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없으면 유고 연방도 없다?!
§ 본 연재는 차후 진행될 RPG, “공산당 없으면 유고 연방도 없다?!“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프리퀄입니다.
§ 본작의 연재예상일은 빠르면 11월 말, 늦어도 12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 프리퀄의 연재빈도는 부정기이며, 연재예정일보다 프리퀄 완결이 늦어지더라도 본작 연재를 우선시합니다.
1. 스탈린 격하? 어림도 없지!
1953년 2월 7일,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자 절대권력자, 독재자이자 뭇 인민의 어버이, 학살자이자 초강대국 소련의 설계자, 강철의 대원수이자 최악의 인간 백정이었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이 사망했습니다. 말렌코프를 총서기 대행으로 한 임시 집단지도체제는 그야말로 권력 쟁탈의 아수라판이었고, 그 달콤한 승리는 NKVD의 막강한 정보력을 등에 업은 라브렌티 베리야가 가져갔습니다. 정적 니키타 흐루쇼프를 사법살인하고 전쟁영웅 게오르기 주코프를 영구 가택연금에처한 베리야는 자신의 대외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더 치적에 목매었죠.
베리야의 선택은 따라서 “당대회의 즉각 개최”, 그리고 히든카드로서의 “스탈린 격하” 및 “한국전쟁 개입”이었습니다. 때마침 반공 포로를 무단 석방하면서 휴전협상을 박살낸 남한 정권을 단죄한다는 명목으로 소련군을 정식 파병하고, 동시에 스탈린을 격하하며 자신을 “오명을 뒤집어쓴 비운의 사나이”로 이미지메이킹한다는 계획이었죠. 누구나 계획은 있었습니다. 두들겨 맞기전까지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리야의 원대한 꿈은 자신이 기획한 제20차 당대회에서 그대로 박살났습니다. 애초에 가능할 리가 없었죠. 말렌코프, 카가노비치, 불가닌, 몰로토프 등의 ‘보수파’는 군사를 동원해 NKVD를 말 그대로 ‘엎어버렸고’, 스탈린 격하의 장이 될 예정이었던 당대회는 베리야의 인민재판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베리야는 붉은 군대의 병사들에게 힘없이 끌려가 살인, 대량학살, 외국 간첩, 성폭행 등 총 21개의 혐의를 받고 총살당했습니다. 권력을 잡은 보수파는 스탈린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통과시킴과 동시에 현상유지를 기반으로 한 한국전쟁의 즉각적 종결을 결의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세상을 다 가진듯 보였죠.
그러나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호가호위, 호부견자라… 전임자를 계승한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았던듯 합니다.
2. 혹부리 영감의 몰락
1958년 8월 30일 조선로동당 3기 제2차 전원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주파 및 갑산파의 완벽한 승리로 끝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최창익, 윤공흠, 서휘 등을 필두로 한 연안파는 북한 영토에 주둔한 중국 인민지원군을 믿고 김일성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섰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죠. 결국 연안파의 거두 최창익은 부수상 등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어 가택연금에 처해졌고, 연안파와 소련파의 주요 정치인들은 베이징으로 향해 중국과 소련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결국 한 달이 지난 9월, 펑더화이와 아나스타스 미코얀을 필두로 한 중소 합동자문단은 북한 지도부를 베이징으로 호출했습니다. 이들은 “전원회의에서의 공개발언은 건전한 비판을 위한 가장 정당하고도 당연한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며 최창익 등 반대파의 즉각적인 복권과 개인숭배에 관한 의혹의 해소, 박헌영의 신원 공개 등을 요구했습니다.
와병을 핑계로 베이징 호출을 거부한 김일성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으나, 물론 실제로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미코얀은 “중대 경고를 통해 조선로동당을 ‘계도’한다”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며 모스크바로 돌아갔지만, 마오쩌둥과 펑더화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1957년 1월, 니콜라이 불가닌 총서기의 동의를 얻은 마오쩌둥은 “당내 건전풍토 확립에 관한 서약”을 내밀며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김일성의 대답을 기다릴 가치도 없다는듯 인민지원군을 동원해 그를 제거해버렸죠.
그렇게 북한에는 한 차례 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새로이 수상에 오른 연안파의 리더 최창익은 소련파, 그리고 박헌영의 사망으로 사실상 궤멸상태였던 남로당파를 조력자로 한 새 정권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1959년 조중우호조약이 체결되며 인민지원군은 ‘주조선 인민해방군 지원단’이 되어 정식 주둔권을 얻었죠. 이듬해인 1960년에는 조소우호조약까지 체결되며 북한은 공산권의 완전한 그늘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물론 소련 내 보수파의 권력 연장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중소 양국간의 끊임없는 소통과 공조는 그들로 하여금 영향권을 지킬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두 ‘붉은 공룡’이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입니다.
