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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공관복음이 역사성을 강조한데 비하여 이런 사건과 말씀을 해석하여 영적 의미를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가 생략되고 말씀이 육신이 됏다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로 복음이 시작된다.
변화산사건, 최후의 만찬, 비유 등이 생략 됐다.
1. 요1;1-5 말씀=하나님 --진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의 말씀
(마8;5-13, 눅5;5 참고)
*진리인 말씀이 생명 있는 인격의 하나님으로 도전되고 이전의 나의 삶이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때 -- 복음
요1;4 만물 안에 생명= 빛(마4;16 “빛으로 오신 예수” 참고)
** 만물 안에 존재하시는 주님(빛)--- 창조하시고 택한자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생명력을 보는 눈일 때 이를 믿음이라 한다.
만물 안에서 또한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을 보고 만나게 하소서. –복음
이는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을 때에 주님의 눈으로 보여지는 신비로운 생명력의 현상 입니다.
요14;18-20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이 말씀을 받아먹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겔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3;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 꿀 같이 단 말씀만이 하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 증거하지 아니하고는 견딜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사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말씀을 받은자의 삶은 바로 성령 충만을 받앗기에 전하지 아니할 수 없고 이러한 삶 속에서 의, 평강,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주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로고스란말은 헬라의 철학용어로 나타난 현상은 악하고 영의 세계만이 선이라 했다.(이원론)
그러므로 이 우주안에 선인 로고스(lovgo")를 터득하는 지식이 있다면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이 로고스는 영혼이라는 그릇 안에 있기 때문 이란 것이다.
이 사상을 끌어서 주님의 창조, 섭리, 계시, 예정, 택하심, 십자가의 구원을 이 로고스라는 그릇에 담아 넣은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뜻하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주님이시고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실 때 복음의 생명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없이는 복음을 받을 수도 체험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은 지금도 성도들과 더불어 그 생명력(빛)을 공유하시기를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 복음
2. 요1;12-13 영접하는 자와 은혜의 상충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곡해 하는데에 남다른 기술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자신의 경험과 이해와 능력의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기술입니다.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속 셈이 있다는 것을 자신도 알지 못 합니다.
그만큼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되었음을 증명합니다.
마5;27-45
음욕 품으면 간음, 눈이 범죄하면 빼 버려라, 오리를 가서 일을 시키고자 하면 10리까지라도 가서 해 주어라,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내어주라(그러면 벌거벗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왼뺨을 치면 오른뺨까지 돌려대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누가 이러한 율법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완전하여 결함이 전혀 없으시고 의이신 창조주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셨고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증명 하셨습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면 주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나요?!
인간이 스스로 전적 타락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복음은 복음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개혁교회 5대 강령중 제 1번이 인간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 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 “인간의 뜻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 은혜를 받은 자 만이 구원이라고 해명해 주십니다.
이러한 오해 구절은 많이 있습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믿고 않 믿고의 결정이 자신에게 달린 것 처럼 오해 합니다.
네가 문을 열면 너와 더불어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오해의 핵심 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우리 택함 받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와 열심과 오래 참으심의 성품을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의 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 등등의 말씀에 우리는 환호하며 인간의 가능성에 열광 합니다.
오해 입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2;1-9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살리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내 노력으로 예수 믿었다면 내가 자랑할 말이 있어 주님을 또 괴롭힐 것입니다.
전지하신 주님이 그것을 몰랏겠나요?!
주님은 유혹에 약하고 욕심을 부리는 인간으로 사람을 창조 하셨습니다.
롬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사도 바울은 인간의 참 모습을 확실하게 깨닫고 알려 주십니다.
그러니 의 라는 것은 전혀 생각 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 입니다.
그렇게 창조 하셨기 때문 입니다.
물론 주님은 인간을 정직하게 좋게 지으셨습니다.
전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 자기 꾀에 빠져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사건이 이를 증명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만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예수 믿으라고 구걸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창조전 선택 받아 구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께 영광돌리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펠라기우스나, 아르미니우스 같은 이들의 주장과 같이 인간의 가능성을 말하며 선과 의로움이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기 위하여 흥분하며 자존심을 더욱 상승시키기 위하여 노력 합니다.
현재에도 많은 교회가 그리고 목회자가 그리로 가기에 교인들은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따위의 충성, 봉사, 헌신 등은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명한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레는 4시간 수면에 전도, 설교, 공부 외에는 오락, 잡기의 근처도 가지 않고 경건의 삶을 살앗던 그도 죽기 전 구원은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이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전적으로 타락된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 복음을 깨닫고 최선으로 이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을 성화(Sanctification) 라고 합니다.
사명자의 삶 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고 사명자의 삶을 사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삶에 직접 연결되어 기쁨과 평강 속에 주님의 인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요1;23 (마3;1-12, 막1;7-8, 눅3;15-17)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사40;3)
*이 깨달음이 있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죽기까지 신앙을 지킨것이다.
우리는 성도라면서 세상적인 것에 너무 관심하는 것은 아닌가?!
세상 것을 얻고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믿음이라는 매체를 통해 주님을 이용한 것은 아닌가?!
세례요한과 같이 주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갈수는 없는 걸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불가능이지요.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이 순교의 삶을 살수 있다. – 복음
♬ -- 세상 욕망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 ♬
엡5;18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은혜로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성도의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장치 해 놓으셨습니다.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4. 요1;51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보리라
**주님이 선사하신 믿음으로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에 삶의 목표가 있어 늘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또 주님께 늘 엿쭙는 생활을 한다면 주님은 주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사명감에 불타는 변화를 주시고 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채우실 것이다. -- 복음
시23 1-6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 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 이 주옥 같은 주님의 진리의 말씀이 내게 부딧쳐 깨달아지는 복음의 광채를 본다면 그 빛은 나를 변화시키시며 이 역사에 순종하여 따라 살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음미하며 간구하면 주님은 그 깊은 비밀의 복음을 “하늘을 여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는 순교 당하는 스데반이 본 “하늘을 여시고” 하나님과 인자를 본 것과 같은 능력 입니다.(행7;56)
5. 요3;1-7 니고데모-- 거듭남(물과 성령)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지켜 의로운 자라 일컫는 사람이었다.
유대인의 지도자로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아무도 모르게 밤에 만나러 온 것이다.
당시 예수님은 비판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유명인사로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세상의 비판을 받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밤에 찾아온 것이다.
