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詩: 박인환 시인 / 낭송: 지정애




[기사1-한국일보 자료]
피플
고미영의 山사랑, 사진에 되살린다
추모사업회, 히말라야 등정 장면 등 담아 화보집 발간
지난해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125m)을 오른 뒤 하산하다 타계한 산악인 고미영(사진) 대장의 추모 화보집이 다음달 5일 발간된다.
고미영 추모사업회는 고인의 도전정신을 기리고자 고씨가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과 히말라야 8,000m 11개봉의 등정 장면을 담은 화보집을 발간한다고 28일 밝혔다. 화보집은 비매품으로 2,000부가 발간되며, 코오롱스포츠 전국매장과 전국 주요 도서관 등에 배포된다.
고미영 화보집 발간을 주도한 김재수(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대장은 "고산 등반 등 다양한 등반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고씨를 추모하고 우리나라에서 더 훌륭한 산악인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고인이 못다 이룬 히말라야 14좌 최단 등정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달 초오유(8,201m) 등반을 시작으로 4월 안나푸르나(8,091m), 7월 가셔브럼 1봉(8,080m)과 가셔브롬 2봉(8,034m)을 차례로 오를 계획이다.
[기사2-글로벌 석간 종합일간지-아시아투데이 자료]
히말라야 고봉 11좌 등정 여성 산악인 고미영 추락 실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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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석간 종합일간지' 아시아투데이]
여성 산악인 고미영(41·코오롱스포츠) 원정대장이 11일(한국시간)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히말라야의 낭가 파르밧(해발 8126m) 정상을 올랐다 하산하던 중 추락 실종했다고 KBS가 12일 보도했다.
히말라야 고봉 14개 봉 중 11개 등정에 성공한 고미영씨는 낭가 파르밧 정상에 올라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전하며 "남은 3개 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떨치겠다"는 각오를 전했었다.
현재 고씨보다 많은 히말라야 봉을 정복한 여성 산악인은 한국인 오은선(43)씨와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 등 단 세 명. 이들은 모두 12개 봉에 올라 고씨는 한 개 봉우리 차이로 바짝 뒤좇고 있는 상황이다.
고씨는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파키스탄 산악도시 스카루드에서 휴식을 한 뒤 낭가 파르밧에서 직선거리로 약 180㎞ 떨어져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가셔브룸 1봉(8068m)과 가셔브룸 2봉 연속 등정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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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3-머니투데이 자료]
히말라야서 잠든 故고미영, 사진서 되살아난다
고미영, 추모 화보집 발간..추모사업회도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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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낭가파르밧 C2 등반중인 고미영씨의 모습. | 지난해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 등정 후 하산 길에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 여성 산악인 고(故) 고미영씨의 추모 화보집을 발간된다. 고미영 추모사업회는 고미영씨의 진정한 도전정신을 기리고 한국 산악계에 길이 남을 등반활동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오는 5일 추모 화보집을 발간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화보집 발간을 기념한 출판 기념회는 오는 6일 19시 올림픽 파크텔 1층에서 고미영씨 사진전과 함께 산악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추모 화보집은 고미영씨가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히말라야 8000m 11개봉의 등정의 장면을 담은 다양한 사진으로 구성됐다. 화보집 발간을 주도한 김재수 대장(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소속)은 "스포츠클라이밍, 산악스키, 암벽 및 빙벽등반, 고산 등반 등 다양한 등반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고미영씨를 추모하고 청소년들에게 도전의식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 이번 화보집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추모집은 비매품으로 2000부가 제작돼 산악계 인사와 코오롱스포츠 전국매장과 전국 주요 도서관에 비매품으로 보급된다. 각계에서 지원해주는 성금은 고미영씨 추모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다. 고미영씨 추모사업회도 설립됐다. 고미영씨 추모사업회는 김재수 대장을 회장으로 김진배(전 국회의원)씨 등이 이사진으로 참여, 회원 및 유가족들의 출연금 3억 2000만원을 설립자금으로 설립됐다. 고미영배 스포츠클라이밍대회 개최를 비롯해 등반 사고를 당한 산악인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 등을 벌일 계획이다. 한편,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대장이 못다 이룬 14좌 최단기간 등정의 대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3월 초오유, 4월 안나푸르나, 7월 가셔브럼 1.2봉을 등반할 계획이다 |
TIP.... 히말라야 14좌란
히말라야 산맥에서 8000m가 넘는 총 14개의 봉우리를 말합니다.
