열에 있는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레위의 원 직업은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인데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에 속국이었기 때문에 자기 돈을 다른 나라에 바친다고 생각하니 항상 억울해했습니다.
내가 벌은 피 같은 돈을 남에 나라에 뺏겨 버리니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래서 세금징수원이었던 세리들을 매국노, 창녀, 죄인으로 취급해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으로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세리 레위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 마태, 하나님의 위대한 자 마그누스 테오스로 세우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교회 다닌 사람들 치고 마태복음을 열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마태만큼 역사상, 그리고 전 세계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예수 믿어서 복 받은 나라가 된 것처럼, 마태도 죄인 취급 받았지만 예수님 믿고 제자가 되어서 복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태의 특징을 같이 보겠습니다.
첫째,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9절)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예수님이 마태에게만 했겠습니까?
5-7장까지 산상수훈으로 주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문둥병, 중풍병, 열병이 떠나갔으며 거친 풍랑도 잠잠케 되었습니다. 이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자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경꾼에다가 병 고쳐 달라고 환자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바로 앞 구절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쳐달라고 지붕을 뚫고 내려오겠습니까? 이렇게 인산인해를 이룬 그들을 성경은 뭐라고 할까요? 무리
23절, 25절, 33절, 36절
모두다 제자가 아니라 무리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구경꾼들입니다. 물론 기적도 경험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무리일 뿐입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은 우리를 영의 세계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영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 만이 제자인 것입니다.
마태는 비록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나 돈은 많은, 돈으로는 성공한 사람, 즉 육으로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만 불렀겠습니까? 수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장가가야하고, 저는 아버지 연로하셔서 장례 치른 다음에나, 저는 돈 좀 번 다음에, 저는 건강한 다음에 등등 무리들은 기적만 맛보려고 했지 예수님을 따를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그런데 과감하고 마태는 세관에 앉아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 아예 잔치까지 배설하고 나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제 영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머리에 하나님을 이고 살았던 갓, 코리아. 낮에도 밤에도 십자가의 나라, 예수님의 제자 된 선교한국의 영광을 오늘 마태를 통해서 다시 되찾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자꾸 무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중이 떠중이도 좋으니 교회만 오면 된다는 식으로 숫자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몇 명이 그리 중요합니까? 다 무리일 뿐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그것부터 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시험에 들게 합니다. 돈이 최고인 사람은 항상 돈으로 장난쳐서 돈에 노예가 되게 합니다. 건강 걱정으로 잠 못 드는 사람은 건강을 쳐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숫자에만 자랑이고 관심 있는 교회에게는 숫자에 시험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매일 숫자 타령하다가 교인들을 ‘무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어디 숫자 늘어났습니까? 교회가 숫자 숫자 하지만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만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들은 시험에 들면 예수님을 죽일 사람들입니다. 무리들에게 조금이라도 실망시켜 주면 교회를 떠날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따르라” 이 음성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던 마태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반열에 이르는 영적인 군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둘째, 마태는 부르심을 받고 나서 어떠한 행적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태가 아무 말도 안했겠습니까? 마태가 아무 일도 안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마태복음까지 있는데 마태의 행적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마태는 이집트 왕자를 기적적으로 치유했고, 이디오피아에서 선교하다가 창에 찔려서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마태가 뭘 했는지 일절 기록이 없습니다.
제자란 이와 같습니다. 자기를 자꾸 지워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존경할 만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버리는 훈련이다.”
아동부 찬양에 이런 것이 있잖아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소망이 있다면 오직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뿌리는 못생겼습니다. 보기에 흉합니다. 모든 염려, 근심, 걱정들... 내 운명조차 변함없이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십시오. 그렇다면 반드시 주님의 때에 열매 맺게 되리라 믿습니다.
성경에 자기 이름만 기록된 마태. 그러나 전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마크누스 테오스(하나님의 위대한 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것처럼 천국의 생명록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만족합시다.
오늘도 맥추절 감사예배를 드리듯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영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예비하신 축복이 함께한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