확신과 담대한 신앙이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님은 니고데모의 열심을 가상히 여기시고 복음을 주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
여기에서 물과 성령에서의 “과”는 헬라어의 kai - (kai)로서 동격 접속사로 “물 즉 성령”을 뜻한다. 히브리 문학의 반복 기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셔야 오시는 하나님의 영(靈)을 뜻한다.
나의 가치관, 인생관의 의미 없음을 고백하고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인격이 변화되고 거듭나 주님의 통치를 받는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복음
그럼에도 우리는 내 생각과 지식, 경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 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많은 관심을 가져 내게 주어진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끌려 다니는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이 보통입니다.
헌금도, 봉사도, 구제, 등도 목회자가 또는 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 할 일 입니다.
더구나 설교까지 이런 수준에 이른다면 주님께 영광 올린다는 교회는 어디에 있으며 주님 사랑과 믿음은 실종된 상태가 아닌가요??
말로는 거듭남을 외치면서도 유명해지고 싶고, 명문대학에 입학을 위한 특별기도회, 성공을 위한 방법 등을 설교하고 가르친다면 이는 신통력있는 무당의 굿거리와 무엇이 다른가요??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 인기있고, 존경 받으며, 유명한 사람이 되고, 성공했다면 그는 예수를 제처두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악한 자가 될 것입니다.
요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절대로 기억 하십시다.
사회적으로 유명하게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경우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성경에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좋아하시는 야곱의 아들 요셉도 당대 아주 큰 나라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었지만 이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야곱 족속들을 구별하여 이집트의 고센에 몪어 놓으시고 400년동안 신앙적인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입니다.(창15;13)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으로 요셉이 사명을 받고 그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지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쓰시고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고 자녀가 되기 위하여 양육할 때 참 기쁨과 평강의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성경 전체가 말씀 합니다.
미얀마에는 로암선교회가 운영하는 어린이 신학교가 있습니다.(LOAM CHILDREN BIBLE SCHOOL) 일반적인 청년신학교보다 월등하게 교육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엄마의 품안을 그리워할 나이이지만 엄마의 역할을 하는 영적인 엄마가 늘 사랑으로 돌보아 인격적으로 말씀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게 배려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말씀의 깊은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갈수 있도록 교육 합니다.
자기주장보다는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고 말하실까를 훈련 합니다.
예수님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을 소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자기주장은 모두가 죄악이기 때문 입니다.
어린아기들은 자기주장을 표현하지 못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어린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심겨진 씨앗이 잘 자라는 것을 확인 합니다.
또한 부모가 양육하고 학교에서 교육하는 것보다 인격적으로도 월등하게 우수하다는 것을 확인 합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이끄시고 주님이 지혜 주시며 주님이 내 삶의 전부라고 믿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거듭남의 삶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정리해 봅니다.
거듭남이란 이전의 자기 삶의 죽음입니다.
죽음, 사망이란 헬라 원어에 qajnatov" (danatos)
히브리 원어에 tWm (mot) --- 주 안에서 생명을 십자가에 박다
이전의 나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함이 죽음이요 이 죽음이 있을 때 성
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게 되는데 이를 거듭남이라 하는 것입니다.-- 복음
나의 모든 것을 부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주님의 은혜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함 받고 의롭다고 간주해 주실 때에 어둠과 흑암에 거 했던 이전의 삶을 부인하고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다는 헬라 원어에 a[nwqen (anothen) 단순히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다,” 그리고 “ 또 다시” 라는 의미를 함께 쓰는 단어 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의 것으로 재 창조되다”라는 뜻입니다.
이 거듭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님의 통치 받으며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는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실로 박학하고 사회적인 명성도 있을 뿐 아니라 늘 메시야를 대망하는 바리세인중의 바리세인으로 겸손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네가 거듭나야” 된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의인으로 대접받으며 경건하게 살아온 그에게 엉뚱한 “거듭나야 된다”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재 창조 되야 된다”??
당시의 고명한 학자로서도 처음 듣는 말씀 입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이방인들이 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 선택 받은 유대인의 신분이 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어 세례와 결레를 행하여 이를 거듭남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거듭남은 “또 다시 나다”라는 유대인으로 신분을 인정 받다 라는 의미일 뿐 하나님으로 부터의 재 창조의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석학의 눈으로 볼 때는 그동안 많은 이방인들이 개종하는 거듭남의 결레를 행해 왔지만 그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가 이런 어리석다 할 정도의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박식한 경건주의자 니고데모로서는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난다는 말씀이신가요??하고 아주 어리석은듯한 질문 을 한 것입니다.(요3;4)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그러므로 성령님으로만이 거듭남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3;7-8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성령님의 인도 받는 삶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재 창조된 거듭남이라는 것입니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 흔적이 남듯이 성령이 임하시면 그 흔적으로 거듭남의 삶의 흔적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마10;38, 16;24, 막8;34)
즉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신 목적대로 살아가야 맞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란 주님이 택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깨달아 바로 그 삶을 살 때 이를 거듭남이라 하는 것입니다. -- 복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Who am I?)
주님을 알지 못했던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너 스스로를 알라”고 했습니다.
이를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사명을 깨닫고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길을 인도하시는 영이 바로 성령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주장만 버리게 되면 성령님이 이 거듭남의 삶으로 인도 하시겠다”가 바른 해석이요 바른 뜻 입니다.
그러니 “염려치 말라” “힘쓰지 말라” “잘난 체 하지 말라” 라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매사에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교만 속에 있다면 어찌 거듭날 수 있단 말인가요??
복음 증거의 현장에서도 그리도 쉽게 설명을 해 드려도 그렇게 공부도 많이 하시고 똑똑하신분이 못알아 듣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데 자신의 지식과 경험, 또는 선입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결정하고, 분별하겠다고 하니 엉뚱하기만 하고 늘 제자리에서 앉은뱅이 수준이요, 걸음마 수준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이때 성령이 임하여 인도하시는 것을 깨닫고 확신과 담대한 신앙인이 됐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처형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시퍼런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몰약과 침향을 갖고 온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날때의 비굴한 마음이 아니라 담대하고 확신에 차서 유대교 지도자들 보란듯이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과 침향을 바른 것입니다. (요19;39)
성령으로 거듭낫다는 증거 입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이들은 담대하고 확신이 충만 합니다.