1. 에베레스트 (초모룽마) Everes 8,850M
2. K2 (케이 투) 8,611m
3. 칸첸중가 Kanchenjunga 8,598m
4. 로체 Lhotse 8,516m
5. 마칼루 Makalu 8,463 m
6. 초오유 Cho Oyu 8,201m
7. 다울라기리 Dhaulagiri 8,167m
8. 마나슬루 manaslu 8,163m
9. 낭가파르바트 Nanga Parbat 8,126m
10.안나푸르나 Annapurna 8,091m
11. 가셔브룸 1 (히든 피크) Gasherbrum 1 (Hidden Peak) 8,068m
12. 브로드 피크 Broad Peak 8,047m
13. 가셔브룸 2 Gasherbrum 2 8,035m
14. 시샤팡마 (고사인탄) Shisha Pangma (Gosainthan) 8,013m
고미영을 사랑하는 모임[고사모] 자료

http://cafe.daum.net/ilovegomiyoung
[추모특집 | 고미영 일대기]
“포기란? 배추 셀 때만 필요한 말이에요” 스포츠클라이머 출신으로 거벽·빙벽·고산등반까지 섭렵했던 鐵女(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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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8,000m 거봉인 낭가파르밧(8,125m) 등정 후 하산길에 사고를 당한 고미영(高美榮·42)은 후배 산악인들에게 의지의 표상이었다. 그녀에게 산은 끊임없는 도전의 대상이자 자기 계발을 위한 장이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고미영은 특히 스포츠클라이머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변신과 도전을 거듭하면서도 단 한 번도 꺾이지 않고 후배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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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봄 에베레스트 등정 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던 고미영.
스포츠클라이머로서 산악계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전국등반경기대회 9연패를 달성하고, 아시아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도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단 한 번을 제외하곤 여섯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대륙은 그녀에게 좁았다. 세계 제패를 위해 달렸다. 그로 인해 2000년 월드컵 랭킹 6위에 이어 2001년에는 5위에 입상했다. 스포츠클라이밍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1999년 빙벽 등반을 배운 지 3년 만인 2002년 세계 선수권대회 4위에 오르고, 이듬해 2003년 월드컵 랭킹 5위에 올랐다.
그녀의 꿈은 자연스레 하얀 산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대상은 파키스탄의 드리피카(6,447m)였다. 그 등정길에서 그녀는 60m나 추락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했다. 그 꿈은 이듬해 세계 최고봉 도전에서 꺾이는 듯했으나 이를 쓴 약으로 삼고 와신상담, 이듬해 2007년 봄 에베레스트 재도전에 성공했다. 이후 불과 2년2개월 만에 8,000m급 11개 거봉 등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고미영의 멈추지 않을 듯했던 고봉 등정 행렬은 열한 번째 거봉인 낭가파르밧 등정 소식이 TV를 통해 전해진 지 하루 뒤인 7월 11일 오후 7시경 추락 사고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11년 다닌 농수산부 교육원 사표 쓰고 등반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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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미영은 국내 스포츠클라이머로서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웠다.
- 1967년 7월 전북 부안에서 2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미영은 농수산부에 재직 중이던 1989년 북한산 산행에 나섰다 우연히 들어섰던 만경대에서 바위의 짜릿한 맛에 매료돼 등반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녀에게는 ‘적당히’라는 게 있을 수 없었다.
등반을 제대로 하기 위해 1991년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과 암벽반을 나왔음에도 그것으론 부족하다 싶어 실내인공암벽을 찾았다. 거기서 1년 사이 68kg 몸무게가 20kg나 줄어들 만큼 맹훈련을 거듭했다. 그로 인해 1994년부터 9년간 국내 여성 스포츠클라이밍계의 1인자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창 스포츠클라이밍에 몰입해 지낼 때 그녀는 훈련광으로 통했다. 휴일에 자연암벽에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평일 오전에는 조깅·수영·헬스로 체력을 단련하고,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는 인공벽에 매달려 지냈다. 벽에 일단 매달리면 40분이 기본이었다. 그녀는 간혹 훈련방법에 대해 문의를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가 해준 말은 “다른 사람들의 훈련방법을 좇다보면 우왕좌왕한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우직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충고였다.
1997년 10월 말에는 유럽으로 떠났다. 11년 동안 근무하던 농수산부 교육원을 그만두면서 나선 등반 유학이었다. 남들 같으면 안정된 생활을 위해 직장을 고수할 텐데 그녀는 달랐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사표를 낸 것이다. 당시 고미영은 자신을 철저하게 시험해 보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그녀는 유럽에 계속 머물지는 못하고 3년간 1년에 한 달에서 석 달간 등반 투어를 나섰다. 그녀는 세계적인 클라이머들과 함께 세계적인 암벽과 실내 암벽에서 훈련하는 사이 배운 것도 많고 자신감도 생겼다.
