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밤늦게까지 입시 공부에 메달리는 나는 18살이다. 내 또래들 모두가 너무나도 힘겹고 버거운 계단을 걷고 있다. 바로 입시라는 계단이다. 내신, 수능, 봉사활동, 스펙,.... 이 중 봉사활동과 스펙은 대게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 보여지는 가식과 위선이 대부분이다. 내신과 수능이라는 것도 등수에 연연해하고 우리는 반드시 남들을 열어뜨리고 위로 치고 올라가야한다. 친구가 내민 손 마저 애써 피해 버리고 경쟁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교복 넥타이끈을 조여맨다. 사람 냄새가 사라져가고 메말라버린 고등학교, 그런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하는 우리들. 가엽기 그지없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계단을 걷고잇다. 내가 걷고 있는 계단은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아주 볼품없는 고등학교에 있다. 초라한 이 곳은 어리석음에 가득차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들이 잇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부산에 한 평범한 교사가 대안학교를 세우겠다고, 그것도 전액 무료인 학교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세상은 비웃었다. '어덯게 무상교육이 가능해!', '조금 하다 말겠지'. 하지만 그 교사는 발로 뛰어다니며 후원자들을 모으기 시작햇고 몇 년이 지나 그 꿈을 이루고 말았다. 그 분이 바로 우리 교장선생님이시고 내가 서있는 계단이 바로 지리산고등학교이다. 전액무상교육을 실현한 어리석음. 그걸로 우리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또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옛 초등학교 폐교 건물에 위치하고 시설은 전국에서 제일 열악하다. 고액과외나 입시공부는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그런데 인성교육과 봉사정신만으로도 일류를 향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어리석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고등학교의 계단에 내신과 수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곳엔 사람냄새가 있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이 곳에서 추구하는 나눔과 사랑의 미덕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경쟁시대에서 잊혀졌을 뿐이다. 부족한 환경속에서 내신과 수능 뿐만이 아니라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 깨달으려니 가끔 힘들고 지치기도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어리석다. 입시학원을 다녀도 모자를 판에 나눔 따위를 배우고 있다니. 하지만 우리는 또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이 악물고 노력하며 봉사했던 멋있는 선배가 있었는데 서울대 의예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제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 남들이 걷는 평탄하고 쉬운 계단을 뒤로하고, 불확실한 비탈길과 가파르디 가파른 계단. 이제 세상은 우리가 걷는 계단을 주목하고 있다. 나도 내가 걷고있는 계단에 회의를 품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계단을 입시 성공을 위한 도구로서의 계단으로서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따지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눔, 배려, 사랑이 있는 학교, 그 계단 속에서 우리에게 어리석음을 가르쳐주는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 이를 배우고 있는 우리들. 나는 어느 날 계단 중턱에 앉아 내가 여태껏 어떤 계단을 올라왔는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계단 옆 샘물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며 어느 날 어렴풋이 들었던 교사가 되고싶다는 생각, 그 생각이 왜 들었고 내가 왜 그토록 교사를 하고싶어하며 어떤 교사가 될 지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그저 학생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나늬 모든 것을 나눌거라는 다짐을 했다.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선배들이, 앞으로 후배들이 이 계단을 믿고 매우 값진 인생의 큰 선물을 얻을 것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계단을 나는 사랑한다. 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했을 때 나도 이 계단의 작은 디딤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