그러니 스테반 처럼 순교를 당해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 따라 사는 성도에게 나타나는 생명력이요 능력 입니다.
6. 요3;16 영생 - 오해하지 말자.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일 학교 때부터 암송해오는 성경구절이지만 오해가 많습니다.
여기에서의 세상은 주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을 위하여 예수님이 보냄 받앗고 믿는 이들에게 영생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 목적이 영생을 얻기 위함 인 것처럼 오해합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잘못 교육 받은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의 주 목적은 주님 영광입니다. -- 복음
창조의 목적하신 것이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밝히셨기 때문 입니다.(사 43;7)
주님은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믿는 성도들과 영생 하시는 것입니다.
영생의 팃켓을 따기 위하여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입니다.
영생은 이미 택하신 자들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져 있고 또한 의롭다고 간주해 주십니다.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딛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메이커가 무엇을 만들 때에는 그 목적이 분명한 것입니다.
컵을 만든다면 메이커는 음료 등을 마실 수 있기에 편리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사용자가 컵을 밥그릇으로 사용한다면 매우 불편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조하신 목적이 주님 영광이라면 피조물의 삶도 주님 영광이라야 맞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주님이 영생이시니 주님 영광을 위한 성도의 삶 역시 영생임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와 사명자의 마음에는 주님이 늘 계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유한적인 삶이 아니라 이 복음을 깨닫고 믿는 그 시간부터 영원의 하나님 나라의 삶을 주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물론 흙으로 빚어 만들어진 이 육신은 다시 흙이 되지만 내 안의 영은 영원하신 주님과 더불어 현재도 함께 기쁨과 평강의 소망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거듭남에 이어져 주신 이 복음은 그 거듭남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거듭나 세상에 보내어진 목적 - 사명을 바로 알고 주님만 바라봐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민21;4-8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커녕 원망과 불평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불뱀을 내려 또 다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십니다. (성경 전체의 주제 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러한 그들 중 믿는 이들을 살려내시려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놋뱀을 장대 끝에 매 달아 보는 이들마다 생명을 주시는 것을 통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달아 주님께 영광 올리게 하기 위함 입니다.
7. 요3;30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주님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영광을 올려야 하는 동시에 주님께 영광을 돌린 나는 아무것도 아닌(nothing) 흙덩이에 불과하며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 복음
이처럼 자기의 이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때에 주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영광도 돌리고 나도 영광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내 영광이 앞서는 것이 다반사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요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이는 진정한 주님 영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 영광을 위하여 이름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야 바른 것입니다.
죤 칼빈은 이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묘에 묘비명을 세우지 않도록 명하여 지금도 그의 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성도의 귀감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사적으로 볼 때 칼빈은 사도바울 다음가는 사명자로의 많은 열매를 맺혓기에 중생들이 그를 섬김의 대상으로 올려 놓을 수도 있기 때문 입니다.
성도는 이처럼 주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업적이나 공적이 사라져야 주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께만 영광을 위하여 주님이 인도 하시는 데로 순종하여 주님의 멍에를 함께 했다는 그 십자가의 삶의 흔적이 남을 뿐 입니다. -- 복음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며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다가 참수되어 주님께 영광 돌려 드리신 세레요한도 오직 주님 영광을 위한 그의 삶의 흔적이 남을 뿐 입니다.
8. 요4;7-30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부록 - “믿음과 자기 의” 참고)
당시 사마리아인은 같은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족속이면서도 이방인과 결혼 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이 매우 경멸 했던 족속 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이들과의 결혼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대화도 하지 않앗다.
그러나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는 샘물인 복음을 전하신다.
요4;28-30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4: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 사마리아 여인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삶이 변화된다.
그동안 그녀의 삶에 가장 소중했던 물동이를 버렷고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잊고 주님을 증거하고 영광 돌리는 삶으로 인격이 변화된 것이다. -- 복음
주님은 유대인들의 경멸을 받앗던 당시의 풍조를 깨고 도덕적으로 혼잡하게 살앗던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의 관점이 우리 인간의 관점과는 전혀 다르다는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은 도덕적인 의로움을 전혀 무시하시고 오직 주님의 “의”로 만이 의롭다고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과거의 삶이 어찌 되었든지 그 모든 것은 죄인으로서의 삶일 뿐 입니다.
다만 주님의 크신 은혜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간주해 주시는 능력이 내게 주어진 것입니다.
염소는 언제나 염소이지 염소가 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으로 충성해도 죄인이 의로워 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간주될 뿐 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성경 어디에도 내가 노력하여 의로워지고 경건에 이르게 된다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욥은 세상으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평판을 얻기 위하여 의로운 삶을 살앗으나 이는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영광을 받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자신도 깨닫지 못했기에 모진 고난의 과정을 통과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욥은 왜 자신이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몰랏기에 더 많은 세월의 오랜고통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깨닫고 회개 합니다.
욥42;3-6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 자칭 의로운 자에서 주님 앞에 극악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땅의 모든 죄인이 믿음으로 주님의 긍휼의 은혜를 얻었고 이 깨달음 속에서 감사와 충성과 오직 주님께 영광의 삶이 있다고 말씀 합니다.
9. 요5;2-16 주님의 뜻을 모르는 형식주의자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가 고침 받고 예수님을 안식일에 병 고쳤다고 고소하다.(14-15절)
** 주님은 진정으로 그 병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지만 안식일에 고쳤다 하여 고소 합니다.
인륜 도덕적으로도 이해 할 수 없는 일을 사탄은 율법을 내세워 주님을 괴롭힙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지키려 했던 율법의 기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10;2-3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안에 구설수가 많고 다툼이 있는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모두가 자신이 만든 율법이요 형식에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이 교회 법 일지라도 경우에 따라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주님의 마음이 없기에 다툼이 일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 라는 것을 인식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아직 나이도 어린 처녀가 임신하여 부모님과 가족들로부터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내 쫏김을 당한 이 처녀는 수없이 자살을 결심하다가 최후로 교회에 왔다면 교회에서는 어떤 반응 일까요??!!
철부지의 장난으로 그리 했다 할 지라도 그의 괴로운 마음을 어루만져 줄 사람이 얼마나 될 까요??
배가 남산 만하여 교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과연 사랑의 마음으로 보며 걱정해 주는 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율법에 가득하여 비판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당시 도덕군자요,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 입니다.