등반을 즐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아침 조깅에 앞서 1시간30분씩 단전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쌓았다. 그녀는 실제로 늘 웃는 표정으로 지내왔다. 인사도 늘 큰 소리와 함께 웃음으로 나누었다. 시합 중 크럭스를 넘어서거나 실수했을 때도 환하게 웃었다. 크럭스를 넘어서면서 기쁜 표정을 짓고, 완등할 때마다 환한 미소와 함께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모습 때문에 외국 클라이머들은 멘털 스트롱(Mental Strong)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생전의 고미영은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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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고미영은 빙벽등반을 시작한 지 3년째인 2002년 피츠탈 빙벽등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입상했다. (우)청솔모처럼 가볍고 완벽한 자세로 장군벽을 등반하는 고미영. 그녀는 인공벽뿐 아니라 자연암벽에서도 뛰어난 등반 기량을 보여주었다.
고미영은 2000년 월드컵 랭킹 6위에 이어 2001년에는 5위에 입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30대 중반, 스포츠클라이머로서는 노장의 나이에 접어들어 있었다. 유럽 투어를 하면서 너무 스포츠클라이밍에만 매달려 지냈고, 그래서 정통 산악인들과 거리가 점점 멀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빙벽 등반이었다.
“나이와 등반은 관계가 없다”며 스포츠클라이밍에 매진해오던 고미영이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스포츠클라이밍계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김자인(고려대·노스페이스)과 같은 뛰어난 클라이머들이 줄지어 탄생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미영은 스포츠클라이밍에서도 그랬듯이 빙벽 등반에서도 시작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1999년 1월 정승권등산학교 빙벽반을 마치고 한 달쯤 지나 토왕폭에서 열린 빙벽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고 3년 뒤인 2002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르는가 하면 2003년에는 월드컵 랭킹 5위에 올라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1999년 8월 고미영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등반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생각되면 거벽 등반에 이어 고산 등반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빙벽 등반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그 계획대로 움직였다.
2002년 봄, 고미영은 세계적인 등반가인 마우로 부부 볼레와 짝을 이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서 등반길이 400m, 11피치, 최고난이도 5.13d급에 달하는 호텔 수프라몬테를 10시간 만에 자유등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 루트의 전 피치를 자유등반한 사람은 남자 4명에 불과했고, 여자로서는 고미영이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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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2007년 에베레스트 재도전 중 마지막 제4캠프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고미영.
(우) 에베레스트 등반 중 여유있는 모습으로 쉬고 있는 고미영
에베레스트 실패 후 도보산행과 살찌우기에 애써
2006년 초 산악스키를 배운 지 한 달만에 산악스키대회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던 고미영은 몇몇 장비업체에서 지원을 받아오다가 2004년 5월 코오롱스포츠와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꿈을 더욱 활짝 펼칠 수 있었다. 첫 고산은 파키스탄 K6 지역에 솟아 있는 미봉 드리피카였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스포츠클라이밍에만 열중해왔던 그녀였기에 체질적으로 고산 등반이 어렵고, 위험할 수도 있으리라는 예상이었다. 그녀는 그 우려를 깨끗이 떨쳐 버렸다.
그녀가 학생으로서 배우고, 여러 해 동안 강사로 활동해온 코오롱등산학교 강사팀으로 나선 파키스탄 드리피카 원정에서 그녀는 60m를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고 김형주(2009년 1월 31일 설악산 염주골에서 눈사태로 사망)씨와 함께 첫 고산 등정의 기쁨을 누렸다. 고미영은 당시 원정기를 통해 “화살촉처럼 뾰족한 정상이 멋져 택한 드리피카는 참 멀고도 험했지만 나에게 많은 생각과 앞으로의 등반 방향을 제시해준 최초의 높은 산이었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첫 대상으로 잡은 에베레스트는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대전연맹 원정대와 함께 등반에 나선 그녀는 ABC에서 퉁퉁 부어 지냈다. 발가락 동상으로 움직일 수 없던 BC에서의 열흘은 너무도 외로웠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심정이었다. 그래도 꺾이지 않았다.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떤 훈련이 적당할까? 생각하고 연구했다. 스포츠클라이밍과 고산 등반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청계산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어올랐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도 수없이 해냈다. 적당히 몸안에 지방을 쌓기 위해 어떤 육류든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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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봄 로체 등반을 위해 아이스폴을 지나고 있는 고미영.
