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의 이름들을 모두 정리한다.
1. 헤롯 대왕(BC 37- 4, Herod the great) Agrippa
① 로마 최초의 황제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BC 27년 – AD 14년, 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가이사(시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제위 중에 있을 때 팔레스틴(유대) 지역을 통치하였다.
②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을 때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다 죽인 잔인한 왕이다(마2:1-19).
③ 별명이 건축 광일 정도로 재임 기간에 거대한 건축 공사를 많이 했다.
2. 헤롯 안티파스(BC 4 - AD 39, Herod Antipas)
① 헤롯 대왕이 BC 4년에 죽은 후, 그의 영토는 그의 세 지역으로 나누어져서, 세 아들들이 분봉 왕을 차지하면서 나누어 다스렸다.
② 헤롯 대왕의 아들이며 갈릴리와 베레아 분봉 왕이다.
③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고 그를 마케루스 요새 감옥에 가두웠으며, 결국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청을 듣고 세례 요한을 참수시켰다 (눅3:19-20, 마14:1-12).
④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으며, 예수님에게 여우라는 책망을 받았다(눅13:31-32).
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잡히셨을 때, 헤롯 안티파스가 예루살렘에 있었고 갈릴리 지역의 통치자 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보내어 지심을 받았다 (눅23:6-12).
⑥ 사도들의 말 속에서 언급된다 (행4:27).
⑦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하였다 (막6:14-29, 눅9:7-9).
⑧ 티베리아(AD 19년)와 세포리스(찌포리:새, 당시 갈릴리의 수도)를 건설하였다.
3. 헤롯 아켈라오(BC 4 – AD 6, Herod Archelaus)
① 헤롯 대왕이 죽은 후, 천사의 지시를 받고 이스라엘로 들어왔으나 아켈라오가 유대 왕이 된 것을 듣고 무서워하여 꿈에 지시를 받아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다 (마2:22).
② 헤롯 대왕 사후에 사마리아, 유대, 이두메(에돔) 지역의 분봉 왕이 되었다.
③ 그는 부친 헤롯 대왕보다 훨씬 폭정을 행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컸고, 백성들이 로마로 탄원을 계속 보냈으므로 통치 10년 만에 로마에 의해서 강제 폐위되고, 이 지역은 로마 총독 체제로 들어간다.
4. 헤롯 빌립 Ⅱ (Herod Philip Ⅱ, BC 4 – AD 34)
①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이 되었다 (눅3:1).
② 갈릴리의 북쪽과 동쪽을 통치하였다.
③ 가이사랴 빌립보(현재명, 바니아스)를 건설하였다.
5. 헤롯 빌립 Ⅰ (Herod PhilipⅠ)
① 헤로디아는 헤롯 빌립 Ⅰ세의 아내 이었으나 그와 헤어지고, 그의 형,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하였다. 이것을 세례 요한이 잘못한 것이라고 책망하였다 (마14:3-4). 헤로디아가 이렇게 한 것은 분봉왕과 결혼함으로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것이었고 안티파스는 하스모니안가의 공주와 결혼함으로 혈통의 정통성을 얻으려고 하였다.
6. 헤롯 아그립바 Ⅰ(Herod Agrippa Ⅰ, AD 41-44)
① 헤롯 대왕의 손자이다.
② 유대의 왕이었으며, 헤롯 대왕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③ 로마는 BC 6세기부터 갖고 있던 대 제사장 임명권을 아그립바 Ⅰ세 에게 넘겨주었다.
④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를 죽였으며,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다 (행12:1-19).
⑤ 헤롯 아그립바 Ⅰ세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다가 천사가 치니 곧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 (행12:20-23).
7. 헤롯 아그립바 Ⅱ(Herod Agrippa Ⅱ, AD 27/28 – 100, After AD 50)
①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Ⅱ세와 버니게(아그립바 Ⅱ세의 여동생이자 부인, 근친상간함, 로마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자기의 무죄를 호소하였고, 로마 황제, 가이사(시저) 앞에서 재판 받기를 말하였다 (행25장).
② 그가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말하였다 (행26장).
③ 아그립바 Ⅱ세가 총독 베스도에게 말하기를 바울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라고 말하였다 (행26:32).
헤롯 대왕 사후의 3 명의 분봉왕 통치 지역
※ 로마의 최초의 황제
악티움 해전(BC 31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함. ---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의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 율리우스 시저의 조카이면서 양아들 이었다.
BC 29년, 옥타비아누스가 개선할 때, “최고의 존엄자(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함. 또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왕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Gaius Octavius Thurinus)였으나, 카이사르의 양자로 입적된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라틴어: CAIVS IVLIVS CÆSAR OCTAVIANVS)로 불렸다.
로마의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BC 27년 – AD 14년 까지 통치함).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7년 ~ 서기 14년)이다.
알렉산더 대왕 때부터 황제가 처음으로 신격화 되었다.
황제 숭배 이름이 달력에 투영되어 있다.
7월, July, 율리우스 시저 이름
8월, August,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름.
로마의 평화(Pax Romana) --- ‘로마가 주는 평화’ 라는 뜻.
옥타비아누스부터 그 후 200년까지
헬라(그리스) 제국 --- 헬라어가 국제어가 된다. 알렉산더가 자기 이름을 따서 만든 알렉산드리아 라는 도시가 70개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에 있다. --- 복음 전파를 위한 언어가 준비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85,000km의 길을 만들었다. --- 로마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복음이 전파 되었다. 복음의 통로가 되었다.
로마 시민권자는 철저히 보호한다. --- 사도 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