일견 이 처녀가 잘못한 것은 분명 합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이미 지난 일이요 자신도 잘못됐음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 합니다.
같은 죄인으로서 그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더구나 생명은 모두가 주님이 내 셨는데 누가 그 생명을 없수이 여길수 있단 말인가요?!
야곱의 아들 유다도 자신의 아들의 부인 다말 과의 관계에서 아들 베레스를 낳앗고, 다윗도 자신의 참모인 우리야를 간접 살해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도덕적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의 그 후손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어찌 피조물이 도덕, 윤리, 사회법 그리고 자신의 생각의 잣대로 비판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창조적으로 섭리해 가십니다.
그 앞에 우리는 겸손히 주님의 뜻을 항상 간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0. 요5;17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요5;20-21 구원하심과 요5;22 심판 이 그것이다.
**구원 하심이란 선택한 자를 하나님 백성 만드신다는 새 창조를 뜻하는 것이요 심판이란 불택 자들의 심판으로 택한 자들에게 참 기쁨과 감사가 있어 더욱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 입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1. 요6;9-21 오병이어,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마14;13-21, 막6;30-44 참고, 눅9;10-17)
기적 그 자체는 복음이 아니다.
이러한 기적의 현상을 보고 살아계신 전능자 주님을 만나며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게 되는 변화가 있을 때 -- 복음
그러나 안타갑게도 교회, 성도가 이런 나타나는 신통력 있는 현상만을 쫒는 어리석음을 많이 본다.
이런 신통력은 사탄도 얼마든지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감히 예수님까지 시험했습니다.
[마4: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4: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4: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요13: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 이런 마귀이지만 주님 앞에서는 얼씬도 못하는 것이 사탄 입니다.
엡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주님이 내주하신 주님의 생명력이 왕성한 성도에게 감히 사탄은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질량 불변의 법칙을 깬 5병2어로 5000명 먹이고도 12광주리 남은 사건, 만유인력의 법칙을 깬 예수님의 물위를 걸으신 사건, 죽은자를 살리시고 중환자를 고치신 사건, 해와 달이 공전과 자전을 멈춘 사건 등의 기록을 보면서 내가 이 사실을 바보 같이 믿는 하나님의 자녀 된 것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조석변의 내 믿음이 아니라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의 믿음이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내 자신의 믿음을 보면서 이것이 기적이요, 내가 사명자 됨의 증거 라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히브리 원어로 al'P' (palla) - 가르침에 따라 순종하는 입
어떠한 주님의 말씀 일지라도 믿고 기대감을 갖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 할 수도 없고 동의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우선 아멘 하며 믿음으로 좇는 것이 기적이요 은혜 입니다.
12. 요6;28-29 믿는것이 하나님의 일
믿는 다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통하여 깨달아진 복음을 믿는 것인데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어찌 주님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성도,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며 분주하게 일하지만 정작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헛된 충성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다른복음을 붙잡고 있는 꼴이다.
갈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나님의 일이란 주님을 알고 깨달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이다.-- 복음
깨닫다, 알다 라는 용어는 우리의 언어와는 전혀 다르다.
누구를 안다 했을 때의 “알다”는 이름, 직업, 성격 등의 겉모양을 이름이 아니라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의 안에 있는 “비밀을 안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안다고 했을 때 이는 주님의 비밀을 안다는 뜻이 된다.
[눅8:10]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는 성도가 주님의 비밀을 알기를 원하시며 아버지로서의 친밀감을 갖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주님의 비밀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하는 것은 아닌가요?!
이 비밀이 하나님의 생명력이요 복음인 것입니다.
창조전에는 “없음”이었고 오직 창조주만이 “있음”이었습니다.
있음이란 히브리 원어로 hy'h' (haya) 여호와가( h/'hiy ) 바로 있음이란 뜻 입니다.
“없음”인 인간을 창조하시고 “있음”을 불어 넣으셨는데 이것을 “생기” 또는 하나님의 생명력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없음에 주님의 생명력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꾀에 빠져 하나님의 생명력보다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그 어떤 것으로 치장하기를 좋아 하는데 세상의 “힘” 입니다.
이것은 가짜 생명 입니다.
짐승이라 했습니다.(시49;20)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 입니다.
감사한 것은 택한 자는 이미 이 비밀을 알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럼에도 마치 돈에 눈이 먼 발람 선지자와 같이(민22;28-33) 다른 어떤것에 관심하기에 주님의 비밀을 놓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택함을 임은 우리에게 가치란 오직 주님 뿐 입니다. -- 복음
복음을 아는 만큼 우리의 신앙은 주님의 생명력으로 가득 찬 성숙한 신앙이 되며 주님 기뻐하시고 주님이 내안에 거하시기에 불편 함이 없는 연합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가 천국 입니다.
13. 요8;7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부록 - “믿음과 자기의” 참고)
음행중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 대해 주님은 이런 판단을 내리신 것이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음행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관례인데 혁신적인 판결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는 다음 말씀이 진리 임을 증거 하고 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마9;13 의인 부르러 온 것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세상에는 의로움이란 없다는 단정 입니다.
아무리 의롭게 살고 저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는 행위를 하고 남이 알아줄만한 공적을 쌓앗다 할 지라도 그것으로 의로워 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공적으로 의로워 지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고 또 지켯다고 지키지 않은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 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 율법의 목적입니다.(롬3;20)
그런데 그 율법으로 참소하고 죽이려고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것입니다.
현대에도 법을 지키겠다는 모든 이들은 그 지킴으로 남을 고소하고 잘못을 지적하여 그를 뭉게고 자신이 고지 위에 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참소하는 자들에게 너희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
그러나 죄인을 죽일 때에는 죄 없는 자가 죽여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 생명력 앞에 그리고 그 빛 앞에서 모두 도망하고 말앗습니다.
자신의 어둠이 어둠으로 보여질 것이 두려웟던 것이요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까 두려워하여 도망한 것입니다.
여인에게 “너와 나만 남앗다” 는 말씀으로 안도의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리고 간음녀에게 “사죄의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요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모두가 주님 앞에서 죄인인데 이 “믿는 죄인을 주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간주”해 주실 뿐 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기독교란 은혜와 사랑의 종교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타락해서 악의 굴레에서 헤메이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복음을 주시기에 은혜인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요19;30 다 이루었다
14. 요8;3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님 은혜로 진리가 깨달아 졌을 때 복음이 내 안에 떨어지면 내 인격에 변화를 가져오고 성령이 인도 하시는 하나님나라를 이루게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게 되니 삶에 자유함을 이룬다. – 복음
**진리는 아무든지 그 안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으로만이 알아지고 감동되고 삶의 질을 변화시켜 주님의 생명력인 복음의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잘못 알고 살아왔던 길에서 바른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을 자유함을 입었다라고 말씀 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관이 주님의 가치체계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는 자녀가 된 것이다.