- 그러고 나선 게 2006년 가을 초오유(8,201m·6위 봉) 원정이었다. 셰르파와 둘이었다. 그녀는 한 해 전 에베레스트 원정 때처럼 무참히 무너지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셰르파가 놀랄 정도로 그녀는 적응을 잘 해나갔다. ABC까지 기타를 지고 오르고, 캠프를 하나 하나 올리면서도 배가 고파 밥 생각이 날 만큼 적응이 잘 됐다. 고미영은 원정기를 통해 당시 “튼튼하게 낳아준 아버지가 고마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초오유 등정에 성공한 고미영은 14개 거봉 완등을 계획했다.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안전하게 하나 하나 오르는 게 목표였다. 이듬해 2007년 에베레스트 재도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고산등반가들과 교류가 거의 없던 그녀에게는 동행할 원정대가 없었다.
그런데 “함께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김재수 대장이었다. 당시 김해 원정대 대장이었던 김재수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미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스포츠클라이밍 잘하는 여자’ 정도였다. 김 대장은 조건을 내걸었다. “경비는 후배들이 1,500만 원씩 내지만 고미영씨는 그래도 선배 축에 속하니까 300만 원쯤 더 내야 하고, 캐러밴부터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 합류해 등반하려던 고미영은 김 대장의 말에 마음을 바꿔먹고 3월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김재수를 비롯한 김해 원정대에 합류해 랑탕히말 고소적응 등반부터 함께 했고, 그 결과 김재수 대장이 “정말 씩씩하게 등반했다”고 표현할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컨디션을 잃지 않고 정상까지 무난히 올라섰다.
“첫인상이 무척 깐깐해 함께 등반하려면 무척 애를 먹겠다”던 김재수 대장의 고미영에 대한 첫인상은 등반을 하는 사이 바뀌었다. 고산을 막 시작한 그녀에게 수많은 고산 등반 경험과 냉정한 판단력을 겸비한 김재수 대장은 그야말로 꼭 필요한 존재다 싶었다. 고미영은 등반을 마친 뒤 김재수 대장에게 부탁했다. 앞으로 등반을 함께 해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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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K2 암벽 구간을 주마링하는 고미영.
김재수 대장은 “하고 있는 사업 때문에 오랜 기간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고산 등반을 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를 대며 사양하다 거듭되는 부탁에 “브로드피크만 함께 등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등반에 동참했지만 이후 파트너이자 매니저로서 히말라야 8,000m 14개 거봉과 7대륙 최고봉 완등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봉우리 하나 하나를 무난히 올라섰다. 정상에 올라설 때마다 그녀는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2007년 7월 브로드피크(8,047m·12위 봉) 등정에 이어 10월 시샤팡마(8,027m·14위 봉) 등정에 성공하고, 이듬해 2008년 로체(8,516m,·4위 봉·5월 17일)·K2(8,611m·2위 봉·8월 1일)·마나슬루(8,163m·8위 봉·10월 14일) 등 이태 연속 한 해 3개 거봉 등정으로 7개 거봉 등정을 기록하면서 여성 세계 최초의 14개 완등을 목표로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오은선(43·블랙야크)을 바짝 추격해 들어갔다. 이로 인해 산악계의 관심은 두 사람의 레이스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미영에게는 안전 등반이 우선이었다. 때문에 산소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8,500m 이하의 봉을 등반하는 데 산소를 사용하면 후에 기록이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김재수 대장의 충고에 따라 마나슬루 등반 때부터 무산소 등반을 시도했다. 그 등반에서 예상외로 무난한 등반을 펼쳤던 고미영은 이후 올해 등반 때는 의료용 산소 외에는 산소통을 지참하지 않고 등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미영은 지난 한 해 3개 봉 등정 기록을 올해 마칼루(8,463m·5위 봉·5월 1일 등정)·캉첸중가(8,563m·3위 봉·5월 18일)·다울라기리(8,167m·7위 봉·6월 9일) 한 시즌 등정으로 깨뜨리고, 지난 6월 28일부터 낭가파르밧(8,125m·10위 봉) 등반을 펼쳤던 것이다. 특히 올봄 고미영은 오은선의 기록을 1개 봉 차이로 따라붙으면서 두 여성 산악인의 고산 등반은 산악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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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2007년 여름 브로드피크 정상에 오른 고미영. (우)2008년 가을 김재수 대장과 함께 마나슬루 정상에 오른 고미영. 처음으로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 8,000m 거봉이었다.