3. 수에즈의 굴욕, 또는…
자유장교단 쿠데타를 통해 전격 집권한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그야말로 ‘야심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남자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이집트의 개혁과 부국강병을 넘어, 오스만 술탄과 서구 열강에게 짓밟히고 억압받았던 아랍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구로부터는 아스완 댐 등 기반시설 및 공업시설을 구축할 자금을, 동구권으로부터는 동쪽의 유대인들에 맞설 무기를 얻고자 했던 나세르의 야심찬 계획은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아스완 댐 차관을 이유로 소련이 이집트 등에 대한 무기 및 물자 금수조치를 취했기 때문이죠. 물론 진짜 이유는 소련이 이스라엘을 비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수에즈 및 주요산업 국유화 및 외국자본(주로 영국과 프랑스) 수용을 선언한 이집트의 행보를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으나, 중동 지역이 통째로 소련에게 넘어가는 재앙적 사태는 더더욱 피하고 싶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분통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뇌절을 치기에는 미국이 제시한 돈이 너무 많았습니다.
오히려 사고는 친소국가 이스라엘이 쳤습니다. 1957년 4월 포트 사이드 협정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동의하자, 이집트 인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이길 수 없었던 나세르는 이스라엘 국적 선박의 운하 통행금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노동당-통일노동당 연립정부는 이집트 및 요르단에 대한 대대적 침공을 개시, 6일만에 요르단 강 서안지역과 시나이 반도 대부분을 점령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진노를 불러일으켰고, 한바탕 핵 위기가 몰아닥쳤습니다. “수상하게 앵글로 계열 백인처럼 생긴” 이집트 공군 파일럿이 “수상하게도 이집트에 있을 리가 없는” 폭격기를 몰고 시나이 반도의 이스라엘군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사태라던지, “수상하게 러시아어를 잘하는” 이스라엘군 장교가 “수상하게도 많은 물량의” 탱크를 몰고다니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그것은 사소한 오해에 불과했죠. 결국 핵 전력에서 압도적 열세에 놓였던 소련이 한발 물러서 직접 평화협상을 중재, 1) 수에즈 운하의 자유통항 보장, 2)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철수, 3)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 아랍인 자치구 설치를 조건으로 한 이스라엘 영유권 인정을 조건으로 양측은 종전을 결의했습니다.
전쟁의 최고 수혜자는 이스라엘, 그 다음 수혜자는 나세르와 미국, 그리고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소련이었습니다. 결국 소련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4. 싱글벙글 우당탕탕, 쿠바에서의 유쾌한 반란
1960년대 초반의 미소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전임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집권 연장에 성공한 리처드 닉슨과 공화당은 연일 소련에 대한 비난성명을 발표해댔고, 소련 역시 공격적인 행동과 수사로 맞받아치며 세계의 긴장도를 높이고 있었죠. 특히 1960년 발발한 콩고 내전에 소련이 전격 개입하며 콩고 공화국(구 프랑스령 콩고)과 콩고민주공화국(구 벨기에령 콩고) 서부지역을 통합한 콩고 인민민주주의 연방공화국을 수립한 일은 그 예시였습니다. 소련 보수파의 행동대장이자 장관회의 주석(총리)이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여기서 한 발을 더 내딛고 말았습니다. 공산혁명이 발생한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지어 핵전력 불균형을 뒤집는 ‘천재적인’ 지략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제안을 받은 피델 카스트로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자산 국유화로 미국과의 관계가 상당히 악화되긴 했지만 국운을 건 도박을 감행하면서까지 미국을 적대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었죠. 미국이 쿠바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증거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카스트로 본인의 목이 장대 위에 올라갈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카스트로는 이 카드를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국의 반응 역시 카스트로의 초기 반응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내의 쿠바계 이민자들, 군부 및 정보당국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도 어려웠던 닉슨은 쿠바에 “정부를 승인하지도, 주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는 모호한 선언을 발표한 뒤 소련의 제안을 언론에 유포했습니다. 그렇게 쿠바는 주권보장을, 닉슨은 소련에 대한 또 한번의 외교적 승리를 얻을 수 있었죠.
반면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브레즈네프와 소련 보수파는 최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닉슨 역시 ’대외정책 유연성‘이라는 카드를 너무도 일찍 소진해, 강경파의 입장을 계속 무시할 수 없게 되었죠. 한 번의 승리가 영원한 안녕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법이었습니다.
- 2편에서 계속…
첫댓글 얼마 안가서 有故할 유고 보다 독일을 원했는데...
독일의 경우는 생각보다 쉬울수 있어서?
단치히 공작, 브레슬라우 후작, 브롬베르크와 버밍엄의 백작, 도버 자작, 슈테틴과 셰필드의 남작이신 지그문트 아우구스트 요시아스 알렉산더 게오르크 미하엘 베른하르트 위르겐 아르민 베르너 울리히 테오도어 오토 카를 안톤 루트비히 알베르트 하인츠 빌헬름 헤르만 요제프 프리드리히 헬무트 프란츠 폰 가일렌베르크 각하는 눈물을 삼키며 다시 집어넣고 프랑스 혁명기때 사용하려고 만든 메드 사이언티스트를 바꾸어 사용해야겠구만.