이미 창세전부터 작정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이었지만 고아와 같이 살아 왔던 삶에서 아버지의 자녀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바로 주님의 생명력이라 하는 것이며 이 능력으로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자유함을 누리는 하늘나라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15.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말씀하며 또한 죄악성이 있음을 말씀 한다.
성경은 인간의 죄악 됨을 말씀하므로 인간의 불가능성을 강력하게 알려주신다.
아무리 노력하고 참 선의 삶을 살아도 의로워 질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이 밝혀주신 진리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께 이 죄의 문제를 맡기라고 권면해 주신다. - 복음
[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
[갈3: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이 약속을 믿는 믿음은 주님의 믿음을 주신다고 또한 약속하셨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선악과의 유전 인자를 가진 전적으로 타락하여 마귀의 자식의 형상인 우리들이지만 주님은 긍휼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공로로 주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 의롭다고 간주해 주시니 이보다 큰 은혜가 어디에 있을까요??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죄악된 세상에 살기에 죄악이 죄악인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라고 권고 하십니다.
그러니 자녀인 성도는 노력하지 않아도 힘쓰지 않아도 그냥 누릴 수 있는 자녀로서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주 어버지께만 영광!!
16. 요9;6-12 맹인 --보다(실로암)
날 때부터 맹인으로 살다가 주님의 지극하신 은혜로 눈이 떠져 보게 되었는데도 고쳐주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요9: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9: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 함 이러라
**은혜에 대한 배은 망덕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우리 역시 주님의 무한하신 크신 은혜를 받고도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거나 그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 맹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주여!! 용서 하소서. 주신 은혜를 늘 헤아리고 감사하게 하소서. -- 복음
내 안의 주님이 강권적으로 주님만을 생각하게 하시며 주님께 영광 돌릴 일만을 삶의 목적으로 살게 인도하소서.
어떠한 유혹에도 주님 영광보다 더 소중함이 없다는 것을 늘 확인 하게 하소서.
17. 요10;10 내가 온 것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에서 풍성이란 꼭 물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의 기쁨과 평안의 하나님 나라를 뜻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게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늘의 기쁨과 평안의 삶을 살게 된다라는 의미 입니다.
생명이란 히브리어로 yj' (hayo) -- “전능하신 주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즉 생명이란 “주님의 권능이 행해지는 것”을 뜻 합니다.
주님의 생명력이 내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이를 더욱 풍성하게- 현장감 있는 감격으로 살아 계신 주님이 인도하시어 늘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게 하신다. -- 복음
생명이란 시간적인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력이 행해지는 것으로 오직 주님 영광이 생명의 이유요 목적입니다.
이는 또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18. 요10;26-28 양과 목자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양은 성격적으로 온순하며 근시안이며 다른 어느 동물처럼 재 빠른 동물이 못되며 신체 구조상 상대의 공격을 제어할 무기나 힘을 갖지 못하여 늘 목자의 인도하는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연약한 동물 입니다.
주님은 택한 주의 백성을 이 연약한 양에 비유하여 주님 스스로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 가로 인도하시고 맹수의 공격을 막아 지켜 주십니다.
이처럼 양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목자를 절대 의지하며 순종하여 희생양이 될 때에도 반항함이 없이 죽어 희생양의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생명의 주인 이십니다.
순교의 제물이 되기를 원 하실 때에 기쁜 마음으로 드려지기를 원하나이다.
주여!! 나를 강력하게 인도 하소서. -- 복음
19. 요12;43 사람 영광> 하나님영광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는데 그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고 있다는 탄식 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주여!! 내 삶의 목적도, 존재 이유도 주님 영광 입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하소서.
때로 고난의 십자가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임을 확신 합니다. -- 복음
주님의 은혜였던 청지기 직분을 잊고 작은 봉사와 충성을 자랑했으며 잘나서 이렇게 잘 된 냥 떠버렸던 것을 용서 하소서.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 나는 검불에 불과하며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로 소이다.
땅에 것에 관심하다가 거룩하신 주님를 잊어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야 요나 같은 꼴이 되어 고통 중에 깨닫고 회개하는 일이 없게 인도 하소서.
야곱 후예의 400년 애급 종살이를 늘 기억 하게 하소서.
광야 40년의 이스라엘 백성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유다 백성의 70년 바벨론 징계를 늘 기억하게 하소서.
독선에 가득찬 자칭 의로운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에 대한 예수님의 징계를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내리소서.
20. 요13;34-35
새 계명 서로사랑-- 이로서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
** 하나님의 제자는 주안에서 서로 사랑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안에도 주님이 거하시기 때문 입니다.
또한 서로사랑 할 때 모든 율법적인 굴레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롬13: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럼에도 나는 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율법, 자신의 제한되고 죄스런 생각에서 자유할 수 있는 이 축복의 사랑을 하게 하소서. 그러나 나는 이 사랑을 할 수 없나이다.
성령의 열매로 주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 복음
갈5;22-23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심장)을 준다는 의미로 인간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주님의 생명력이요 능력인 것을 고백 합니다. 주여 인도 하소서.
21. 요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길이란 주님이 가신 길을 뜻하며
진리란 영원히 변치 아니 하는 내 삶의 안내자인 주님의 말씀을 뜻하고
생명이란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있는 것이므로
주님은 내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진리의 복음을 깨닫게 하여 내 삶을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인도하신다. -- 복음
중요한 것은 이 길이 오직 외길 이라는 것이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럼에도 종교다원주의가 팽배한 작금에는 어찌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 하나냐고 대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만이 구원이라는 것은 독선이며 종교성이 없는 악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카토릭에서도 개신교는 구원이 없다 라고 외칩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에서는 오직 주님의 긍휼하신 은혜만을 강조하고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다고 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만이 구원이라 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갈수 있는 길이기 때문 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길이기 때문 입니다.
그것도 주님이 내게 찾아오셔서 길을 안내해 주시기에 은혜입니다.