- - 글 한필석 차장 / 사진 코오롱스포츠 / 월간 산 8월호에서 -
고미영 프로필 Go, Mi Young Profile
생년월일 : 1967년 7 월 3 일(음) 전북 부안에서 아버지 고재은씨와 어머니 김점례씨의 2남 4녀 중 막내로 출생, 싱글 신체조건 : 키 160 cm, 출신학교 : 부안 하서초등학교- 하서 중학교- 인천 인성여자 고등학교- 청주대학교 중어중문과 졸업 -상명대학교 체육대학원 소속회사 : FNC코오롱 (코오롱스포츠챌린지팀) 소속단체 : 한국여성산악회 부회장 대한산악연맹 부교수(과목 : 암벽등반기술) 취 미 : 한지공예, 십자수, 독서 이메일 주소 : go5014@hanmail.net
1994-2003 전국 스포츠클라이밍대회 9연패
1997-2003 아시안컵 스포츠클라이밍대회 6연패
1998 월드 익스트림게임(스포츠클라이밍) 준우승
2000 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랭킹 6위 2001 스포츠클라이밍 월드랭킹 5위 2002 아이스클라이밍 세계선수권 4위 2003 아이스클라이밍 월드랭킹 5위
2005년 파키스탄 드리피카(6,447m) 한국 초등 -히말라야 등반 시작
2006.10. 1 초오유(8,201m) 등정 2007. 5.16 에베레스트(8,848m) 등정 2007. 7.12 브로드피크(8,047m) 등정 2007.10. 5 시샤팡마(8,027m) 등정 2008. 5.17 로체(8,516m) 등정 2008. 8. 1 K2(8,611m) 등정 2008.10.14 마나슬루(8,163m) 등정
2009. 5. 1 마칼루 (8,463m) 등정
2009. 5.18 칸첸중가 (8,603m) 등정
2009. 6. 9 다울라기리(8,167m) 등정
2009. 7.10 낭가파르밧(8,126m) 등정
2007. 5.16 아시아 - 에베레스트 등정
2008. 1.06 남아메리카 - 아콩카구아(6,959m) 등정
2008. 2.20 아프리카 - 킬리만자로(5,895m) 등정
1992년 대한체육회 우수선수상(산악부문)
1999년 대한체육회 우수선수상 (등반경기부문)
2002년 대한민국 산악대상 스포츠클라이밍상
2009년 7월 20일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자 격 증
2004년 경기지도자 2급(산악)
2005년 대한산악연맹 공인 2급 루트세터
2006년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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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입력 2010.02.24 14:26

(서울=연합뉴스)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손용석)는 2일 제46회 한국보도사진전 수상작을 선정했다. 스팟,제너럴뉴스,피처,스포츠,포트레이트,네이처,아트 & 엔터테인먼트,시사스토리,생활스토리 등 총 9개부문에서 전국 신문, 통신사 사진기자가 지난 한해동안 취재한 보도사진 출품작 500여점중에서 엄선한 작품들이다.수상 및 입선작품은 오는 2월 24일부터 3월 5일까지 10일간 서울갤러리(한국프레스센터 1층)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사진은 포트레이트 최우수상을 수상한 연합뉴스 김주성기자의 '대장의 눈물'. 지난해 7월 21일 국립의료원에서 열린 여성산악인 故 고미영씨의 영결식에서 등반을 함께 했던 김재수 대장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제 46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손용석 한국사진기자협회장, 정운찬 국무총리, 정세균 민주당대표, 정몽준 한나라당대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등 참석자들이 개막식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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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베토벤님 이라 부르는 화가이신 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김재수대장님....어느날 벨리에 오셔서'그대 먼곳에'를 부르시며 눈물지으시던 , 그리고 얼마 후 다시오셔서 사진전을 하신다며 당신이 직접 촬영하신 화보집 보여주시던 가보지도 못했던 히말라야 산의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사진들...당신이 직접 쓰신 글을 행사에 낭송을 해
라시며 갑작스레 초대되어진 공연...한계령을 구성지게 부르는 미라언니와 대장님을 글을 낭송을 하면서 가슴 울컥이게 했던 ...14좌 등정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끝없는 도전을 해서 히말라야의 하얀 눈이 된, 자연이 된 그녀
다시 김재수 대장님은 3월에 히말라야로 떠나십니다..가을에 만나기를 약속하며...
잠깐 와서 노래와 낭송 만 하시면 됩니다 하시던 울 베토벤님
미오미오 



엄청난 인원과 방송사 카메라에...역쉬 스케일이 크신 베토벤 선상님이십니다요 

아름다운 인연 꾸준히 이여가여...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