@돈이 곧 진리 전 이름은 짧은데 혈통이 존나게 복잡한(증조 할아버지-세르비아인,증조할머니-보스니아인.증조외할아버지-슬로베니아인,증조외할머니-크로아티아인,고조할머니-마케도니아인,고조외할머니-알바니아인,외할머니-몬테네그로인,아버지는 세르비아,어머니는 보스니아에 거주하다 결혼) 파르티잔때부터 티토와 함께한 원로급(라고 해봤자 파르티잔 참여할때 나이는 10대로 보고 있으니 젋은 나잇대일수도?)을 구상한(성별은 고민중.근데 이번엔 성별이 어떻든 상관 없는 설정인듯)
@돈이 곧 진리 카라조르제비치 왕가의 마지막 후손(…) 같은 설정도 가능은 합니다.
@E.E.샤츠슈나이더 아직 세부 설정까진 안갔지만 부모님이 우스타샤 대원이었다는 설정을 넣을까도 생각중입니다. ㅋㅋㅋㅋㅋ
일단 얘가 류메이란 포지션이 되겠네요.
+ 그런데 샤오나이랑 동창이란 설정을 넣어도 되나요?
@E.E.샤츠슈나이더 그럼 현실 유고연방과는 좀 다른 설정인가 보네요?
일단 소련때처럼 가공인물이 리더역할 하고 그러는건가요?
현실에선 집단지도체제 하다 밀로셰비치 같은 애가 나타나면서...됐으니까.
@931117 가공인물은 어지간하면 안 쓸 예정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현실에서 티토의 이상을 이을만한 사람이 있었는지를 몰라서요.
없으니까 밀로셰비치 같은 민족주의자가 대두되서 그꼴난거 아닌가 하는지라.
@931117 자세한 건 이후 공지될 겁니다.
@E.E.샤츠슈나이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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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곧 진리 ’한두번 그런 적이 있었던 것‘과 지속적으로 그런 행위가 반복되는 것은 다릅니다.
@931117 신뢰하든 안하든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E.E.샤츠슈나이더 사과를 해도 신뢰가 없다면 억지사과,빈말로 보지 않겠습니까.
그말은 이미 저를 신뢰하지 않는다로 보이는데요
@931117 사과를 해도 안 믿을테니 아예 사과할 마음도 없다는 건가요? 하다못해 길 가다 실수로 발 한번 밟아도 사과는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아무튼 저는 더 이상 강요는 않겠습니다.
@E.E.샤츠슈나이더 사과해도 의심하면 못믿겠다며 또 한판 뜰테니까요
@931117 할 말은 많지만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한 마디 정도는 할게요.
그 사단을 내놓고도 “어차피 사과해도 안 받아줄테니 똥배짱이나 부리겠다” 라고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님을 과대평가한 것 같네요. 그럼 이만.
@E.E.샤츠슈나이더 일단 사과글 올리긴 했습니다.
길면 사족될것 같아서 짧게 쓴.
뭐 그런식으로 제말을 해석한다면 뭔말해도 안믿을테니 저도 더 말을 하긴 힘드네요
60년 대선에서 닉슨이 이겼나 보네요?
그리고 이정도묜 유고도 해볼만...?
다음 카페 앱의 멋진 기능:
분명 쓸 때는 멀쩡했던 문서 서식이 박살남. 한쪽을 수정하면 다른 쪽이 엉망이 됨. 다른 쪽도 수정하면 이번에는 아까 수정했던 파트가 박살남.
개 xx..
저도 글 날아간게 한두번이 아닌...진짜 또 카카오가 먹통이 되면 그땐 진짜 아예...
아, 어차피 현재 진행중인 작품 및 제 출장일정 등을 감안한다면 정식 연재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으므로… 캐릭터 구상은 프롤로그가 올라오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는 점 미리 공지드립니다.
막 15명씩 신청하고 하지 않는 한 선착순으로 끊는 것도 없으니까.. ㅋㅋ
전 웬만하면 초안이 거진 최종안으로 간다고 보면 됩니다.ㅎㅎ
캐릭터 설정이나 세계관 설정이나 그런 경우 많아요.
전 미리미리 짜놓는게 습관이 되어서요. ㅎㅎㅎ
오우... 벌써 프롤로그가... 출장 이후에 시작하신다니 다행이네요. 무슨 플레이가 재밌을지 고민해야겠군.. 여차하면 중간까지 유고가 어떤 길을 향하는지 보고 생각해야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이지만(..)
당연하게도 일단 원역사 꼴은 면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나머지는 차후 밝혀집니다. ㅋㅋ
@E.E.샤츠슈나이더 원역사 꼴을 면한다면 불가리아까지 진출하는건가(...)
넵넵 우선 2편.. 기다리겠습니다...
@통장 그건 개인적으로는 무리일수도?내부 설정을 봐야하겠습니다만.
현실대로 민족주의 여론이 커지는 상황이라면 확장은...
@통장 원역사 유고: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의 보스니아 인종청소 경진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