따라서 개신교는 진리를 찾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와 복음이 택하신 성도를 인도하시기에 이 길로 들어선 은혜를 깨달은 성도는 감격하면서 이 길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은혜 충만하여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 했습니다.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오! 사랑하는 나의 제자여 고맙다”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초 치십니다.
“네가 닭 울기전 3번 나를 부인 할 것이다”(요13;36-38)
주님을 목숨걸고 쫏는다는 것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불가능-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약하게 질그릇처럼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그러므로 믿음이란 절대적으로 내 능력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베드로가 은혜의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 합니다.
요21;18-19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구원의 길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바로 갈수 있는 길이지 인간의 능력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주님은 3년반으로 구분해 놓으셨습니다.(계11;2)
42개월, 1260일은 예수님이 공생애 3년반을 사신것과 같이 우리의 인생도 이 땅에서 3년반의 주님 가신 길의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목이 갈 할 때에 반석에서 물을 펑펑 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알고, 주님께 영원토록 영광돌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선택받은 자가 자기가 설정한 다른 길이 있기에 어렵고 고난과 환란의 연속인 것입니다. 깨닫기 까지 3년반의 인생 여정이 야곱과 같이 고난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기 때문 입니다.
사울과 모든 장군들이 벌벌 떨었던 골리앗 장군을 소년 다윗이 물메돌 5개로 쓰러뜨린 것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이요 능력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요
철옹성 여리고성을 무기가 아닌 긴 양각 나팔과 함성으로 무너뜨린 것 역시 주님의 현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요, 우상 섬기던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훈련의 과정(3년반)을 거쳐 믿음의 조상 아버지로 불리우게 된 것 역시 주님의 은혜입니다.
즉 자신을 부인할 때 나타나는 주님의 은혜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질 때에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은 우리의 육체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길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
그럼에도 또 많은 다른 길이 있다고 한 테레사 수녀의 그 다른 길을 찾고 있으신가요??
다른 길은 모두 엄청난 낭떠러지 입니다.
떨어지면 죽기에 이 주님의 길로 들어선 주님의 백성들은 그 길을 막아서며 “이 길은 낭떠러지” 라고 알려주며 주님 가신 길을 제시 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길이 있다고 우기시겠나요??
요1;9-14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2. 요15;5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부록 - “사명” 참고)
주님은 포도나무의 본체 이시지만 그 열매는 가지인 성도가 맺힐 수 있게 하시고 내가 열심을 내어서 맺힌 열매로 간주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은혜입니다. -- 복음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붙어 신앙 입니다.
행11;23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신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 나무에 붙어 있고, 주께 붙어있으며, 여호와께 붙어 있기만 하면 주님의 생명력이 왕성하게 역동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인가 기여 하겠다는 데서 어려움이 오고 불신앙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지가 한 일이란 본체에서 준 수액과 영양을 받아들인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이를 사명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오직 주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자 이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어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이모든 일들은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명자가 한 일이라고 간주해 주시니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열매가 보이면 자신을 드러내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롬10;2-3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 주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 입니다.
요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모든 충성과 사명의 시작은 오직 주님 영광이나 나중은 자기 영광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경고 입니다.
23. 요15;16 내가 너희를 택했다.
(부록 “사명” 참고)
너희가 나를 택한 것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열매 맺게하고 무엇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라.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 입니다.
좋은 열매 맺어 주님께 영광을 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 영광을 위한 사명자에게는 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복음
**그럼에도 사명자들이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구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직 주님 영광을 위한 구함이 아니라면 사명자도 아니요, 모두가 자기 영광으로 주님 영광을 가로채려는 수작일 뿐 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주님 영광을 위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음에도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있어 매를 맞고서야 깨닫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친히 바른 간구를 하시는 것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이 사실을 믿고 조심스레 한 발자국 씩 주님이 하시는 일 보며 따라가는 삶이 성도의 바른 삶 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명도 주님이 이루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에 성도는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 영광을 올리는 것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렘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명하신 대로 하기만 하면 그것이 사명 입니다.
내 생각이나 업적을 보태야 된다는 것은 사명도 신앙도 아닌 악한 행위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리를 찬탈하는 죄악이기 때문 입니다.
다만 시키시는 대로 복종이 사명 입니다.
24. 요16;7 내가가면 보혜사 보낼 것
(참고 부록 – “성경 10대 비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 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성령님 임을 확실하게 하신 말씀 입니다.(골2;2-3)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믿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행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택하신 자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주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 복음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성령께서 친히 간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고 구한다고 하지만 때로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구함이 있을 수 있다는 뜻 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유럽쪽으로 가기를 원하여 기도하고 구 했지만 주님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하신 것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깨닫게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위하여 친히 기도하시며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길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 주님의 높으신 계획 하심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냥 우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내가 구하지 아니한 것도 주님은 기도하시어 바른길로 가게 하신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주님은 진리를 증거해도 못 알아 듣기에 주님은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십자가 사건은 필요 불가결한 것입니다.
이유는 주님이 보내시는 그가(성령) 진리의 비밀을 알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25. 요16;8-11 그가 와서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
죄- 믿지 아니함
의- 다시 나를 보지 못함
(하나님이 의이시니 --성령인도로 의롭다 함 받는다)
심판- 사탄은 심판 받앗다. (십자가 사건때 이미 사탄은 죽임 당한 것)
창3;15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 상하게 할 것 -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을 믿는 특권을 하사 받아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동시에 의롭다고 간주해 주시니 은혜요 이를 더욱 확실하게 믿게 하기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확언해 주셨으니 우리 성도는 모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 복음
엡2;8-9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롬3;23-24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렇게 이미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승리한 축복의 인생 길이지만 아직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때로 방황하기에 고난의 믿음훈련은 아직도 계속된다는 뜻의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룬 하박국의 고백이 있기를 기도 합시다.
합3;17-18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그럼에도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과 같이 한결같은 마음을 갖지 못하고 때로 불안해 하며 때로 조급해 하며 때로 어찌 할 바를 몰라 방황하기도 하는 믿음없는 자 이기에 아직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늘 주님만을 생각하며 주님의 능력, 생명력이 늘 역사 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복음입니다.
