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4장
다윗이 요압이 불러온 여인의 설득으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오게 했으나 완전한 용서를 하지 않음
(찬송569장)
2022-7-7, 목
맥락과 의미
13,14장은 압살롬의 반역에 대한 서론입니다. 다윗은 이런 압살롬을 용서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완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약함을 보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 대한 섭섭함이 분노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1. 요압이 여인을 통해 다윗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도록 설득(1-21)
2. 다윗이 압살롬을 데려왔으나 주저하면서 받아들임 (22-33절)
1.요압이 여인을 통해 다윗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도록 설득 (1-21)
압살롬은 이스라엘 북쪽 아람 지역 그술에 가 있습니다. 다윗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한다” (1절)는 것은 좋은 마음으로 향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나쁘게 생각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겹친 상태인 듯합니다.
요압은 한 지혜로운 여인을 불렀습니다. 여인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다윗에게 들려주게 합니다. 이것은 실화일 수도 있고, 지어 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나단이 이야기를 통해 다윗을 회개하게 한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상복 차림을 한 여인은 다윗왕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아들 한 명이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가문의 사람들이 살인한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율법은 살인을 당한 자의 가족이 살인자를 죽여서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민 35:12). 사람들이 그 피의 복수를 적용하면, 상속자가 없어지고 가문이 끊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살인자를 정의롭게 징벌하는 것은 가정 공동체를 번영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불행을 막아 달라고 다윗왕에게 간청합니다.
다윗 왕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합니다. 그녀의 아들에 대해 친족들이 피의 복수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판결을 내려 줍니다 (11절)
그때 그녀는 다윗 왕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왕은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압살롬을 향하여, 1절과 동일한 표현) 이 같은 의도를 행했습니까? 왕의 이 말씀을 따라 판단하신다면, 왕 자신은 죄 있는 사람같이 되셨습니다. 쫓겨간 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절). 그녀의 아들에 대한 피의 복수자가 그녀의 가정의 대를 끊듯이,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멸망케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내어 쫓긴 자도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14절). 13절에 왕의 “생각”와 하나님의 “방책”은 원래는 같은 단어입니다. 다윗은 보복과 죽음을,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은혜를 의도하십니다.
다시 그녀는 자신의 가정에 대한 다윗의 판결에 대해 칭찬하며 말을 맺습니다(16,17절). “나와 내 아들을 하나님이 주신 산업/기업으로부터 끊으려는 자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여 왕의 말이 위로 (안식이라는 뜻, 하나님의 기업에서 누리는 것, 수 1:15)가 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말한 것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했다는 의미) 이 이루어 졌음을 감사합니다. 선악을 잘 분간한 왕에게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옵소서”라고 축복합니다. 분간은 “듣는다” 인데, 16절의 “듣는다”를 반복합니다. 왕이 선과 악을 들은 것은 사실은 이 여인의 말에 나타난 바른 판단의 지혜를 왕이 들은 것입니다.
다윗 왕은 여인을 요압이 보낸 사람인 것을 감지하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습니다.” (20절)라고 다시 칭찬합니다.
다윗 왕의 미워하는 마음을 지혜로 돌이키고,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있음을 말한 이 여인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삼상 25:29). 다윗이 나발을 죽이려는 마음을 아비가일이 돌이켰듯이, 다윗이 압살롬을 미워하는 마음을 이 여인이 돌이켰습니다.
2. 왕이 압살롬을 데려왔으나 다윗은 주저하면서 받아들임 (22-33절)
다윗 왕은 그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을 축복하고 “은혜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압살롬이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24절) 합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야기에 이어서 압살롬을 소개 합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한 해에 200세겔 (2.3kg)이나 자랐습니다. 그 시대에 긴 머리카락은 남성적 강한 힘을 상징합니다. 그는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그런데18:18에는 압살롬은 아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압살롬의 세 아들들은 어릴 때 죽은 듯합니다. 압살롬은 딸 하나를 낳고 딸의 이름을 다말이라고 지었습니다. 여동생과 같은 이름을 지었습니다. 슬픔을 당했던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2년 동안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요압을 왕께 보내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요압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놓자, 요압은 압살롬에게 왔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에게 말합니다.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도록 하라.” (32절) 요압은 이 말을 왕에게 전했습니다. 다윗 왕은 압살롬을 불러서, 그에게 입 맞추며 화해했습니다. 그 화해는 이루어졌으나 압살롬의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분노는 이미 너무 커졌습니다. 15장에서, 그는 아버지를 향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형을 죽인 왕자 압살롬에 대해 다윗이 용서와 분노 사이에 갈등하는 이 이야기는 여러 면이 있습니다.
첫째,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야를 죽인 다윗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 이야기에 흐릅니다. 참으로 정의로운 하나님 앞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둘째로, 직분자 다윗이 어떻게 책임 있게 행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않음”을 의도하는 자비로운 분이라는 여인의 말은, 이스라엘의 왕이 직분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다윗왕은 살인한 아들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 용서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하나님의 기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삶처럼 우리도 복잡한 상황 속에 살아갑니다. 악한 자를 벌하는 정의와 사랑으로 수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번성하는 두 원칙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엡 5:15)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르치는 대로 합시다. “서로 인자하게 하게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32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만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이 정의와 사랑이 아름답게 우리 삶에 녹아지도록 우리를 이 지혜로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