26. 요17;3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영생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의 기록 목적이 영생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라 했으니 영생은 참으로 모든 인간의 관심사임에 틀림 없습니다.(요일5;13)
그런데 그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했으니 참으로 성도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있나요???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생의 소망이 없는 것인가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신 주님이 십자가의 형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좀더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말씀 안에서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이 불 일듯하는 세상에 살면서 이 죄악을 죄악으로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마치 이는 난쟁이 세계에 보통사람이 서 있다면 그는 거인이라는 놀림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당시 가장 악한 죄인의 사형방법인 십자가의 형틀에 못박아 살해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말투가 우리의 마음이 모두가 사탄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복음에 붙잡힌 성도는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있는 성도를 세상은 이해 할 수 없어 핍박하고 저주하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위대한 신앙의 선배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죄악을 고백 합니다.
엡3;8 지극히 작은자 보다 더 작은자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딤전1;15 죄인중의 괴수
고전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 사도바울은 성령의 충만 속에서 죄악에 쩌들어 있는 자신을 보며 탄식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범인인 우리들이야 말할 수 없는 죄인 이지요
진실로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있나요??
성경은 죄에 대한 정의를 “주님을 믿지 아니함”이라 했습니다.(요16;9)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주님의 청지기로서 오직 주님 중심의 삶으로 주신 사명을 이루어 주님께 영광된 기쁨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사는 이들를 믿음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순간 순간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생각데로 말하고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 그래서 믿는 죄인일 뿐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여 ---<ME VIDIT DEUS>--주님은 지금도 나를 보고 계십니다---겸손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악한 죄인을 주님의 크신 은혜로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의롭다고 간주해 주신 깨달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롬3;23-24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뿐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마음을 성전 삼으시고 거하시니 영생은 이미 따 놓은 것입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를 확실하게 믿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연합의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갈3;26-28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믿고 감격하며 감사하며 찬양한다면 이는 “하나님과 그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간주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럼에도 이 깨달음과 감격이 없다면 당신은 믿음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악한 자 일 뿐이요, 믿는 자의 형식을 가진 교인일 뿐 입니다.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27. 요17;11 예수님의 연합을 위한 기도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처절한 안타까움의 기도 이다
철저하게 택하신 자를 위한 기도를 하시면서 “보전하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와 같이”즉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연합된 것과 같이 택하신 성도들도 주안에서 연합되기를 기도 하신다.
그래서 우리 검불 만도 못한 나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친히 기도하신 것이다.
이 은혜가 얼마나 감격인가!
당신은 십자가의 고통 당하실 처지에 있으시면서 오직 성도들을 위한 사랑의 표현이 너무 지극 하십니다 -- 복음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 주님의 이 복음의 말씀이 체감 되어 지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주님이 부어주시는 기쁘고 평강한 삶을 주님과 더불어 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산다는 축복입니다.
늘 소망적이요 늘 사명감에 불타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이니 늘 주님이 함께하시는 기쁨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럼에도 다른 세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사니 어두움과 밝음을 왕래 하는 불안한 삶을 산다면 주님을 완전히 믿지 못함이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은 것입니다.
28. 요17;17 진리로 거룩하게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나 이 진리가 거룩하게 인격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바로 진리의 깨달음이다. -- 복음
이를 복음이라 하는데 이는 주님과 연합의 원리에서 이루어 진다.(요17;21-22)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는 주님과의 연합된 삶을 살게 하소서. -- 복음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29.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義란 히브리 원어로 qyDix' (chadik) - 전능하신 주님의 전에 코꿰어 있는 –
창조 주님은 창조하신 집을 성전 삼고 거하시니 의로우신 것이다.
즉 우주만물이 그의 전 이므로 낚시질하여 코꿰어 훈련시켜 주님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의로우신 것이다.
그래서 성육신하신 예수님도 의로우시기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 말씀하신것입니다.(요14;9)
한마디로 의로움이란 한 마음만 있다는 것이다. --- MONOGENES
인간은 두 마음이 늘 공존하고 있기에 죄인 입니다. --- e!piqumiva -- 욕심, 탐욕으로 번역되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훈련시켜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하고 사명을 이루어 열매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30. 요18;4 (마26;47-56, 막14;43-50, 눅22;47-53)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잡히시다)
(부록 - “사명” 참고)
요18;4-5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아버지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니 전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주어진 사명(십자가)을 이루어 내신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사명자는 이러한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담대히 세상을 이긴다. -- 복음
담대히 그리고 당당하게 “내로라” ejgwv eijmiv(ego eimi)v 함은 주님의 능력인 것이다
“없음”에 상반하는 “있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 합니다.
없음은 가짜요 허상입니다. 있음이란 실상이요 하나님의 생명력이 충만을 의미 합니다..
그럼에도 염려와 근심, 불안, 초조함과 두려움이 있다면 아직 주님이 내리신 사명을 확신 하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로서의 사명이 확실하기에 그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어도 두려움 없이 사명 이루신 것입니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 성도는 모두가 선교사요 사명자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어 주님께 드리는 사명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엑스트라로 보내졌고 그 삶은 짐승 같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목사님을 위한 충성도 아니요, 교회를 위한 충성도 아니요, 교인들로부터 칭찬 받기 위한 충성도 아닌 오직 주님 영광을 위한 사명감이 충만할 때 충성, 봉사하며 서로사랑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평강과 기쁨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31. 요18;17-27 베드로의 3번 부인
1.제자중 하나 --아니라,
2.너도 그 제자 --아니라,
3.또 부인하니 - 닭이 울더라
인간의 나약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는 아담 이브가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를 받고도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나약한 죄인 이오니 주여 정죄, 판단치 않게 하시며 전능하신 주님이 지키시사 주님 중심의 삶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 복음
베드로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 라는 고백은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결단 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조석변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늘 주님 생각하고 주님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 역시 단순간에 주님을 배신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32. 요 19;30 다 이루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신은 피조물에게 나타나면 죽으니 나타낼 수가 없어 말씀으로 나타나셨지만 인간은 신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벗이되고 친구라면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벗이라 함은 서로간에 허물을 덮어주고 비밀이 없는 사이를 친구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친구로 형제로 오신 것이다.
주님은 피조물로 부터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한 10계명도 주신 것이다.
그러나 1계명 ~ 4계명의 의미를 타락한 인간들이 도무지 알지 못할 것을 아시고 주님과 상관 없는 5계명 ~10계명을 덧붙여 주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신을 알 수가 없었다.
유한적인 존재가 영원하신 신을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신이 죽으심으로 자신을 설명하신 것이다.
이처럼 고난을 받으시면서 멸시 천대를 받으시면서 예수님은 자기부인을 철저히 하시는 본을 보여 주셨으며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난을 통하여 “다 이루었다”고 선언 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십자가의 문제를 “다 이루었다”는 것이요, 우리의 고난의 문제도 주님의 십자가 상에서 “ 다 이루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해 수준에서 성도의 삶의 어려움과 고난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다 이루었다”의 복음이 보여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빌고 있다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바가 없는 간음 행위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친구가 되시어서 택한 자들과 연합되어 주님을 알게 하여 영광돌리게 한다는 것이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어둠에 뭍혀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충격 요법인 고난을 통하여 인간으로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을 깨닫게 하여 주님을 찾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연합하기 위하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진정한 연합이되어
주님과 더불어 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 하십니다.
주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라. 즉 온전하라 라고 명령 하십니다.
주님과 연합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죽으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을 버리고 자기의 어떤것도 드러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지도자들이 지키라고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지키라” 고 하면 성도들은 자랑할 거리가 생기게 되니 기쁜 것입니다.
자존심 입니다. 선악과의 한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자신의 자랑하고 싶은 정체성이 드러나니 여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너는 훍덩이요 죽어 썩어 냄새나 버려진 시체야. 잘난 것 없어.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말한데로 순종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럼에도 저택, 화려한 장신구, 고급 승용차, 학벌, 지위 등으로 자신을 이웃들로 하여금 판단 받기에만 관심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 하실까 에는 관심도 없어요.
남들이 좋게 평가하면 그것이 행복이요, 좋은 믿음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가치는 하나님의 생명력인 복음이 내 안에서 박동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연합됐다는 증거 입니다.
이를 위하여 神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더 이상 너희에게 나의 뜻을 설명하지 않는다” 라고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 입니다.
33. 요20;6-9 부활하시다.
부활의 사건은 개신교의 생명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신앙의 본질을 잃는 것이 되기 때문 이다.
부활은 소망이요 힘이다.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죽고 주님의 부활 하심과 함께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 복음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생명력이 영원하심과 같이 성도의 생명도 영원하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끝의 절망이 아니라 죽으면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영원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부활의 소망이요, 능력 입니다.
34. 요20;19-22 (마28;16-20, 막16;14-18, 눅24;36-49)
제자들에게 --- 평강이 있을 지어다.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제자들은 모여 앞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의논했다.
유대교인들를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활의 예수님이 이들 앞에 오시어서 하신 말씀이 “평강이 있을 지어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며 사명을 이룰 것을 명 하신다.
이 사명이 바로 평강을 얻게 된다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성령을 주신 것이다.
--복음
평강은 히브리어로 !/lv' (shalom) ---
--- 전능하신 주님의 가르치심 따라 십자가를 진 생명 --
이때에야 평안(peace)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집도, 관계의 모든것도, 소유의 모든 것을 포함한 전인격적이며 내 삶의 모든 것의 평안을 평강이라 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는 세상적인 염려와 어려움이 전혀 없는 기쁨의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삼상25;6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빌4;6-7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늘 주님의 긍휼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평강의 축복이라 말씀 하십니다.
35. 요20;22 성령 받으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진리를 진리로 설교한다면 참으로 설득력 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전달이요 지켜야 된다는 율법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지킬 수 없는 율법은(2134가지) 모두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타락한 죄인이기에 율법은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씀 할 때는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비밀 즉 하나님이 성도에게 전하시고 싶으신 복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받을 마음의 그릇이 되어야 부어 주실수가 있다는 뜻 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님만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비밀이신 주님을 알 수가 있게 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진리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의 수준에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셔서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셔야 진리 안의 복음을 보고, 깨달을 수 있기에 성령을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36. 요20;31 이것을 기록함은 믿어 생명을 얻게하려 함.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이란 히브리 원어로 yj' (hayo) “전능자의 손안에 있는” 이란 의미로 “하나님의 생명력 안에 있는” 것을 생명이라 한다.
창조시에 “없음” 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있음” 즉 이를 “생명” 이라 합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생기)을 주셨습니다.
[창2: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래서 “보시기에 좋앗더라” 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겠다고 선악과를 먹으므로 전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생기” 하나님의 “생명”이 “없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선악과의 결과인 교만만 남게 되었고 인간은 이 교만을 충족 시키기 위하여 더 많은 교만을 재 창출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세상의 “힘”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 “없음”에 저장하게 되었습니다.
돈, 명예, 권세, 인기, 등등의 쓰레기 하치장이 된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주님을 모르며 주님의 “생명력”이 없는 인간들은 열심을 내어 쓰레기를 모으는 것을 자신의 높은 위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이는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까가 기준 입니다.
평가할 심사위원이 자신을 아는 이웃들 이라는 것이지요.
창조 주님은 단언 하십니다.
그 모든 악세사리는 쓰레기요 “없음” 이라고.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기록하신 목적을 말씀 하십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깨닫고 믿어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력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며 주님께 영광 올리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 복음
37. 요21;15-19,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6-17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 “먹이라”는 필요를 채워주라는 의미요
”치라”는 훈련과 교육을 시키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혀 무능력하여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맹수 앞에 잡혀 먹히는 양을 비유하여 성도도 양과 같이 세상 힘에 나약하니 늘 돌보고 먹이고 다스리고 훈련 시키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믿는 모든 성도에게는 이와 같은 사명을 주신 것이다.
주여!! 주신 사명 이룰 수 있도록 성령 충만으로 인도 하소서. -- 복음
사명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고 전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딤후2;3-4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사명자는 군사와 같이 지휘관인 대장의 명령에 이유 없이 절대 복종 하는 자이다.
그럼에도 총 사령관인 하나님을 무시하기 일쑤이며 불복종을 다반사로 하면서도 철면피같이 살아오고 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나요?!
명령에 불복종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나 총 사령관이신 주님은 참고 기다리시며 깨닫기를 원하신다.
주여!! 이 은혜를 늘 감사하며 주안에서 기쁨으로 절대 복종하는 군사 되게 하소서.
늘 주의 명령에 나의 모든 청력을 주님께만 기울이는 충직한 종 되게 하소서.
이미 주신 말씀의 비밀을 깨닫도록 하시며 현실 속에서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영 분별의 은혜를 내리어 주시고 확신 속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종이 되게 인도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